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내 마음에는 양심과 도덕이 있습니다
(칸트철학 이야기 –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날 인문학이나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경험도 없고 또 그가 지은 책을 한권도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칸트라는 사람의 이름은 많이 듣기도하고 또 그의 이름을 자주 거명하기도 합니다. 칸트가 위대한 사상가라는 것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막상 그의 ‘어떤 사상’이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들었는지, 그의 생각과 인간의 깊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선 제일 큰 원인은 ‘칸트라고 하면 어렵다’ ‘칸트 철학은 난해하다’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철학적 개념들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순수이성이니, 실천이성이니, 형이상학이니, 인식론이니, 관념론이니, a priori, 이성, 오성, 직관, 감성, 선험적 종합판단, 물자체, 준칙, 정언명령, 당위, 요청,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이해가 안되는 개념들(concepts)입니다.
우리 인문학 교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책읽고 생각을 나누는 동아리이기에 가능하면 칸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을 소개할 때 좀 더 평이하고 친근감이 가도록 접근해 오곤 합니다. 물론 관행적으로 많이 사용해오는 ‘적 적 적(的 的 的)’하는 단어들, 예컨데 철학적(哲學的), 신학적(神學的), 역사적(歷史的), 문학적(文學的), 예술적(藝術的)이라는 개념들을 요즘 젊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하루 아침에 ‘의’라는 말로 바꾸어서 ‘철학의’ ‘신학의’ ‘역사의’ ‘문학의’ ‘예술의’라고 표현하기에는 그리 익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하고 깊은 사상이라 하더라도 사실 알고나면 그 핵심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말은 어렵지만 생각은 단순하고 표현은 난해하지만 내용은 단순(simple)합니다. 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학 시절 선생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칸트를 국민학교 어린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보아라.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너희들은 엉터리 대학 엉터리 철학과를 다닌 것이다’ 물론 칸트는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이해하기도 난해하지만 이해시키는 것은 더 어려운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옛날 선생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어딘가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이 철학자와 좀 더 친밀해지기 위해서 칸트에 대해서 이미 잘 알려진 몇 가지 에피소드로부터 말문을 열어가겠습니다. 스토리는 메시지입니다. 그의 삶은 그의 사상과 주장에 대한 주석입니다. 이야기 속에는 사상이 있고 스토리에는 철학이 있습니다.
칸트는 자신이 세운 원칙과 규칙에 따라 일생을 시계바늘처럼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짠 시간표에 따라 하루 하루 생활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의 생활환경까지도 틈새가 없었습니다. 책상과 의자의 위치, 펜이나 종이나 가위를 놓는 자리까지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있던 자리에 없을 때는 매우 불안해했습니다. 강의실에도 그 학생이 늘 입는 옷이나 앉는 자리에 변화가 생겼을 때는 견디지를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번은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 하나가 전에는 입지 않던 다른 옷을 입고 온 것이 너무나 신경이 쓰여져서 강의를 이어가기가 힘들어지자 그 학생을 불러 집에 가서 늘 입던 그 옷을 입고 오라고 돌려보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꼭 차를 마셨고 저녁은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항상 친절했고 대화에는 윗트와 유머가 넘쳤고 명랑하고 유쾌한 삶의 태도를 지녔습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책들은 참 어렵고 딱딱했지만 그의 강의는 재미있었고 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칸트의 이런 삶의 태도는 그의 성격이나 성품이 그래서도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살자, 유쾌하게 살자, 모든 사람에 대하여 친절하자고 자신이 세운 준칙에 따른 이성적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가위는 왼쪽에다 놓고 펜은 오른쪽에다 놓는다’는 것도 오랜 사고(思考)에 따른 이성적 결정이지만 유머스런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합리성 여부를 확인한 이성적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성적 느낌과 거기에 따른 반응과 행동까지도 이성의 통제 아래 둔 사람이 칸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식의 서양의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서 훈련된 사람들이 장례식이나 커다란 사고나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도 계산된 눈물을 보이고 준비된 웃음을 드러내고 더더욱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로 칸트나 그 시대의 계몽주의와 독일 관념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칸트는 아침 5시에는 기상,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출근하여 7시부터 9시까지는 강의, 귀가 후 오후 1시까지는 연구와 저술, 1시부터 3시 반까지는 날마다 이웃의 친구들을 초대한 점심식사와 대화, 3시 반부터 5시까지는 산책, 5시부터 밤 10시까지는 독서와 강의준비, 10시에는 취침이 그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회색 빛깔의 연미복을 입고 스페인식 등나무 지팡이를 손에 들고 마을을 산책했던 칸트를 보면서 동네 사람들은 ‘아 3시 반이네’하면서 시계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변함없이 오후 3시 반이면 동구 밖을 돌아오던 칸트가 딱 한번 산책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룻소의 ‘에밀’을 읽다가 도취되어 그만 깜빡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이것을 칸트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크게 실수한 ‘일생 최대의 사고’라고 쓴 글도 읽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칸트가 거닐었던 그 산책길을 ‘철학자의 보리수 길’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칸트는 평생 혼자서 차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의 조교였던 바시안스키(Wasianski)가 찾아왔는데 마침 티타임이 되어서 차를 마시려고 하던 차에 그 조교가 찻잔을 들고 칸트 앞에 와서 앉았습니다. 그러자 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나는 지난 50년 동안 늘 혼자 차를 마셔왔네. 그러니 오늘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면 차가 넘어가질 않네. 자네는 저쪽 방에 가서 마시면 참 고맙겠네’
칸트는 당시 동프로이센의 수도였지만 ‘학문의 시베리아’로 불리우던 쾨니히스베르크(Koenigsberg)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 30km 밖을 나가 본적이 없이 단순하게 산 사람입니다. 유학은 물론 타 지역으로 여행 한번 간 적도 없었고 심지어는 논문 발표를 위해 출장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수학, 물리, 논리학, 라틴어, 철학,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하였고 그 마을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가족을 돌보다가 뒤늦게 쾨니스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어 27년간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책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저술하고 생각(사유)하고 산책하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자신이 준비한 점심을 나누면서 대화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칸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젊은 시절 칸트를 좋아했던 한 여성에게서 청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그러자 칸트는 얼른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좀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요’ 그날부터 칸트는 결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귀절이 나옵니다. ‘나는 드디어 결혼해야 할 이유 354 가지를 발견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결혼을 하면 좋지 않은 이유도 350가지나 찾아냈다. 결혼해야 할 이유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4가지가 더 많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여자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여자의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칸트는 그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결혼하기로 결정이 되어서 찾아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딸은 한참 전에 이미 결혼했네. 그리고 애기도 둘이나 낳았네’ 그런데 그 날은 칸트가 그 여자에게서 청혼을 받고 ‘결혼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시작한 때’로부터 꼭 7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어김없이 평범한 이웃들을 초청하여 점심을 함께했던 칸트는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낳아 독일에서 살다가 죽었지만 맥주보다는 늘 포도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금년은 칸트가 죽은 지 꼭 21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는 80세에 임종을 앞에 두고 포두주 한 잔을 달라고 해서 목을 추긴 후 이렇게 말한 다음 숨을 거두었습니다. ‘Es ist gut’ ‘참 좋다!’ 오늘 우리는 칸트의 그 말이 ‘그 와인이 참 좋구나’하는 뜻인지 아니면 ‘내 인생 참 좋았어!’라는 의미인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 무엇인가 묵직하고 근엄하게 들리는 명연설이나 논문이 아니더라도 그의 진솔하고 다듬어지지 아니한 삶의 때묻은 이야기들 속에 그의 사상과 생각의 향기가 퍼지는 듯합니다.
인물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현재는 러시아의 칼라닌그라드 지역이지만 당시엔 북부 프로이센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마구(馬具)를 만드는 수공업자를 아버지로 11남매중 4째로 태어났습니다. 세례명으로 ‘엠마누엘’(Emanuel)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후에 히브리어를 공부한 다음 자기 스스로 ‘임마누엘’(Immanuel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고 고쳤습니다. 그의 가정은 기독교적 경건주의와 청교도적 삶의 분위기가 지배하였으며 어린 시절 이는 칸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나지움을 거쳐 대학에 들어간 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었습니다. 대학에서의 졸업논문도 ‘활력의 측정에 관한 사상’이었고 그후 박사논문도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칸트는 주로 물리학, 논리학, 자연신학, 윤리학 등에 대하여 관심이 깊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철학자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교수가 된 이후에 쓴 논문과 강의와 저술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786년부터 1788년까지 3년간은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총장으로 일했습니다.
주요저술
이하에서는 현재까지 우리 말로 번역된 칸트 자신이 쓴 책들을 중심하여 소개하겠습니다(그 외도 칸트의 삶과 사상에 관한 안내, 해설, 소개서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①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Beobachtungen uber das Gefuhl des Schonen und Erhabenen, 1764) 이재준 옮김, 책세상, 2005.
②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De mundisensibilis atque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1770) 최소인 옮김, 이제이북스, 2007.
③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판 1781, 2판 1787)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09년 개정판 / 백종현 옮김(전 2권), 아카넷 2006.
④ ‘형이상학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u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aufreten konnen, 1783)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2.
⑤ ‘윤리형이상학 정초’(Grundle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5. / 똑같은 책을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라는 제목으로 이원봉 옮김, 책세상, 2002년도 판도 있음.
⑥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2년판과 /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11년판이 있음.
⑦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 이석윤 옮김, 박영사, 2005년판과 /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9년판이 있음.
⑧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1793)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1.
⑨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ohischer Entwurf, 1795) 이한구 옮김, 서광사, 1992.
철학에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공부한 바와 같이 18세기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영국에서 출발된 산업혁명과 프랑스를 중심한 시민혁명의 물결과 그 여파가 유럽 전역에 거대한 변화를 촉진시켰습니다. 과학, 기술, 생산, 경제체제, 정치변혁, 민주, 시민, 이성, 자유, 평등, 박애를 축으로 하는 총체적 혁명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도 포함됩니다. 일체 과거에 대한 부정, No라고 외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고 지난날의 맹목적이며 맹신적 상태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인간의 정신과 철학에 직접적 영향을 줍니다. 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변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철학에도 혁명의 불길이 지펴지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에 이은 세 번째 혁명 – 그것은 바로 철학의 혁명, 사상의 혁명이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비슷한 시대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철학의 혁명은 칸트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철학사에서는 칸트에 의해서 제기된 이 사고의 변혁을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Kopernikanisch Revolution / Copernican Revolution)이라고 부릅니다.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천년 이상 ‘태양과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라고 여겼던 천동설(天動說)을 뒤집고 ‘아니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 우주를 중심하여 지구가 돌아간다’라는 지동설(地動說)을 제기함으로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를 포함한 인류역사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듯이 칸트도 그의 비판철학을 통하여 ‘생각의 전환’을 제기함으로 철학사에 일대 전환점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순수이성비판’ 서문에 나오는 대로 칸트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관찰하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관찰자 스스로가 돈다’고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사고 방식의 전환’ – ‘생각을 바꿔보아라’ 칸트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고방식을 바꿔보도록 권고한 것입니다. 혁명적 철학자 칸트가 제기한 철학적 이슈들은 대단히 넓고 방대합니다. 그가 제기했던 이슈들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별로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정도는 2차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방대하고 난해한 이 혁명적 철학자 칸트의 사상을 두 가지로 간추려 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하늘에 있는 별’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있는 양심과 도덕’ 이야기입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강의안의 주제는 그의 묘비명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양심과 도덕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시적이며 서정적으로 표현된 이 문장에서 먼저 ‘별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객관적으로 함께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우리의 인식, 곧 앎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반짝이는 별이란 시적 언어가 아니라 천문학적 개념으로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모든 사물을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보아도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인식의 객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칸트는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천문학이나 물리학이나 수학 등에서 취급하는 모든 객관적 대상에 대한 인식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은 바로 여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과 도덕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히 아는 문제, 즉 지식이나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하는지, 삶의 실천적 과제를 비판적으로 취급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양심과 도덕의 명령과 그것들이 제시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두 번째 주저인 ‘실천이성비판’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칸트철학의 제 1 주제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그의 주저인 ‘순수이성비판’입니다. 그가 여기에서 말하는‘순수’란 도덕적 선악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혹은 ‘참된’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머리 위에 있음으로 우리가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나, 우리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실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에베레스트나 바로 우리 앞에 놓여있음으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책과 종이를 도대체 어떻게 인식하여, 저것은 별이고 그것은 에베레스트이고 이것은 책과 종이라는 걸 알게 되는가?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 개념인 영원이니 사랑이니 진리니 신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인식의 대상이 되는가? 사실 그 외에도 의구심과 질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칸트는 순수하고 참되고 정직한 이성은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다트린다고 보았습니다.
지난 해 11월 우리는 서양 근세철학에서의 인식론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칸트 이전 데카르트, 스피노자 그리고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앎이란 결국 ‘이성의 힘’이요, ‘이성의 능력’으로만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성만 부르짖은 ‘이성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로크, 버클리, 흄 같은 철학자들은 ‘경험을 통한 인식’을 말하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인간 경험의 한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본 ‘경험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오랜동안 팽팽한 대립과 기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칸트입니다.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은 이성과 경험 두 가지를 모두 다 필요로 한다’고 보았습니다. 인식에 있어서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를 통합한 것입니다. 우리는 ‘직관을 통하여’ 즉 무엇을 보고 듣고 만져봄으로 사물을 감지하게 됩니다. 즉 인식의 제 1차적 시작은 감성(感性, Emotion)이요, 직관(直觀, Intuition)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하여 주어진 직관과 감성이 그냥 그대로 우리의 인식(認識)과 지식(知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얻어드린 그 대상을 필터링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직관과 경험을 통하여 일단 먼저 얻어드린 그 대상을 오성(悟性, Understanding)이라는 이성적 작업을 통하여 필터링함으로 마침내 그 사물, 즉 그 대상에 대하여 판단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께요. 여기 책이 있습니다. (1) 우리는 ‘여기에 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눈으로 보아서 압니다. 즉 우리의 직관과 감성입니다. (2) 그러나 ‘여기 이렇게 생긴 것’을 펜이다, 나무다, 종이다라고 부르지 않고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이성, 생각, 판단, 즉 오성의 능력입니다. (3) 결국 우리가 이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두 가지 – 직관(直觀)을 통한 경험(經驗)과, 사유(思惟)를 통한 판단(判斷)이 합쳐진 결과(結果)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자동차, 해, 달, 별, 모두다 일차적으로는 직관적이며 경험적인 인식에서 시작이 되고 이차적으로는 생각하고 비교해 보고 판단하는 이성적 통로를 걸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칸트는 이 두 번째 과정인 인간 이성의 능력을 ‘선험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인간은 경험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인간 내부에서 ‘이런 이런 것은 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다른 것들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아는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칸트는 꼭 어떤 물질적 대상 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은 경험을 통하지 않고도 그 대상의 존재나 가치나 선악을 알 수 있는 잠재적, 내적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선험적 지식(先驗的 知識)’이라고 했습니다. 즉 경험하기 이전부터의 지식, – a priori한 지식, 선험적지식이 있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선험적 지식 때문에 책과 종이를 식별하고 나무와 칼을 구별하고 사람과 짐승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더 나아가서 살인을 경험해 보지 않고도 살인이라는 것은 악하다는 것을 안다는 논리입니다. ‘경험이 우리 지식의 제 1차적 시작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이것을 ‘선험적 종합비판(先驗的 綜合判斷)’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이치인데도 불구하고 합리주의자들과 경험주의자들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랜 시간 대결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종합하는 능력의 결핍입니다. 모든 학문은 분석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종합적이어야만 합니다. 묻고 따지고 갈라치는 과정을 거친 후에는 반드시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이 자기를 돌아보며 피차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배워야만 합니다. 역사는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을 거쳐서 지향(指向)해 나갑니다. 이것은 학문의 세계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등 인간 삶의 전 영역에 다 요청되는 진리입니다. 둘째는 겸손과 교만의 문제입니다. 학문이든 정치이든, 종교적 신앙이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겸손이고 인간들을 참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교만입니다. 칸트가 위대한 철학자였던 것은 다른 면에서 특출하거나 빼어난 사상가여서라기 보다는 이 종합해 보려는 자세와 학문적 겸손의 태도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감히 칸트를 정말로 위대하게 만든 것은 겸손한 학문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칸트는 서양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인간 인식의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선언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험적 지식을 부르짖고 이성적 능력을 최고로 여기고 더 나아가 선험적 종합판단을 할 수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인식과 지식에는 알 수 없는 영역이 남아있다’ 칸트는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은 알 수 없다’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 Thing itself)는 알수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나타난 현상’일 뿐이지 사물 자체는 숨겨져 있는 비밀입니다. 칸트는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한계와 분수를 분명하게 인식한 철학자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선험적 지식이라는 것 역시도 하나의 색안경입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쓰고 있는 선글라스(sun glass)는 다릅니다. 크기나 모양은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색깔입니다. 다른 색안경을 끼면 사물은, 대상은 달리 보이게 마련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선험적 지식의 또 다른 한계가 있습니다. ‘사물 그 자체는 경험할 수 없는 비감각적 세계이며 인간의 인식에는 극복이 불가능한 한계가 있다’
인간지식의 다양성과 상대성과 한계성을 명확하게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칸트였기에 우리는 그를 참으로 위대한 철학자로 여깁니다. 그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식별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학문적 겸손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겸손’이란 모든 영역에 걸쳐서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선 인격적으로 겸손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 ‘내가 아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학문적 겸손’을 비롯하여 ‘내가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적 겸손’ ‘신학적 겸손’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칸트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바꿔놓은 철학자입니다. ‘내 입장’ ‘내 위치’ ‘내 자리’에서만 대상을 보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규정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대상의 자리에서 ‘나를 한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식(認識)의 주체(主體)인 자아(自我)를 상대화(相對化)하고 객관화(客觀化)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식의 주체는 인식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인식되어지는 대상이요 사물 그 자체이다!’ 정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것은 책이고, 책상이고, 저것은 사람이고, 강아지라고 명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단 한번이라도 책이나 책상이나 사람이나 강아지를 향하여 ‘너 책이 맞냐, 책상 맞냐, 사람 맞냐, 강아지 맞냐고 물어 본적이 있습니까?’ 칸트는 ‘내가 아는 진리’나 혹은 ‘내가 알고 있는 하느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 말하는 진리’ ‘하느님 자신이 보여주고 선포해 준 하느님’이 핵심이라고 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인식한 대상은 늘 상대적이며 지엽적이며 명확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절대적이며 보편타당하고 우주적인 진리와 신은 그 스스로가 그 자신을 ‘드러낼 때’만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라고 확신해 왔는데 칸트는 오히려 우리 앞에 던져진 대상이, 사물 그 자체가 인간의 이성과 정신을 규제하고 제한한다고 본 것입니다. ‘인간은 대상이 보여준 것 만큼만 보고 이해 할 뿐이다. 아무리 알아보겠다고 파고들어도 사물 자체가 자기를 말해 주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이 사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에는 근본적 한계가 상존한다는 논리입니다.
서양철학이 지닌 근본적 한계인 ‘자아 중심주의’ ‘I – ism’은 이미 오래 전 칸트가 분명하게 지적했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복해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 와서 동양인들로 사는 우리는 동양철학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상호인식’ ‘공동체적 이해’ ‘나도 너를 알고 너도 나를 알아야’만 진정한 이해가 된다는 것을 서구 철학자들과 서구 사회 전반에 걸쳐 더욱 절실히 요청하게 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엉뚱하게 보일지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응 그 사람은 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야!’하고 낙인을 찍어서는 않됩니다. ‘사고의 전환’ ‘언어 태도의 변화’를 추구해 보아야합니다.
칸트철학의 제 2 주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는 ‘실천이성비판’의 주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참되고 완전하고 순수한 이성의 능력’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발견해냈다 하더라도 ‘인식’ ‘지식’ ‘아는 것’ 그 자체가 철학의 최종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입니다. 그는 인식과 실천, 아는 것과 사는 것, 즉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철학의 목표라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인간 행위의 기준은 ‘순수 이성’이 아니라 ’실천 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철학의 목표를 지식에서 실천으로, 앎에서 행위로, 이론에서 가치로 바꾸어 놓았고 그의 ‘실천이성비판’은 이 윤리와 도덕의 문제에 촛점을 맞춥니다.
칸트는 인간 행위의 가능성을 두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했습니다. (1) 하면 좋지만 안해도 괜찮은 것과 (2)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물론 이 마땅히 해야 할 것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도 포함됩니다)으로 구분했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으로 ‘하면 좋지만 안해도 괜찮은 것’은 행위자 자신이 스스로 세운 ‘준칙’(Maxim)입니다.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나겠다’ ‘나는 운동을 하겠다’ ‘나는 담배를 끊겠다’ ‘나는 굿 네이버스의 회원이 되겠다’ ‘나는 채식을 주로 하겠다’ ‘나는 교회에 다니겠다’ ‘나는 절에 다니겠다’ 이런 결심과 행위는 도덕적 명령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세운 개인적 약속이며 다짐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런 것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통용 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으로 하면 좋지만 안한다고 해서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인류 모두에게 한결같이 요구하거나 적용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칸트는 이런 준칙은 인간 행위의 보편타당성을 지닌 도덕법칙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언급한 것, 즉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하거나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보편적 도덕법칙을 그는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에 따른 ‘법칙’(Gesetz / Regulation)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든 ‘보편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양심적으로’ 요구되는 ‘당위성’(ought to do)이 있는 법칙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원칙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컨데 ‘넘어진 사람을 보면 즉시 일으켜 세워 주어야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았을 때는 그를 건지기 위해서 물 속으로 뛰어 들거나 아니면 소리를 질러서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강도를 만났거나 교통 사고를 당하여 피 흘리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그 사람을 싸매여 주거나 즉시 경찰에게 알려야 한다’ ‘불이 난 것을 발견했으면 fire!라고 외치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말려야 한다’ ‘추운 겨울 육교 위에서 구걸하는 걸인은 도와 주어야한다’ 이런 행동들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마땅히 해야만 할 행위’에 속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사람을 죽여서는 않된다’ ‘거짓말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아서는 않된다’든가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행동’이나 ‘폭력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성폭행’이나 ‘물질이나 권력을 가지고 남을 무시하거나 천대하는 것’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일들은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신분이나 위치와는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해서는 않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우리의 행동은 나타난 사건에 대한 양심적 반사행동이 될 때 비로소 도덕성을 지니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거기에는 과학적 이론이나 검증, 합리적 이유나 타당성, 인과율에 근거한 검토 같은 것들이 개입되어서는 않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상황에서 그 행위는 그 어떠한 사람이래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행위의 당위성’을 그는 ‘정언명령’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핑계댈 수 없는 최종적이고 확정적이며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행동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예컨데 누군가 자기 아랫사람에게 성추행을 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자살을 하려고 할 경우,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양심과 도덕법칙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질문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내 아내나 내 아들이나 목사나 스님이나 신부에게도) 나와 똑같이 행동하라고 권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네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한다’(論語, 偉靈公篇, 이 말은 원래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반드시 실천해야 할 말씀을 한마디만 해 주십시요’라고 청했을 때 공자가 들려준 말씀이다)라고 가르쳐 주었던 공자나 신약의 산상수훈을 통하여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서 7장 12절)라고 일러준 예수의 교훈도 같은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칸트에 의하면 우리를 이와 같은 보편법칙을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동인은 양심과 도덕입니다. 그래서 칸트철학의 두 번째 주제는 실천이성으로써의 ‘도덕법칙’입니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행위는 ‘의무감’이나 사회적 규제인 ‘법’ 때문에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보았습니다. ‘의무감에는 도덕성이 없다’ ‘법률에도 도덕성은 없다’ ‘목적이 있는 행동과 이유가 있는 행위에는 도덕성이 없다’는 겁니다. 예컨데 앞에서 실례를 든대로 누군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피를 흘리고 있거나,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거나, 강도를 만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을 때, ‘만약 지금 내가 이 교통 사고 만난 사람,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아마도 평생토록 양심의 가책으로 부터 벗어 날 수 없을 거야’라고 한다든가 ‘만약 지금 내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훗날 사회적 비난을 받거나 검사에 의해 기소가 되어 형사 소추를 당할지도 몰라’하는 심정으로 그를 도와주었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도 도덕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무감과 사회적 법규를 넘어서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인간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과 양심에 따른 행위를 ‘정언명령에 따른 당위적 행위’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칸트의 ‘실천이성’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정치도 도덕정치가 되어야하고 경제도 도덕경제가 되어야하고 문화, 예술, 스포츠, 종교(당시 종교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말함) 등 모든 것이 ‘도덕적 기반 위에 서야만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종교도 도덕적 종교로 이해했습니다. 도덕을 무시하는 정치나 경제, 도덕성을 잃어버린 종교나 문화는 이미 그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집단일 뿐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을 쉽게 다른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추운 겨울 육교 위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맞닥트렸을 때 그냥 지나가는 경우, 혹은 아프리카 관광 여행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one dollar, please one dollar’라고 말하며 눈물 흘리는 소녀 곁을 그냥 못 본 체 하면서 스쳐가는 경우 –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돈을 주게 되면 그게 과연 저 걸인이나 소녀에게로 가긴 갈까? 아마도 저들 뒤에는 저 걸인이나 소녀를 움직이는 조폭이 있을 거야, 그리고 또 그 조폭 뒤에는 그들을 조정하며 착취하는 정치 깡패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도와 줘 보았자 저 걸인이나 소녀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않되! 오히려 이런 구제는 사회악만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면 모든 ‘선한 일들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고 본 것입니다. 정언명령이란 ‘순수이성’ ‘합리성’ ‘합목적성’ ‘조건’ ‘상황’ ‘가상된 상상’ 같이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즉각적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칸트는 그 유명한 경구를 던집니다. ‘모든 인간은 결코 수단으로 대해서는 않된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목적으로만 대해야 한다’
칸트는 인간이 벌이나 상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에는 도덕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마침내는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끌고 간다고 보았습니다.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교육기관, 종교기관, 국가기관들은 인간의 행위를 부도덕하게 만드는 ‘불의한 조직’의 ‘불의한 제도와 관행’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든가 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논문을 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공부와 연구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공부하는 것, 논문을 쓰는 것 그 자체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기에 하는 것이어야 하지 장학금이나 학위 취득 같은 것을 목적으로 할 경우, 이는 곧 그 후에 따라오는 명예와 각종 사회적 이득과 연계되는 불의요, 악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칸트의 이런 논리에 따르면 교회나 절에서 신앙생활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한국왕복 비행기 표를 걸고 전도 운동을 벌리거나 불루투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시상품을 건 종교 행사들을 전개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삶과 종교 자체의 순수성을 무가치하게 타락시키는 나쁜 행위가 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까짓 앞 가슴에 천 조각으로 만든 국민훈장이나 무공훈장을 받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도록 만드는 것은 악법이라고 본 것입니다. 순수한 애국심은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그 어떤 상을 받거나 벌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양심과 타인을 위한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무엇이 인간 행위의 준거가 되는가? 인간의 행위에 도덕성을 부여하는 그 바탕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인간을 언제, 어디서나, 양심에 따라서, 보편타당한 원칙에 근거해서 행동 하도록 만들어주는 그 원천은 무엇인가? 칸트는 그것을 신(神, Gott / God)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신이 인간 행위의 도덕적 준거가 되고 우리를 도덕적으로 살게 하고 행동하게 만들어 주는 바탕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철학에서 신은 순수이성에서든 실천이성에서든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고 ‘하느님은 반드시 존재해 주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신은 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있어 주어야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신의 존재의 당위성은 인간 행위의 가치와 행복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하느님은 반드시 있어 주어야만 합니다.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신이 없다면,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할수 있는 근거와 바탕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신의 존재를 요청’합니다. 이것이 칸트의 ‘요청된 신관’(The postulated God)입니다. ‘신이 실재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또 그런 것을 밝혀보려고 애 쓸 필요도 없다. 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인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밝혀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신은 그저 반드시 있어 주어야만 한다. 하느님은 존재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도덕적 행위 자체가 의미도 없고 가능해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칸트가 제기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가 던졌던 그의 종교철학입니다. 도덕법칙에 따른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 행위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신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종교에 대한 칸트의 주장이었습니다.
나가면서
오늘 우리는 칸트철학의 두 가지 중심 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철학사에서 커다란 산붕우리로 인류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칸트를 참으로 위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1) 첫째,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틀 속에 갇혀서 제 각기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던 시절, 칸트에게는 이것과 저것을 종합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상과 주장에는 장점과 단점, 정당한 면과 모순된 부분이 함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각각의 영역에서 단점과 모순을 찾아내어 이를 최소화하고 동시에 장점과 단점을 종합해 내는 넓은 마음과 생각, 그리고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눈을 크게 떠라. 시각을 넓혀라’ ‘치우치지 말아라’ ‘고집을 버려라’ ‘당신의 생각이나 주장이나 말만 옳은 것이 아니다’ – 명심해 둡시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이것과 저것을 종합하고 융합하는 마음, 배제(exclusive)시키지 않고 포용(inclusive)시키는 태도, 대상을 분석(analyze)하면서도 동시에 통합(integrate)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철학적이거나 이성적 표현은 아니지만 슈만이 말했던 것처럼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오는 것’입니다. 행복 속에도 슬픔이 있고 눈물 속에도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차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 속에는 내가 있고 내 안에는 당신이 있습니다’ 모든 배제는 인간을 비열하게 만들지만 모든 포용은 역사를 아름답고 위대하게 전진시킵니다.
(2) 둘째로 칸트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안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성에도 한계가 있고 지식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은 분명 부분적으로 이성적이고 부분적으로 지성적입니다. 칸트에게는 그것이 ‘학문적 겸손’이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무릇 모든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최고의 공통점은 ‘겸손’입니다. 기독교의 성서가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니더라도 ‘하느님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는 높이십니다’ ‘거만한 인간은 비웃으시되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 인격적 겸손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정치적 겸손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학문적 겸손이 우리를 진리에 이르게 합니다.
(3) 셋째로 칸트는 철학을 존재와 지식과 인식이라는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인간 삶의 제반 영역으로 넓혔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삼으라’는 교훈과 함께 인간의 행위와 삶의 준거를 도덕성 위에 세웠습니다. 인간 존재의 도구화를 부정하고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도덕적 가치관을 확립하려던 것이 칸트가 추구했던 철학적 과제였습니다. 그는 도덕적 기초가 없이는 그 어떠한 것도 세워질 수가 없다고 믿었고 정치도, 경제도,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종교도 그 기초는 도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칸트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우리가 물어야 할 삶(생각과 말과 행위)의 준거는 두 가지라고 보았습니다. ① 그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 ② 그것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가?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그렇다’고 말 할 수 있을 때 그의 삶은 드디어 ‘보편타당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질문들, 그것은 신앙적인가, 종교적인가, 심미적인가, 예술적인가, 문화적인가, 경제적인가 등등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것만이 모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진리의 길’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과 도덕적 가르침에 복종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칸트가 일러준 교훈입니다.
(4) 마지막 결론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칸트는 첫째,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통전하고 종합하는 능력, 둘째, 모든 일에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겸허한 태도, 셋째,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도덕적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 넷째, 이 모든 것은 다 ‘이성에서부터 온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독일 관념론의 최고봉이요, 합리적 이성주의자였습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 Questions & Comments
▷ Sharing : 오늘의 토의할 제목
(1) 나와 우리 사회와 역사를 보다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2) 진정으로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