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인문학 공부와 인문학여행의 목적

시드니인문학교실 인문학 공부와 인문학여행의 목적 1.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 2년전 […]

시드니인문학교실

인문학 공부와 인문학여행의 목적

1.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

2년전 우리가 시드니인문학교실을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우리 모임의 목적 중 하나는 다산 정약용의 ‘죽란시사(竹瀾詩社)’였습니다. 이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난 아래에서 시를 욻고 그림을 그리면서 ‘한 시대를 걱정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지성인들의 모임으로 일종의 ‘풍류계(風流契)’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드니 인문학계’를 통하여 인생의 시름과 아픔을 위로하고 시대와 인간을 보듬어주고 이 절망의 땅에서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우리교실의 목표로 세웠습니다.

1) ‘자아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자!’(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예화, 혜능대사의 말 ‘그건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자기 생각, 경험, 주장의 한계를 인식하자! 그리하여 고집을 내려놓고 집착을 내려놓자!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아닌 동질성을 찾아보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2) ‘모든 것은 보는 시각과 이해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워 지고 또 달라진다’는 자세를 지니자!(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원효대사가 밤에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물인 것을 알게 된 다음에 한 말 ‘물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로구나! 물은 그 물인데 어찌하여 나는 꽥꽥거리는가? 모든 착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진리와 비진리란 결국은 이해의 넓이와 깊이, 관심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3) ‘세상은 모두가 일리로 만들어져 있다! 내가 아는 것만이 절대적인 것인 양 고집을 피우지 말자!’(황희 정승이 종들이 서로 다툰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 말이 맞다’ ‘듣고 보니 네 말도 맞구나’ 하다가 그 모습을 본 조카가 ‘아저씨는 흐리멍텅 합니다. 제가 들으니 아침에 와서 호소한 종의 말도 맞다고 하고 오후에 와서 말한 종의 말도 맞다고 하시니 어느 말이 맞는 겁니까?’라고 하자 ‘아 그렇구나! 네 말을 듣고 나니 네 말도 맞구나!’ 한 예화).

4) ‘하나의 질문에는 반드시 하나의 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1920년대 독일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 했던 빛의 실험에 따른 ‘불확정설’ 이야기).

5) ‘인생과 역사란 여럿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명심하자!’(호주원주민들이 그리는 점묘법과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기법을 상기해 두자).

6)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사회적 약자를 편들어 주자!’(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읍내의 한 주모에게 당호 ‘사의제(四宜齊)’를 지어주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시골집 주모,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주막집에다도 당당히 ‘당호(堂號)’를 지어 준 이야기는 모든 甲과 乙,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어른, 가진 자와 없는 자, 나와 너, 정상인과 비정상인,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이민자, 먼저 자리 잡은 사람과 후에 온 사람, 사람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빗금을 없애보려는 인문학의 목표입니다).

2. 인문학여행의 목적

물론 여기에는 여행에 대한 일반적 목적도 포함되지만 특별히 인문학교실에서 함께하는 여행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한 가지 꼭 기억해 두고 생각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무조건 여행을 많이 했다고 해서 견문이 넓어지거나, 생각이 깊어지거나 배려심이 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 자체가 우리를 철학자가 되게 하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더해 주지도 않습니다. 성지순례가 우리의 신앙심을 높여주지도 않으려니와 우리를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시켜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인문학 여행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1) 첫째,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인문학 여행은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여행은 밖을 보면서 안에 있는 자아를 찾게 해 줍니다. 여행 자체는 자연과 역사를 포함하여 바깥세상을 살펴보는 공부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찾아가는 인생 공부입니다. 여행이란 그 동안 잊혀졌던 자신을 찾아가는 자기 공부입니다. 물론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줍니다. 세상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해주고 지난날 무심코 지나쳤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여행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기를 희망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여행은 잊혀졌던 자아, 희미하게 알았거나 부정확하게 알았던 자기를 발견하고 좀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성찰하게 해 줍니다. 종교적 표현으로 여행은 ‘거듭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은 ‘내 몸과 마음이 새로와졌다’ ‘내 육과 영이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여행의 종착역에서 우리는 외소하고 부족하고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여행은 우리를 ‘감사’와 ‘겸손’으로 인도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되찾게 해 줍니다.

2) 둘째,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하나의 발견입니다. 여행이란 숨겨진 세계와 감추어진 신비를 찾아가는 탐험입니다. 여행은 신과 인간, 자연과 역사, 예술과 신화, 하늘과 땅, 몰랐던 진실과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여행은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만나게 되고 앞서간 조상들의 얼굴도 보게 되고 그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됩니다. 여행 중에 우리는 제우스와 데메테르,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만날수도 있고 또 예수와 바울과 베드로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는 ‘아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자아 발견을 향한 또 하나의 내적 여행을 하게 됩니다.

히말라야를 여러 번 오른 알피니스트는 말합니다. ‘오를 때마다 처음 오르는 히말라야입니다’ 어떤 예술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루불에 갈 때마다 모나리자를 보지만 한 번도 똑같은 모나리자는 없습니다” 모든 여행은 다 ‘최초의 여행’이고 또 ‘새로운 여행’이 되어야만 합니다.

3) 셋째, 여행은 건강검진입니다. 꼭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여행을 해 보면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어느 정도인지 다 드러납니다. 여행은 그 사람의 생각은 어느 정도나 깊은지, 영혼은 얼마나 맑은지, 체력은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여행은 한 사람의 혼과 영과 육의 총체적이며 종합적인 신체검사를 받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런 점들은 혼자 하는 여행에서도 드러나지만, 같이 떠나는 여행에서는 더 잘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잘 몰랐던 배려, 협동심, 친절, 이해심은 물론이고 자기통제력, 인내심, 다듬어진 말씨와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신체적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도 모두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은 인생의 종합 비타민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노출된 자신의 연약한 부분에 비타민과 영양소를 공급해주게 됩니다. 여행은 일종의 보약이고 정신의 양약입니다. 그야말로 여행은 병주고 약주는 명의입니다. 여행은 우리 영과 혼과 육의 취약점을 찾아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연약한 부분에 꼭 필요한 약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4) 넷째, 여행은 치유(Healing)와 회복(Recovering)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육적피로와 더불어 정신 및 심적 아픔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옵니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가 그 동안 일상에서 얻고 또 쌓아왔던 온갖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고 우리의 영과 육을 다시 회복하게 해 줍니다. ‘여기서’ 얻은 상처를 ‘거기서’ 털어버리게 해주는 것이 여행입니다. 피곤한 몸, 지친 마음, 상처로 얼룩진 인생은 반드시 그 어디에선가 치유 받아야만 다시 회복 될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는 내일의 삶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는 오히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으면 더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의 치유자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행은 낯선 땅, 우리가 모르는 사람, 우리를 모르는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치유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Walden)에서 읽은 말입니다. “지혜로운 의사는 자기를 찾아온 환자에게 약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환경을 한번 바꿔보라고 권유합니다.” 여행은 인생의 환경을 바꿔보는 연습입니다. 환경을 바꿔보면 대부분의 병은 낫게 됩니다.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불구하고 지친 몸과 아픈 마음이 치유되지 못했다면 그는 여행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셈이 됩니다.

5) 다섯째, 여행은 세상과 인생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그 답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우주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본질, Arche는 무엇인지, 옛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했고 거기에 대해 어떤 설명을 했는지, 여행은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에 동참하게하고 더 나아가 그런 질문들과 씨름해 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또한 여행은 집에 있는 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내 자신의 문제와 숙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정말 우연히,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 나를 억누르고 얽어 맺던 고뇌와 갈등에 대한 그 어떤 답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여행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차원 높은 감사와 겸손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줌으로 인생의 궁극적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알 수 있도록 안내해 줍니다.

6) 여섯째로 역시 여행이란 노는 것입니다. 노는 것은 절대로 도덕적으로 나쁘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입니다. ‘호모 루덴스’(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다) 호이징어에게서 이미 배웠던 이야기입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생을 잘사는 사람입니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일 할 줄도 모릅니다. 놀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으면 ‘Holiday를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놀기 위해서 일하고, 일한 후에는 다시 놀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아이 때 소꿉장난 시절부터 배워온 인생살이의 방식입니다. 노는 데는 반드시 규칙이 있습니다. 옛날의 놀이를 발전시킨 현대 스포츠에서는 노는 시간, 노는 범위, 노는 때, 노는 사람들의 숫자, 규칙, 반칙, 퇴장, 상, 벌칙 등등 더 아름답고 신나는 놀이를 위한 여러가지 규정들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 인문학 여행도 정말 신나고 즐겁고 아름다운 놀이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규칙들을 잘 지켜야만 합니다.

7)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하는 이 인문학여행은 그동안 우리 교실이 추구해 왔던 인문학의 목표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세상과 역사,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게 되고, 세상의 다양성을 발견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여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온갖 빗장들을 거두어 냄으로 평화로운 세상, 아름다운 인간애를 찾아가리라 다짐하게 만들어 줍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