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5) – “짧은 이야기, 긴 여운” (2월 26일자)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5) _ 2월 26일 “짧은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5) _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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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긴 여운”

1) 지난 2월 초에 우리 인문학 교실 카톡방에 올라왔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 스웨던 총리 타게 엘란데르 (Tage Erlander, 1901년 6월 13일 ~ 1985년 6월 21일)와 그의 부인 아이나 안데르손 (Aina Andersson, 1930 ~ 1985년)이 살아온 이야기였습니다.

엘란데르 부부

엘란데르 (Tage Erlander)는 스웨덴에서 20년 이상 (1946년부터 1969년까지 23년간)이나 총리를 하면서도 한결같이 오래된 낡은 외투를 입고 다녔고, 심지어는 구두도 밑창을 갈아가면서 신었다고 합니다.

그이는 총리 재직중에도 정부의 관용차가 아닌 개인 자가용을 타고 늘 직접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을 했다고 합니다.

집도 총리공관 대신에, 그전부터 살아오던 임대주택에 월세를 내가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총리 재임 중에도 이전에 일하던대로, 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남편이 퇴임 후에는, 그가 총리 재임 중에 사용했던 정부부처의 이름이 새겨진 볼펜 까지도 모두 총리실에 되돌려 드렸다고 합니다.

2)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이라 불리웠던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 (Jose Mujica) 이야기입니다.

호세 무히카는 대통령 취임 후,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대통령 관저는 노인들의 쉼터로 개조, 개방하고, 자신은 교외에 있던 자신의 농가에서 살면서 아침, 저녁, 직접 낡은 폴크스바겐을 몰고 시내에 있는 정부청사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의 시골집이라는 것도 거실 1, 침실 1, 부엌 1의 허름한 농가였다고 합니다. 취임 당시 그의 재산신고 액수는 1800불 이었다고 합니다.

호세 무히카

6-70년대, 우루과이에서 군사 독재정부와 싸우다가 14년 동안이나 수감생활을 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놀라워 하는 세상은, 사실 정상적인 세상은 아니지요”

2015년 그의 대통령 퇴임식 후, 영국 BBC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정직했던 호세 무히카는, 이 세계에서 정치인도 잘만하면, 존경받을수 있는 직업임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3) 최근 미국에 이민가서 오래 살고있는 친구가 보내온 카톡에는, 자기가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많은이들이 앞다투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는 중인데, 마침 그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 제약회사 미국 본사 사장의 부인이 아직 백신을 맞지않았다는 소식이 알려져서, 무슨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건가, 이상하게 생각한 신문기자가 물었답니다. “아니 아직도 왜 백신을 않맞으셨습니까?”

그러자 그 부인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는 아직 해당자가 못된다네요. 전 아직 40대 후반이잖아요? 별수 없지요 뭐 ! 좀더 기다려야지요”

그 친구는 평소 미국이란 참 싫은 것이 많은 나라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작은 이야기가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고 썻습니다.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런 스토리를 읽고, 쓰다보면 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왜 우리 나라엔 이런 대통령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그렇게도 없을까, 투정섞인 말을 내뱃다가도, 결국은 왜, 왜 나는 그런 분들의 100분지 1에도 미치지 못할까, 생각하면서 저 자신을 슬퍼하곤 합니다.

*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시드니 인문학교실’이 함께 자리하지 못한지가 꼭 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사람이 인문학 친구들에게 ‘잡기장’이란 이름으로 모두 115번, ‘라틴어 인문학’이란 이름을 붙여 60번, 그래서 모두 175회의 길고, 짧은 잡문들을 써서 나누어 왔습니다.

이제 코로나 펜데믹이 조금씩 완화되고, 또 백신도 맞기 시작하여, 우리 인문학교실도 다음주 목요일(3월 4일) 부터, 약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모이게 되어, 오늘로 이 잡기장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생각도 짧고, 글쓰기에도 많이 모자란 사람의 잡기장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해 주시면서,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을, 한분, 한분씩 이름을 불러가며 기억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강지영님, 김동률님, 김동숙님, 김명철님, 김신영님, 김영님, 김용강님, 김재길님, 박혜경님, 박인성님, 백문경님, 손종란님, 양지연님, 이기영님, 이길남님, 이성열님, 임기호님, 임성훈님, 임운규님, 주경식님, 최부옥님, 최정식님, 최진님, 최혜순님, 한남인님, 한종춘님, 한준수님, 현명님, 임보영님, 강병조님, 클라라님, 계응준님, 이길선님, 김혜옥님, 김성광님, 김마리아님, Paul Jun님, 유영식님.

김군자님, 김기완님, 김석호님, 김정연님, 김정희님, 남숙자님, 손동식님, 천보영님, 최재호님, 최정복님.

권영덕님, 김남걸님, 무공님, 손종렴님, 오인수님, 유태근님, 이정무님, 전상연님, 김효진님, 김선희님.

제임스 강님, 죤 리님, 김삼오님, 안항걸님, 김상선님, 김영곤님, 김충석님, 김봉주님, 김희경님, 김병근님, 김환기님.

이 아침, 잡기장을 통하여, 그동안 함께, 생각과 마음을 나누어왔던 여러 선후배 선생님들과 친구분들의 성함을 일일히 불러보기도하고, 굵은 손가락으로 쳐보기도 하면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여기에, 위에 성함을 불러보신 분들을 통하여, 다시 전달 받으신, 제가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도 기억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언젠가 다른 기회에 얼굴을 뵐수있을 때가 오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다음 카페나 기타 다른 SNS를 통하여 이를 같이 공유해 주신 선생님들도 계셔서, 같은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하잘것 없는 잡문 까지도 매일 매일 정성을 다하여 가다듬고 보충, 보완하여 온 라인 신문을 통해 그날 그날 수 많은 독자들에게 전송해 주셔서, 한 시대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게 해 주신 호주 크리스챤 라이프와 임운규목사님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늘 몸은 강건하시고, 마음은 평안하시옵소서.

시드니에서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금요일 아침에

홍길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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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