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7) – 윌리엄 문로(빌) 포드 (1937. 4. 22)

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7) 윌리엄 문로(빌) 포드 (1937. 4. 22) […]

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07)

윌리엄 문로() 포드 (1937. 4. 22)

한국명: 허준 선생, 부산 1964-69

빌 포드는 빅토리아 단데농 산맥(Dandenong Ranges) 안에 있는 코카투(Cockatoo)에서 자랐고, 업웨이(Upwey)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회계학을 공부하면서 석유회사 셀(Shell)과 왕가가타의 노스이스턴 협동조합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는 1964년 1월 1일부터 선교회의 비즈니스 매니저로 임명되어 올 세인트 칼리지에서 선교훈련을 받았다. 1964년 5월 29일 그와 아내 헬렌, 8개월 된 아들 앤드류는 한국으로 떠났다. 그들은 7월 초 한국에 도착해서 즉시 마산에서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

포드 가족은 9월에 서울로 와서 1965년 3월까지 어학당에서 공부를 한후 부산으로 내려갔다. 처음 8개월 간은 하프타임으로 언어공부를 하면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국어학당에 가야했다.

그는 비즈니스 매니저로서 선교회와 관련된 모든 재정과 행정의 책임을 맡았고, 일신병원의 재정과 행정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을 하였다. 그는 한국에서의 봉사를 마치기 전에, 나중을 대비해서 한국인 한 명을 훈련시켰다.

그의 일은 특성상 한국의 삶에 대해 광범위하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기회를 주었다.

포드 가족은 1969년 6월 부산을 떠나 호주로 돌아갔다. 

호주에서 그의 삶은 변화가 있었고, 한국의 경험을 통해 오는 풍부함도 있었다. 빌은 계속 공부해서 호주 회계사 협회의 회원이 되었고, 후에 라트로브 대학에서 아시아 학을 전공하고 한국경험을 축적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멜번에 호주-한인 협의회를 설립할 때 도왔고, 한 동안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들 앤드류는 서울의 호주대사관에서 한 동안 2등 서기관으로 보냈다.

빌은 한국에 대해 계속 열정이 있었고 한국어를 말하고 읽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을 기뻐했다. 그것은 그가 은퇴하기 직전에 가졌던 마지막 직업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는 멜번대학의 침례교 위틀리 칼리지(Whitley College)의 비즈니스 매니저로서 한국침례교신학대학을 두 번 여행하였고 두 교육기관들 사이에 관계성과 학생교환을 촉진시켰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