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땅끝은 어디인가?
사도행전의 구조는 1:8에 함축되어 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1-7장까지 예루살렘, 8-12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 13-28장까지 땅 끝이다.
1. 예루살렘 (1-7장)
예루살렘 교회는 최초의 지역교회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갈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120명가량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오순절에 천하 각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들에게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해서 그 곳에서 자라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헬라파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떠나서 각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기회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Diaspora)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교회의 대부분은 히브리파 성도였고, 헬라파 성도들은 많지 않았다.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에서 과부 구제의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자, 헬라파 집사 7명을 세워 교회의 제반 살림살이를 하게 하였다.
2. 온 유대와 사마리아 (8-12장)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존재이다. 앗수르 제국이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정책의 결과로 탄생된 후예이다. 이들은 언어 문화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리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를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은 ‘준비된 선교사’들이다. 파송된 선교사는 새로운 문화와 환경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현지에 살고 있는 ‘준비된 선교사’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선교전략’이란 복음 (text)을 주어진 상황 (context) 속에서 상황화 (contextualization)하는 것이다. 이제 선교는 ‘파송선교’에서 ‘양육선교’로 바뀌어야 한다.
3. 땅 끝 (13-28장)
둥근 지구의 땅 끝은 어디인가? 땅 끝이 말 그대로 아마존, 아프리카의 밀림, 히말라야 같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오지인가? 땅 끝은 북한, 소련, 중공 등 기독교가 불법화되어 있는 공산권인가? 혹자는 땅 끝을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였으니 지구 한 바퀴를 돌면 다시 예루살렘이 나오기 때문이다. 땅 끝은 단순히 지리적 개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에게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이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주 먼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대부분은 관계가 좋지 않다. 심리적 땅 끝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심리적으로 아주 멀리 느껴지는 거리이다. 나와 너 사이일 수도 있고, 나와 나 사이일 수도 있다. 나와 나의 심리적 거리가 멀면 멀 수록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된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가 땅끝만큼 멀어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산다. 자기가 자기를 왕따 시키며 산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인생은 ‘본래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인생길은 ‘장미 빛 아스팔트길’이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건너야 할 물도 있고, 지나야 할 광야도 있다. 모든 길에는 만남이 있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의미를 찾는 순간, 우리는 ‘본래의 나’를 만난다. 누군가 우리에게 “Who are you?”라고 묻는다면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nobody‘, ‘긍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somebody‘, ‘성서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somebody in God’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창1:27) 하셨고 베드로는 ‘나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고 고백했다.
성시화 총회를 즈음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행 8:1)
2018년 4월 2일 중앙장로교회에서 열린 총회에서 대표회장에 김환기 사관, 대표 본부장에 노정언 장로, 사무총장에 송상구목사가 선임되었습니다. 제가 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회장직을 고사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성시화 운동은 일회적 행사 (Event)가 아닌 지속적 기도운동 (Movement)으로 성시화를 이끌어 갈 것이며, On and Off 라인을 통하여 활성화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 후 매월 교회를 순회하며 성시화 조찬기도회를 열어, 오늘이 26번째 입니다. 또한 ‘Facebook’과 ‘카톡’을 통한 적극적인 Online 활동을 통하여 내적인 일치와 외적인 홍보를 하였습니다. 현재 Facebook 192명의 Follower와 카톡 71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이지 못할 때도 카톡으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대표 본부장인 노장로님의 오랜 연륜과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지혜와 송상구 목사님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 덕분에 2년간의 임기를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6월 15일 이스트우드 낙궁에서 차기임원의 추대를 위하여 상임위원들이 모였습니다. 저와 송상구 목사님은 물러나기로 했고, 노정언 장로님은 연임하기로 하였습니다. 식사 때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 갑자기 상황이 급반전되었습니다. 구임원진이 한 번 더 연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는 반전이 있어야 재미가 있지만 성시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부할 시간도 없이 한영근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구임원진이 연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1절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이 8:1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람중심으로 1장 – 12장 베드로, 13장 – 28장까지는 바울로 나눌 수 있고, 지역중심으로 1-7장 예루살렘, 8-12장 온 유다와 사마리아, 13장-28장 땅 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 가지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인 에클레시아, 흩어지는 교회인 디아스포라, 임하는 교회인 바실레이아. 에클레시아가 방주의 역할을 한다면, 디아스포라는 구조선의 역할을 하고, 바실레이아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뜻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복음서에 마태복음 16:18절과 18:17절에 단 두 번 언급된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80여 차례나 나옵니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지막 여덟 번째 복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와 주권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된 곳은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운동적인 개념입니다. 운동이란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움직임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성시화 운동은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 전하는 생명운동입니다. 성시화 운동은 영혼구원을 넘어 전인구원,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을 위하여 다민족이 연합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입니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란 변수로 격동하며 급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후 시대는 ‘Back to Normal’이 아닌 ‘Forward to New Normal’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 전’은 대면 (Contact)의 시대이고, ‘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Uncontact)의 시대이며, ‘코로나 후’는 ‘대면과 비대면’이 공존하는 대비면 (Conuntact) 시대가 될 것입니다. 새 시대를 대비하여 시드니 성시화 운동본부는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출범하는 시드니 성시화 운동 본부는 본질에 충실하고, 비본질은 중단하며, 변화에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시화 본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지금까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음으로 양으로,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말씀을 마치려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민 14:28)
시드니응답기도원 이전을 축하드립니다. 응답기도원은 기도원은 성시화와 같은 해에 2007년에 개원했습니다. 올해가 이제 13년째가 되었습니다. 13년 동안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이 되셔서 더욱 큰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민수기 14:28 말씀을 의지하여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는 제목으로 피차간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모세오경에 대하여 요약하겠습니다. 민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세 5경의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2명 중 10명은 ‘저들에 비하여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말을 듣고 저들의 말한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세째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언어는 힘이고, 언어는 환경이고, 언어는 씨앗입니다.
1. 모세 5경 요약
창세기 50장 : 4사건과 4사람의 이야기 / 1-11장까지는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 12-24장 아브라함, 25-26장 이삭, 27-36장까지는 야곱, 37-50장까지는 요셉
출애굽기 40장 : 이집트 탈출기 / 1-18장 탈출, 19-40장까지는 하나님의 계시
레위기 27장 : 시내산 율법 / 1-17장까지 하나님께 나가는 법인 제사(제물, 제사장, 제단)인 구원, 18-27장까지는 절기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제는 성결
민수기 36장 : 광야에서 방황 / 시내산에서 1-10:10 구세대 인구조사, 10:11- 25장까지 가데스 바네아에서 과도기, 모압 광야에서 26-36장 신세대 인구조사
신명기 34장 : 모세의 세 번의 고별설교 / 첫째 1-4장,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둘째 5-26장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교육하고, 셋째 27-34장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기대하라
2. 가데스 바네아 사건
민수기의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광야에서’이다.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모압평지까지의 38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의 방황한 기록이다. 시내산에서 가나안까지 10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었지만, 백성들의 ‘불신과 불평’으로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다. 민수기(民數記)란 이름은 ‘백성의 수를 계수했다’는 의미로,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의 제목이다.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 조사를 했다. 시내산에서 출발할 때 출애굽 1세대의 인구조사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압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의 인구조사이다.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전투할 능력이 있는 20세 이상의 남자만을 계수한다. 1차 인구조사에서는 603,550명, 2차 인구 조사에서는 4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601,730명이다. 민수기 13장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낸다.
40일 동안의 탐지를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은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10명은 “저들에 비해 우리는 메뚜기 같기에 가나안 땅을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민 13:33)고 보고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닙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민14:9)라고 했다. 이들의 보고를 들으신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민14:28)고 대답하셨다. 결국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에 임성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행하시는 분이다.
3. 언어란 무엇인가?
(1) 말은 힘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도 말에 힘이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잠18:21)라고 했다. 야고보는 혀는 작지만 큰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키와 같고,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불과 같다고 했다. 세치도 안 되는 혀가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전도서는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10:12)고 했고, 잠언에는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18:6)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 없을 터인데 말을 해서 매를 버는 사람들이 있다.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다. 창조적인 말이 있고 파괴적인 말이 있다. 긍정적인 말이 있고 부정적인 말이 있다. 적극적인 말이 있고 소극적이 말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도 좋은 음악이나 좋은 말을 들으면 더 잘 자라고 건강하다. 인간의 말은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피조물에도 영향을 준다.
오래전 MBC에서 ‘언어의 힘’에 대한 한글날 특집 방송을 하였다. 두 개의 병 안에 밥을 넣고, 2주 동안 한쪽 병에는 긍정의 말을 하고, 다른 병에는 부정의 말을 했다. 놀랍게도 생명이 없는 밥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말을 들은 병의 밥은 하얀 예쁜 곰팡이가 피었고, 부정의 말을 들은 병의 밥은 까만 썩은 곰팡이가 피었다.
(2) 말은 환경이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격이 형성된다. 환경이란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외적 요인’이다. 가장 중요한 환경은 무엇일까? 언어환경이다. 좋은 가정이란 좋은 언어가 있는 가정이고, 좋은 교회란 좋은 말을 사용하는 교회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고 했다. 긍정적인 언어 환경에 노출된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언어 환경에 노출된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말만 부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능력과 작업능률이 떨어지고 성격도 안 좋다. 버클리 대학 매리언 다이아몬드 박사는 “부정적인 자극이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접하면 두뇌에 미세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해 신체의 신호까지 나쁘게 바뀐다”고 했다. 말이 입안에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지배하지만, 말이 밖으로 나오면 말이 나를 지배한다. 인간은 말을 만들고, 말은 사람을 만든다.
(3) 말은 씨앗이다.
말씨는 ‘말의 씨앗’이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인간은 자신이 말의 씨를 뿌리고, 그 뿌린 씨를 거두며 산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언어에는 ‘부메랑의 법칙’이 있다. 타인에게 한 그 말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10:5-6).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있다. 고교시절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세월이 흘러 부메랑이 되어 주인공인 오대수의 삶을 파멸시키는 이야기다. 우리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심은 말의 열매이고, 미래의 모습은 오늘 내가 하고 있는 말의 열매가 될 것이다. 미래의 나의 모습을 알기 원하는가?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살펴보면 된다.
인기가수 100명을 조사하였다. ‘히트곡과 운명에 대하여 어떤 관계인가?’ 91명이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대부분 일찍 타계했다. 가수의 운명과 노래 가사와 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신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장수하고, 고통, 이별, 죽음, 슬픔, 한탄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세 종류의 자아상이 있다. 부정적 자아상, 긍정적 자아상, 성경적 자아상이다.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 말을 하면서 부정적인 삶을 살고, 긍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말을 통해서 긍정적인 삶을 산다. 성경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성경적 말을 하면서 성경적으로 살아간다.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nobody’라고 하고, 긍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somebody’라고 하지만, 성경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I am somebody in Christ’라고 고백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는가? 응답기도원 이전 기념으로 3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하나님과 대화’이니 반드시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