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인간은 누구인가? 인문학이란 ‘인간의 무늬’를 연구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학문을 총칭하지만, 학문이 분화 되면서 역사, 철학, 예술, 문학 등을 뜻한다. 인간은 다양한 연구로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Homo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모 하빌리스(손쓰는 사람), 호모 에렉투스(직립 사람),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사람) 등 동물과 차별화하여 인간을 규정하였다. ‘나는 누구인가’는 자신의 소유, 족보, 학식, 고향 등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세상에는 이상한 것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용어는 안디옥에 살고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안디옥 사람들이 부른 말이다(행11:26). 성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했다(롬 8:9).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다. 우리가 ‘성전’인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마 5:13-14)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부패하는 세상의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4),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라고 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다.
1. 택하신 족속(Chosen People)
‘택하신 족속’이란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백성’이란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는 것 같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맘만 먹으면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약한 것 같다. 만약 실력, 인성, 미모 등의 높은 기준을 통과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자랑하였을 것이다. 마치 국회의원이 되면 보라는 듯이 금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 같이. 하지만 정말 귀중한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고, 자격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것이 축복이고 특권임을 알아야 한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아 못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집트 다합에 갔을 때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성경 공부를 하고 그때에도 마음이 변치 않으면 세례를 배풀기로 했다. 첫날은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둘째 날은 사도행전 11장 26절의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하여 설명했다. 공부를 마친 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겠는가? 성령을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녀는 믿으려고 하는데, 믿어지지 않는다며 다음에 받겠다고 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은혜가 행위로, 선물이 상으로, 특권이 의무로 전락하는 순간 신앙생활에서 종교생활로, 예배에서 예식으로 변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존하시고 통치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9-10).
2. 왕 같은 제사장(Royal Priesthood)
왕과 같은 위엄과 자부심을 갖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제사장이다. 제사장이란 라틴어로 ‘다리를 놓는 사람’(Pontifex)란 뜻이다. 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제사장의 사역은 두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재물과 중보기도를 드리는 일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백성 대표로 제사장을 가까이 나오게 하셨다. 제사장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과 기도를 바치게 하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시드니에는 호주의 상징인 ‘하버브릿지’(Harbor Bridge)가 있다. 1923년 시작하여 거의 9년간의 공사 끝에 1932년에 완공했다. 지난 6월에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 북에 올렸다. 몇칠 후 미국 사관학교 동기생인 ‘Norman Grainger’의 댓글이 달렸다. “하버 브리지의 철골은 내 고향인 영국의 ‘Midlesbrough’에서 왔다”. 수없이 하버브릿지를 보았지만 ‘철골이 어디서 왔을까’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과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일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선 자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 앞에 선 자이다.
3. 거룩한 나라(Holy Nation)
베드로는 성도를 ‘거룩한 나라’라고 했다. 이는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한 자요, 세상과 구별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거룩, 성화, 성결’이란 것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성도, 성민’이란 구별된 백성이란 뜻이다. 구약시대에서는 ‘성도’라는 말 대신 ‘성민’이란 말을 썼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 14:2). 히브리어로 ‘거룩’을 ‘코데쉬’라고 하는데 “잘라낸다”,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성화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어거스틴은 “성화는 여인의 화장과도 같다”고 했다. 신앙생활은 잡힌바 된 잡은 것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거룩이란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거룩해 질 수가 없다. 고로,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거룩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4. 그의 소유된 백성(People belonging to God)
그의 ‘소유된 백성’이란 하나님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소유물이 될 수 있는가? ‘소유된’의 헬라어 ‘페뤼포이에신’이란 말은 특별한 값을 지불하고 획득한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해 부르고 “너는 내 것이라”(사 43:1)이라고 했다. 오늘 본문 10절에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을 그의 ‘택하신 족속’으로 만드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며,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선택한 것일까? 이유는 9절의 후반부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b). 어둠에서 빛으로 자리를 옮긴 자들이 아직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 빛의 소식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구세군의 모토 중 ‘Saved to Save’란 말이 있다. “구원 받은 것은 구원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구원한 것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의 최후의 명령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지상최대의 계명’(The Great Commandment, 마 22:37-40)은 ‘사랑’이고, ‘지상최대의 명령’(The Great Commission, 마 28:18-20)은 ‘선교’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계명과 명령’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랑하지 않고는 선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멸망의 길로 가는데 가만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ABCD’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 8:9).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세 번 나온다(행 11:26; 26:28; 벧전 4:16).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린 곳은 ‘안디옥’이다.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하여 안디옥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안디옥 사람들이 붙여준 말이다. 오늘날 ‘예수쟁이’와 같은 비하한 말이다. 진정한 ‘예수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ABCD’를 거쳐야 한다.
헤롯가는 예수님 탄생부터 4대에 걸쳐 성경에서 기록되고 있다. 제일 처음은 예수님의 탄생 때 등장했던 헤롯 대왕, 다음은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아켈라오, 안티파스 그리고 빌립. 유다 지역을 통치하던 아켈라오의 실정으로 폐위 당하고 대신 로마에서 직접 총독을 파송하였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을 때는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던 분봉왕이 안티파스였다. 세 번째로 사도행전 12장에 야고보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6:28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아그립바 2세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성경에는 야고보가 3명이 나온다. 야고보서를 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큰 야고보라고 불리는 세베대의 아들 그리고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는 알페오의 아들. 사도행전 12장에 죽은 야고보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이다. ‘야고보’를 영어로 James라고 하고 스페인어로는 ‘산티아고’라고 한다. 딸이 산티아고 820K의 순례길을 마치고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콤포스텔라에는 야고보의 시신이 있는 ‘야고보 기념교회’가 있다.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하여 죽고, 그의 주종자들이 야고보의 시신을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1. A(Admit) 인정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상대적인 의인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시드니 시내에 William Booth House가 있다. 구세군 ‘중독재활센터’이다. 중독이란 스스로의 자율적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그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알코올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상태라면 마약과 알코올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약 10개월 코스로 해독을 위한 12단계의 프로그램이 있다. 만약 3단계까지만 간다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1단계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2단계는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3단계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단계이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죄인이다. 죄란 히브리말로 ‘하타’로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이고, 헬라어는 ‘하마르티아’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란 뜻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모든 것이 죄이다. 회개란 ‘메타노이아’로 ‘방향을 바꾸다’, 즉 ‘질서를 찾다’란 뜻이다. 창조 때 ‘혼돈’(Chaos)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함으로 ‘질서’(Cosmos)가 창조된 것처럼.
2. B(Believe) 믿는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어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에서 빛이 오는 것이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중에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자, 니고데모는 “이 나이에 어떻게 어머니 모태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되 질문한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말씀하셨다. ‘거듭나다(Born Again)’는 ‘Born Above’란 의미로 영으로 나야 한다는 뜻이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산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위해서는 ‘사명’으로 한 번 더 태어나야 한다.
3. C(Confess) 시인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카르디아’ 즉 ‘심장’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인격의 중심인 심장으로부터 고백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과 ‘구원’받는 것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신앙고백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다. 칭의란 ‘의로우신 분이 의롭다고 칭할 때 의로워진다’는 뜻이다. 칭의는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이루어진다. 자기 의는 ‘행위의 의’고,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의’이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예수를 믿으면 ‘칭의’를 통한 ‘구원’을 받는다. 이를 ‘이신칭의’라고 한다.
4. D(Develop) 성장한다.
구원은 완성이 아닌, 성결의 시작이다. 성결이란 구원 받은 자가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이다. 성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닌, 점진적인 과정이다. 인간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고, ‘명사’가 아닌 ‘동사’이다. 그것도 ‘진행형 동사’이다. 성결에 이르는 길을 성서에는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5), ‘그의 마음을 품으라’(빌 2:5),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갈4:19), ‘성령 충만함을 받아라’(엡 5:18) 등은 성결에 대한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결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성결이란 인간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대제사장의 예복을 입어야 한다. 그중 머리의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Holiness Unto God)이란 금패가 있다. 금패는 제사장의 머리 위에 쓴 관에 청색끈으로 매어져 있다. 사람들이 대제사장의 머리를 쳐다보면 금패와 청색끈이 눈에 확연하게 띈다.
구세군의 상징 중에 하나인 군기는 3색으로 되어 있다. 빨강은 ‘그리스도의 보혈’, 노랑은 ‘성령의 불’ 그리고 청색은 ‘하나님의 성결’이다. 성결, 성화, 거룩 등은 같은 의미이다. 거룩이란 ‘구별하다’란 의미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세속화란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고, 선교란 세상이 교회를 닮아 가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교회가 ‘선교적’이지 않으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