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마음의 옷장
어느 분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너무 힘이 들어서 상담을 받고 싶어했다. 그런데 상담을 한 번 받고는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상담을 하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과제를 하려고 하니 계속 그 일이 생각이 나서 더 괴로워서 안되겠어요. 상담을 하면서 더 마음이 힘들어졌어요 “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분만이 아니라 최근의 어떤 분도 마음이 시원해지라고 상담을 했는데 상담을 하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 내니 너무 힘들어서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당분간 뒤로 미루고 싶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힘들어하는 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헝클어진 채 대충 문을 닫아 놓은 오래된 옷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옷장에 숨겨진 상처를 꺼내려고 옷장문을 여는 순간 그 동안 짖눌러 있고 서로 실타래처럼 영겨 붙어있었던 아픔 감정과 상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다시 대충 구겨 놓고 문을 더 단단히 닫아 버리는 분들이 있다.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옷들을 하나 하나 개켜서 옷장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임시 방편으로 속에 내용이 나오지 않게 문만 더 세게 닫아 놓는 것이다.
얼마 전에 ‘새롭게 하소서’ 라는 기독교 프로그램에서 한 분이 간증하는 내용을 들었는 데 아내와 너무 힘이 들어서 이혼을 했다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시 관계가 회복이 된 커플의 이야기였다. 그 집의 아이가 부모가 힘든 상황 가운데 있을 때는 너무나도 착하고 잘 돕는 아이였는데 엄마, 아빠가 회복이 된 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 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나와서 부모들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사례들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우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할 때는 구겨진 옷과 같은 자신의 감정적 상처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아픔의 감정들을 옷장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옷을 꺼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되자 옷장 속에 구겨두었던 옷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처럼 억압되었던 감정적 상처가 표현이 되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갑자기 나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아이가 건강해지기 위한 과정으로 속에 담겨 두었던 부정적 감정을 상처 치유를 위해 내어 놓았던 것이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녀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상담소로 데리고 오는데 가끔은 아이가 건강해 지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더 나쁜 감정을 표현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부모는 쉽게 “상담을 해도 소용이 없네요. 아이가 더 나빠졌어요.”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아이는 더 건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훈련을 받았던 국제 선교 단체인 “예수 전도단”이라는 곳의 열방대학에서 상담 코스가 있어서 그 공부를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가끔 “자기 주장”, 또는 “경계선 (boundary)”의 강의를 듣고 난 분들이 갑자기 너무 이기적으로 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상담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왜저래? 배운 것을 왜 저렇게 사용하지? 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또는 타인과의 경계를 건강하게 형성하지 못하고 의존적이던 사람이 자기 주장을 배우고 적용을 하려다 보니 좀 더 강한 반동이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 강한 감정들도 성장하는 한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방에서 ‘명현현상’이 있는 것처럼, 상담에도 때로는 명현현상 같은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좋아지라고 상담을 받고 심리치료를 받은 것 같은데 일시적으로 더 감정적으로 어려워지고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헝클어진 옷장의 옷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오면 당황스럽고 어지러워져 있고 복잡한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 쏟아져 나온 것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사용할 것은 다시 잘 접어서 옷장 속에 넣게 되면 더 이상 옷장은 쏟아지지 않게 되는 것이고 쓰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게 되는 안전한 옷장이 되는 것이다. 임시 방편으로 닫아 놓은 옷장은 언제 쏟아내릴 지 모르기 때문에 내면이 늘 불안하고 혼란 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다루어 힘들어 하는 내담자들에게 일시적으로 감정이 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한방의 명현현상하고 비슷한 것이라고도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내어 나와 여정을 끝까지 함께가는 사람들은 옷장을 상당히 많이 정리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처음 고통이 너무 크다고 중단해 버리는 사람은 자신의 헝클어진 옷장을 더 이상 두려워서 열지 못하게 되어 마음 한 켠이 늘어놓고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힘들 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내 헝클어진 옷장을 한꺼번에 활짝 열어서 온갖 내용물이 한꺼번에 다 쏟아내 버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일 수도 있다. 다시 주워담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사는 그 옷장문을 함께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함께 문을 잡아 주어서 문을 조금씩만 열게 해서 확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열어서 보고 꺼낸 것을 함께 접어서 예쁘게 옷장에 다시 넣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다. 때로 확 쏟아지더라도 그 옷장을 다시 정리할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게 함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무조건 내 마음의 옷장을 꼭꼭 잠그고 있는 분들은 용기를 내어서 옷장을 조금씩 열어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좀 힘든 명현현상이 있지만 건강해지는 것이 중요하기에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사 또는 심리 치료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의 옷장을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조금씩은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하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대청소를 하거나 아주 깨끗하게 하는 일에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본다. 혼자서 할 수 없는 마음의 옷장 정리를 전문가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안정된 마음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임으로 마음의 옷장을 잘 정리하는 용기를 내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권면해 본다.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 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교보문고 해외 배송으로 책을 주문 했다. 일주일 전에 도착한 그 책을 열어서 읽는 순간 예전에 “focus on the family” 사역의 책임자였던 제임스 돕슨 (James Dobson) 박사님이 쓰신 ‘ 강인한 사랑’ 이라고 하는 책의 내용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임스 돕슨 박사님의 책은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 무조건 용서하고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사랑(Strong Love)’의 모습으로 반응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게리 토마스는 결혼을 중요시 여기고 이혼을 정말 미워하지만 저자 조차도 때로는 관계가 너무나 파괴적이고 독이 되는 관계에서 고통스러울 때는 떠나는 것이 더 유익이 됨을 설명하고 있다. 필자의 이 글을 읽는 어떤 독자는 ‘당연히 고통스러운 관계는 떠나 야지’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고 자녀들에게 부모가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내가 참고 희생하고 기다리면 우리의 부부 관계는 언젠가는 회복이 될 거야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부부 관계를 떠나라 라고 하는 것이 천륜을 어기는 또는 사랑과 용서를 기반으로 살아가야한다고 믿고 있는 신앙인에게는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잘못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떠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독이 되는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때로는 독이 되는 관계에서 시작했다 가도 한 배우자의 노력과 헌신에 의해서 또는 두 사람 모두의 노력에 의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좋게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떠나야 되는 관계 중의 하나는 ‘안전’하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극심한 위협과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의 책에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자가 나온다. 이 여자는 170센티 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45 kg밖에 나가지 않는 날씬하고 어찌 보면 허약한 아내인데 남편은 아내가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준다. 그리고 8년이나 두 사람은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이 없고 늘 욕조에서 속옷 잡지 (빅토리아 시크릿) 카탈로그를 통해 자위행위를 하고 아내에게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남편은 “당신이 좀 아픈 것 같아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이혼을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아내가 정말로 이혼을 하려고 하자 남편은 아내의 목을 조르고 물건을 던지고 아내를 후려치는 행동을 하고 재정을 사용 못하도록 당장 은행 계좌를 다 닫아 버렸다. 그리고 알거지가 될 것이며 어떤 남자라도 아내 크리스틴을 알아봐 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협박하는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틴의 남편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재정적으로 아내를 학대하고 통제하고 조정하던 사람이었고 관계의 어려움이 와도 그것을 개선할 의도가 전혀 없던 수치심과 포기를 모르던 사람이다. 17번이나 부부 상담을 받았으나 둘 관계는 변화가 없었다. 이런 사람과의 관계는 그 사람이 정말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에는 관계를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메간 콕스 (Megan Cox)는 학대 받는 결혼 생활에서 벗어난 이후 학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지 자가 되었는데 자신은 자신의 이혼을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모두에게 일반화될 수 있는 말은 분명히 아니나 일부 사람에게는 절실한 위로이자 진실이다. 실제로 크리스틴은 남편과 헤어진 후 훨씬 더 만족스러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고 전 남편의 말과 다르게 새로운 좋은 남편을 만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혼보다 가능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좋고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이혼은 고통스럽고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은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며 때로는 그것으로 인해 부정적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학대의 관계로 안전에 위협을 느끼며 학대자가 진실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경우에는 학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줄 수 있기에 고통스러운 관계의 기반을 유지하는 것보다 대항하고 현명해지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통제하며 폭력적이고 학대적인 경우가 독이 되는 관계인가 하면 중독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독이 될 수 있는 관계다. 중독으로 인해서 가족에 대한 헌신이 없고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관계가 피폐해져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변명만을 늘어 놓아서 가족 모두를 지속적으로 안전하지 않게 하는 경우는 독이 되는 관계일 수 있다.
어떤 엄마는 도박 중독에 빠진 아들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늘 아들이 위험에 처해있을 때마다 아들을 구출해 주었다. 아들을 향해 등을 조금만 돌리려고 하면 아들은 자살 소동까지 하면서 엄마가 아들을 손에서 놓칠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도박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끊임없이 노모의 도움을 받으며 지금도 전전 긍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중년의 아들을 대하는 엄마는 자신이 아니면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엄마가 아들의 곁에 있기 때문에 이 아들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엄마도 아들에게 독이 되는 관계를 제공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이 말을 문맥상으로 적용을 한다면 독이 되는 관계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좋은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가능한 그들과 거리를 두고 메시아가 되어서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노력을 이제는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아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 아들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시도와 변화를 보여주기 전에는 더 이상의 도움이나 협조가 없음을 알게 해주어야 하고 아들을 구해주는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자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 자극제가 되어서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힘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필자는 부모가 자녀를 구해주는 역할을 멈추자 자녀가 건강해지고 회복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므로 ‘고통스런 관계 ’는 거리두기와 때로는 떠나기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혹시나 두려움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역할 때문에 고통스런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변화를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