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3월 4일 강의 전문) – 제28강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또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 사르트르와 카뮈를 중심한 戰後 실존주의 이야기

시드니인문학교실 (3월 4일 강의 전문) 제28강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또 다시 […]

시드니인문학교실 (3월 4일 강의 전문)

28강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또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와 카뮈를 중심한 戰後 실존주의 이야기)

전후 (戰後) 실존주의 철학의 배경

19세기 초중엽 키에르케고르를 필두로 대두된 실존주의 철학의 일반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강력하게 되살아난 실존주의 철학사상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1) 그 첫째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양차 세계대전과 그 와중에서 실제로 일어난 인간 비극과 상실의 경험입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 유럽은 피차 4000만명 이상의 인간 생명을 살육했고 제 2차 대전 중에는 6000만 이상을 도륙했습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만 해도 600만 명 이상을 가스실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일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인간은 절대로 짐승 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동물화(動物化), 짐승화 현상 – Beastialization – 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되었습니다.

(2) 둘째는 급격환 산업사회로 인한 비인간화(非人間化) – Dehumanization – 현상이 대두된 것입니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유럽은 공업화와 기계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산업은 대량생산 체제가 되었고 사회는 대량소비 구조로 바뀌어 졌습니다. 이제 인간은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이 되었습니다. 쓰다가 고장이 나거나 낡아지면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부속처럼 인간은 물화 (物化: materialized)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피차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부속품이나 물건 중 하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기계의 부품이 낡으면 그 파트를 갈아 끼우듯이 인간도 죽으면 돈으로 그 값을 환산하여 배상 처리를 하고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대신 메꾸게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극화 (polarization)되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 1%의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99%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국제구호 단체 Oxfam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세계 최상 부자 62명이 세계인구의 절반인 36억이 가진 재산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36억은 하루 2달라 이하로 살고 있으며 그 중 10억은 하루 1달라 이하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사람이 되게 하는 걸까?’, ‘정말 인간과 짐승 사이에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I. 장 폴 사르트르 (Jean – Paul Sartre 1905-1980)

그의 출생 배경과 간추린 생애

(1)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당시의 사회와 가정의 영향력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홍길복이라는 사람도 일제 말이라는 사회 및 시대적 상황과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이라는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천옥영이나 김클라라, 김재길이나 이기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은 그 시대와 문화의 산물입니다. 한 사람이나 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나 독창적 사상은 모두 그 시대와 지역의 전통과 문화 및 그 자신의 개인적-가정적 특수성을 반영합니다.

(2) 사르트르 역시 두 가지 배경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첫째는 사회적 배경입니다. 1905년생인 사르트르는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양차 세계 대전 및 유럽의 정치-사회적 혼돈과 공포,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비인간화 시대를 배경으로 출생했는데 이것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사상과 철학, 주장과 논리는 이 20세기 초엽 유럽이라는 특수한 사회상황의 산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자세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3) ‘인생이란 B와 D 사이에 있는 C 다’ ‘인생이란 Birth와 Death 사이에서 Choice하는 존재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불어를 주로 사용한 사르트르가 영어로 한 말이라고 전해지는 명언 중 하나입니다. 사르트르 역시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시대로 부터 뿐 아니라 둘째는 개인적 및 가정적 출생과 성장, 교육과 인간관계 등으로 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그의 사상을 형성해 갔습니다. 사르트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고 거기에서 생을 마친 파리지앵입니다. 아버지는 당시 해군 장교였으나 인도 차이나 전쟁에서 얻은 질병으로 그가 태어난 후 15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고 어머니는 독일어 교사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후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유명한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친척 관계에 있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백부였던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처는 소르본느대학의 독문과 교수였고 외삼촌 역시 파리공대 출신의 조선 공학자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어렸을 때 부터 선천적 근시와 사시로 외톨이처럼 커갔지만 (그의 사시나 근시는 100년전 이었으니까 어려웠겠지만 요즘 같았으면 일찍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 했으리라고 봅니다) 마치 친아버지 처럼 사르트르를 보살피고 양육했던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학문적 탐구심을 심어 주었고 그는 외할아버지의 교양과 학구적 자세로 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그의 academic excellence는 바로 어려서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1924년 당시 최고의 명문 대학인 파리 고등 사범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거기에서 주로 철학, 사회학 등을 공부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여기에서 평생 인생과 학문의 동반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하여 시몬느 베이유, 레비-스트로스 등을 만나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1928년 1급 교원 자격인 아그레가시옹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차석으로 합격했습니다.

이듬해, 1929년에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을 하고 거의 51년을 ‘계약으로 맺은 남녀’로 함께 지내게 됩니다.

실존주의 여성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과 그녀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5월에 공부할 예정입니다.

계약결혼 (A Marriage Contracted / The Contracted Marriage)

일반적으로는 일종의 de factor relationship, 즉 사실혼관계나 혹은 결혼의 조건이나 기간, 경제 등에 있어서 피차간에 약속하고 함께 사는 남녀관계로 생각하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시도했던 이 계약결혼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약속에 두 사람이 함께 서명을 하고 출발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둘 사이에 관계를 지속해가되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허락한다. 둘째, 우리는 상대방에게 다른 사람과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도 피차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셋째, 우리는 피차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독립한다 (이 결혼 계약은 매 2년마다 다시 갱신하고 서명을 했는데 세번째 계약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확인이 안되어 있음) 언뜻 보기에는 일종의 외도도 용인해 주는 것 처럼 보이는 이 계약과 그 실천은 두 사람의 기본 사상인 ‘자유’와 ‘주체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그들의 계약결혼 기간에도 다른 남자나 여자들과의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는 각자의 주체성을 온전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은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옭아매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보부아르는 결혼이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켜 출산, 육아, 가사노동으로 묶어 놓는 악이라고 보았습니다 (전통적 결혼과 결혼서약이란 인간의 참되고 진정한 사랑을 제한하거나 무너트리고 이기적 형태로 변질시킨다는 주장은 이들에 앞서 이미 니체 등이 주장한바가 있습니다). 사진을 한번 검색해 보십시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6년 사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죽은 다음 나란히 옆에 매장된 다음 한 개의 묘비에 두 사람의 이름과 출생 및 사망 년도만 간략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고등사범 졸업 후 군에 입대하여 기상 관측병으로 일하다가 독일군에 포로가 되었으나 극적으로 풀려나 1931년 부터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합니다. 1936년엔 단편 <벽>, 38년에는 <구토>를 출간했습니다. 다시 2차 대전 중에 군에 소집 되어 복무하다가 또 포로가 되었지만 석방이 된 후 1943년 <존재와 무>를 출간함으로 철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고 곧 45년 종전이 된 후엔 콜레주 드 프랑의 정교수직을 제의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잡지 <현대>를 창간하여 실존주의 사상을 펼치면서 소설, 평론, 희곡 등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펼치게 됩니다. 1964년에는 <말>을 통하여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한다. ‘사르트르지음 <말>’이면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르트르지음 <말>’이라고 소개되는 것은 나와 나의 작품을 상업화하는 자본주의적 장삿꾼들에게 휘말리는 짓이다. 그리고 내가 노벨상을 거부하는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구로 부터 평가 받거나 평가할 자격이란 없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주는 상이나 대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이나 운동선수들과 예능인들에게 주는 상이나 노벨상이나 모든 상이란 그 상을 통하여 인간 자체를 평가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경쟁을 부추기고 싸움을 붙이는 일종의 전쟁 예행연습적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보고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도 강력하게 비난하며 초기에 지지했던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1960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면서 반전운동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 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된 ‘68운동’에 앞장 섰던 그는 프랑스는 물론 모든 세계인들과 특별히 지식인들이 연대하여 함께 싸우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선동했습니다. 히틀러 치하에서의 레지스탕스와 50년대 이후의 반전운동으로 출발하여 68운동으로 이어진 사르트르의 이런 지식인의 사회 참여운동은 그후 ‘앙가주망운동’ (Engagement Movement)의 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극단적 우파였던 드골 정부의 관료들은 그를 체포하려고 했습니다만 드골대통령이 이를 반대함으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 때 드골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우리는 20세기에 또 하나의 볼테르를 바스티유에 넣으면 안된다’ 한 시대의 지식인이란 학자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이렇듯 성숙한 정치인들에서도 나옴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었습니다.

1974년 한국에서 벌어진 민청학련 사건과 김지하의 시 ‘오적 (五賊)’을 접한 사르트르는 김지하 석방운동에도 서명하는 등 앙가즈망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말년에는 완전히 실명하고 고통 속에서 보내다가 1980년 사망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5만명 이상의 파리 시민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좌파 지식인 중 하나였던 사르트르는 1965년 세 차례에 걸친 강연을 묶어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지식인이란 누구인가?’를 언급하면서 지식인의 정체성을 논의합니다. 지식인, 혹은 지성인이라 불리우는 ‘인텔리겐차’ (Intellectual)는 공부 많이 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의사, 판사, 교수, 과학자, 언론인이 지식인은 아닙니다. 지식인과 전문가는 다릅니다. 경제적 지배계급에 부역하여 이론을 만드는 사람도 아닙니다. 지식인이란 통치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없는 자, 브르조아와 노동자, 지주와 농노, 재벌과 노조 사이에 ‘끼인 자’로써 휴머니즘과 인권, 자유와 평등, 보편성과 합리성, 상식과 균형에 맞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는 사람이며 비난은 ‘지식인의 숙명’입니다. ‘비난받지 않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란 ‘던져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던져진 존재이면서도 다시 현재에서

미래로 자신을 던짐으로 자기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존재에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지식인이요, 그는 그 의미를 현실 참여에서 찾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은 참여하는 사람, 즉 앙가즈망입니다. 사르트르는 이 ‘참여하는 지식인’에게는 두 가지 참여의 방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말과 글, 즉 언어를 통한 참여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침묵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닙니다. 지식인은 현실에 대해 사사건건 말을 해야 합니다. 사르트르에게는 특히 ‘문학을 통한 앙가즈망’이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는 다음에 볼 카뮈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는 ‘행동을 통한 참여’입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써 사르트르는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68운동의 선두에 섰습니다. 68운동이 당시 즉각적으로 드골 정부를 무너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르트르는 비판, 거부, 투쟁을 통하여, 불의와 부정에

대해 항거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임을 드러내는 지식인의 현실참여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대표적 저술들

(1) 소설 – ‘구토’ (La nausea) 1938 / ‘벽’ (Le mur) 1939 /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liberte) 1949 / ‘말’ (Les Mots –영어로는 The Words) 1964

(2) 철학서 – ‘존재와 무’ (L’Etre et le neant) 1943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 1946 /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1960

(3) 한국어 번역들 –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명환 옮김, 민음사, 2000 / ‘말’ 정명환 옮김, 민음사, 2008’ / ‘구토’ 김미선 옮김, 청목사, 2003 / 지식인을 위한 변명,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 / 존재와 무1,2권, 정소성 옮김, 동서문화사, 2016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방곤 옮김, 문예출판사, 2013 /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2017

인문학이 제기해온 질문들

지난 2천 5백년 동안 서양 철학과 인문학에서 끊임없이 물어 온 질문의 핵심입니다.

(1) 인간이란 무엇인가?

(2)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것은 무엇인가?

(3) 인간에게는 오직 인간만이 지닌 그 어떤 본성, 본질이란 것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4) 만약 인간에게 있음직한 인간의 어떤 고유한 본질,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는가, 불변하는가? 도대체 인간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황이나 여건과는 관계없이 언제나 불변하는 고정 요소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르트르의 사상 – 그의 인간 이해를 중심

(1) ‘인간은 피투된 존재이며 동시에 피투하는 존재이다’ – 인간을 피투된 존재 (A projected Being), 즉 이 세상으로 그냥 던져진 존재라고 보는 것은 실존주의자들의 공통된 인간 이해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에 위해서 지음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ex와 istence의 합성어로써 ‘밖으로 던져진’ 혹은 ‘밖에 서있는’ 존재라는 것이 실존주의에서 규정하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인간을 단순히 ‘던져진 존재’ (projected)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던지는 존재’ (projecting)로도 봅니다. 인간이란 ‘거기에서 여기로’ ‘과거에서 현재로’ 던져진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여기에서 저기로’ ‘현재에서 미래로’ ‘또 다시 던지는 존재’라는 겁니다. ‘실존적 인간은 자신의 현존을 넘어서서 다시 미래를 향하여 자기를 내어 던진다’ 그래서 흔히 ‘실존 (實存)’은 ‘탈존 (脫存)’이라고도 해석합니다. 한번 던져진 존재이지만 다시 자신을 던지는 존재, projected가 되었지만 다시 projecting하는 실존은 쉬임 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탈존적 (脫存的) 존재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특징적 인간이해라고 하겠습니다.

(2) ‘인간은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이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다’ –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이 세상으로 내던져진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창조된) 것들이지만 인간은 처음 부터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던져진 (피투된) 존재라는 것이 그의 인간이해의 출발점입니다. 인간과 물건이 다른 것은 물건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지만 인간은 아무 목적도 없이 이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가 자주 드는 예입니다. paper knife는 처음부터 maker가 종이를 자르거나 봉투를 여는데 적합한 것을 만들자는 목적을 가지고 만듭니다. 식칼은 음식을 만들거나 스테이크를 써는데 사용하게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고 산업용 칼은 나무를 베거나 목재를 다듬자는 목적으로 만들고 전투용 칼은 사람을 죽이는데 용이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칼만이 아니라 손톱깎이, 책상, 의자, 연필, 시계, TV, 컴퓨터, 자동차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비행기와 우주선, 미사일과 ICBM, 집과 건물, 도로와 철도, 강과 도시를 포함하여 모든 물건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물건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아무 목적이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다’ 이것이 사르트르의 인간 존재의 무목적이론입니다. 기독교를 포함하여 일부 종교인들 중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의 목적은 ‘하느님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하느님이 찬양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우선 그는 하느님이란 없다는 무신론자이고도 하지만 설혹 백보 양보하여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창조자라고 하더라도 그분의 인간 창조가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의 탐욕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칼을 만드는 사람은 칼을 만드는 목적이 있고,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 책상을 만드는 사람, 미사일을 만드는 사람, 컴퓨터를 만드는 사람, 집을 짖는 사람, 도로를 건설하는 사람 등등 모든 제조자, 창조자, 건설자들은 모두 자기가 만드는 그 물건 자체가 지니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만드는 것인데 하느님은 창조물에 대한 대상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기껏해야 자기가 만든 물건 (인간)을 통하여 자기가 영광을 받거나 자기의 기쁨을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라면 이것은 마치 물건을 제조하는 사람이 그 물건의 쓰임새가 목적이 아니라 ‘나는 궁극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만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을 위한 인간존재가 지니는 목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처음 부터 자기가 받을 영광만 생각해서 인간을 만드는 그런 하느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하느님이란 없다. 있다고 해도 그가 인간을 만든 것에는 아무 목적이 없다’ 이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입니다.

그럼 하느님의 인간 창조 스토리는 접어두고 실제적으로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그의 부모나 아니면 어떤 남자나 여자에 의해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럼 그들은 자식이라고 하는 한 인간을 만들 때, 즉 성교, 임신, 출산의 과정에서 ‘나는 이 아이를 이런 이런 목적으로 만든다’고 하는 목적이 있는가? 아이를 만드는 그 남녀의 목적 – 예컨데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 등등 그들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 태어날 아이 자신의 목적, 예컨데 섹스를 할 때 부터 ‘우린 아이를 하나 만들어서 이 아이가 장차 과학자가 되게 해야지, 음악가가 되게 해야지, 의사, 변호사, 목사가 되게 해야지’ 하는 아이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지닌 인간 임신을 하느냐? – 사르트르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어떤 남녀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마치 장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물건을 만들 듯이,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자기 목적’을 위해서 아이를 출생 (제조)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사르트르는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인간이란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무의미하게 이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다’

(3) ‘어머니 어찌하여 날 낳으셨나요?’ 시선을 끌기 위해 오늘 강좌의 제목으로 붙인 이 노랫말은 물론 사르트르가 한 말은 아닙니다. 1970년 시각 장애인 가수 이용복씨가 부른 노래의 제목인데 원래는 이탈리아 노래 ‘1943년 4월 3일생’을 번안해서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날 밤 난 떨어진 꽃잎처럼 태어났어요. 가엾은 우리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 하느님, 내 존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으로 던져진 것일까?

(4) ‘인간은 그의 존재가 본질 보다 선행한다’ – 사르트르의 이 잘 알려진 선언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물건들은 항상 본질, 즉 그것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다른 물건들 처럼 인간 존재의 이유나 목적이 꼭 있어서 만들어지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존재 그 자체가 본질 보다 항상 앞서는 것, 선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자꾸만 왜? 왜? 하면서 묻지 말아라. 인간은 목적이 없어도, 그의 본질을 몰라도, 인간으로 그냥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는 언제나 본질 보다 선행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르네상스 이후에 펼쳐진 휴머니즘을 넘어서 인간의 실존이 그의 본질 보다 앞선다는 주제로 엮어진 책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인간은 손톱깎이나 칼이나 의자나 TV처럼 꼭 목적이나 본질이 있어서 만들어지거나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무목적적 존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5) ‘인간은 자신의 본질과 목적은 자기가 세워야하는 존재다’ – 뒤이어지는 사르트르의 이 선언은 ‘목적 없이 던져진 인간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인간이란 목적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무목적적 존재이니까 그냥 아무 목적 없이 살다가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이나 부모나 그 어떤 타인으로 부터도 자기의 본질과 목적을 부여받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왕 존재하는 자로써 자기 존재의 목적, 자기 존재의 본질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가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입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물건들은 그 물건의 제조자가 처음 부터 그 물건의 본질을 규정해 주었지만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본질은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인간은 처음 부터 운명이 결정된 존재가 아니다!”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 유신론자들은 주장합니다. ‘신은 인간 존재의 목적을 정해 주고, 인간은 인간 이외의 다른 물건들의 존재의 목적을 만들어준다’ 시르트르는 이런 유신론자들을 기계적 결정론자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은 돌맹이나 나무나 소나 양 처럼 태어날 때 부터 그의 본질이 결정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르트르 처럼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존재의 본질을 규정해 주는 신은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목적을 만들면서 살아야 한다.”

(6)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를 객관화하는 자 만이 자신의 목적과 본질을 창조해 낼 수 있다’ –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이나 본질을 외부에서 부여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럴려면 자신의 현재 모습, 즉 아무런 목적 없이, 무목적적 존재로 던져진 자기의 현존을 발견, 성찰,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어서 그는 반드시 ‘자신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아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자기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것’ ‘자신을 제 삼자화하는 것’을 사르트르는 ‘대자 (對自)’ for-itself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자신을 타자로 볼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자기를 들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배신하는 자 만이 자아를 제 3자로 객관화하여 자기를 성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배신하는 것은 배신자가 아나라 변신자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기를 배신할 수 있어야한다’ 역사에 도전한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 배신자가 되고 변신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니체 등은 처음엔 자신을 둘러싼 기존 사상이나 체제에 대해 배신을 때렸지만 이후엔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대해 변신한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배신은 타자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배신하는 것이다’ 그럼 이렇듯 자기극복의 과정과 자기 배신 및 자기 변신의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유입니다. 모든 자유는 자기 배신에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7) ‘인간은 자유다! 태초에 자유가 있었다!’ – 인간의 본질과 운명을 인간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규정해 주는 그런 신은 없다고 믿었던 사르트르는 만약 신이 있고 그 신이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돌이나 나무나 풀잎이 아니고, 손톱깎이나 칼이나 컴퓨터처럼 타자가 나의 본질과 성격을 규정해 주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신의 본질과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이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실존주의가 모든 종류의 결정론을 거부하고 창조적 인간의 미래를 지지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그의 운명이 결정되어 세상에 나온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 나갈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 인간은 그에게 부여된 자유를 유기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자유는 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오직 한 가지 자유만 없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거나 방기할 자유는 없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본질과 목적을 만들거나 설정하고 그걸 이루어 나갈 자유가 있습니다. 창조이던 파괴이던, 사랑이던 미움이던, 자유이던 노예이던, 하느님이던 자아이던, 인간에게는 인간 마음대로 자신의 본질과 목적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특히 사르트르는 68운동을 통하여 ‘모든 젊은이들을 자유인이다’라고 하면서 일체의 모든 권위주의에 대항하라고 선동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당신들은 자유인들입니다! 자유를 통해서 당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십시오!’ (‘선동자 사르트르’의 모습은 유신 시절 ‘선동자 예수’를 외치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었습니다)

(8)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운명적 자유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요구된다’ 사르트르의 계속되는 주장입니다. ‘첫째는 벗어버림이고, 둘째는 책임짐이다’

인간은 그에게 부여된 운명적 자유를 위해서는 습관적이며 전통적 사고와 삶의 태도를 벗어버려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그는 전통을 거부하고 습관적 사고와 의미 없이 반복하는 행동들은 용감하게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예컨데 깊은 생각이나 결단 없이 무의식적으로 다니는 교회나 성당, 생각이나 의미 부여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그에 의하면 ‘능동적 파괴가 없이는 능동적 창조도 없습니다’ 지난날 의미 있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하서는 그 무의미성을 선언하는 것이 첫 출발이 됩니다. 여성에게 있어서는 희생을 미덕이라고 가르치고, 남성에게 있어서는 가정경제의 책임을 지웠던 일이나, 기성 세대에게는 권위를 부여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복종을 강요했던 한 시대의 전통이나 사회적 관습과 더불어 용감히 싸우라고 부추깁니다. 아버지의 말씀이나 선생님의 가르침, 목사님이나 신부님의 설교나 강론, 스님의 설법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도 못하게 하고 토달지 말고 순종하고 받아드리라는 식의 가르침에 대해서 반항하고 대들어야한다는 겁니다. 하여튼 지난날 자신과 그의 공동체에게 부여했던 의미나 가치를 용기있게 깨트러 버릴 때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인간으로 다가간다는 주장입니다. 믿었던 것은 불신하고, 사랑했던 것은 미워하고, 지지했던 것은 철회하고, 추종했던 사람에게는 배신의 등을 돌리는 “능동적 파괴”가 없이는 절대로 자유로운 인간이 못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입장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나 당신이 지지했던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학자나 학설은 물론이고 마침내는 당신 자신에 대해서 까지 배신자가 되지 아니하면 결코 자유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유는 배신자가 되는 자유를 포함하는 겁니다” 전통에 대한 반항과 파괴가 자유를 담보한다고 본 것입니다.

(9) 둘째로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책임과 함께 온다고 말합니다. ‘자유는 책임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가 결정하는 그 자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입니다. ‘자유는 그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나 그의 자유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된다’ 여기에서 사르트르는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그립니다. 자유는 쉽지만 책임은 어렵습니다. 자유는 운명적으로 주어지지만 책임은 운명적으로 노력해야만 할 일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저주로 주어진 자유 때문에 자유스럽지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사르트르는 ‘인간에게는 진짜로 자유가 가능한 일인가?’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자유 때문에 자유스럽지 못한 인간은 자유의 가능성과 자유의 불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유에는 기쁨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이 따라온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에 따른 선택과 결정에 대하여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불안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피하려는 경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자유는 좋지만 자유의 다른 이름인 책임은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처음 주장을 뒤엎어버리는 듯한 말을 합니다. ‘인류의 지난 역사란 사실 자유로 부터 도피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는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과 책임으로 부터 도피하려는 인간 틈새에서 벌어지는 인간 갈등에 대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의 불행을 넘어설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을 ‘무익한 수난 속에서 사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10) ‘인간은 불성실하고 무의하고 부조리한 존재다’ –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방황하며 ‘무익한 수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간을 사르트르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인간은 불성실하고 자기 기만적이며 부조리한 존재다’ 어느 날 사르트르는 파리의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뿌리치지도 아니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연인 같은 타인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분명 사랑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살을 비비고 키스를 하며 함께 잠을 잘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연인은 아니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타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 속에서 그는 인간의 자기기만과 부조리를 보게 됩니다. 모순, 무의미, 불성실, 비합리성, 그리고 부조리함 – 이런 것들이 바로 자신을 스스로 극복해 내지 못하는 인간,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 책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무책임한 인간, 능동적 파괴의 가능성이란 전혀 없는 인간, 자유 때문에 부자유한 가운데 던져진 인간, 책임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인간 – 이런 실존적 인간의 현존이 바로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임을 발견 하면서 사르트르는 전율하게 됩니다.

(11) 초기 사르트르의 생각과 사고는 후기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변화는 ‘퇴행’이나 ‘퇴보’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우리는 사르트르의 변화를 ‘퇴행’이나 ‘퇴보’로 보지 않고 ‘진보’와 ‘발전’으로 이해합니다. 사르트르를 포함하여 우리 대부분은 자유에 의한 인간의 선택과 결정과 행동은 선택자 개인만이 아니라 그가 사는 시대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매매를 하는 사람은 그의 개인적 결정에 따라 자유의지로 성매매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사는 시대와 사회의 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서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매매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 제도와 인습 등에 의하여 인간은 원천적으로 자신의 본래성을 상실하게 되고 그의 본래성 회복에 방해를 받는 존재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려 본 ‘신국’ (City of God)이나 칸트가 상상했던 ‘목적의 왕국’을 ‘모든 인간이 자신의 본래적 자유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세상’으로 그려 보면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외쳤던 사르트르는 여기에서 그 자신의 표현대로 ‘개인적 윤리의식은 휴가를 보내고’ 정치 투쟁의 현장에 나서게 됩니다. ‘개인과 가족을 넘어서는 사회가 있다. 인간의 모든 자유와 욕구는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마침내 사르트르는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폭력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12) ‘이제는 의미를 찿느라고 애쓰지 말고 이해하기 위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라’ – 초기 사르트르는 인간의 그 어떠한 개인적 결정도 그 자신의 자유와 책임이기에 소위 객관적이라고 하면서 타인이, 제 3자가 이를 허용하거나 반대하는 등 정답을 제시 할 수 있다고 나서서는 않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후기 사르트르는 한 발 더 나아가서 한 인간의 그 어떠한 선택이나 결정, 행동이나 행위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찿겠다고 애쓰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인생이란 프로이트식의 과학적, 정신분석학적 노력으로 대답을 찿기보다는 사랑과 애정을 갖고 그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휴머니즘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입니다’ ‘원인을 찿으려고 안달하지 말고 의미를 찿아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아시다시피 사르트르 사후 요즈음 뇌과학자들과 새로운 정신분석학자들은 환자의 무의식이나 뇌상태를 알아보려고 연구하기 보다는 그 환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경험과 세계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행동의 원인을 찿느라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타난 행동의 의미와 가치를 찿으려는 시도를 일찌기 사르트르는 ‘실존적 정신분석’이라고 했습니다)..

II.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 – 1960)

간추린 생애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입니다. 전후 실존주의 사상을 더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학자라고 하기 보다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카뮈의 삶과 그의 작품 중 한 두 권을 살펴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카뮈는 1913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 (Algeria)에서 태어났습니다.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는 영토가 제일 큰 나라로 1830년 부터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130년이나 지난 1962년에야 독립한 나라입니다. 카뮈의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으로 일찌기 알제리로 이민을 왔습니다. 이는 영국이 호주나 뉴질랜드에 자국민들을 이주 시켰던 것과 비슷한 이주정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스페인에서 이주해온 여자로 문맹에다 청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카뮈의 아버지는 카뮈가 2살 때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했고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외삼촌들 사이에서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자동차 수리공이나 노동이나 신문사 인턴 기자 등을 하면서 겨우 알제리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그 시기부터 폐결핵을 얻어 평생 고생했습니다. 25살 때는 프랑스로 이주하였습니다. 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운동에 가담하여 지하신문을 발행했습니다. 한때는 공산당에 가입하여 죄익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공산당의 교조적 태도를 비판하다가 제명이 되었습니다. 이 때 발표한 <반항하는 인간>은 유명한 논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레지스탕스운동과 지하신문의 편집자로 일하며 독일에 대한 저항운동을 하면서도 히로시마 원폭에는 반대하는 논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 등에서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동베르린이나 폴랜드의 편에 서서 소련의 정책을 비판, 비난했고 평화주의를 지지하여 사형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글도 여러 개나 발표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결혼을 했습니다만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 반대’ 사상으로 결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카뮈는 알제리의 독립문제에 있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은 아랍제국주의와 이슬람 종교 정책의 확장에다 소비에트의 반서방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판단 때문에 그는 알제리의 완전한 독립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프랑스의 지성적 좌익 세력으로 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1957년엔 <이방인>과 <페스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 1월, 46세의 젊은 나이에 예기치 않았던 자동차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대표적 작품들

(1) 소설 – 발표된 것은 모두 6권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이방인, 1942,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과 <페스트, 1947,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를 들수 있습니다.

(2) 논픽션과 에세이 – 18권에 이르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시시프스의 신화, 1942>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1948>, <반항하는 인간, 1951> 등이 있습니다.

(3) 희곡 – 모두 11개의 희곡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는 <칼리굴라, 1938>, <계엄령, 1948>, <십자가에의 예배, 1953>, <악령, 1959> 등이 포함됩니다.

(4) 한국어 전집 – <카뮈 전집> 7권이 김화영 번역으로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거의 수록되어 있습니다.

– 소설 ‘이방인’

불어로는 L’Etranger 에뜨랑제, 영어로는 The Stranger, The Outsider, The Foreigner 등으로 번역됨, 1942. 카뮈는 이 소설로 44살의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음. 후기 실존주의 사상 중 하나인 인간의 부조리와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10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천만부가 팔렸음. 프랑스에서만도 7백만 부가 팔렸음>

.줄거리

주인공 ‘뫼르소’ (Meurso)란 이름은 ‘살인’이라는 단어 meurtre와 ‘태양’이라는 단어 ‘soleil’의 첫자인 meur과 so를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사는 한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는 마침 휴가를 떠나려는 날 양로원에 계신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습니다. ‘엄마가 오늘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이런 말로 시작됩니다. 뫼르소는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아이! 하필이면 왜 지금 돌아가시나?’ 그는 장례식장에서도 슬픈 감정 같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장례를 치룬 다음날엔 애인과 같이 영화를 보고 잠을 잡니다. 뫼르소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여자와 같이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연히 친구 레이몽과 그의 정부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뫼르소는 친구 레이몽을 따라 해변으로 놀러갔습니다. 거기에서 뫼르소는 친구 레이몽을 찿아온 그 여자의 오빠와 또 같이 온 패거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중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됩니다. 재판에 회부된 뫼르소는 범행의 동기를 묻는 판사에게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라고 대답합니다. 배심원들은 뫼르소가 별것도 아닌 일로 살인을 한 것이라고 보고 유죄 평결을 합니다. 뫼르소에게는 몇몇 불리한 증인들도 나왔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태연한 모습을 가지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판중 뫼르소는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 아주 불손하고 불성실한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그의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감형을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진지하고 성실하게 말을 가다듬어서 하고 재판장과 배심원들에게 잘못을 빌며 선처를 부탁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뫼르소는 변호사에게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내 감정과 생각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그는 무자비한 인간이요 계획적 살인자라는 판정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습니다. 뫼르소는 죽음을 앞에 두고 그를 찿아온 신부의 기도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그느 신부의 위선적 태도를 꾸짖으면서 자신의 죽음은 진실의 죽음이고 따라서 자기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 논픽션 에세이 ‘시시프스의 신화’

불어로는 Le mythe de Sisyphe, 영어로는 The Myth of Sisyphus, 1942. 원래 제 1부는 1939년 9월에 완성했으나 2부가 41년 2월에 완성됨으로 1942년에 ‘이방인’과 같은 해에 출간되었음>

.줄거리

<제 1부>에서 카뮈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어갈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라고 봅니다. 동시에 그는 자살은 ‘인생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의 어리석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제 2부>에서는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가는 몇 사람의 유형을 묘사합니다. 돈 후안, 연극배우, 그리고 정복자들의 삶을 그립니다.

<제 3부> 의 첫 장에서는 예술은 부조리한 인생의 피난처가 못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둘째 장에서는 그 예로써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작가의 일기’, ‘악령’을 분석하고 이것들은 모두 부조리한 인생을 그리는 데 실패한 작품들이라고 혹평합니다. 이 책의 <부록>에서 카뮈는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城’, ‘변신’ 속에 나타난 희망과 부조리를 설명하면서 이것들 역시 하나의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을 합니다.

그가 말하고자했던 것은 결국 세 번째 장인 ‘시시프스의 신화’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인 ‘시시프스의 신화’야 말로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가장 정직하게 그려낸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시시프스입니다. 그는 당시 펠레폰네소스 초입에 자리한 코린토스라는 도시국가의 왕이었습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아’에 의하면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시프스는 모든 만물과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하고 반듯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들의 편에서 보면 교활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말이 많고 입이 싼데다가 남을 잘 속이고 욕심으로 가득 찬 존재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대 그리스 신화가 일러주는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하겠습니다. 몇 번에 걸친 우여곡절과 스토리가 있지만 어쨌든 이런 시시프스는 제우스에게서 벌을 받고 자신이 왕으로 있는 아크로 코린토스의 높은 언덕 꼭대기 (지난번 인문학여행 때 우리는 고대 코린토스를 방문하여 아크로 코린토스의 높은 산정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까지 커다란 둥근 바위 덩어리를 올려놓으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시시프스는 낑낑거리며 전력을 다해 돌덩이를 굴리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정상에 올려놓은 돌덩어리는 그냥 있지를 못하고 다시 굴러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시시프스는 또다시 굴리고 올라갑니다. 그럼 또다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럼 다시 굴리고 올라갑니다만 또 굴러 떨어집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 반복이 똑똑하지만 동시에 교활하고, 현명하지만 미련하고, 신중하지만 조급한 인간 시시프스에게 주어진 벌이며 운명입니다. 카뮈는 시시프스를 통하여 의미없는 일을 반복하는 인생,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 반복되는 부조리 속에 갇혀있는 인간의 실존을 그려본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카뮈와 거의 동시대의 아일랜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 Samuel Beckett, 1906~1989 –의 대표적 부조리 연극인 ‘고도를 기다리며’ – Waiting for Godot, 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를 떠올리게 됩니다. 베케트는 이 연극으로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줄거리는 별로 없습니다. 두 명의 출연자, 디디와 고고는 그냥, 막연히, 까닥없이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들은 ‘고도’ 누구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는 진짜로 올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다가 연극은 끝이 납니다. 주고받는 대사에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에게서 얻어맞아 얼굴이 핏투성이가 된 극중 인물에게 등장인물이 묻습니다. ‘어떻게 된거야?’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몰라! 나도 몰라!’ 베케트는 이 부조리한 연극을 통하여 부조리한 사회, 부조리한 인간을 나타냅니다. ‘이방인’이나 ‘시시프스의 신화’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고독, 소외, 무의미, 무가치한 삶, 희망 없는 인간상이 잘 그려진 연극입니다.)

두 작품을 통해서 보는 카뮈의 중심사상과 실존주의

(1) 먼저 질문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귀하는 이 세계가 그래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조리가 있고, 이해가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래서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라는 개념이 너무 넓고 막연하다면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종교, 교회 등을 돌아 보실 때, 혹은 그것도 너무 넓어서 대답하시기가 어렵다면 트럼프와 미국의 정치, 스콧 모리슨과 호주의 정치, 문재인과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그래도 이 정도면 이해가 되는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2) 카뮈의 중심사상입니다. 첫째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존재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삶에는 의미가 없고 인생에게는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는 그 어떠한 삶의 의미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이 인간과 인간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해 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삶은 본래부터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승인하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셋째 ‘똑똑히 알아두어라.

사실 인생이란 모순과 부조리와 무의미 속에 훵씬 더 깊은 의미와 가치와 보람이 있는 법이다’ 그 동안 우리가 공부해 온 대로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은 인생의 그 어떤 의미를 찿아보려고 애쓰고 노력해 왔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하면서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해 왔고 인간에게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카뮈는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철학의 목표는 인간이란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부조리한 존재인지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의미와 가치를 찿으려고 하지 말고 무의미와 부조리를 찿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면목을 발견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과 인문학의 목표는 가치발견이나 가치설정이 아니라 무가치한 인간, 무의미한 인간의 발견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의 작품 ‘이방인’과 ‘시시프스의 신화’는 ‘마치 의미와 합리성이 있는 듯이 꾸며진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벗겨내어 인간 삶의 무의미와 무가치를 드러내려는 데 있었습니다. 카뮈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꼭 어떤 의미나 목적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와 목적을 찿거나 만들어 낼려고 하는 인간들아! 제발 인간의 그 부조리와 무의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드려라! 그럼 그 때 비로소 인간은 훨씬 더 가치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3) Cosmos는 chaos의 집합입니다. 질서는 무질서를 잘 정돈해 둔 것입니다. 전체는 부분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합리성은 불합리의 집합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서로 대립됩니다. 그래서 모순과 갈등을 불러옵니다. 때문에 불합리한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부조리한 것을 조리에 맞출려고 하거나 감성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풀어 보려는 노력은 처음 부터 잘못된 출발입니다. 부조리한 것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걸 자꾸만 종이 위에 써놓고 논리를 세워보려는 인문학적 노력이란 사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부조리한 인간들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최선의 길을 카뮈는, 첫째 자살해서 죽거나, 둘째 그냥 무의미한 대로 살거나, 셋째 그 무의미와 부조리를 긍정적으로 인정, 수용하면서 이를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드리며 도전하는 삶을 살거나 셋 중에 하나를 결정하도록 부추깁니다. ‘허무주의에 빠지지 말아라!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치열하게 살아라!’ 카뮈는 이 ‘깨어 있는 반항적 인간’이 마침내 신이 운명으로 내린 인간의 실존을 이기게 된다고 역설합니다. 카뮈는 계속해서 부르짖습니다. ‘부조리한 인간은 사실 부조리한 것이 아니다. 주어진 운명적 인간의 부조리를 의식하며 그 부조리와 대결하는 사람은 <부조리하지만 동시에 부조리하지 않은 인간이다!> ‘부조리’ (absurd)란 무엇입니까? 사전적으로는 합리성이 없고, 논리적이지 않고, 서로 모순을 일으킴으로 이해가 않되는 것을 말합니다. 철학적 인간학이나 실존철학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삶 자체를 모호하고, 규정하기 어렵고, 무의미한 존재로 봅입니다. 뫼르소 처럼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죽음 까지도 행복으로 받아드리는 태도가 바로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의미를 찿아 나서기는 하지만 마침내 발견해 낸 것은 무의미다. 그리고 그 발견된 인간의 무의미와 부조리를 받아드릴 때 우리의 삶은 충만해 진다’, ‘시시프스의 신화’를 통하여 카뮈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겁니다. ‘의미를 찿지 말아라. 의미를 만들려고도 하지 말아라. 그냥 성실하게 묵묵히 돌덩어리를 굴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떨어지면 다시 내려와서 굴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의미없는 삶도 성실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인간에게 형벌을 내린 제우스를 이기는 길이다. 인생의 부조리와 모순을 받아드리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여 바윗덩어리를 굴리는 삶이 신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인간승리의 자세이다!’ – The struggle itself toward the heights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 One must imagine Sisyphus’s happy. –

Comments, Questions & Sharing

(1) ‘이방인’ ‘시시프스의 신화’ ‘고도를 기다리며’ ‘노인과 바다’ 등 자신이 읽어 본 실존주의 문학 작품에 대한 소감 나누기

(2) 자신의 신념, 이데올로기, 종교적 믿음 등에 대한 자신의 배신, 혹은 변신의 경험 나누기

(3) 나는 자유인인가, 아니면 그 무엇의 노예인가? 만약 노예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것의 노예이며 미래의 자유로운 인생을 위해서는 어떻게 나를 ‘내어 던질 수’ 있을까?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