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곤충 사육(1)
생명 과학자 집안
지난 해[2017년] 10월 초순, 한국 방문중, 전주의 친척집에서 머문 일이 있다. 이 집에는 3대에 걸친 생명 과학자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교직자로 정년퇴임을 한 이 집의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자연 관찰의 흥미와 탐구심을 자극하는데 정성을 쏟아온 분이다. 그는 거의 매년 한국에서 과학기술 문화행사인 과학전람회에 학생들과 함께 실험 관찰한 작품을 출품해서 많은 상을 수상하게 한 교육자이며, 또한 그의 아들은 전북대의 생물학 교수로 매년 우수논문을 발표하는 저명한 생명 과학자다. 그런데 이들 부자[父子]의 피를 못 속이는 것일까? 초등 2학년짜리 손자가 심상치가 않다. 2학년짜리가 빈방에 곤충 사육실을 차리고 몇 종류의 곤충을 사육하며 생태를 관찰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2학년짜리 손자가 사육하는 곤충은 장수풍뎅이와 갈생거저리다. 한국에는 곤충 사육의 관심이 꽤 많아진 것 같다. 할아버지가 마련해 준 것이겠지만 2학년짜리는 곤충 사육실에 사육 키트[kit]를 마련해서 먹이도 주고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다.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굼벵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장수풍뎅이는 학술명으로 흰점박이 꽃무지다. 흰점박이 꽃무지는 꽃무지속에 1종[種]으로 덩치가 커보이기 때문에 장수쯤으로 여겨지기에 장수풍뎅이라고 불려졌을 것이다. 장수[將帥]라는 어감은 아이들을 신나게 만드는 것 같다.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 유충인 굼벵이의 사료는 톱밥이고 엄청 느리게 다니니 웬만큼 건드려서는 꿈쩍도 않는다는 등, 2학년짜리 사육자가 진지하게 소개하는 설명을 경청하였었다. 실제로 사육 상자속에서 머리를 하얗게 드러내는 놈이 있었는데 건드려도 별 반응이 없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느니 “일할 때는 굼벵이요, 먹을 때는 돼지다”라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예로부터 무능과 나태, 느림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나 인간의 편의주의적인 편견에서 나온 소리일뿐, 장수풍뎅이의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생체특성일 것이다. 장수풍뎅이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다. 파브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완전 변태를 하는 굼벵이류는 전갈의 독에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충은 전갈의 독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장수풍뎅이의 유충인 굼벵이는 부엽토 등을 먹으며 살기 때문에 간혹 초가집의 지붕 위의 지푸라기 등지에 알을 까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지붕 고칠 때 자주 털린다. 40여년 전 필자의 시골집 뒷뜰에는 초가지붕으로 된 닭장이 있었다. 초가지붕은 매년 새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갈아 주어한다. 어느 해인가 전년도 이엉을 벗기는 과정에서 굼벵이가 감당 못하게 쏟아져 나온 일이 있었다. 작업을 하던 일가 형님이 굼벵이를 긁어모아 가지고 서울 경동 시장에서 팔아 적지 않은 돈을 챙긴 일이 있었다. 그러나 굼벵이 하면 농사꾼들은 질색이다. 모든 밭작물의 적이기 때문이다. 굼뱅이가 땅속에서 고구마 감자 파먹고, 옥수수, 콩과 같은 식물은 줄기를 먹고 갉아먹기 때문에 이만저만 골칫거리가 아니지만 한방[韓方]에서는 굼벵이가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굼벵이는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있는 약재이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굼벵이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있는 약재로 주로 악혈(惡血), 어혈(血瘀), 비기(痺氣), 눈의 군살,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증세, 백막(白膜), 뼈가 부스러지거나 삔 부상, 쇠에 다쳐 속이 막힌 증세 등을 치료하며 유즙(乳汁)도 잘 나오게 한다고 한다. 굼벵이 달일 때 구린 냄새가 나서 비위 약한 사람은 견디기가 고통스럽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풍뎅이를 잡아서 괴롭히며 장난을 친 일이 있다. 목을 비틀어 자빠뜨려서 회전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륙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풍뎅이가 이륙할 때는 군용 수송기 같은 요란한 소리도 난다. 장수풍뎅이 굼벵이는 45g 이상까지 찌기도 하며 45g이상이면 성충은 그 길이가 85mm 이상이 나오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니 이런 놈이 접었던 날개를 펴고 나르려면 뜸을 들인 후에 일직선으로 이륙하는데 그 장면은 장관이다. 풍뎅이를 잡았다 하면 으레 이런 장난을 하다 날려 보내곤 하였다.
장수풍뎅이 특성
학술적으로 장수풍뎅이는 딱정벌레목 풍뎅이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장수풍뎅이를 투구벌레라고도 한다. 일본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카부토무시(兜虫, カブトムシ)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투구벌레’가 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Rhinoceros beetle(Rhino beetle) 및 Dynastinae라 부른다. 딱정 벌레목 곤충이라 알→애벌레→번데기→어른 벌레로 완전 변태를 한다. 커다란 크기와 등껍질 아래에 모피를 두른듯한 형태로 난 털같은 기품있는 생김새 덕에, 사슴벌레와 함께 척추동물 만큼 좋은 대접을 받는 얼마 안되는 곤충이다. 애완용이나 표본으로 인기 만점이며, 또한 똘망똘망한 귀여운 눈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도 한다. 수컷은 장수풍뎅이의 특징인 길다란 뿔이 있어 인기가 많은 곤충이다. 천적은 많으나 곤충/절지류 중에서는 거의 없다. 가장 큰 천적은 다람쥐, 청설모 등의 소형 포유류. 그 외에도 올빼미, 부엉이, 족제비, 여우, 그리고 인위적으로 죽는 경우 등이 있다. 자연에서는 3령애벌레 상태로 동면을 하고 이듬해 늦봄이나 초여름 무렵에 번데기가 되어 여름에 발생하지만 사육 환경에서는 6개월이면 충분히 성충으로 변한다. 애벌레 시기에는 부엽토 등의 부패된 식물성 먹이를 먹으며 어른 벌레가 된 뒤에는 참나무류의 나뭇진을 먹는다. 성충의 수명은 약 3~4개월 가량이다. 유충 시절에는 온갖 동물들의 밥이 되지만 성충이 되면 크고 아름다운 몸집과 힘, 갑각 덕택에 서식지에는 사실상 천적이 없다. 참고로 장수 풍뎅이는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할 땐 날개의 색이 옅고 날개 힘도 약하다. 하지만 햇빛을 받다보면 적갈색, 흑갈색으로 변하고 날개도 튼튼해진다. 눈이 크고 똘망똘망해서 시력이 좋을 것 같지만, 여느 곤충이 그렇듯이 시력은 좋지 않다. 밝고 어두운 것을 구분하는 정도. 그 외 위험 감지나 생물을 구분할 땐 더듬이를 쓴다. 야행성이라 낮에 거의 미동이 없다시피 한다. 낮에 그나마 활동하는건 그늘로 갈 때나 먹이를 먹을 때 말곤 별로 없다. 주광성이 있어서 밤에 시골 가로등 주변에 가보면 여러 마리를 볼 수 있다.
미래 식품으로 주목받는 갈색 거저리
지구 온난화의 기후 변화로 인한 기온, 습도, 강수량의 변동은 식품 생산에 영향을 미쳐 식량 안보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식품과 관련된 위해 요소 유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와 관련 학자들은 식품 안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식품 원료를 개발하는 경우에는 인체에 위해 영향을 야기할 수 있는 식품 독성이나 알레르기 문제도 안전성 확보와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수입 식물의 품목이 다양화되고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외래병 해충의 유입 가능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병해충 검출 가능성이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검역 강화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식량 자원 확보 차원에서 FAO는 미량 식량 자원으로 곤충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곤충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시식하는 사례를 보도하는 등 새로운 식품 원료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식품 관련 업계에서는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등에서 소개되어 있는 다양한 약재나 식품 원료 또는 해외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에 사용 이력이 없는 식품 등을 식품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식품 의약품 안전처의 ‘식품 등의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인정 기준’제도를 통해 식품원료 등재 신청을 하고 있다. 한국의 농촌 진흥청 국립 농업 과학원은 흰 점박이 꽃무지 유충과 갈색 거저리 유충을 식품 원료로 개발하여 식품의약품 안전처로부터 한시적 식품 원료로 인정된 바 있다. 새로운 식품 원료의 소재 발굴은 식품 산업의 부가 가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 공급과 신소재 발굴에 따른 이용 가치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새로운 식품 또는 신소재 식품에 대한 자국의 안전성 평가 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식품 원료들이 속속들이 인정되어 그 종류가 증가하고 있다. 사육이 보편화된 갈색 거저리 관해 언급 하려고 한다.
갈색 거저리
갈색 거저리(mealworm beetle)는 거저리과에 속하는 곤충의 일종이다. 한국에서 통용하는 말로 밀[meal, 식용] + 웜[벌레]라는 의미의 “밀웜”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곡물 거저리와 비슷 하지만 애벌레 때 더 크다. 그러나 “밀웜”하면 갈색 거저리 유충만 지칭하지 않고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곤충의 유충을 통칭하기도 한다. 장수풍뎅이는 시드니 지역에서 본 일이 없지만 갈색 거저리 성충은 종종 본 일이 있다. 바필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버팔로 웜(외미거저리)이라는 것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한국종이며, 아메리카왕거저리(슈퍼웜)만 외래종이다.성충의 크기는 사람 새끼손가락 손톱급으로 작으며 이름처럼 갈색 계열의 색을 띠고 있다. 날개가 퇴화되어 있는 거저리 종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날 수 있는 곤충이 갈색 거저리다. 저공 비행으로 단거리를 나는 정도로 사육실 같이 사육 상자에 틈이나 일부가 열려있는 사육 상자 같은 경우에는 갈색 거저리가 종종 바닥으로 튀어 나온다고 한다. 성충은 손으로 잡으면 웬만한 먼지 벌레랑 비슷할 정도로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2015년에 한국농천진흥청은 식용 곤충의 소비 확대를 위해 한시적으로 인정받은 갈색 거저리 애벌레, 일명 “고소애”를 이용해 일반인과 환자를 위한 130여 가지의 다양한 음식을 개발했다고 밝힌바 있다. 개발된 음식들은 단백질 함량이 많고 철과 인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였다. 공모를 통해 갈색 거저리 유충으로 만든 식품의 이름을 “고소애”라고 한 것이다. “고소애”는 ‘고소한 맛을 내는 애벌레’라는 뜻이며, 이미 언급한바 있는 굼벵이, 흰점박이 꽃무지의 유충의 식품명을 꽃벵이라고 한 것이다. “꽃벵이”는 흰점박이 꽃무지의 ‘꽃’과 굼벵이의 ‘벵이’를 더해 만들어졌다. 밀웜을 사용한 먹이 사료 연구도 최근 공개되었다. 밀웜을 이용한 먹이 사료를 식용 새우나 넙치에게 먹이면 평소의 먹이를 먹이는 것보다 더 많은 성장 속도와 체중을 불릴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밀웜의 소화 기관에는 스티로폼을 분해하는 세균이 살고 있어서 플라스틱 공해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뉴스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플라스틱류 폐기물 들 중에서도 가장 처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스티로폼을 먹어치우는 애벌레를 연구하고 있다. 스티로폼을 먹는 애벌레의 명칭은 밀웜(mealworm)이다. 밀웜은 딱정 벌레목 거저리과에 속하는 곤충인 갈색 거저리의 애벌레다. 곤충이나 새가 플라스틱을 갉아 먹거나 쪼아 먹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미생물들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는 연구도 종종 발표되곤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의 플라스틱 분해는 물리적인 분해나 불완전한 화학적 분해였다. 커다란 플라스틱 조각을 미세한 형태의 분말로 만든다거나, 완전 분해가 아닌 일부만을 분해하고 나머지는 플라스틱 성분을 그대로 남기는 형태였던 것이다. 반면에 밀웜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분해되지 않는다는 스티로폼을 짧은 시간에, 그것도 원래의 스티로폼과는 완전히 다른 무해한 성분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이전에 알려진 스티로폼 분해와는 차원이 다른 메커니즘이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