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생명을 위한 선택
아론 랄스턴 (Aron Ralston, 아래 사진 참조)은 등산객입니다. 그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유타에 있는 국립 공원에 산악 등반을 가게 되었는데 실수로 틈새에 빠지게 되었고 팔목은 부러지고 65피트 높은 곳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자신을 구조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5일이 되었을 때에 사생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부러진 팔 쪽이 썩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살기 위해 팔을 잘라내는 선택을 했고 무딘 칼로 자신의 조직과 힘줄을 잘라 내어 높은 곳에서 떨어진 후 8마일을 하이킹한 후 도움을 받아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랄스턴 처럼 살기 위해 끊어내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끊어내야 할 때 우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끊어낼 때의 고통과 어려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시기를 놓침으로 목숨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관계에 실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고 용서해 주면 바뀌겠지 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관계를 계속 유지함으로 고통스러운 관계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수는 얼굴이 예쁜 아내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오자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하고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쇼핑중독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결혼하고 고향으로부터 떨어진 먼 곳에 살아서 그런가 하고 받아주었는데 점점 아내의 씀씀이가 커져서 집에 빚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급기야 아내는 쇼핑을 위해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돈까지 빌리게 되었습니다. 영수는 아내가 매번 잘못하고 나면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기에 아내를 믿어 주려고 했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는 아내가 여러 개의 크레딧 카드로 명품들을 구입한 돈이 몇 천만원이 넘게 되어있는 내역을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아내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중독의 문제만이 아니라 폭력의 관계도 잘못된 사이클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해 아내를 때린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용서를 구할 때 아내는 그를 받아들이고 허니문 기간을 보내다가 다시 화가 난 남편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아내는 남편의 ‘사랑한다’는 고백을 믿고 또 남편이 화가 난 것은 아내가 특정한 방식으로 남편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고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부적절한 관계를 계속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자의 폭력이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칠 때 그제서야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변화에 대한 용기를 내게 됩니다.
잘못된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밤 늦게 음식을 먹고 늦게 자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직장에 가서는 피곤하고 그래서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저녁에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하고, 과다 체중이라고 들으면서도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제 아파서 병명을 진단받기 전에는 나쁜 습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전까지 익숙함이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고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을 진단받은 후 다시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는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 증상이 없더라도 부정적 삶의 패턴을 끌고가지 말고 바꾸려는 용기와 다짐이 필요합니다.
CCM 싱어로 잘 알려진 박종호 집사님은 간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어마 어마한 거구의 체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어 보면 간암을 진단받기 직전까지 건강 검진을 하면 늘 결과가 정상이고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공연을 끝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어마어마한 음식을 섭취했고 그러면서 “나는 아무 문제없어 ~~ “라고 늘 합리화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고 막내 딸의 간 이식을 받아야 했고 지금은 살기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각자 우리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귀찮아서 그리고 익숙하고 좋아서 계속 유지하는 것들이 한 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주 대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과감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처음 예화의 랄스턴처럼 죽음에 처하는 고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근, 인기있는 ‘이태원 클라쓰” 라는 것에 보면 장가의 회장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아들을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가의 후계자였던 아들은 끊임없는 문제행동을 일으키던 문제아였는데 결국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버리게 됩니다. 만약 오래 전 그 아들이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일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웠다면 그 아들은 다르게 살았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을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도록 환경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가족도 그렇지만 집단이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기관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족이나 기관은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 영향력을 구성원들끼리 역동적으로 주고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한 사람의 영향력이 모두에게 미칠 수 있고 전체가 위태로와질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기관은 건강한 권위와 규칙, 하위 시스템과 경계선을 잘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전체를 위해 때로는 마음아픈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가지치기를 해야 더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생명을 위해 또 건강을 위해 잘라내야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프다고 내 버려둬서 더 큰 고통을 겪지 않도록 건강할 때 더 건강하기 위해 내 삶을 돌아보고 변화를 시도하는 일을 지속하길 권면드립니다.
용기 있는 사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이민 사회는 참 작아서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은 되는 것 같다. 특히, ‘기독교인들’이라면 그 폭이 더 좁아져서 조금만 조사해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는 것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때로는 타인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경우가 있지만 가까이 있는 전문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많이 주저가 되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상담 전문인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필자는 이런 이유로 인해서 상담이 필요한데 상담을 받지 못하고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분들 중 한국에서 유명한 교수님이 오면 그 분은 안전하리라 생각하여 개인적으로 불러서 개인상담을 받거나 때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은 먼 주에 계신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받거나 또는 한국에 있는 상담자 선생님께 상담을 받는 경우를 보면서 이들에게는 안전과 비밀 보장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상담이라고 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주저가 되고 아직도 일부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상담을 받는다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 상담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고 삶을 더 향상시키고 충만한 행복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지금도 필자는 한 번씩 아내가 머리를 잘라주지만 가끔 멋있게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는 한 번씩 헤어샵에 가서 머리 손질을 꼭 해야 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들이 다 있어서 그렇게 만도 살아갈 수 있지만, 전문 심리 치료사들이나 상담사들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의 삶을 점검 받고 다듬어 나갈 때 삶은 훨씬 더 윤택해질 수 있다. 최근, 필자가 일하는 호주 기독교 대학의 학생 중에 상담 실습을 하면서 어떤 한 분이 간증문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지금까지 아주 큰 문제가 있는 사람만 상담을 받는 줄 알았는데 자신이 상담을 받으면서 ‘이렇게 많은 도움이 될 지 기대하지 못했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자신도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에게도 상담이 도움이 많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기도 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늘 자신이 보던 방식대로 하던 방식대로만 일을 처리하고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가족 치료에서는 항상성 (Homeosis)이라고 하는 데 기존의 틀이나 시스템을 잘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는 특성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방식의 삶을 계속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주는 익숙함과 또 그것이 주는 유익 때문에 삶을 바꾸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상담이라고 하는 외부의 도움이 있을 때 변화가 훨씬 용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지속해서 아내를 학대하고 재정적인 면에서 자유를 하나도 주지 않을 때 이미 익숙해진 그 가정의 모습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편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 있고 아내도 희생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틀을 바꾸는 것은 마음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유가 없고 희생만 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아내는 결심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내는 그 삶을 바꾸어 나갈 수가 없다. 실질적으로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고 두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는 결국 외부의 도움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상담사나 사회 복지사의 도움 또는 기관의 도움을 통해 아내는 잃어버린 삶의 통제력을 되찾고 남편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외부의 공권력의 힘을 빌어서 잘못된 가정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일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변화를 시도하고 싶으나 혼자서는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힘들게 느껴질 때 심리 치료사들은 그런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내도록 도울 수 있다.
상담의 효과를 경험하고 삶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한 내담자들은 자신이 상담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상담을 받았다는 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자존심을 지키는 유익보다 상담을 통해서 변화된 자신의 삶의 유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상담을 권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신이 상담을 받고 너무 좋아서 동생을 소개하고 언니를 소개하는 사람들, 또는 배우자와 부모님을 소개하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그들은 우리 모두와 다른 사람이 전혀 아니며 그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경험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의 삶보다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행복하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찾아가기 위해서 상담을 받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다.
심리 교육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 중에 하나는 “사회성 기술 (Social Skills)”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람들과 관계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살아가는데 참 유익한 기술이다. 이 사회성 기술 안에는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법, 나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법, 타인에게 부탁을 하는 법, 그리고 타인이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는 법 등이 들어간다. 이 중에서 “타인에게 부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체면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 중에 타인에게 여간해서는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이런 분들은 가능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타인의 도움이나 지혜를 구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타인에게는 도움을 주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하고 정작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영역에서 머리를 꽁꽁 싸매고 고민을 하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다. 필자는 상담소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용기있는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긴다. 혼자서 자존심만 지키려는 것이 아니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는 것을 인정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도서에 재미있는 말이 있었다. 여자가 남자들보다 7년의 평균수명이 더 긴 이유가 남자들은 어려움이 생길 때 싸우거나 도망가는 반응을 하는 반면 여자들은 자녀를 키우는데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친구로 다가가는 반응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관계 중심의 선택을 하기에 더 오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호주 이민 사회에 2005년부터 상담 학교에서 한국인 상담사들을 배출하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 많은 경험 있는 상담사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이 상담사들은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또는 개인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민 사회에서 한국어로 상담할 수 있는 여러 장소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혼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크고 작은 문제에서 도움을 받고 정서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한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