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예수님의 7가지 자기선언(2)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AD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기독교는 박해 받는 지하종교에서 인정 받는 지상종교가 되었다.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이 넓다보니 기독교는 각 지역의 문화, 정치, 종교 등과 혼합되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통일하기 위해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논쟁의 쟁점은 ‘예수는 누구인가?’였다. 아다나시우스는 예수는 성부와 ‘동질본질’(homo-ousios=one substance)하다고 했지만, 아리우스는 예수는 성부보다 낮은 ‘유사본질’(homo-iousios=like substance)이라고 주장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이라 선포하고 아다나시우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 1차 종교회의’는 오늘날 ‘기독론’의 발판이 되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 2차 종교회의’는 성령의 신성에 관하여 결정하였고, 마침내 451년 칼케돈에서 열린 ‘제 4차 종교회의’에서 오늘날의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을 하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8)고 대답한 베드로를 칭찬하셨고, 요한복음에는 7가지 표적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야 임을 증명하였고, 7가지 자기선언을 통해서 자신의 하나님임을 설명하였다. 예수께서는 출애굽기 3장에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모세가 질문했을 때 대답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YHWH, 에고 에이미, I am’(출3:14) 지난주 7가지의 자기선언 중에서 3가지 ‘생명의 떡이다’, ‘세상의 빛이다’, ‘양의 문이다’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다. 오늘은 나는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리고 ‘참 포도나무’의 말씀을 의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4) 나는 선한 목자이다 (요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며 삯꾼 목자와 비교하였다. 삯꾼 목자는 돈을 받고 양을 치는 사람이다. 삯꾼은 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일하지 않고, 위험하면 도망간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래전 프랑스 파리에서 외인부대에 근무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한국 특수부대 출신으로 제대후 친구와 함께 지원을 했는데 자신은 합격을 하고 친구는 떨어졌다. 프랑스 정부와 외인부대원들은 계약을 한다. 정부는 계약대로 요구할 권리가 있고, 외인부대원들은 계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계약은 돈으로 이루어진다. 정부는 돈을 준만큼 요구하고, 외인부대원은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하는 것이다. 삯군 목자와 양의 관계와 같다. 정말 문제는 삯군이 아니라 악한 목자이다.
에스겔서에는 ‘악한 목자’에 대하여 나왔다. ‘주 야훼가 말한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주어야 하며 상처 입은 것은 싸매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겔34:1-5)
악한 목자는 양들을 돌보기는 커녕 오히려 수탈하고 짓밟으며 흩어지게 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들은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스님’이고, ‘예배에는 관심 없고 헌금에만 관심 있는 목사’이다. 이때는 스님 보다는 ‘중’이 적절하고, 목사 보다는 ‘먹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친구도 세 종류가 있다. 좋은 친구, 나쁜 친구, 더 나쁜 친구이다. 좋은 친구는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이고, 나쁜 친구는 도와주지 않는 친구이고, 더 나쁜 친구는 도와 달라는 친구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안다’고 했다. 요한복음 10장 14-15절에는 ‘안다’는 말이 4번씩이나 나온다. ‘안다’란 단어인 헬라어 ‘기네스코’는 히브리어로 ‘야다(Yada)’인데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안다는 의미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Knowing about God’, ‘야다’로 아는 것은 ‘Knowing God’이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성격도 알고 처지와 형편도 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일반화된 숫자로 부르지 않고, 각자의 이름을 부른다. 서양 속담에는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안 좋은 기억력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가끔 교인들의 이름을 잊어 버리고, 다른 이름을 부를 때도 있다. 오메가3가 기억력에 좋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다. 문제는 오메가3를 먹고 얼마 지나면 ‘내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그것을 기억할 수가 없다.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루살렘 그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베다니라는 곳이 있다. 예루살렘까지 직선거리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장벽이 있어 예루살렘에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나사로,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사로가 병에 걸려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고쳐줄 것을 청하였다. 그녀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함이다”(요11:4)고 이틀을 더 유하다가 나사로의 집을 찾았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났다. 예수를 본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망했다.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할 것은 자기도 안다고 답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묻자, 마르다가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묵고 있던 베들이 풀리고 살아났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고,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3일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고전15장은 부활장이다. 바울은 ‘만일’(If)이란 단어를 통하여 ‘반어법’으로 부활에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If) 그리스도께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다(14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16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19절)” 20절에 ‘그러나’(But)’를 통하여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절) 15장의 마지막 절인 58절에는 그러므로(Therefore) ‘부활 신앙’을 가지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요한복음에 유일하게 세족식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었는가를 누가복음 22장 24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식사 중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큰 자인가’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
세족식이 끝나자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13:36),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집으로 갈 것이라고, 그곳에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너희를 위하여 다시 올 것이다. 너희들이 그 길을 알 것이다”(14:2-4)고 말씀하자,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14:5), 도마는 아버지 집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그곳을 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4:7) 대답했다. 이 말씀에는 ‘The’ 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다. 많은 길 중에 하나가 아니라 바로 그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땅의 길은 육로, 바다의 길은 해로, 하늘의 길은 항로, 천국의 길은 예수이다. 예수께서는 인생길이 끝나는 곳에서 천국 길이 되시고, 세상의 진리가 끝나는 곳에서 하늘의 진리가 되시고,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곳에서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
7) 나는 참 포도나무다 (요15:1)
포도는 감람나무와 무화과와 더불어 유대 지방의 특산물이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종종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포도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나온다. 노아의 처음 농사도 포도농사이고, 가나안 정탐꾼이 가지고 온 것도 포도 열매이고,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은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로 만든 것이고, 마지막 최후의 만찬 때 포도주를 나누며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있다. 관상수, 유실수, 조경수 등등. 포도나무는 유실수에 속한다. 포도나무를 심는 이유는 열매를 따기 위한 것이다. 만약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좋은 열매를 맺기 방법을 2절과 4절에서 말씀해 주고, 8절에는 과실을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했다.
2절 가지치기이다.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농부는 적당히 가지를 잘라 없애 주어 영양분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하여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한다.
4절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8절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신앙생활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도 신앙 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을 맺는다. 요한복음에서 7가지 표적으로 메시야 임을 증명하였고, 7가지 자기선언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임을 설명해 주었다.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음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요한만 빼고 모두가 예수님을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약속대로 예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히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현장에 없었던 도마는 “내 손가락으로 그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에 넣어보기 전까지 못 믿겠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나타나 만져보라고 하자, 도마는 고백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다”(요20:28) 이 고백을 들은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요20:29)하셨다. 신앙은 3인칭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1인칭으로 고백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이기 때문이다.
교인인가, 그리스도인인가?
호주와 한국은 5년마다 인구조사를 한다. 호주는 2021년, 한국은 2020년 10월 15일부터 11월 18일까지 통계청에서 인구조사를 한다. 인구조사 방법은 인터넷이나 전화, 우편 등으로 참여할 수 있고, 조사원들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1925년에 시작되어 5년마다 조사하고 있다. 인구조사는 단순히 인구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1945년 해방 후에는 징용에 관한 질문이 있고, 6.25 전쟁 후에는 전쟁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고, 1960년부터는 주택과 관련된 질문, 2000년부터는 인터넷에 관련된 질문, 2010년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에 관한 질문, 2020년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질문이 처음으로 들어가 있다.
한국은 65세를 기준으로 인구의 7%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1960년 전후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가 65세가 되는 해인 2025년에 ‘초고령 사회’로 돌입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호주는 원래 65세가 은퇴였으나 평균 수명이 높아지면서 매년 6개월씩 늘리다가 1957년생부터는 은퇴연령이 67세가 된다. 통계를 근거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은 전략을 구상한다.
2015년 11월 1일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는 5,107만 명이다. 이중 외국인 136만명 (총인구의 2.7%)이고, 중국계 국적 외국인은 51.6% 차지한다. 외국인이 인구의 2% – 5% 이하이면 ‘다문화 국가’이고, 5%가 넘으면 ‘다민족 국가’이다. 1985년부터는 종교에 대한 질문을 첨부했다. 각 종교에서 발표한 신자숫자를 합산하면 인구 숫자보다 많아서, 종교 인구를 정확하게 알 필요성이 있었다.
인구조사가 실시되고 불교는 1위를 놓치지 않았다. 2015년 조사에서 개신교가 처음으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신자도 10년 전보다 120만 명 정도가 증가하여, 9,675,761명이었다. 이 통계를 보고 가장 놀란 사람들은 개신교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교인수도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신자가 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개신교 자체 조사를 한 결과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이단의 성장’과 ‘가나안 교인’의 증가였다.
가나안 교인
‘가나안’ 교인이란 신앙은 있지만, 교회는 ‘안나가’는 교인이다. ‘안나가’를 거꾸로 읽으면, ‘가나안’이 된다. 한국 교회의 신도 중 ‘가나안 교인’이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민교회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겼다. 가나안 교인은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 ‘홀로서기’를 택한 사람이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SNS의 동영상을 통해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관중석에서 게임을 관전하듯 예배를 본다. 예배의 본질은 드리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중심으로 3 종류의 사람이 있다. 예배를 보는 사람, 예배를 드리는 사람 심지어 예배를 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가나안 교인의 문제점은 받으려고만 하지 자신을 드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느 겨울날에 D.L 무디에게 한 청년이 찾아 왔다. 그 청년은 “제가 꼭 교회에 출석해야 합니까? 집에서 혼자 조용히 믿으면 안됩니까?” 물었다. 무디는 젊은 청년에게 난로 속에서 석탄을 한 개 끄집어내어 흙바닥 위에 놓으라고 했다. 벌겋게 타던 석탄은 처음에는 잘 타는 것 같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약해지면서 곧 꺼지려고 했다. 무디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이제 이 석탄을 난로 속에 다시 넣으라고 했다. 꺼져가던 석탄이 난로 속에 들어가자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청년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깨닫고 그냥 돌아갔다.
문화적 교인
작년 9월 12일부터 27일까지 호주 구세군 사관 27명이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베들레헴’에는 지역적은 특성 때문인지, 40% 정도 크리스천이 살고 있다.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서 민박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크리스천과 무슬림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무슬림이 합류하여 축하해 주고, 라마단 때에는 크리스천이 라마단 축제에 참여한다. 이곳 사람들은 종교를 운명같이 받아들이고 있다. 무슬림 가족에서 태어나서 무슬림이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슬림을 전도한 적이 있다. 그는 ‘무슬림’이라고 하지만 모스크를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것도 아니며, 라마단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무슬림이니까 자신도 무슬림이라고 했다. 그는 이슬람교 문화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슬림이 되고, 기독교 문화에서 태어난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앙이 곧 자신의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 교인
개신교에서는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주일로 지킨다.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에 95개항의 반박문을 붙여, 개혁의 도화선이 된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개신교 신학을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한다. 복음주의란 용어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핵심사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복음 자체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복음적’이란 말은 한 가지 의미가 아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이단적인 것에 반(反)하여 정통적인 것, 로마 가톨릭 교회적인 것에 반(反)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적인 것,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反)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구세군도 복음주의 교단 중에 하나이다. 구세군의 정체성을 요약한 선교 선언문이 있다. “구세군은 복음주의 교단으로 Message는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Ministry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Mission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차별없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전도를 영어로 ‘Evangelism’이라고 한다. 복음주의와 전도는 ‘복음’을 뜻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이란 어원을 같이하고 있다. 개신교는 복음주의의 사상을 가진 전도하는 교회이다. 일반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선교는 전도보다 포괄적인 용어이다. 전도는 불신자의 ‘영혼구원’에 주력하고, 선교는 인간의 ‘전인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최대의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 선교(mission)는 라틴어 동사 missio/mitto(보내다 또는 파견하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사도(Apostle)란 단어는 ‘파견’이란 단어인 ‘아포스텔로’의 파생어이다.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하고, 교인은 모두 선교사이다. 선교적 교회란? 선교가 본질적 사명이고, 존재의 목적인 교회이다. 교회가 선교적이지 않으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던져진 존재’에서 예수를 만나고, ‘보내진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잘 묘사한 구절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세군 창립자 윌리엄 부스는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라”(Saved to Save)고 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선교하기 위해서 산다’고 대답하자.
마하나임과 구세군 악대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32:1-2) Jacob also went on his way, and the angels of God met him. When Jacob saw them, he said, “This is the camp of God!” So he named that place Mahanaim.
구세군은 ‘하나님의 군대'(God’s Army)이다. 구세군은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세군은 전쟁 중에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도너츠와 커피를 나누며 부상자를 치료하고, 절망하는 자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1,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호주군은 자원군이고, 6.25 전쟁은 호주군이 정규군으로 참전한 최초의 전쟁이다.
1) 붉은 방패 (Red Shield)
구세군의 대표적인 상징은 ‘면류관과 붉은 방패’이다. 일반적으로 면류관은 영혼구원, 붉은 방패는 사회봉사를 의미한다.
호주의 경우는 붉은 방패가 구세군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호주 구세군의 인지도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높다. 세계 구세군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국은 구세군의 역사를, 미국은 구세군의 돈을, 호주는 구세군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원래 ‘붉은 방패’는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이란 글자로 장식된 은으로 만든 방패였다. 전쟁 중의 구세군인들이 뱃지로 착용하다. 보어 전쟁(Boer War, 1899-1902)이 끝난 직 후, 호주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지 카펜터 (George Carpenter) 참령은 전쟁 중에 구세군인들이 착용한 이 은색 방패가 야간에 빛을 반사하여 적들에게 군대의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음을 걱정했다. 그 결과, 은을 빨간 에나멜로 대체하고, 지금의 ‘붉은방패’가 되었다.
2) 2차 세계대전 – 몬트비데오 마루 (Montevideo Maru)
구세군의 상징 중 다른 하나는 ‘악대’이다. 구세군 악대의 태동은 ‘기독교선교회’에서 ‘구세군’으로 이름을 바꾼 1878에 밴드가 시작 되었다. 초기 구세군은 ‘모이는 교회’보다는 ‘흩어지는 교회’에 중점을 두었다. 사람들을 모으기 보다는, 그들이 필요한 곳으로 갔던 것이다. 그래서 가로전도(Open Air)가 활성화 되었다. 가로전도(노방전도)란 거리에 나가서 하는 전도이다. 구세군은 당시 가로전도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1942년 2 세계대전 중에 ‘파푸아 뉴기니’(PNG)에서 전투 중인 호주군 1053명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몬트비데오 마루’(Montevideo Maru) 포로수송선을 타고 중국의 해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운항 도중 필리핀 해협에서 미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게 된다. 이중 구세군 밴드 16명의 악대원도 함께 수장되었다. 호주 전쟁 역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에 하나이다. 물론 미군은 포로수송선인 줄 모르고 공격했을 것이다. 2/22 대대에 소속되어 참전한 구세군 악대원 22명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생존하여 돌아왔다. 그는 4개월 동안 1000K 이상을 걸어서 탈출했다.
전쟁 중에는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6.25 전쟁 중에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선량한 피난민, 250-300명(추정)이 사살되었다. 피난민 중에 북괴군이 잠입했다고 오인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사건의 현장인 쌍굴 입구에 사건의 진상을 자세하게 설명한 현판이 세워져 있다. 사건 발생은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에 피난 도중에 있었던 사건이다. 피난 중 미군 비행기 폭격과 기총 소사로 철로 위 피난민 다수가 사망하였다. 피난민은 ‘노근리 쌍굴’로 피신하였으나, 계속되는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쌍굴 안에서 많은 피난민이 죽었다. 1999년 말에 한미 양국 ‘노근리 사건’ 공동 조사가 있었고, 2001년 1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 표명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 구세군 서울 후생원 악대
서울 후생원은 1918년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던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시작된 아동 양육시설이다. 1922년, 고아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면서 악대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상처를 갖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이 악기연주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동들의 재능을 키우고 정서적인 안정과 함께 상처치유를 목적으로 구세군 악대를 도입하여 악대를 창단하게 되었다.
1950년 8월 17일 목요일, 일단의 북한군 장교와 군인들이 후생학원에 들이닥쳤다. 악대원들을 모두 소집하고 악기를 들게 한 후 강제로 행진과 연주를 시키며 북아현동 후생원에서 끌고 나갔다.
만류하며 호소하던 사람들을 북한군은 총으로 위협했고 어린 원생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북으로 끌려 간 것이다. 행진 도중 탈출한 원생들도 있었고 최종 납북되어 실종된 악대원은 18명으로 파악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은퇴한 구세군 로드 부장이 북한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 그는 그곳에서 구세군에서만 연주되는 곡을 듣고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후생원 악대는 1973년에 재구성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일본 순회 연주, 1978년 구세군 세계 100주년 대회 등 다양한 세계 구세군 집회에 참여하여 한국 구세군의 위상을 널리 떨치고 있다.
Red Shield History
The Red Shield is an internationally recognised symbol of Salvation Army service to those in need. Its origins trace back to the turn of the century, when one of the symbols of The Salvation Army was a silver shield with the words ‘Salvation Army’ emblazoned across it. The shield was worn as a badge by many Salvation Army personnel, particularly those serving with the Defence Forces.
In the aftermath of the Boer War, an Australian Salvationist, Major George Carpenter, was concerned that the silver shield worn by Salvationists in times of war would reflect light, particularly during the night, giving the location of troops to the enemy. As a result, the silver was replaced by the red enamel and became known as the ‘Red Shield’. The pattern is the same internationally, with only the language being different.
Today, the Red Shield logo used on signage, printed materials and fundraising appeals has white lettering and border on red background. The shield usually has gold lettering and border when used as part of a Salvationist uniform on the cap or collar badges. Because the Red Shield emblem came to represent The Salvation Army’s reputation for being at the frontline of need, the Red Shield was incorporated into the name of The Salvation Army’s annual fundraising drive in Australia, the Red Shield Appeal.
Montevideo Maru
The story of 22 members of the Salvation Army who enlisted into the Australian Infantry forces to form the battalion band of the 2/22 Battalion. Only one of them survived the Japanese invasion of Rabaul and Fred Kollmorgen’s epic 4 months journey of 1000 kilometres on foot back to his own lines reflects the spirit of the whole band.
The sinking of Montevideo Maru, off the Philippines’ coast, enroute from Rabaul. 1053 Australians went down when an American submarine sank the Japanese prisoner-of-war ship in 1942. The Montevideo Maru sailed unescorted for Hainan Island, keeping to the east of the Philippines in an effort to avoid Allied submarines. Those who died included members of the 2/22nd Battalion Band – all but two of whom were members of The Salvation Army, led by well-known composer Arthur Gullidge.
The band was made up of Salvationists, mostly from Melbourne, one member from Sydney and one from Tasmania. There were also two non-Salvationist band members. When the Japanese invaded the island of Rabaul, two members were killed during the attack, four died whilst trying to escape and 16 were on the Montevideo Maru when it went down.
“Only one bandsman survived,” says Lindsay, who has authored a book on the event called ‘Brave and True’, “Fred Kollmorgen escaped Rabaul after the attack and trekked 1,100 kilometres for four months through the jungle to safety. He a Salvation Army bandsman from Melbourne and he died just last year, aged 94.”
* Montevideo Maru sailing from New Britain(PNG) to Hainan(China)
New Britain (Tok Pisin: Niu Briten) is the largest island in the Bismarck Archipelago of Papua New Guinea. It is separated from the island of New Guinea by the Dampier and Vitiaz Straits and from New Ireland by St. George’s Channel. The main towns of New Britain are Rabaul/Kokopo and Kimbe. The island is roughly the size of Taiwan. While the island was part of German New Guinea, it was named Neupommern (“New Pomerania”).
Hainan (海南) is the smallest and southernmost province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