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의회, 11일 ‘국가비상사태’ 선포
베네수엘라 정전 사태가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의회가 3월 11일(현지시각)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 지위를 자임하고 있는 국회의장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베네수엘라 의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채택했다.
지난 3월 7일, 베네수엘라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전국 23개 주 가운데 16개 주에서 정전이 발생해 큰 혼란을 야기했다. 저녁 5시경부터 정전이 시작됐기 때문에, 퇴근길 많은 시민이 몇 시간씩 걸어서 집에 가는 등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정전 발생 닷새가 되도록 해결되지 않아 지금 베네수엘라는 초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베네수엘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고물가)에 식량과 식수,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 사태로 이미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통신마저 두절되면서 사상 초유의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곳곳에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속출하고 있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이번 정전 사태로 이미 17명이 숨졌다면서, 이는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미국이 사주한 일종의 ‘전력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정전으로 몰아넣어 혼란을 일으키려는 극우주의자들의 사이버 공격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3월 11일 저녁,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전국에 중계된 TV연설에서, 전력 복구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전 사태와 관련해 2명이 체포됐고, 당국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하면서도 더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과이도 의장은 베네수엘라 전 국토의 70%에 전력 공급이 끊겼고, 이로 인한 피해액만도 4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이미 실질적으로 붕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회에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요청했는데 의회가 과이도 의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정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국의 원조를 승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는 국제 원조를 ‘외세의 침투’라고 규탄하면서 현재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 국경 지역에 대기 중인 원조물자 250t을 거부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은 지난 2월 말, 국제 원조품을 반입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무력을 동원해 저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과이도 의장이 임시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라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게다가 베네수엘라 의회 자체가 실질적 권한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황이 더 복잡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15년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하고 야권 의원들이 대거 승리했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는 지난 2017년 친정부 세력으로 구성된 ‘제헌의회’라는 또 다른 입법기구를 출범시키면서, 베네수엘라 국회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도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압력이 거셌다.
지난 1월 23일, 과이도 의장이 스스로를 임시대통령으로 선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이를 지지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마두로 대통령 측근들과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등에 대한 제제를 단행했다. 현재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50여 개국이고요. 러시아와 중국, 쿠바, 니카라과 등은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3월 11일 밤 트위터에, 이번 주 안으로 베네수엘라에 남아있는 모든 인력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은 베네수엘라의 국내 정세가 악화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미국 외교 인력의 잔류가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정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