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DNA의 형질전환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까지만 하여도 질병 중에서 폐렴은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폐렴과 관련된 연구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피스 [Frederick Griffith, 1879~1941]도 폐렴 연구를 통해서 DNA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후속적인 연구들은 인류생활을 뒤흔들고 있다. 19세기말에 영국에는 폐렴과 관련된 3명의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윈스턴 쳐칠 경과 세균학자 알렉산더 프레밍과 프레드릭 그리피스이다.
영국의 의사이며 유전학자였던 그리피스는 폐렴의 병원체인 쌍구균을 이용한 실험으로 형질이 전환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의 발견은 1950년대의 DNA발견과 더불어 분자생물학을 출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알렉산더 플레밍 [1881~1955]은 항균 [抗菌] 물질인 리소자임[lysozyme]과 푸른곰팡이 [Penicillium notatum]을 섬멸하는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당시의 폐렴 등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런 공로로 그는 1945년에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프레밍을 그리피스와 함께 거론하는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세균학자로서 똑같이 폐렴균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두 학자의 연구결과가 생명과학계는 물론 인류 생활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어린이의 절반 정도가 10살 이전에 천연두, 홍역, 말라리아. 콜레라, 이직, 설사, 폐렴, 패혈증 같은 질병으로 사망하였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하던 시대였다. “기적의 약물”이라고 불리어진 페니실린의 발견은 인류에게 광명의 빛으로 다가 온 것이다.
폐렴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국의 귀족의 아들이 시골에 낚시하러 갔다가 물에 빠지고 다리에 쥐가 나서 위험 지경에 처한 것을 마을 소년이 구해 주었는데 귀족의 아들은 영국의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경이고 마을 소년은 프레밍이다. 윈스턴 처칠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려서 시골 소년의 소망인 의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플레밍은 처칠가의 후원으로 의학공부는 물론 세균연구를 해서 “기적의 약” 페니실린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에 처칠이 폐렴에 걸려 위험한 것을 의사가 된 플레밍이 치료하여 재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처칠은 프레밍을 페니실린을 개발할 수 있게 절대적인 후원자였으니 폐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BBC가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위대한 영국인으로 뽑는 설문조사에서 세익스피어와 에리자베스1세를 뛰어 넘는 1위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자서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플레밍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피스는 이들 두 사람과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그는 폐렴의 병원체를 연구 하는 과정에서 두 종류의 쌍구균중 하나는 독성이 있지만 다른 하나는 무독성 임에 주목하고 그 차이가 어떤 이유인가를 규명하는 실험을 계속한 것이다. 쌍구균의 하나는 피막이 거칠 [Rough-R형]고 다른 하나는 매끈 [Smooth-S형]한데 R형을 실험용 흰쥐에 주입하였을 때는 흰쥐가 폐렴이 발병하지 않는데 S형을 주입하면 폐렴으로 흰쥐가 죽는 것이었다. 두 균을 가열한 후에 주입하면 양쪽이 다 발병하지 않고 건전하게 활동하였다. 그런데 가열하여 시체 [屍體]라고 예상되는 S형과 가열하지 않고 살아있는 R형균과 함께 흰쥐에게 주입하였더니 폐렴을 일으켜 죽은 것이다. 그리피스는 이 실험으로 S형이 무독 [無毒]성의 R형을 성질이 전혀 다른 유독 [有毒]성으로 전환시키는 물질을 갖고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1944년에 캐나다의 의사이며 유전학자인 에이버리 [Oswald Avery, 1877~1955]가 다른 학자들과 협력으로 가열하여도 소멸되지 않고 R형균을 이용하여 유독성균으로 전환시키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R형이나 S형이나 그 구조는 핵물질인 DNA가 있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로 된 세포질로 되어 있다. 이들 4가지 물질의 차이가 발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효소로 가수분해 하여 살아 있는 R형과 함께 주입하였더니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분해된 S형은 발병 하였는데 DNA분해효소인 “deoxyribonuclease”로, DNA를 분해한 S형은 폐렴이 발병하지 않은 것이다.
이 연구 결과로 S형의 DNA가 R형을 S형으로 전환시키는 주범 [主犯]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 파장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S형의 DNA가 종류가 다른 R형의 형질을 전환 [transformation] 시켰다는 것이다. 형질이 전환된다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사실이다. 인간이 감히 접근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종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폐렴연구에서 시작된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생명현상의 바닥을 보고 말겠다는 기세로 탐색이 계속되었다. 그 후에 허시 [Hershey]와 체이스 [Chase]가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의 증식 실험으로 DNA가 유전자라는 증거를 보여 주었으며, 1953년에 왓슨 [James Dewey Watson]과 크릭 [James Crick 1928~2004]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낸 공로로 1962년에 공동으로 노벨생리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오늘날 DNA는 인간의 모든 생활영역에 불가분의 관계로 가깝게 자리 잡고 있게 되었다. 현미경으도 볼 수 없는 미세한 구조의 DNA를 제한효소 [restriction enzyme]로 자르기도 하고 ligase라는 효소로 붙이기도 하면서 자유자재로 조작을 하게 된 것이다.
2004년 4월 14일, 미국의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30억 쌍이 넘는 인간의 유전정보가 담긴 염시서열의 해독을 완성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는 보기 때문이다. 암, 에이즈, 정신질환 등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약 4,000여종의 유전병을 진단하고 예방은 물론 치료가 가능하다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농축산 분야에서 유전자 조작 동식물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만들어져 생산성과 상품의 질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지만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새로운 형질을 전환하려는 시도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DNA혁명은 정치 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쳐 그 파장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몇해 전 한국의 모 인사가 한국인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에게 신세지는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등 민족성을 DNA에 비유해서 공분 [公憤]을 유발 시키며 뉴스의 초첨이 되었었다. 그의 신념 속에서 나온 주장이라 그 진실을 검증할 수 없는 언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만 DNA는 생명설계의 매뉴얼 [설명서]를 담고 있는 진실 그 자체이다. 친자 [親子] 여부가 불명확할 때 DNA검사로 다툼은 끝나게 되었다. DNA는 몇 만년된 유골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기에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연구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의 혹은 집단의 정신세계 속의 DNA를 복사할 수 있다면 갈등과 다툼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