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호주의 교육현장에서 본 민주주의
필자의 호주 이민초기 몇 년간 TAFE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에 한국과 너무나 다른 교육현장의 많은 장면들을 보며 교육현장은 그 나라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TAFE의 선생님들이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교직전문성으로 철두철미한 수업준비와 민주적인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빈틈없는 수업진행을 하고 있었다.
교단을 특권으로 간주하고 지시와 복종을 강요한다면 이것을 권위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색채가 풍기는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 한국과 다르게 20명 내외의 소수 학급이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호주선생님들이 연령, 인종, 종교, 학습수준이 다른 학생개개인을 편견 없이 철저하게도 공평하게 대하고 소외되는 학생이 없게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학생들의 어떤 문제 제기이건 간에 토의로 종결시키려는 것을 보며 민주주의 현장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교과서도 없이 신문, 잡지, 광고지, Video Tape, 현장 환경 등 다양한 교육매체를 활용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것은 한국의 교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학습모형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식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각종 평가의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학력평가 성적으로 학생은 물론 학교와 교사의 유 무능을 판단 받게 되는 과거 한국의 선생님들에게는 수업매체를 활용한 수업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외부에 공개하는 연구수업 등에나 일회적으로 수업매체를 총동원 하였었다.
원인을 찾자면 사회전반에 걸친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육을 국가가 도맡아서 하려는 경직된 국가체제가 근원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각종 명목의 교육회의에 참석하면 2-3시간동안 각종 지시이며 그 내용으로 보면 교장이나 교사의 재량권이 전무한 것이다. 호주의 교육당국이 일선학교에 어떤 형태로 감독하고 지시하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호주선생님들이 자유스럽게 정해진 틀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준비와 교과지도를 하는 것을 보아서 선생님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주어지는 것 같다.
국가는 교육 전문가들에게 위임하여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학교장과 교사에게 재량권을 주어서 그들에게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학교 운영과 학습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교육당국이 할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이므로 민주주의를 실천할 능력이 부족한 존재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성인의 가치 판단 능력이나 윤리의식이 미성년자들의 그것보다는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학생들 스스로 실천하고 참여하는 기회도 주지 않고 묵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원리와 대치되는 생각들이다.
어느 날 호주의 초등학교 행사와 고등학교의 조회시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행사는 뮤지컬이었는데 전교생은 물론 교장, 교사까지도 역을 맡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게 진행하여 학부형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고등학교 조회시간도 참관하였는데 시간이 되어 그리 넓지 않은 광장에 학생들이 줄도 서지 않은 채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강단에 학생회장이 올라가 학생조회를 시작하였다. 학생회장의 소개를 받은 교장선생님이 2-3분간의 짧은 연설을 하고 학생회장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의 설명과 대외 활동으로 수상한 학생들을 소개 하는 등 엄숙하고도 능숙하게 행사를 이끌어 갔다. 이런 것들을 지켜보며 이것이 민주적인 학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학생들이 졸업 한 먼 후일을 위해 미리 경험을 시키는 것이기보다는 학교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현재 과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가치를 교육시키는 활동을 일선 학교에 맡겨야 학교가 처해진 여건을 십분 활용하여 창의성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지시와 통제, 감시 감독으로 일선학교의 구석구석까지도 참견하려 하던 경직된 국가 체제를 겪어온 교육자들은 무질서를 근심할 정도의 자유분방한 교육현장을 놀라움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불평등과 자유가 속박되는 교육현장에서는 민주주의 기본가치인 자유, 평등과 정의를 행동화 할 수 있는 교육은 공염불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여러 가지로 설명 해석할 수 있겠지만 구성원 개개인이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민주주의 근원적인 가치이며 국민 개개인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권리와 책무를 다하며 국가 체제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독재국가는 독재자와 함께 몇몇 사람이 국가를 장악해 가는 것이 아닌가? 독재자는 자기만이 국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권력을 이용한 지시와 강요를 통해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이다. 독재자에게 반대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며 능률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주의가 다른 것은 반대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공동체의 관리자가 논리가 있고 대안이 있는 반대까지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말로 독재자의 행태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을 반대당(Opposition)이라고 하지 않는가? 호주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학생들의 황당한 질문이나 문제 제기에도 짜증스러운 표정 없이 끝까지 동의를 이끌어 내려는 것을 보며 민주화된 사회 문화 속에서 몸에 밴 태도라고 생각 하였다. 대화 타협이 습관화 된 사람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민주주의와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대화하고 타협하려면 시간이 낭비 되는 것 같아도 반대를 묵살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대결로 야기되는 문제는 시간 낭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서구의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런 과정 들을 거치며 민주주의 원리가 국가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가장 이상적이라고 깨닫게 되었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습관화, 생활화 된 것이며 호주도 그 뿌리를 이어받아 오늘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인류가 그 동안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엄청난 대가도 치르며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파시즘, 나치즘 같은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승리 하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공동체적 생존을 영위 하는데 있어서 민주주의 방식만큼 중요하고 강력한 원리가 없다는 점이 확인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강력하고 잘 훈련된 국민과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독재체제의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세계 역사 속에서 보여 주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더 부연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문맹과 함께 민주주의 의식이 희박하면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여러 학자들이 예언 하였다. 국민들의 문맹의 수준을 넘어 투철한 민주의식을 갖추고 적극적인 참여가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한 것이며 정해진 존엄한 삶의 조건을 부단히 개선하고 재형성해 가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반민주주의에 대항하려는 이념 보다는 평등과 자유, 정의가 가득한 사회가 되어야 자아실현의 행복한 삶이 영위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오늘 우리 모두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야만 가능한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