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그리스·터키 여행공부
델포이에 대하여
1. 델포이 (Delphi, 델피)
델포이 또는 델피는 그리스 포키스 주 (아테네에서 서북쪽 150Km 지점) 협곡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의 남서쪽 산자락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지명이자 도시를 말한다. 파르나소스 산 중턱 (해발 고도 500m)에는 테라스, 신전, 재산고 같은 많은 기념물이 있으며 이 기념물들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자연의 풍광과 결합되어 경의로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미케네 문명 시기에 (기원전 2000년경) 작은 마을 델포이에서는 대지의 여신 (지모신)이 숭배의 대상이었기에 성소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이 이 성소를 지키던 괴물 피톤(Python)을 죽였고 그 후로 델포이는 아폴론을 숭배하는 주요성소가 되었다. 이 승리를 재현하여 제전적인 피티아 경기 (Pythian Games)가 개최되어 4년마다 열렸고 우승자에게는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기원전 8-6세기 폴리스 성립기에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그리고 델로스의 아폴론 신전과 함께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아폴론 숭배가 확립되면서 신전과 신탁이 발달하게 되었다.
기원전 7세기에는 신탁의 중요성이 커지자 중부 그리스 폴리스들이 구성하는 인보동맹의 중심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 초 제 1차 신성전쟁으로 델포이의 중립과 독립이 보장되어 자율성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범그리스차원의 종교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신탁은 식민이나 정치적인 결정 등에 관해서 조언을 하고 절대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숭배되었으며 신역은 훌륭한 건물들과 동상 및 기념비 그리고 보고에는 공물들로 채워져 신전은 확대되었다. 이곳이 대지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여겨 아폴론 신전의 방 한 곳에 세계의 배꼽이라는 표시로 옴파로스가 놓여 있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아이톨리아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후 기원전 191년에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다. 390년 테어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고 이교도 금지령을 내림으로서 델포이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892년 이후 프랑스 고고학회가 발굴을 시작하여 큰 성과를 올려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폴론 신전은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 델포이 고고유적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델포이 신전의 유래
델포이 옛 지명은 피톤 (Python)이었는데 신화에 의하면 아버지인 제우스는 쌍둥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탄생을 기뻐하며 아폴론에게 예언을 관장하는 능력을 주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태어난지 나흘이 지나자 제우스는 그에게 황금 왕관과 현악기 리라와 백조가 끄는 마차를 주며 피톤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피톤에 온 아폴론은 가이아의 신전을 지키던 큰 뱀 피톤을 화살로 쏘아 퇴치했다. 이 후 아폴론은 신전을 차지하고 지명도 피톤에서 델포이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가이아의 신전은 아폴론의 신전으로 바뀌고 신전의 피티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게 하였다. 그 후로 가이아이의 뜻이 아닌 제우스의 뜻을 알리는 아폴론의 신탁에 의하여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3. 유적지의 건축물
아폴론 신전 (Temple of Apollo) –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던 원래 신전 유적 바로 위에 세워졌다. 그 당시에는 38개의 웅장한 도리아식 기둥이 길이 60m, 폭 23m의 신전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6개의 기둥과 축대 부분들만 남아 있다. 전실, 후실, 신실의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신실 안쪽에는 신탁소가 있었다.
– 아테네인의 재산고 혹은 보물창고(Treasury of the Athenians)
기원전 6세기 말에 아테네인들이 아폴론에게 바치는 재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도리아식의 작은 건물이다. 정면의 주랑이 벽끝의 두 기둥 사이에 있으며 풍부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 키오스의 제단(Alter of the Chians)
아폴론 신전 전면에 있는 커다란 제단이다. 비문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에 키오스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흰색 대리석 토대 위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콘니스는 다시 흰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인상적인 색의 대비를 보여준다.
– 아테네인의 스토아(Stoa of Athenians)
각각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진 홈이 있는 기둥 7개가 있는 이오니아식 건물이다. 기단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기원전 478년 아테네인들이 페르시아와 해전에서 승리한 후 가져온 전리품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 원형극장(Theatre)
기원전 4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나 원래 것은 파괴되고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돌로 만든 35열의 관람석은 5000여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었다. 분장실과 무대를 겸비한 스케네는 포장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극장은 주로 대제전 기간 동안에 연극을 공연하는데 사용되었다.
– 경기장(Stadium / Stadion)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되었고 길이 200m, 폭 50m, 트랙길이 178m, 폭 26m, 수용인원 6000명인 긴 타원형의 형태이며 유적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기장에서 4년마다 열리는 범헬레니즘 피티아 경기, 육상, 승마, 마차경주 등이 개최되었다.
– 카스탈리아 우물(Castalian Spring)
패드리아데스 계곡에 있는 우물로부터 물을 받았던 분수로 지금은 두개의 샘이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제사 전에 신관과 무녀, 그리고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목욕재계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 톨로스(Tholos)
지름 13.5m의 둥근 대리석 구조로 도리아식 원형 건물이다. 기원전 4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세공의 섬세하고 수준 높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 것들로 미루어 보아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20개의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었지만 지금은 3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톨로스는 바라보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여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내게 한다.
– 다각형 축대(Polygonal Wall)
기원전 548년 구 아폴론 신전이 파괴된 뒤에 새로 세우게 될 신전의 테라스를 지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축대를 쌓은 돌이 다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돌의 끝부분이 완벽하게 서로 들어 맞는다. 돌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 노예 해방과 관련된 글들이다.
4. 델포이 고고학 미술관 (박물관)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성지였다. 그래서 이 신역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각 도시의 보고가 많이 건설되어 그리스 전역의 각 도시 국가에서 바친 수많은 조상이 진열되었다. 이 신역은 1893년 아테네의 프랑스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발굴 되었다. 각 시대에 걸친 여러 유파의 작품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이 점이 델포이 고고학 미술관의 특색이다. 또 이 곳에 있는 방대한 수의 대리석 비명이 발견되어 고대 그리스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미술관은 1903년 은행가인 싱그로스의 자금으로 건립되었으며 1936년에 확장공사를 시작했으나 1939년에 중단되었다가 2004년에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유물들은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고 박물관 전시장은 모두 14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다.
_ 전시된 유물들
.낙소스의 스핑크스상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석상
.춤추는 소녀상
.청동마부상
.황금소
.보병의 투구
.안티누스상
.옴파로스
.소크라테스상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황금 신상
이외 수많은 미술품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한종춘, 한정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