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 위대한 박물학자 (로버트 헉슬리 / 21세기북스 / 2009.10.15)

서적소개 위대한 박물학자 원제: (The) great naturalists 로버트 헉슬리 / […]

서적소개

위대한 박물학자

원제: (The) great naturalists

로버트 헉슬리 / 21세기북스 / 2009.10.15

역사상 위대한 박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박물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박물학이란 자연물의 종류·성질·분포·생태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생물학은 물론 지질학, 광물학 등까지 아우르는 학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위대한 박물학자들에게 큰 신세를 입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동식물 종을 기술하고, 실험을 하고, 표본을 채집한 덕분에 우리는 자연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는 자연계를 개발할 의무뿐만 아니라 먼 훗날까지 존속할 수 있도록 보존할 의무가 있다.

이 책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고대부터 19세기까지 활동했던 위대한 박물학자 40여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유명인들도 있다. 예컨대 최초의 박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의 질서를 세운 칼 폰 린네, 위대한 항해가이자 채집자인 조지프 뱅크스, 멸종의 개념을 정립한 조르주 퀴비에 들이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찰스 다윈은 대담한 탐사 여행을 통해, 또 당대의 정설과 통념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이론들을 정립함으로써 과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 책을 통해 넓고도 넓은 박물학의 세계로의 여행을 출발하게 될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찰스 다윈까지… 위대한 박물학자의 이야기 40여 명의 박물학자들의 삶과 발견, 빼어난 삽화들을 통해 박물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 식물학부 표본실장, 로버트 헉슬리가 『위대한 박물학자』를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고대부터 19세기까지 활동했던 위대한 박물학자 40여 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초의 박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의 질서를 세운 칼 폰 린네, 위대한 항해가이자 채집자인 조지프 뱅크스, 멸종의 개념을 정립한 조르주 퀴비에 등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인의 삶과 발견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함께 소개한다. 최초의 자연사 박물관장을 지낸 울리세 알드로반디, 직접 제작한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발견한 안톤 판 레이우엔훅, 지구의 지질학적 과거의 문을 연 니콜라우스 스테노, 독학으로 화석을 수집하고 발견하는 능력을 깨우친 ‘고생물학의 공주’ 메리 애닝 등이 그러하다.

또한, 폭풍, 해적, 질병 등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 활동을 벌인 박물학자들도 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찰스 다윈은 대단한 탐사 여행을 통해 당대의 정설과 통념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이론들을 정립함으로써 과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위대한 박물학자의 이야기에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그림 자료실과 표본실에서 정선한 아름답고 정확한 삽화를 더해 재미와 이해를 돕고 있다.

○ 목차

편집자 서문 | 다양한 하나

고전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 겸 최초의 박물학자 —줄리아 브리테인
테오프라스토프 식물학의 아버지 —크리스토퍼 J. 험프리스, 데이비드 서턴
페다니오스 디오스코리데스 약용식물일 기록하다 —데이비드 서턴
플리니우스 지식을 수집하다 —데이비드 서턴

르네상스 시대
레온하르트 푹스 삽화의 중요성을 깨닫다 —브라이언 W. 오글비
울리세 알드로반디 직접 관찰에 힘쓰다 —주세페 올미
안드레아 체살피노 식물학 교과서를 집필하다 —로버트 헉슬리, 크리스토퍼 J. 험프리스
피에르 블롱 비교해부학의 선구자 —앨런 커틀러
콘라트 게스너 박물학자 겸 서지학자 —쿠스카와 사키코

계몽 시대
니콜라우스 스테노 지구 지질의 과거를 밝히다 —앨런 커틀러
존 레이 영국의 아리스트텔레스 —로버트 헉슬리
로버트 훅 현미경으로 관찰하다 —브라이언 J. 포드
안톤 판 레이우엔훅 미생물을 발견하다 —브라이언 J. 포드
한스 슬론 경 수집의 대가 —로버트 헉슬리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곤충의 변태에 매혹되다 —H. 월터 랙
마크 캐이츠비 북아메리카 박물학의 개척자 —스티브 캐퍼티
칼 폰 린네 자연의 질서를 세우다 —크리스토퍼 J. 험프리스, 로버트 헉슬리
콩트 드 뷔퐁 야심찬 이론가 —샌드라 내프
게오르크 슈텔러 알래스카를 탐험하다 —로버트 프레스
미셸 아당송 보편 분류법을 주창하다 —데니스 라미
이래즈머스 다윈 진화론의 토대를 마련하다 —로버트 프레스
윌리엄 바트럼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다 —주디스 매기
조지프 뱅크스 탐험가 겸 박물학 후원자 —태니아 더트
요한 크리스티안 파브리치우스 곤충학의 기초를 닦다 —R. I. 베인라이트
제임스 허턴 지질 시대를 발견하다 —질 쿡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획득형질 유전론을 세우다 —샌드라 내프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 자연분류 체계를 실용화하다 —데니스 라미
조르주 퀴비에 고생물학의 창시자, 멸종된 동물들을 복원하다 —필리트 타케

19세기
윌리엄 스미스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 —존 L. 모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자연의 통일성을 보다 —주디스 메기
존 제임스 오듀본 새를 사랑한 박물학자 겸 화가 —로버타 J. M 올슨
윌리엄 버클런드 최초로 공룡 논문을 쓰다 —질 쿡
찰스 레이엘 근대 지질학을 확립하다 —질 쿡
메리 에닝 화석 수집가 —크리스핀 티켈
리처드 오언 비교해부학의 옹호자 —데이비드 윌리엄스
장 루이 로돌프 아가시 비교생물학의 권위자 —키스 톰슨
찰스 다윈 진화론을 완성하다 —키스 톰슨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의 공동 주창자 —샌드라 내프
아사 그레이 미국 식물학의 아버지 —샌드라 내프

○ 저자소개 : 로버트 헉슬리

런던 자연사박물관 식물학부 표본실장이다. 자연사 표본실 북아메리카연합의위원회 위원이며, 자연사 표본 보존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한스 슬론 경이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들의 일부를 전담 관리하고 있으며, 17세기 및 18세기의 박물학을 알리기 위한 저술 및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 역자: 곽명단
    소설과 교양서를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파시즘과 싸운 여성들』, 『행복한 그림자의 춤』 ,『별 옆에 별』, 『위험한 요리사 메리』 ,『소공녀』, 『너답게 살아라』 ,『배고픔에 관하여』 『위대한 감시 학교』 ,『검은 감자』 ,『어느 뜨거웠던 날들』, 『신이 없는 세상』,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위대한 박물학자』, 『육천 년 빵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자연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찰하고 기록한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갑오징어는 작살에 찔리면 수컷은 암컷을 구하려고 나서지만 암컷은 달아난다.” (『동물 탐구(4권)』] 처럼 해양 생물의 습성을 생생하게 기록하기도 하고, 포유류의 젖들을 비교 평가한 글도 있다. 또한 500종이 넘는 동물들이 다룬 것으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들에게 매료되었던 게 분명하다. 돌고래와 물범의 자식 사랑, 꿀벌의 ‘춤 언어’, 성게의 복잡하고 정교한 입틀 (이것을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부르는 것은 『동물 탐구 (4권)』에서 오면체로 이루어진 성게의 입 구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뾰족한 등갓을 벗긴 5면체의 반투명 유리판으로 된 등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따위의 주제를 따뜻하면서도 생생한 글로 썼다. 이것은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는 감각으로 터득한 현상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이론보다 관찰 결과를 더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생각하는 동시대인들을 비판했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지침은 시대를 뛰어넘어 과학이 나아갈 길을 닦는 데 이바지했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학문이 고대에는 없었다. 현대 철학도 그렇지만 21세기의 화학과 물리학이 고대에서는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근대 실험과학이 태동한 것도 갈릴레오와 뉴턴 등이 등장한 16, 17세기부터였다. 생명과학 (life science)이 오랫동안 탄탄한 길을 다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관련 저술들처럼 오늘날의 과학과 직접 끈이 닿아 있으면서도 놀랍도록 관련이 깊은 문헌은 고대의 과학에서 대단히 드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 기록은 마치 어제 쓴 글처럼 생생하게 읽히는 부분이 많다. 사실 동물 행동을 상세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새 길을 개척한 그의 몇몇 저술들은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았다. — pp.24-25

린네는 분류체계 또는 계급체계를 다섯 단계 (계, 강, 목, 속, 종)로 나누었다. 고전고대 때 형성되고 중세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존재의 대사슬’, 곧 광물과 식물과 동물이 오름차순으로 하나의 완벽한 위계를 이루고 있다는 이 개념을 잘 알고 있었던 린네는 과감하게도 존재의 대사슬 맨 위에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라는 학명으로 인간을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인간도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와 비슷한 존재의 사슬에 관한 이론을 세우고 식물을 맨 아래, 인간을 맨 위에 두었다. 린네는 인간, 유인원, 원숭이가 속하는 강의 한 가지인 영장목 (primates)을 만들었다.
린네는 식물 분류에서 세운 공헌에는 못 미치지만 동물 분류에도 기여했다. 그는 여섯 부류의 동물 중 네 가지를 서로 다른 신체 기관, 다시 말해 포유류는 이빨, 조류는 부리, 어류는 지느러미, 곤충류는 날개를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린네가 등뼈 없는 동물이라 부른 연충류 (vermes)는 외형적 특징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코뿔소류를 설치류 (rodents)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고래를 포유류로 분류한 최초의 학자였다. 린네의 분류체계는 19세기에 널리 인정받았다.
……
1762년에 귀족 작위를 받고 작위를 물려줄 후임자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았으며, 이듬해 아들을 후계자로 지정했다. 린네가 1778년에 사망하면서 린네의 소장품을 물려받은 아들이 죽은 뒤, 영국의 의사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가 1783년에 그 수집품과 각종 자료들을 매입했다. 스미스는 1788년에 런던에 린네학회를 창설했다. 이 학회는 린네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고, 오늘날까지도 원형이 보존된 수집품과 대단히 소중한 출판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는 린네의 종들을 연구하는 공식 연구기관이다.
린네의 이명법과 분류체계는 당시 혼란스럽던 생명체 연구 분야에 도움이 되었으며 자연분류 체계가 등장하기까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식물학과 동물학의 발전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했다. 단 몇 가지 특징만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린네의 인위체계가 비록 훗날 유연관계를 따져 분류하는 자연분류 체계로 바뀌긴 했지만, 간단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물의 분류 체계를 마련하는 공로를 세움으로써 18세기의 박물학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린네의 이명법을 능가하는 명명법은 아직 없다. — pp.136-139

메리 애닝을 그냥 고생물학의 공주라고 부른 게 아니었다. 그만큼 애닝은 예사롭지 않은 시대에 아주 비상한 재능을 발휘했다. 애닝은 1799년 영국 남부의 라임 레지스에서 비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구제작이 본업이던 아버지 리처드는 부업으로 바닷가 낭떠러지에서 ‘진귀한 돌’들을 채집해서 팔았다. 리처드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데다 폐결핵까지 겹쳐 1810년 사망한 뒤, 그는 아내는 두 자식 (일곱 명은 어려서 죽었다)을 데리고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 교회에서 일주일에 3실링씩 주는 구호금으로 근근이 살아갔다.
앞으로 좋아지리라는 한 가닥 희망조차 걸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애닝은 처음부터 아주 남달랐다. 태어난 지 15개월 된 애닝을 안고 가던 유모가 벼락을 맞았는데, 유모는 죽었지만 애닝은 살아남았다. 애닝의 조카 말에 따르면 그 사건 이후로 애닝이 생기가 넘치고 총명해졌다고 한다. 애닝과 애닝의 오빠는 화석을 채집하러 다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곤 했었는데, 아버지가 사망한 뒤부터 주로 애닝이 화석을 수집하여 판매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
메리 애닝은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당대의 사회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범상치 않은 일을 하면서 읽고 쓰는 능력을 익혔고, 14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지질학에 관한 책을 빌려 보았다. 이것이 라임 레지스 주변의 낭떠러지들의 특징들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1811년부터 1830년까지 애닝이 발견한 화석은 셀 수 없이 많다. 애닝은 처음 발견한 어룡의 뼈를 오빠와 함께 조립했고, 나중에 어룡 화석 두 종을 더 발견했다. 그 밖에도 플레시오사우루스 2종, 두족류 1종, 익수룡 1종, 물고기 화석 (그 당시에는 상어에서 가오리로 변이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등을 발견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분석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동물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화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러나 애닝은 한낱 수집가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았고, 타고나기라도 한 사람처럼 낭떠러지 표면에서 화석이 박혀 있는 곳을 알아냈다. 일단 화석이 묻힌 곳을 알아내면, 안간힘을 다하여 손상되지 않도록 직접 발굴하거나 발굴하도록 다른 사람에게 지시했다. 애닝이 지닌 대단히 비범한 능력 가운데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어지간한 박물관 책임자도 하기 힘든 화석 표본 조립 능력이었다.
……
애닝은 운도 좋았다. 애닝이 화석을 수집하던 때는 바야흐로 ‘머나먼 과거’를 발견하면서 지질학은 과학의 여왕으로 등극한 시대였다. 라임 레지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화석 채집 활동이 전개되자, 부유한 애호가들은 화석을 수집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편 학계에서는 지구의 역사에 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지질학과 성경의 기록을 접목시키려 애썼던 윌리엄 버클런드, 갑작스런 변화를 몇 차례 겪으면서 현재의 지각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천변지이설 주창자들, 화산 활동의 결과라고 믿는 화성론자들, 원시의 바다에 퇴적되어 암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믿는 수성론자들이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제임스 허턴, 윌리엄 스미스, 찰스 라이엘의 뒤를 잇는 동일과정설 주창자들도 있었다. 모든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동일과정설은 찰스 다윈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학설이기도 하다.
신분이 낮은 데다 남성의 세계에 뛰어든 여성으로서 갖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애닝은 살아생전에 명성을 얻었다. 실베스터 부인은 또 이렇게 썼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가엾은 소녀가 이토록 큰 축복을 누리다니, 이것은 분명 신의 은총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이다. 책이나 읽고 열심히 화석이나 수집하는 게 고작이던 여자가 일삼아 글을 쓰고 토론을 벌이는 교수들이나 관련 주제를 잘 아는 식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그리고 영국에서 그 누구보다 화석학(그 과학 분야)에 관해 뛰어난 식견을 지녔음을 모두가 인정한다.” — pp.250-254

다윈은 박물학자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마땅한 관찰력과 기술력과 분류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그는 타고난 비판적 사고능력을 거의 모든 동물군과 식물군을 연구하는 데 응용할 줄 알았다. 게다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이론으로 정립하는 능력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그는 단지 관찰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흔하디흔한 현상조차도 그 원인을 설명할 길을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
다윈은 도자기 업계의 거물 조사이어 웨지우드의 딸인 어머니가 소유한 토지 덕분에 집안에서 거액을 지원 받은 행운아였다. 비글 호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 다윈은 이미 시골 목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기로 다짐했다. 결국 집필과 연구에 투자한 덕분에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안락하게 살지 못했다. 아마도 겨우 8세에 어머니를 여윈 것과 관련이 있을 테지만, 어려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말더듬증, 불면증, 습진, 배앓이, 메스꺼움 등의 증세를 보이곤 했다. 1831년 플리머스에서 비글호의 출항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바람에 고생하기도 했다. 비글 호 항해를 하는 동안 이 건장한 사나이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압박감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
다윈이 항해를 하는 도중 진화 (당시에는 ‘종간 변이transmutation of species’라고 불렀다) 문제를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는 일찍이 에든버러대학교 시절 변이 이론을 주장한 친할아버지의 『주노미아』를 읽었다. 변이가 프랑스 동물학자 라마르크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임을 알고 있었고, 비글 호 항해를 하면서 변이에 관한 몇몇 개념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윈이 분류체계에 관심이 아주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 분류체계는 생물체 분류군들의 유사성 유형을 밝힘으로써 창조론보다는 생물체의 유연관계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사람답게, 다윈은 생물계의 다양성이 수차례에 걸친 창조 때문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계획성 없는 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북극에는 펭귄이 없다는 점, 벌새가 아프리카에는 없다는 점 등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계획처럼 보였다.
종간 변이는 화석 기록으로 드러난 지구상의 생물들 전체가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데서 이끌어낸 명백한 결론처럼 보였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에서 화석을 수집했다. 그 결과 형태가 비슷해 보이는 플라이스토세에 살았던 아르마딜로와 나무늘보가 현재도 똑같은 장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로써 다윈은 시간에 따른 종의 천이와 장소에 따른 현생 종들의 분포 양상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컨대 남아메리카 레아 (타조의 친족)의 북부 종과 남부 종이 한 쌍을 이룬다.
……
‘자연선택’의 기본 원리는 『종의 기원』 처음 4장 (章)에 간단명료하게 요약되어 있다. 다윈은 먼저 널리 알려져 있는, 생물체의 새로운 종족을 번식하는 선발 육종법을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자연집단 (생물 진화의 기본 단위. 자연조건 아래에서 번식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개체군-옮긴이)의 변이성과 변이된 주요 부분의 유전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런 뒤 억제하지 않을 경우 모든 집단이 ‘기하학적 비율로 증가’함에 따라 자연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생존경쟁’을 제시했다. 어떤 종이든 아주 소수라도 그 자손이 살아남아 성장하면, 그 다음에는 자연이 특정 조건에 가장 적합한 변종들을 도움으로써 같은 종족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까지 번식하게 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자식을 낳고 계통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에 의해 탁월한 결과를 얻는 것이 분명하다면, 자연이라고 그런 결과를 얻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자연선택이 맡은 일은 대부분 바람직하지 않은 변형체가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며, 변화를 일으키는 데 직접 작용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자웅 선택’이 있는데, 이는 공작을 예로 들자면 수컷의 아름다운 꼬리를 보고 가장 좋은 짝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윈은 생물체의 지리적 분포에 관한 지식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증거들을 얻었고, 이 증거들로써 생물체가 다양하게 분포하는 까닭은 ‘창조의 중심’이 여러 곳이기 때문이라는 옛 사상들을 논박했다. 다윈은 살아 있는 생물체와 화석 생물체가 다양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분지과정 때문이라고 보았다.
……
『종의 기원』은 모든 논쟁거리 가운데 가장 뜨거운 쟁점인 인간의 진화는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다윈은 이후 인간의 진화 문제에 천착했고 그 결과 또 하나의 역작 『인간의 유래』(1871)를 내놓았다. “이 연구 작업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무엇보다 먼저 다른 모든 생물 종들처럼 인간도 이미 존재하는 어떤 형태에서 유래되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 무렵은 인간의 화석 기록이 많이 밝혀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인간을 영장류와 유인원에 견주어 비교한 자료를 주된 근거로 제시하며 견해를 피력한 다윈의 주장은 여전히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다윈은 개의치 않고 언어, 사회적 행동, 도덕 체계, 심지어 종교의 유래조차도 그 진화적 기원을 보여주는 문헌들에서 추려낸 자료들을 검토했다.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자웅선택에 관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는 인종의 차이가 바로 자웅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임을 보여주는 모든 면들이 점진적으로 진화된 연속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다윈의 책 중 이 책은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게다가 다윈은 일각에서 ‘매우 반종교적인 책으로 몰아붙이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종 전체나 개체의 발생은 모두 잇달아 일어난 웅대한 사건들의 일부인데, 우리네 정신은 어떤 특별한 목적에 맞춰 준비되었다기보다는 눈먼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을 거부한다.”고 썼다.
다윈에게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식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다윈이 숱한 실험을 할 때 조교 노릇을 하기도 했다.,『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을 쓸 때는 실험 대상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1875년 이후로는 더더욱 다운하우스에서 은둔하며 아주 만족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왕성한 연구 및 집필 활동에 힘써, 『식충 식물』(1875), 『식물의 운동 능력』(1880), 『지렁이의 활동에 따른 식물재배 토양의 형성』(1881) 등을 썼다.
스스로 말했듯이 ‘어떤 주제든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는 일에는 무한한 참을성을 발휘했던’ 다윈은, 살아생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명예나 특권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그는 뉴턴 등과 같은 위인들과 나란히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 묻혔다.— pp.267-276

○ 출판사 서평

  • 빼어난 삽화들을 통해 박물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위대한 박물학자들에게 큰 신세를 입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동식물 종을 기술하고, 실험을 하고, 표본을 채집한 덕분에 우리는 자연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는 자연계를 개발할 의무뿐만 아니라 먼 훗날까지 존속할 수 있도록 보존할 의무가 있다.
이 책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고대부터 19세기까지 활동했던 위대한 박물학자 40여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유명인들도 있다. 예컨대 최초의 박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의 질서를 세운 칼 폰 린네, 위대한 항해가이자 채집자인 조지프 뱅크스, 멸종의 개념을 정립한 조르주 퀴비에 들이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찰스 다윈은 대담한 탐사 여행을 통해, 또 당대의 정설과 통념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이론들을 정립함으로써 과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위대한 박물학자>와 함께 넓고도 넓은 박물학의 세계로 떠나보자!

  • ‘다양한 하나’인 생태계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생태계란 모습이 사뭇 다른 피조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닮아 가며 질서를 유지하면서 다양성의 통일을 이룬 아주 조화로운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실제로 공룡의 화석 뼈대나 붙박아 둔 나비의 오색찬란한 날개, 우아하게 진열된 보석과 광물들을 보노라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전시품들은 이미 발굴되어 있는 수집품에 견주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아는 관람객은 몇이나 될까? 또 수집품이나 발굴품, 소장품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넘어 더 까마득히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는 활동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아마도 더 적을 것이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 발견한 생물 종들을 명명하고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고군분투한 세계 과학자들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자연과학은 폭풍우와 해적과 질병과 정치적 격변 따위의 갖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생물 종의 목록을 작성하고 자연계를 이해하려고 심혈을 기울인 선조들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그 선조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위대한 박물학자들이다.
이 책은 박물학을 온갖 생명체를 발견하고, 기술하고, 분류하고, 이해하는 역사로 한정한다. 주 관심사를 생명체의 세밀한 내부 작용이나 특수한 지리학적 과정으로 삼은 사람들의 경우, 그 연구의 성과가 전반에 걸쳐 두루 중요한 의미를 띠지 않는 한 제외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연계를 이루는 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류 역사의 초창기부터 자연계 연구는 대단히 큰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 독이 있는 것, 약으로 쓸 수 있는 것 등으로 분류할 필요성을 느꼈을 테고, 동물은 해로운 짐승인지 이로운 짐승인지 가리고자 애썼을 것이다. 자연계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이유는 분명 시대에 따라 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40명의 학자들의 업적을 읽다보면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생태계의 종들이 분류되고 정리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