김환기 사관 칼럼 – 기독교의 종교개혁 / 기도와 전도 / 종교개혁과 3권의 논문 / 종교개혁과 3개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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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사관 칼럼

기독교의 종교개혁

기독교는 개신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 성공회, 동방 정교회 등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경을 믿는 교파는 모두 기독교이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정확하게 100년이 앞선다. 천주교는 1784년 이승훈이 영세를 받은 해, 개신교는 1884년 알렌이 입국한 해를 선교 원년으로 보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1832년 고대도에서 루터교 선교사인 귀츨라프가 선교한 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1866년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도착한 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1517년 10월 31일은 개신교의 종교개혁일이다. 개신교의 개혁의 여파로 17년 후에 영국에서는 성공회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개혁에 당황한 가톨릭에서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트렌트 공의회를 열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1. 개신교 종교개혁

개신교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면죄부 (Indulgence)였다. 면죄부 (Indulgence)란 ‘돈으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증서이다. 교황 레오 10세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의 엄청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안한 모금방법이다. 95개항 반박문의 대부분은 면죄부 판매에 관한 내용이다. 8~29조항은 ‘연옥의 불에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한 면죄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51 – 54조항은 루터는 면죄부 판매가 잘못된 것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 성공회 종교개혁

종교개혁이 대륙에서 일어날 때, 영국은 헨리 8세가 왕이었다. 헨리 8세는 대륙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교황 레오10세는 극찬하며 ‘믿음의 수호자’ (Defender of Faith)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그는 부인인 ‘캐더린’이 후계자를 낳지 못하고, 형수라는 이유로 이혼을 요청했지만 교황은 거절했다. 격분한 헨리 8세는 교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이 영국교회의 최고가 되는 ‘수장령’ (Acts of Supremacy)을 1534년 발동하며 가톨릭에서 분리하였다.

3. 가톨릭 종교개혁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자 가톨릭 내부에서도 자성의 물결이 일어났다. 내부의 잘못을 성찰하기 위한 ‘반종교개혁 (Counter-Reformation)’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반종교개혁’은 자신들의 ‘권위와 전통’을 더 철저하게 지키기 위한 개혁으로 전락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단체가 ‘예수회’ (The Society of Jesus, Jesuit)이다. 예수회는 스페인 군인이었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를 중심으로 1540년에 결성된 단체이다. 예수회는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서서 가톨릭과 교황의 권위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에 앞장섰다.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예수회 출신이다.

루터의 95개항 조 반박문은 대부분은 ‘면죄부’ (Indulgence)에 대한 내용이다. 면죄부의 정확한 의미는 ‘면벌부’이다. 죄 자체를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받아야 할 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면벌부의 개념은 종교개혁 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가톨릭의 오래된 전통이다. 죄를 지면 그것에 상응한 고행으로 치러야 하는데, 가톨릭이 타락하면서 고행을 돈으로 대신한 것이다. 면벌부를 사면, 과거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해 주고, 더 나가서는 연옥에 있는 사람의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했다. 마틴 루터는 학자의 양심으로, 신앙인의 믿음으로 가톨릭의 부패를 용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95개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걸었다. 그가 10월 31일을 택한 것은 가톨릭에서는 11월 1일은 ‘성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날은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로서 모든 신자들이 교회를 찾는다.

루터는 가톨릭 내의 개혁을 원했지 혁명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종교개혁을 ‘Reformation’이라고 한다. ‘혁명’ (Revolution)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혁명이란 기존의 잘못된 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의미고, 개혁은 기존의 잘못된 질서를 수정하여 바로 잡자는 뜻이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95개항 반박문 전문에 잘 나타나있다. “제안한 내용은 루터와 함께 비텐베르크에서 논의 (Discussed) 될 것이고, 참석할 수 없는 사람은 편지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루터의 ‘반박문’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1520년에 루터는 3개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교회의 바벨론 유수’, ‘독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스도인의 자유’.

오늘 본문인 시편 46편의 남유다가 앗수르의 침입을 받았을 때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 옷을 찢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후 쓴 시이다. 하나님의 나의 피난처라는 표현이 3번이나 나오고 있다. 앗수루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항복하라고 위협하였다. 앗수르의 대군에 비하면 남유다의 병력은 너무 미약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에 대적하는 것은, 일개 수도사인 루터가 가톨릭에게 도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앗수루 군대를 하루아침에 전멸시켰고, 루터의 기도를 듣고 개혁에 힘을 실어 주셨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다. 인생은 장밋빛 아스팔트길이 아니고, 순풍에 돛단 것 같은 항해길도 아니다. 예수를 위하여 죽는 것보다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믿는 것보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뭔가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다. 루터는 로마서 1:17의 말씀을 의지하여 개혁의 횃불을 들었고, 시편 46편의 말씀을 의지하여 완주할 수 있었다.

기도와 전도

골로새라는 도시는 초대 기독교 교회의 중심지였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해서 세운 것이 아니었다(골2:1, 골1:4).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믿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곳 출신이며, 바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며(골1:7)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다(몬2:)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62년경 골로새에 가는 ‘두기고’편에 보낸 것이다. 골로새서 4:26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에 힘쓸 것과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며, 비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권면하는 내용이다.

1. 자신을 위한 기도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2절)

기도에는 감사가 필수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시50:14-15)고 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고 했다. 받은 것에 감사하고 받을 것을 믿고 감사하자. 믿고 간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받을 것을 믿고 감사하자. 별빛에 감사하는 자가 달빛을 얻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가 햇빛을 얻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가 영원한 그리스도의 빛을 얻는다고 했다.

2. 우리를 위한 기도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3-4절)

바울은 특히 자신과 동료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했다. 개인의 영육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초대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조마리아 여사이다.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3. 외인에 대한 언행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5-6절)

외인이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예수를 믿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잘 다니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헌금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인이 바뀐 것이고, 중심이 이동된 것이고, 세계관이 변화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이고, 내 중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중심으로 사는 것이고, 나 중심의 세계관에서 예수 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의 세계관에서 성경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뀐 사람이다.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빌1:21)라고 했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고 했다.(갈2:20)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중심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들에게 예수를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외인과 함께 살아갈 때 지혜롭게 행하고, 말은 은혜 중에 소금과 같이 하라고 했다. 그들은 적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

런던에 가면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를 기념하는 웨슬리 하우스 (John Wesley’s House)가 있다. 이곳에는 채플도 있고 여러 부속 시설들이 있지만 방문객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작은 기도실이다. 작은 기도실에서 웨슬리는 세계를 품고 기도했다.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나는 홀로 앉아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여기에 계신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나는 그의 책을 펴서 읽고, 그렇게 배운 것을 나는 가르친다.” 작은 기도실은 감리교의 발전소였다. 기도실의 이름은 ‘Power Room’이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체를 위하여 기도하고, 외인을 위하여 언행으로 전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종교개혁과 3권의 논문

루터는 1517년에 발표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으로 교회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 그는 3년 후인 1520년,‘독일 크리스천 귀족들에게’, ‘교회의 바벨론 유수’,‘크리스천의 자유’등의 3개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루터가 ‘파문'(Excommunication)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3편의 논문 때문이다.

교황의 사절 알레안더(Alender)는 카를 5세에게 사람을 보내 종교개혁을 탄압할 것을 요청하였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는 루터의 견해를 직접 들어보고자 루터를 제국의회에 소환하였다. 4월 17일 루터는 보름스 궁전 대강당에서 황제와 제국의회에게 심문을 받았다. 트리에르 대주교는 루터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그대의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들을 그대의 것으로 인정하는가? 그대는 이 책들에서 쓴 내용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첫째 질문에 루터는 자신의 책들이라 시인했다. 둘째 질문에 루터는 하루의 시간을 구했다. 다음날 루터는 황제 앞에서 담대히 대답했다.

“성서의 증거함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루터가 죽음을 무릅쓰고 보름스 국회에 출두한 일을 유럽 역사상 최대의 장면이며, 보름스 국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인류의 근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첫째 독일 크리스천 귀족들에게’(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루터가 이 논문을 쓴 것은 가톨릭의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점을 지적하며 ‘독일의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낸 ‘권면과 충고의 글’이다. 논문에서 “로마의 세 가지 담”에 비유하면서 신학적으로 논박한 것이다. 첫째 담은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의 담인데 이러한 계급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다. 루터는 세속적 계급에 대한 영적 계급의 우위성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모든 크리스천은 다 사제라는 ‘만인제사장주의’를 주장했다. 둘째 담은 성서해석자인 교황과 교황의 무오설에 관한 내용이다. 루터는 교황이 성서의 유일한 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비판하였다. 즉 교황은 스스로 유일한 권위자라고 생각하며, 교황은 악인이거나 선인이거나 간에 신앙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무오설’은 거짓 주장이라고 했다. 셋째 담은 교황과 공의회의 담이다. 즉 공의회를 소집하거나 결의를 확인하는 것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아무런 성서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들의 법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둘째 교회의 바벨론 유수’(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7가지 성례전에서 ‘세례와 성만찬’ 2가지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 논문은 루터가 “독일 크리스천 귀족들에게”을 발표하고 2개월 후에 나온 글이다. 이 논문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바벨론 유수”란 말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일례로 통칭하는 말이다. 중세는 7 성례전으로 사람의 70 년 인생을 묶어 버린다고 해서, 바벨론 포로기 70년에 비유해서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곧,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여 오랫동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 고난의 생활을 한 것처럼 교회의 성례전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삶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다. 가톨릭 교회의 7가지 성례인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시의 도유식을 포함한 것이다. 루터는 이 7가지의 성례 가운데서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보았다.

셋째 크리스천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

“크리스천은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크리스천은 충성스런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는 두 개의 명제 하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종의 자유’라고 역설했다. 상반되는 두 명제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는 사도 바울의 말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 과 ’종의 형상‘을 입은 자유자인 동시에 종이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한'(By) 자유는, ‘사람을 위한'(For) 자유가 될 때 온전해진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사랑으로 이웃 안에서 산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종교개혁과 3개의 기둥

로마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 책이다. 바울이 쓴 13권의 서신서 중 로마서가 첫 번째 서신으로 등장한다. 바울 서신의 순서는 연대순이 아니라, 책의 분량 따라 구분된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3개월 있는 동안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이다. 당시 바울은 로마에 가본적이 없었다.

로마서의 핵심주제는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를 중심으로 로마서는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8장까지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 9-11장 하나님의 의의 변론, 12-16 하나님의 의의 적용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다. “도대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종교개혁의 3개 기둥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이다.

첫째 오직 성서(Sola Scriptura) – 전통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을 펴 놓고 목차를 비교해 보면 가톨릭 성경에는 있고, 개신교 성경에 없는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은 똑같이 27권이지만 구약은 가톨릭이 46권, 개신교가 39권이다. 그래서 가톨릭 성경은 73권, 개신교는 66권으로 권수가 다르다.

히브리 성경을 ‘타나크(Tanakh)’라고 한다. ‘타나크’란 율법서(Torah, 5권), 예언서(Nevi’im, 8권), 성문서(Ketuvim, 11권) 등 세 분류명의 첫 글자를 떼어 합성한 이름이다. 90년에 ‘얌니아’에 모여서 타나크만 ‘정경’으로 인정했다. 타나크는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져 있다. 히브리 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는 24권을 39권으로 세분화했다. 사무엘 상하(2), 열왕기 상하(2), 역대기 상하(2), 에스라와 느헤미야(2) 그리고 소선지서를 12권으로 분류하여 15권을 늘렸다. 70인 역에는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7권과 또 다른 8권의 책을 첨부했다.

신약성경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했다. 천주교에서는 382년 로마 주교 회의에서 헬라어 70인역의 구약 성서 46권을 정경으로 인정했고, 이것을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에서 다시 확인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가톨릭 성경에 포함된 7권의 책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비 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이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때 마틴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히브리 성경에 없는 7권을 외경으로 취급하고 구약의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다.

루터는 진리의 기준은 교리나 전통이 아닌 성서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보름스 궁전’에서 재판을 받을 때, 지금까지 주장한 모든 것을 철회하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다음날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성서에 어긋난 것이 아니면 철회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 오직 믿음(Sola Fide) – 행위

하박국 선지자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는 말씀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라고 강조했고, 루터는 이 말씀을 의지하여 ‘개혁의 횃불’을 들었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행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고해성사를 했지만 마음에는 참 자유가 없었다. ‘하나님의 의’가 무슨 뜻인가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던 중, 마침내 루터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3) ‘자기 의’란 자기의 ‘행위의 의’이고,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을 ‘믿음의 의’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4:4) 의인은 오직 의로운 분이 의롭다고 칭할 때만이 의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칭의'(Justification)라고 한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고 했다. 여기서 ‘더 나은 의’가 ‘행위의 의’가 아닌 ‘믿음의 의’이다.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 – 공로

은혜란 상이 아니라 선물이다. 상은 자격이 있어야 받는 것이지만, 선물은 자격이 없어도 받을 수 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은혜이고,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도 은혜이고, 천국 가는 것도 오직 은혜로만 간다. 믿음 조차도 은혜라는 것을 아는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요한복음 3장의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에서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셨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 나이에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의 모태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듭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Born Again’과 ‘Born Above’이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시며,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말씀하셨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