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 1947년 9월 20일, 제99대 뉴욕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 1882 ~ 1947) 서거 73주기

역사의 오늘 1947년 9월 20일, 제99대 뉴욕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

역사의 오늘

1947년 9월 20일, 제99대 뉴욕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 1882 ~ 1947) 서거 73주기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 1882년 12월 11일~1947년 9월 20일)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판사와 연방 하원의원, 뉴욕 시장 등을 역임했다. 뉴욕시를 지배했던 부패한 정치파벌들과 마피아들과 싸우는데 일생을 바쳐 널리 존경을 받았다.

– 피오렐로 라과디아 (Fiorello La Guardia)

.본명: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 (Fiorello Henry La Guardia)
.출생: 1882년 12월 11일, 미국 뉴욕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사망: 1947년 9월 20일, 미국 뉴욕 뉴욕 리버데일
.배우자: 마리 피셔 래가디아 (1929~1947), 테아 알메리고티 래가디아 (1919~1921)
.자녀: 장 마리 래가디아, 피오레타 테아 래가디아, 에릭 헨리 래가디아
.국적: 미국
.학력: 뉴욕대학교 로스쿨
.종교: 성공회
.키: 1.57m
.경력: 뉴욕시 하원의원 (1917~1919,1923~1933),
제99대 뉴욕 시장 (1934~1945)
.정당: 공화당 (1917~1924,1934~1947), 진보당 (1924~1934)

초기 생애
뉴욕 브롱크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출생 시의 이름은 피오렐로 엔리코 라과디아였다. 다만 이탈리아식 이름인 엔리코라는 미들 네임을 나중에 영어식인 헨리로 고쳤다. 가족들이 애리조나주로 이주하면서 라과디아 본인도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미 육군에서 잠시 복무하기도 했다. 그 뒤에 잠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살다가 미국 영사관의 직원이 되어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16년에 뉴욕 시 의회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처음에는 무소속이었으나, 이후 1922년에 공화당에 가입하였고, 1930년까지 하원의원 직을 유지했다.

법조인 시절
시의회 하원의원으로의 임기가 끝나고 라과디아는 법조인 생활을 시작하는 데, 이게 뒷날 그를 유명하게 만든 그의 청렴함을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로, 한 할머니가 굶고 있는 손자들을 걱정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10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라과디아가 갑자기 스스로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고는 나머지 법정에 있는 모든 경무관 검사 변호사 및 방청객들에게도 50센트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때 그가 이런 기이한 선고에 대한 근거가 걸작이다. 미국 정부나 본인 또는 방청객들이 바로 할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여 할머니가 범죄에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판사인 본인은 스스로의 책임과 미국 정부를 대신하여 10달러를, 나머지 해당 재판장에 있는 검사, 변호사, 경무관 및 방청객들은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의 대가로 50센트를 부과했다. 이 돈은 벌금 10달러를 제외하고 전액 할머니에게 기부되었다. 이때 할머니는 진심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와 더불어, 뉴욕 시 하원의원 시절과 법조인 시절의 청렴하고 공명 정대한 모습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라과디아는 1933년에 있었던 뉴욕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게 된다.

뉴욕 시장

들어라 마피아! 너희들의 돈줄인 불법 슬롯머신을 찾아서 전부 파괴하고 말것이다.
1933년에 뉴욕 시장에 당선되어 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지만, 그 과정이 꽤나 가시밭길이었다. 당시 뉴욕은 마피아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마피아들이 뇌물로 정치인과 경찰들을 구워삶아서 시 행정에 간섭하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이를 타개하겠다는 결심을 한 라과디아는 취임 당일날에 취임식을 거부하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취임사를 읊었다. 이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찰 조직을 개혁하여 부패 경찰들을 몰아내었고, 도박용 오락기를 몰수해 파괴하는 일을 벌였다. 그런데 이로 인해 라과디아는 큰 위기를 맞는다.
러키 루치아노라는 이름의 거물 마피아 두목[7]이 그를 회유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에 루치아노는 라과디아와 자신이 같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걸 이용해 차기 시장 선거에서 재선될 수 있게 돕겠다며 자신의 도박 사업을 건드리지 말라고 회유하였으나, 라과디아는 이를 씹었다. 조까을 당했다. 이렇게 해서 뉴욕 시에서 부정부패를 개혁하고 치안을 안정화하는데 성공하면서 뉴욕 시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시장 재직 중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지지하자, 소속 당인 공화당의 의사와는 반대로 이를 지지하였고, 나중에 루스벨트가 재선에 도전하자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말년과 사후
1945년에 시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라과디아는 은퇴 후에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지만, 갑자기 발병한 췌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1947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에 불세출의 명판관이자 청렴결백한 정치인이었던 그를 기려 1994년에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1972년에는 미국 정부에 의해 라과디아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고, 뉴욕의 퀸스에 있는 라과디아 공항은 라과디아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비정한 도시에 사는 죄” _ 장윤제 교수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 생물은 개미라고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개미세계의 여행’을 보면, 앞으로의 지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가 지배할 것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장을 펼친다.
그 근거는 개미들의 희생 정신과 분업 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절대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개미는 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 위’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위’다.
굶주린 동료가 배고픔을 호소하면 두 번째 위에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내 먹이는 것이다. 한문으로 개미 ‘의蟻’자는 벌레 ‘충虫’자에 의로울 ‘의義’자를 합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위도 개미처럼 두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인류는 굶주림의 고통을 몰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딱 하나의 위만 주셨다. 그래서일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굶주림의 고통이 닥쳐올 때 닭보다 더 무자비한 행위도 서슴지 않곤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위가 한 개뿐인 인간들이 때로는 위를 두 개나 가진 개미들보다 더 이웃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감싸 왔다는 사실이다.

1935년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뉴욕 빈민가의 야간 법정을 맡고 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 판사 앞에 누더기 옷을 걸친 노파가 끌려 왔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였다. 노파는 울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사위란 놈은 딸을 버리고 도망갔고, 딸은 아파 누워 있는데, 손녀들이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비정했다. 고소 취하를 권면하는 라과디아 판사의 청을 물리치고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라과디아 재판장이 노파를 향해 이렇게 선고한다.
“할머니,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벌은 받아야 합니다. 벌금 10달러를 내시거나 아니면 열흘 간 감옥에 계십시오.” 선고를 내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갑자기 모자를 벗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거기에 넣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어서 이렇게 최종 판결을 내린다.
“여러분, 여기 벌금 10달러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벌금을 완납했습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죄를 물어 이 법정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자를 법정 경찰에게 넘겼다. 그렇게 모인 돈이 자그마치 57달러 50센트였습니다.
대공황의 불황 속에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판사는 그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뉴욕타임스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이렇게 보도했다.
‘빵을 훔쳐 손녀들을 먹이려 한 노파에게 47달러 50센트의 벌금이 전해지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된 빵가게 주인과 법정에 있다가 갑자기 죄인이 되어 버린 방청객, 그리고 뉴욕 경찰들까지 벌금을 물어야 했다.
현재 뉴욕 시에는 공항이 두 개 있다. 하나는 J.F.K.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라과디아 공항이다.
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이고, 후자는 바로 피오렐로 라과디아 재판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이후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맨해튼을 오늘날의 맨해튼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라과디아 공항에는 그곳 주차장의 특이한 주차위치 표시에 담긴 일화(逸話)가 있다.
그곳 주차장 바닥에는 ‘Judges’ (법관) 그 옆에는 ‘Handicapped’ (장애인), ‘Senators’ (상원의원)라는 주차표시가 나란히 있다.
아무리 법관이 존경받는다는 사법국가 미국이라지만, 그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어째서 장애인이나 상원의원보다 법관의 주차위치가 더 좋은 곳으로 지정되었을까?
그것은 한 법률가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온 인간애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훈훈했던 즉결법정을 회상하기 위해 공항 주차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 법관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_ 장윤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