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소설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인문학 교실에서 그리스, 터키 인문학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하반기 책 읽기를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로 선정하였던 것인데 시의적절 했다고 생각한다.
1. 번역의 진화
카잔자키스가 58세 때 45일 만에 초고를 쓰고 3년을 다듬어 1946년에 출판되었는데 다음 해 스웨덴어와 불어로 각기 처음 번역되었고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되었다.
1981년 저명한 번역출판인 이윤기선생의 번역으로(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 출판되어 젊은이들 사이에 베스트셀러였다. 그리스 공산당원이었던 저자의 작품이 그 당시의 지독한 반공검열을 뚫고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2018년 외대 그리스어 교수 유재원이 그리스어에서 한국어로 바로 번역하여 새로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서 유재원은 저자이름이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카잔자키스가 맞다면 바로 잡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2. 실존인물 조르바
요르기오스 조르바스(1865?–1941)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서쪽 광산마을 출생으로 15세 소녀와 결혼하여 8자녀를 낳았으나 부인이 32세에 사망한 이후 떠돌아다녔다. 1914년 수도사의 공화국 아기온 오로스에서 카잔자키스를 만났고 펠레폰네소스에서 탄광개발을 함께 했으나 망했다고 한다. 그는 한 번도 크레타 섬에 가 본적이 없으나 카잔자키스가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까닭은 그의 고향 땅이어서 라고 한다.
3.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의 생애와 작품
아테네 법대 재학시 첫 소설 뱀과 백합 발표
파리로 유학하여 베르그송의 가르침을 받고 니체연구로 철학박사학위 받음
1911 발칸전쟁이 발발하여 참전 후 1913년 전역
1915 그리스 전역 여행 후 아기온오로스에 가서 조르바 만남
1919 그리스난민 15만명 구출하는 과정에서 친구 야니스 스타브리다키스가 폐렴
으로 사망
1920 베를린에 머물며 글쓰기에 전념하며 비극 ‘부처’ 탈고. 좌파적 정치노선 형성
1927 소련정부 초청(혁명 10주년 기념) 으로 소련에 가서 막심 고리키 만남
일본, 중국, 내전중인 스페인과 영국여행하다 오디세이아 출간
1945 엘레니 사미우와 두 번째 결혼하여 그리스 문인협회장도 되고 노벨상 추천 받았으나 아쉽게 실패하다. 수상자 A. 까뮈는 수상소감에서 카잔자키스에게 갈 상이 나에게 잘못 왔다고 말했다.
1948 프랑스 앙티브에 정착 (반공국가 그리스에서는 지내기 힘듬)
1957 주은래 초청으로 중국방문후 10월26일 백혈병과 아시아독감으로 사망(향년 74세). 고향 크레타섬에 묻히다.
세계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 지시에 의거하여 크리타 에브예니오스 대주교가 장례를 집전하였으며 고인의 유언에 따라 나무십자를 세움
카톨릭 교황청과 아테네 대주교청이 그의 작품들을 금서로 정한 일이 있으나 그는 신자가 아니었으므로 파문당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엘 그레코에 바치는 보고서(영토의 자서전,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않고 승리를 향한 투쟁에 있다고 주장)
– 소설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다.
– 형제 살해자(전쟁과 신부, 관용과 형제애가 주제)
– 미할리스 대장 1953
– 최후의 유혹 1951
– 하나님의 가난한 자 등등 작품 남기다.
4. 악기 ‘산투리’
소설 속에서 계속 나오는 이 악기를 조르바는 터키인 산투리 명인에게 배웠다고 하며 카잔자키스가 조르바에게 연주 요청을 하자 그가 말한 대화를 그대로 옮긴다.
‘산투리는 깨끗한 마음이 필요해요. 마누라가 내게 잔소리를 한다든지 아이들이 배고파 찡얼거리면 산투리를 칠 수 있겠소? 산투리는 산투리만 생각해야 칠 수 있단 말이오. 알아 듣겠소?’
‘기분이 내키면 치죠. 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소. 노예처럼요. 하지만 산투리는 전혀 별개요. 이 놈은 야수요. 자유가 필요해요. 내가 기분이 내키면 칠거요. 노래까지도.’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해 둡시다. 산투리 연주는 내가 기분날 때 만이오. 만일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난 인간이고 자유인이니까.’
그 산투리를 1941년 소설 초고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르바의 유언으로 카잔자키스에게 사망소식과 함께 전해진다
‘내가 쓰는 것이 책이 아니라 추도사가 아닐까 두렵다고 스스로 느낀대로 무릎 위에 완성된 원고를 올려놓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이미 그 편지를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사망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섬세하고 철저한 카잔자키스의 성격대로 그 뒤 3년의 탈고과정을 거친다.
5. 배경이 되는 크레타 독립전쟁
1821-1898년까지 오스만 튀르크로 부터 독립을 위하여 4번의 독립혁명이 있었으며 영국, 프랑스, 이태리, 러시아 4대 강국의 군정을 거쳐 1908년 그리스와 통합된다. (마담 오르탕스의 4개국 함대제독 회상 이야기의 배경)
조르바가 참전했던 마케도니아 투쟁도 1904-1908년 사이에 일어났었다. 이 투쟁에서 소설속에서 독립투사 조르바가 불가리아 신부를 죽인 며칠 후 그의 자녀들이 구걸하는 걸 우연히 마주치고 가진 것 전부를 던지듯 주고서 전쟁터를 떠난다.
사람을 국적에 따라 구분하고 애국심에 대한 노예였음을 깨닫고 난 뒤 그는 자유로워지며 자유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을 펼쳐나간다. 자유란 무엇에도 속지 않는 것이며 관습이나 무지 때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일생을 알아야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에 소설배경 지식을 훑어보았다.
6. 소설의 구성
조르바와 1인칭 화자 나 사이의 대화가 소설의 80%를 이루고 후반부에 가서 과부살인, 수도원 방화, 광산폭발 사건이 터지면서 크레타 섬에서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65세의 광산 관리인 조르바와 35세의 투자가이며 대장이라 불리우는 먹물 글쟁이인 일인칭 화자 나 사이에 나누는 이야기다. 바닷가 오두막에서 조르바가 음식도 만들고 산투리도 치면서 카잔자키스와 나누는 대화로 구성된다.
1인칭 화자는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일본의 부동심, 부처, 공자의
이야기를 간혹 이야기한다. 말라로메의 시집과 로스탕의 연주 ‘레글롱’ 그리고 로댕의 전시회에서의 ‘하나님의 손’이 언급된다.
7. 조르바와의 대화 내용
‘…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더러운 돼지새끼 터키 놈들을 죽이거나 강탈한 금화들을 갑자기 공중에 뿌리기 시작했죠. 알겠소 대장? 이게 자유라는 거요.’
금화를 탐내는 탐욕과 갑자기 그 탐욕을 버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공중에 버리는 게 자유로군!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서 더 높은 욕망을 따르는 것 … 하지만 하나의 이상을 위해, 민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것 역시 노예근성이 아닐까? 끝내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죽어 갈텐데 이런 걸 자유라고 하나?
– 내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사람 중 누가 맞는 것 같소? 대장? 그건 절대 알 수 없을 거요.
– 지구 곳곳을 돌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탐구했기에 나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르바 계속 하세요. 계속 얘기해요!
– 나는 갈탄광이 잘 되면 모두가 형제처럼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나누며 함께 똑같은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를 조직해 보겠다는 낭만적인 꿈도 꾸었다. 그러나 일꾼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서 조르바가 ‘사회주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죠, 대장! 선동가가 될 거요, 아니면 사업가가 될 거요? 선택을 하쇼.
– 하지만 나는 내가 보기에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돈키호테적 모험에 나설 꿈을 꾸고 있다.
대장! 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내가 인간을 믿는다면 하나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러면 아주 귀찮아지죠.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당신은 귀하게 자라서 그걸 몰라요. 짐승이에요. 인간들을 혹독하게 다루면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의 눈알을 빼가죠.
나는 아무것도 그리고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그 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 놈만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이에요.
– 이 사람은 학교를 다닌 적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아프리카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 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 나는 바로 이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음식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됐다. 저녁에 조르바가 불을 지펴 요리를 하면 우리 둘은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 때 나는 음식 역시 영혼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기와 빵과 포도주야말로 정신을 만들어 내는 원초적 원료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여자란 요물이에요. 인간이 아니라 요물이라고요. 여자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요.
– 대장, 춤출 줄 아쇼? 대장 그렇다면 나 혼자 출께요. 저만큼 비켜서 있으쇼. 하이!
하이! 내 아들이 세살에 죽었을 때 그 때도 일어나서 춤을 추었죠. 미쳤구나 라고 다들 외쳤지만 그 순간에 만일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고통을 못 이겨 미쳐 버렸을 거예요. 나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또한 춤으로 대화할 수 있어요.
– 조르바는 화로의 잿더미 속 밤 몇 알을 끄집어 내서는 껍질을 깠다. 우리는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두 마리 커다란 토끼들처럼 조용 조용히 우물우물 밤을 씹어댔다. 바다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조르바, 몇 번이나 결혼했소?
슬라브 여자들은 아주 손이 커서 사랑이나 음식에서 좀스러운 이곳 그리스 여자들과는 달리 전혀 인색하지 않고 아주 인심이 후하다구요!
대장은 아직 젊어요. 젊으니 무얼 알겠수? 대장도 흰 머리가 희끗희끗 날 때면 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주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합시다. 여자란 절대 끝나지 않을 주제란 말이오.
8. 조르바를 통해 카잔자키스가 하고 싶은 말
학교에 가 본적이 없는 조르바는 평생 육체노동으로 살았으며 삶의 현장에서 이성보다는 직관에 따라 항상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얽매
이지 않는 자유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
그가 이런 경지에 오른 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빼어난 인간)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 단계를 모두 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조르바는 니체가 생각해 내고 주장했던 삶을 그리고 작가 카잔자키스가 늘 꿈꾸어 왔지만 결국 실천하지 못했던 삶을 그냥 살았다. 조국이니 애국심이니 구원이니 하는(윤리, 조국, 종교와 같은 장애물) 사회의 관습과 미덕을 모두 버리고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살았다.
조르바가 마지막에 그에게 ‘아뇨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어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 뿐이오. 대장은 조금 더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 내지는 못 했수다….끈을 끊어 내려면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은 머리가 있어 그게 안되죠. 미친 짓을 벌이는 광기가 필요해요.’
여기에서 그의 묘비명의 글이 이해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윤리, 종교,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자유는 나온다는 것인데, 인문학 친구들의 좋은 토론 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진(시드니인문학교실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