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 세계 3대 참회록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고백록

서적소개 세계 3대 참회록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

서적소개

세계 3대 참회록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고백록’ 이 세 고전을 우리는 ‘세계 3대 고백록’이라 부른다. 각 저자의 삶과 사상(신앙)에 대한 진솔한 고백, 아름다운 언어로 뽑아내는 필치, 높은 정신세계를 향한 숭고한 갈망 등은 그 어느 자서전보다 깊고 아름답다.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은 세 편의 고백록을 읽으며 농밀한 감동을 선사받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의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동서문화사 / 2008.8.8

.인간 참회에 대한 고백의 정리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부터 히포 교회의 주교가 되기까지의 반생을 기록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소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행보를 더듬어 올라가고, 내적인 마음의 궤적까지도 소상히 알 수 있다. 어떠한 고생을 통해 진리가 발견되고 오류를 피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풀어냈다.

종교를 초월한 인간 구원의 서! 신이여, 당신은 내게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당신에게 있어 무엇입니까!

오랜 공허 뒤 내린 한 줄기 진리의 빛

신과 인간, 서로를 향한 강렬한 사색

선과 악을 고백하고 신의 은혜를 찬미하다!

.아우구스티누스 삶을 더듬어가는 진리탐구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46세 무렵에 완성한 자전적 작품이다. 이 책은 여러 시대에 걸쳐 매우 널리 읽혔으며 사본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래된 것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부터 히포 교회의 주교가 되기까지의 반생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소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행보를 더듬어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궤적까지도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스스로의 외적?내적 생활을 기술한 귀중한 사료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 다가가기 위해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책이다.

「고백록」은 총 13권으로 되어 있다. 1∼9권은 자서전으로 유년 시대의 회상?학업?독서?교유?마니교의 입신과 이탈, 32세 때의 회심, 그 뒤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등을 기록하였다. 이 자서전은 자기 죄를 통회하며 신의 사랑과 인도를 기구하고 찬미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참회록」 또는 「찬미가」라고도 한다.

후반의 10∼13권은 신(神)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한 사색을 담고 있다. 여기 나오는 기억론이나 시간론은 현대철학에서도 언제나 돌이켜보는 중요한 이론으로,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물을 때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합니다.’(11권 14장)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11∼13권은 「구약성서」 창세기 1장의 해석으로서, 이는 신과 세계의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와 대결하여, 그리스도교의 신관(神觀)을 명백히 밝히려는 도전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고, 죄 사함을 받은 산 체험을 통하여 우주와 역사의 지배자인 신을 찬미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와 마니교의 차이점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가 ‘회심 (回心)’하는 부분은 수도사의 시범적인 본보기로서 단순한 기록이 아닌 고도의 문학성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 목차

제1권 어린시절

제2권 16세 때의 일

제3권 카르타고에서의 생활

제4권 19세에서 28세까지의 일

제5권 29세 때의 일

제6권 29세에서 30세까지의 일

제7권 31세 때의 일

제8권 32세 때의 일

제9권 뉘우침과 모니카의 죽음

제10권 뉘우침 뒤의 명상

제11권 천지창조와 시간론

제12권 창세기 1장 강해

제13권 삼위일체와 성령의 본질

아우구스티누스 생애와 사상…418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지도…558

아우구스티누스 연보…559

– 저자소개 :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354년).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에 매료된(373년)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한때 마니교와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출셋길에 올랐다(384년). 밀라노에서 접한 신플라톤 철학,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 수도생활에 관한 증언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머리로 이해한 그리스도교 진리를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망설이며 살아가다가, 마침내 바오로 서간을 ‘집어서 읽으면서’(Tolle! Lege!) 회심하였고(386년), 행복한 눈물 속에 세례를 받았다(387년). 교수직과 재산을 미련 없이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한 수행의 삶을 엮어 가던 그는 뜻하지 않게 히포 교구의 사제(391년)와 주교(395년)로 서품되었고, 40년 가까이 사목자요 수도승으로 하느님과 교회를 섬기다가 석 달 남짓한 투병 끝에 일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430년). 『고백록』Confessiones을 비롯한 수많은 저술(책, 서간, 설교)과 극적이고 치열한 삶은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교부들 가운데 우뚝 솟은 큰 산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 체계 속에 그리스도교 진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냄으로써 ‘서양의 스승’이라고도 불린다.

– 역자 김희보

중앙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육대학원(언어교육)을 이수했으며, 장로회신학대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 목회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명예문학박사. 서울장로회신학교 학장 역임.

지은책 평론「세계문예사조사」 「한국문학과 기독교」, 창작집「소설 창세기」 「소설 아포크리파」 「오계」, 편저「한국의 명시」「세계의 명시」 「중국의 명시」 「현대한국문학 작은사전」 「세계문학 작은사전」 「세계사 101장면」 「한국명작 111선」 「한국문학 앤솔러지(전2권)」 「그림으로 읽는 세계사이야기(전2권)」 등 다수가 있다.

– 역자 강경애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졸업. 1998년 〈시와 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가톨릭문인회 회원.

지은책 묵상집「진리는 우리의 생명」 산문집「바람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래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죄를 고백하고, 신 앞에 무릎 꿇어 찬미하다

오랜 세월 방황하다 겨우 공허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떠한 고생을 통해 진리가 발견되며, 오류를 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체험을 그는 「고백록」에 극명하게 풀어놓았다.

400년에 완성한 「고백록」은 이 시기의 신학사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집필 의도 및 내용은, 단순히 저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서전이라기보다, 원죄와 은혜론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고백록」은 다음과 같은 구상 아래 성립한다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를 잊고 그에서 멀어져 스스로의 욕망대로, 즉 죄인으로 살고 있다. 인간은 죄의 일생을 보내면서도 마음속으로 창조주를 그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부질없으며, 오히려 허위와 불안에 빠져 절망의 구렁텅이를 방황한다. 존재의 근거인 창조자를 잊고 허무에 빠져 구원 없는 생을 보내고 있는 인간의 창조주인 신은 항상 자비로우므로, 인간의 비참한 상황을 돌아보고,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구원의 길을 마련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깨닫고, 신을 향해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신의 곁으로 돌아가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신의 훌륭함을 찬미해야 한다.” 이것이 「고백록」의 중심 주제다.

「고백록」의 집필 의도는 자신의 선과 악을 고백하고 신의 은혜에 의한 인도를 찬미하며,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신의 사랑을 알리기 위함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혜론이란 관점에서 자신의 반생을 서술함으로써, 인간의 죄의 실태를 드러내고 신의 은총의 작용을 강조한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그 슬픔 앞에서 인간임을 자각하다

「고백록」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을 묘사한 제9권 11장 27절~13장 37절이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의 눈을 감겨드렸다. 슬픔이 북받쳐 올랐으나 결사적으로 참았다. 아들인 아데오다투스는 그 자리에서 통곡하였으나, 모두의 제지로 겨우 울음을 그쳤다.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일동은 모니카의 장례를 비탄의 눈물로 거행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신앙에 의해 진행하기로 했다. 친구 에보디우스가 구약성서의 시편을 꺼내 노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를 따라 불렀다. “주여, 나는 당신을 향해 사랑과 의를 읊는다….” 신양인 모니카에게 걸맞은 애도였다.

모여드는 사람을 응대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속은 깊은 탄식에 젖었다. 필사적으로 기도했으나 평안을 얻을 수 없었다.

밤이 되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얼마 전, 자신을 ‘다정한 아이’라 부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새 잠들어, 한밤중에 눈을 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어머니와 함께 부른 찬미가를 낮게 읊조렸다.

“신이여, 만물의 창조주, … 당신은 의기소침해진 마음, 번민과 통증을 거두어주시고…”

신에 대한 믿음으로 생애를 일관한 어머니,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몇 번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힌 자신……. 그는 밤새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의 죽음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체험이었으며,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디도의 죽음, 친구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는 눈물 속에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죽음과 직면하는 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인간임을 자각하는 중요성을 배웠다.

.인간존재의미, 신이 주는 위대한 진리

‘신이시여, 당신은 내게 어떤 존재인가’와 ‘신이시여, 나는 당신에게 있어 무엇인가’란 두 가지 질문이 바로 「고백록」의 주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일반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인간의 신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개의 질문이 아니라 한 가지 문제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그것도 ‘당신과 나’라는 인격적인 호응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사변(思辨)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에 있어서의 양자의 관계인 것이다.

인간을 신과의 관계에서 문제 삼기 때문에 인간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주목하며, 인간의 본성과 존재 그 자체를 음미한다. 신 앞에서 인간을 캐물으면 인간의 죄의 현실이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를 근본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존재, 인간의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존재자, 인간의 존재를 허락하고 받아들이는 신과, 인간에 대한 그 신의 작용, 특히 사랑의 작용과 연민이 나타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스스로의 생활에서 질문하고 찾고, 파악하고, 명백히 밝히려 노력한다. 그 사색의 성과가 바로 「고백록」이다.

루소의 ‘참회록’

장 자크 루소 / 동서문화사 / 2016.6.9

본서는 아우구스티누스, 똘스또이의 작품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손꼽힌다.
이 참회록은 자신의 내부와 이면을 모두 드러냄으로써 신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변증하려고 한 의도가 있었다.
불쌍한 하녀에게 도둑의 죄를 씌운 일, 은혜 입은 바랑 부인을 저버린 일, 자식들을 차례차례 고아원에 내버린 일 등,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과 보상, 그 절정에 이르러서는 적의 공격이나 박해에 대한 망상과 공포감, 그를 몰아세워 이 작품을 쓰게 한 배경이 진솔하게 담겼다.

1778년 7월 2일 발표된, 장 자끄 루소의 유작 『참회록』은 아우구스티누스, 똘스또이의 작품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손꼽힌다. 이 고백의 참회는 위대한 인간의 기록일 뿐 아니라, 자아의 내면 의식이 작품 구조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있어 근대 문학의 차원을 일변시킨 것이다. 이 고백록으로 근대 문학은 하나의 새로운 원천을 갖게 되었으며, 이 작품 속에는 근대 문학최고봉의 본질적 요구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루소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그리고 도피와 방랑의 시절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찬사를 받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비난과 멸시를 받는 존재가 되었는지 담담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와의 관계를 분석한다. 이 고백을 읽는 독자들은 루소의 다양한 경험과 복잡한 감정,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으려 했던 그의 내면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제1부
제1권…13
제2권…55
제3권…100
제4권…147
제5권…195
제6권…248

제2부
제7권…301
제8권…377
제9권…432
제10권…525
제11권…584
제12권…630

루소《참회록》에 대하여…702
연보…707

– 저자소개 :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를 낳고 며칠만에 죽는 바람에 일찍부터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자랐다. 16세 때 모험가의 삶을 꿈꾸며 제네바를 떠나 강력한 후원자인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사교계와 학계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거의 독학으로 철학과 문학, 음악을 공부했으며 백과전서 파인 디드로를 비롯해 개혁적인 철학자들과 사상적 교류를 나누었다.
1750년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학예론〉이라는 글이 당선되면서부터 사상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와 문명 때문에 타락해 간다고 주장했다. 이후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사상 체계를 굳건히 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론〉, 〈언어기원론〉 등을 발표하면서부터 당대의 지식인들과 분명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1762년에 출간된 《에밀》이 소르본 대학 신학부의 고발로 유죄선고를 받게 되자,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와 영국을 전전하며 자신을 옹호하는 글인 〈고백록〉과 〈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를 발표했다.
1778년 프랑스 파리 북쪽의 지라르댕 후작의 영지인 에르므농빌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 역자 : 홍승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교를 수료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 동대학원장, 한국불어불문학회장, 삼성언론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불문학개론』, 『불어학개론』, 『한불사전』이 있으며, 옮긴책으로 까뮈의 『이방인』, 『페스트』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위대한 인간의 시대를 초월한 자아성찰
새로운 가치관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의 문학적 증언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손꼽히는 인간참회 걸작!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 자끄 루소의 대표작
장 자끄 루소의 유작 『참회록』은 아우구스티누스, 똘스또이의 작품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손꼽힌다. 이 고백의 참회는 위대한 인간의 기록일 뿐 아니라, 자아의 내면 의식이 작품 구조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있어 근대 문학의 차원을 일변시킨 것이다.
루소는 진실성 있는 회상록을 쓰려고 했다. 스위스의 한 평민 신분에서 프랑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 루소는 일생을 통해서 많은 오해, 비방, 박해를 받았으니, 그러한 체험을 배경으로 진실의 올바름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즉 “내부(內部)를, 이면(裏面)을” 낱낱이 드러내 보이려고 한 것이다.
루소는 파리의 초라한 방에서 질병과 고독을 견디면서 자신의 정당함, 결백함을 주장하고, 자기애에 충실하려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어떠한 미래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오로지 자신의 혼을 위해서였다.
1778년 7월 2일 루소가 죽은 뒤 발표된 이 고백록은 생전에 발표한 모든 문제작을 누르고, 차츰 빛을 더하여 불후의 위대한 문학적 유산 인간참회록이 되었다. 이로써 근대 문학은 하나의 새로운 원천을 갖게 되었으며, 이 작품 속에는 근대 문학최고봉의 본질적 요구가 함축되어 있다.

.위대한 영혼의 진실한 고백
이 참회록은 자신의 내부와 이면을 모두 드러냄으로써 신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변증하려고 한 의도가 있었다. 불쌍한 하녀에게 도둑의 죄를 씌운 일, 은혜 입은 바랑 부인을 저버린 일, 자식들을 차례차례 고아원에 내버린 일 등,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과 보상, 그 절정에 이르러서는 적의 공격이나 박해에 대한 망상과 공포감, 그를 몰아세워 이 작품을 쓰게 한 배경이 진솔하게 담겼다.
그러나 윤리학자나 심리학자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그러한 동기들만이 그토록 많은 독자를 끌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자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 이 작품이 후세에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인간의 진실이 놓여 있는 현실과 참다운 행복이란 신이나 도덕률이나 사회계급이나 정치적 이상이라는 것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나약함, 생활의 무의미, 사상(事象)의 우연, 시간의 망각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며, 기성의 가치관에 혁명적 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그러한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의 문학적 위대한 증언으로서 남은 것이다.

.낙원을 찾아가는 외로운 방랑자의 이야기
루소는 조국을 잃고 편안하게 살 땅을 갖지 못하고 가혹한 ‘인간의 조건’(『에밀』 속의 말) 아래 방황했다. 루소는 그런 상황 속에서 추상(追想)의 우위성(優位性) 속에 행복의 순간을 발견하는 방법을 글로 써서 남긴 최초의 문학자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둡고 숨겨져서 끌어내기 어려우나 미로 깊숙이 존재하는 진실을 감정적인 추상의 매개로 밝은 곳에 내놓으려고 한 루소의 노력은 『참회록』 도처에 매력 있는 문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와 같은 추상의 능력이야말로 루소 고유의 것으로서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잃어버린 소년기와 발견된 과거 즉, “참행복은 잊힌 행복이다.”라는 테마는 ‘어린 사랑의 푸른 낙원(보들레르)’을 돌아서, 제1부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되어 우리에게 그 매력을 만끽하도록 한다. 그것이 제2부에는 ‘실낙원’의 가혹한 현실, 노년과 병약함, 박해와 망상이라는 이중의 괴로움이 루소의 가슴을 쥐어뜯는다. 이 두드러진 대조가 『참회록』 구성의 특징이며, 이는 우리들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루소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그리고 도피와 방랑의 시절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찬사를 받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비난과 멸시를 받는 존재가 되었는지 담담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와의 관계를 분석한다. 이 고백을 읽는 독자들은 루소의 다양한 경험과 복잡한 감정,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으려 했던 그의 내면세계를 그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톨스토이 고백록’

레프 톨스토이 / 현대지성 / 2018.08.01

“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자살 충동을 느꼈던 세계적인 대문호의 진솔한 고백.
톨스토이의 삶은 40대에 정지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사는 게 두려웠고, 삶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삶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과학,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학문에서는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결국 톨스토이는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는 51세 때 절정에 이르렀고,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시점에서 쓴 책이 바로 ‘고백록’이다.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반평생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 답을 찾았다.
고백록에는 그토록 찾아 헤맨 의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이 담겨 있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 대한 회의,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을 정리하고, 그가 찾은 답을 차분하게 제시한다. 그 답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불명확한 인생의 실체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톨스토이의 고백을 통해 그와 같이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될 것이다.

– 목차

제1장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제2장 나의 청년 시절
제3장 진보에 대한 미신적 믿음과 형의 죽음
제4장 정지되어 버린 나의 삶
제5장 학문과 나의 삶에 대한 의문들
제6장 현인들의 인생관
제7장 인생에 대한 네 가지 접근 방법
제8장 대중들로부터 깨달은 것
제9장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
제10장 새로운 삶에 대한 발견과 의문
제11장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12장 하느님을 찾는 과정
제13장 인간이 사는 목적 : 신앙의 본질
제14장 종교의식에 대한 의문들
제15장 참된 신앙
제16장 진리를 추구하며
후기

해설 / 에일머 모드
톨스토이의 생애
톨스토이 연보

– 저자소개 : 레프 톨스토이 (Leo Nikolayevich Tolstoy, Lev Nikolaevich Tolstoi)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 책 속으로

진보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또 하나의 사건은 내 형의 죽음이었습니다. 내 형은 지혜롭고 선량하며 진지한 사람이었는데도 아직 젊은 나이에 병에 걸쳐서 일 년 넘게 힘든 투병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살아 왔고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내 형이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동안에, 그 어떤 이론도 그에게나 내게나 그런 질문들에 대해 그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 p.21

이성에 기초한 지식의 길을 따라가서는 삶을 부정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성을 부정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뿐이었고, 이것은 내게는 삶을 부정하는 것보다 한층 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p.71

모순이 생겨났고, 이 모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이성이라고 불러왔던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내게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 p.72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유일한 지식이라고 생각해왔던 이성적 지식 외에도, 인류 전체가 소유해 온 또 다른 종류의 지식, 곧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 삶의 의미를 알게 해주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신앙이라는 지식이었습니다. 신앙은 내게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이성적인 것이었지만, 나는 오직 신앙만이 인류에게 삶의 의문에 대한 대답들을 제공해 주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p.75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인간도 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고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낍니다. — p.89~90

– 출판사 서평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에 자신의 삶과 지성을 온전히 바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은 그의 나이 40대 때였다. 톨스토이는 삶의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 자신과 같은 귀족 계층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의 삶을 살펴봤다. 그리고 주요 종교 및 과학, 철학에 이르는 저작들을 읽고 연구하는 데 10여년을 사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우화로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조금 후에는 죽음의 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삶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으로 떨어져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전에는 나의 고통을 덜어 주는 꿀들을 핥아 먹으려고 했지만, 그 꿀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였고, 낮과 밤이라는 흰 쥐와 검은 쥐는 내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용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꿀은 내게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내 눈에는 오직 내가 피할 수 없는 용과 쥐들만이 보였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내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우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삶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는 삶에 대한 의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네 가지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방법은 “무지”였다. 여기에서 무지는 삶이 악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방법은 “쾌락주의”였다. 쾌락주의는 삶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용이나 쥐들을 애써 외면한 채 우리가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누리고, 우리 눈앞의 잎사귀에 잔뜩 묻어 있는 꿀을 최대한 맛있게 핥아 먹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이 악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인위적으로 삶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결단력 있는 몇몇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네 번째 방법은 “약함”에서 온다. 약함으로 인한 방법은, 삶은 악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살을 통해 이 기만적인 삶을 신속하게 끝장내는 데 필요한 결단력과 강단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삶에는 그래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시간을 끌며 기다린다.

.마침내 인생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톨스토이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그는 반평생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답을 찾았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인간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고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낍니다.”

톨스토이는 그토록 찾아 헤맨 의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고백록』에 오롯이 담았다.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60) 중에서 _ 9월 11일자

– “반성문”

요즘도 초등학교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국민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가끔 반성문을 써오라는 숙제, 혹은 벌을 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싸웠거나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거나 교실에서 소란을 피웠거나 등등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꾸중이나 벌을 내리신 후 ‘집에 가서 내일 까지 반성문 한장 써와’ 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반성문을 쓰게 하셨던 데는 여러가지 교육목적이 들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한글 공부 연습, 글쓰기를 통한 창작 훈련,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사고 교육,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도덕 교육 등, 참 여러가지 목적이 그 시절 ‘반성문 쓰기’에 담겨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인문학 친구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세계 3대 참회록 (고백록)으로는 흔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들지 않습니까? 저 역시 젊은 시절에 읽었던 그 글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위대한 반성문으로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의 신앙과 신학을 담아낸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이에 대해서는 2019년 3월 21일 우리 인문학교실에서 주경식 교수님이 한 명강이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내면 세계를 정직하게 들추어낸 루소의 참회록, 인간과 휴머니즘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게 해 주는 톨스토이의 참회록 모두 초등학교 시절의 반성문 쓰기를 이어준 저의 젊은 날 독서 여행 중에 만난 축복들이라 하겠습니다.

요즘은 자서전을 출간하는 분들이 퍽 많이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유명인사들로 부터 평범한 시민들도 자서전을 많이 쓰십니다. ‘모든 자서전은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이란 이름이 붙은 글들은 자기의 실수나 잘못은 숨기고 자기 자랑으로 일관되어 있다’ – 혹평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이름이 넓리 알려진 사람들의 자서전 중에는 정치적 목적이나 인기나 화제거리들을 자서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돈을 벌려는 상업적 목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통 소시민들의 자서전쓰기는 우리 초등학교 때의 반성문 쓰기 처럼 일상을 돌아보는 자기 반성, 늙어도 계속해서 글쓰는 습작훈련, 그리고 나이들어도 무엇인가를 자꾸해 보는 창조적 자기 기쁨과 보람 같은 것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인문학친구들도 반성문이라 하든, 참회록이라 하든, 자서전이라 하든, 한번 자기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글을 써보시길 권면합니다. ‘아니 원 세상에 홍길복 같은 사람도 잡기장을 쓰는데’ 하시면서 용기를 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른이 된 후 거이 일생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곳 저 곳에 글도 더러 쓰고, 보잘 것 없는 책도 몇권 냈습니다. 거기에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문학교실이 모이질 못하니 그 핑게를 대면서 우리 카톡방에 그져 글 같지도 않은 잡기장을 마치 심심풀이 하듯이 내보내기도 합니다.

지금의 모습을 포함하여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뭐, 참회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을 반성합니다. 지난날 했던 설교문들도 가끔 들춰봅니다. 남아있는 기도문들도 다시 읽어 봅니다. 어제는 이 카톡방에다 올린 글들도 모두 다시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미안도하고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짧은 지식, 다듬어지지 아니한 식견과 판단, 유치한 표현, 하느님의 이름을 동원한 권위와 위선, 틀린 단어나 오자, 탈자 같은 것들은 모두 차치하고라도, 표현 방법의 미숙함을 넘어서, 혼자만 아는 척, 혼자 잘난 척했던 것들이 다 들켜납니다. 정말 부끄럽고 챙피합니다. 아직도 완벽주의자로 남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제 그만’이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모든 게 다 쓸데 없는 거야! 헛되고 헛될 뿐인데…’ 하면서 이 새벽, 저는 국민학교 때 한글을 배우며 글쓰기를 연습하며 반성문을 썻던 것 처럼, 저 자신을 마주합니다. 쓰잘데 없는 잡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스레를 뜬 라틴어 인문학, 오늘로 100 번째가 되는 날이니 거기 제 얼굴이 보여 반성문을 씁니다.

반성합니다.

남들이 2, 3천년 전에 다 해놓은 이야길 저 혼자 아는 양 수선을 떨어서 부끄럽습니다. 다 이미, 남들이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릇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단지 말을 않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다 아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은 남들도 다 할수 있는 일인데 너 보고 하라고 양보하고 있는 거야! 이 바보야!’

추천도서 :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선한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3 / 김희보 옮김, 동서문화사, 2008 / 최민준 옮김, 바오르의 딸, 2010; ‘참회록’, J. J. 루소, 홍승호 옮김, 동서문화사, 2016; ‘톨스토이 인생론 참회록’, 육문사, 2012

(감사의 말씀 : 지난 4월 27일, 처음 카톡에서 잡기장을 시작할 때는 한 100회 쯤이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코로나가 우릴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생각 같아서는 어디 팤에서 커피라도 한잔 나누면서 얼굴도 뵙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하여튼 백문경 대표님을 위시해서 모든 인문학 친구들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은 않하시지만 뒤에서 격려해 주시고, 읽어주시고, 또 다른 친구들과 나누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