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THE DIVIDE)
맷 타이비 저 / 이순희 역 / 열린책들 출판 / 2015.9.5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의 저자인 기자·언론 출신 맷 타이비는 미국의 ‘경찰단속 확대·실적화’, ‘이민자 구금시설의 민영·사업화’ 등의 예를들어 가난이 어떻게 죄가 되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골드먼삭스를 “인류에게 들러붙은 흡혈 오징어”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조직적인 사기로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금융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아무 처벌을 받지 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이 경미한 행위로 감옥에 가는 현실을 목도하며 이 책을 썼다. 그리고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최근 일어난 Black Lives Matter (블랙 라이브스 매터, BLM,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가 경찰의 한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이 원인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사법 불평등은 해묵은 숙제 중 하나로, 저자 타이비는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이 그리는 것은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책이지만 그 분석은 어느 국가나 누구에게든 유효하다.
타이비의 논지에 따르면 현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경제 논리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이른바 가진 자들의 죄를 찾는 일은 그만두고, 가난한 사람들의 온갖 시시한 위법 행위를 적발해 법의 철퇴를 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이 단순히 시스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가난을 자체로 범죄로 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저자 타이비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온전치 못한 사법 정의가 시스템이, 고착화된 제도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관료제에 찌든 사법 시스템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의로운 개인, 그러나 돈이 넉넉하지 않은 개인은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불공정한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든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다.
○ 저자 · 역자 소개
– 저자 : 맷 타이비
1970년생. 미국의 기자, 정치평론가, 칼럼리스트. 뉴욕 바드 칼리지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공부했다. 1997년 러시아에서 격주간 영자 신문을 작가인 마크 에임스와 공동 창간했고, 2002년 미국으로 돌아와 ‘네이션’ (The Nation), ‘뉴욕 프레스’ (New York Press) 등에 글을 썼다. 2005년에 ‘뉴욕 프레스’를 떠나 ‘롤링 스톤’ (Rolling Stone)의 공동 편집장이 되었다. 2009년 “The Great American Bubble Machine”이라는 칼럼에서 골드만 삭스를 ‘거대 흡혈 오징어’로 지칭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저서로 ‘거대한 혼란’ (The Great Derangement), ‘오 마이 갓! 뎀 아메리카’ (Griftopia) 등이 있다.
– 역자 : 이순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불평등의 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등 경제서와 ‘세계의 도서관’, ‘아프리카의 운명’, ‘제국의 미래’ 등 역사서, ‘행복의 정복’, ‘러셀 북경에 가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등 버트런드 러셀의 책 그리고 ‘희망의 불꽃’,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등을 옮겼다.
○ 목차 및 내용 요약
* 목차
서문
1장 뜻밖의 결과
2장 불심 검문
3장 길에 서 있으면 안 되는 사람
4장 사상 최대의 은행 강도 사건
5장 무자격 이민자들의 시련
6장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7장 잔챙이 사기범
8장 큰 사기범
9장 부수적 결과
감사의 글
역자 후기
* 내용 요약
– 서문
무학 (無學)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스트의 계좌 개설과 관리를 도와준 대졸 학력자 중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미국 법무부가 대형 금융회사를 형사기소를 하거나 형사처분을 할 경우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아예 기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때 쓰는 말 ‘부수적 결과’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 나온다. 이것은 현 미국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작성한 회람문에 등장한 문구다. 그리고 현재 미국 법무부가 대형 금융 회사를 형사 기소를 하거나 형사 처분을 할 경우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아예 기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때 쓰는 말이다.
미국은 법치국가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수천 가지의 불공평한 조치를 이용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현란하고 고약한 관료주의가 숨어 있다.
거대 악 앞에서 ‘부수적 결과’ 방침으로 관대한 처벌을 내리지만, 가난한 피고인들에게 유죄선언을 내리는 것은 신속한 관행을 유지한다.
– 1장 뜻밖의 결과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유리가 깨진 자동차를 그대로 두었더니 점점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 이 이론으로 미국에서는 경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욱 강화되었다. 작은 범죄부터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큰 범죄를 예방한다는 논리다. 대형범죄에 비해 생활범죄 혹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범죄를 일으킨 일반 서민들에 대한 처벌의 빈도는 크게 늘어났다. 문제는 생활적 어려움으로 범죄를 일으킨 빈민층은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도 처벌에 대응할 능력조차 없다. 결과로 감옥은 넘쳐난다.
“부수적 결과 이론의 창설자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새로운 혁명의 포문을 열었음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강력한 후원속에서 미국민들을 체포할 수 있는 계급과 체포할 수 없는 계급으로 가르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p.54)
– 2장 불심 검문
마약복용 혐의가 있는 토리는 저녁시간 입장이 끝난 부둣가 벤치에서 노숙하다 불심 검문을 당해 법원출석요구서를 받을 상황에 놓였다. 그는 법원에 출석하면 범칙금 200불을 내야하는데 돈이 없어 체포영장이 떨어질 거고, 그 길로 도망자 신세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어 항의하다 체포됐다. 경관들은 토리를 순찰차에 태우고 당장 유치장에 넣었다. 이후 법원 출석일을 알려준 뒤 풀어줬으나 한달 뒤 토리는 정해진 법원 출석일을 챙기지 못해 뉴욕시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넉 달을 복역하고 나온 토리는 다시 불심 검문에 걸려 마약을 소지한 것이 발각돼 다시 구치소 신세를 져야 했다. 토리는 공무방해죄로 1500불의 보석금, 대마초 관련 1000불의 보석금을 결정했는데, 판사가 100만 달러를 내렸어도 상관없을 터였다. 토리는 어차피 무일푼이니까… 며칠 뒤 판사는 토리에게 구치소가 아닌 교도소 수감형을 선고했다. 토리는 이제 상습범이 됐다.
한편 HSBC은행은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마약조직들을 위해서 수십억 달러의 자금 세탁, 중동의 테러리스트 연계 조직들을 위한 자금세탁, 여행자 수표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러시아 폭력조직의 대규모 자금세탁을 도와준 사실, 그 외 무기명 계좌를 이용해서 수억 달러를 은닉하도록 도와준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정부는 19억불의 벌금납부와 최고경영자의 사과만을 받았다. 누구도 기소되거나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렇게 썼다. “은행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진짜 처벌을 받는 걸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변명은 법정에서는 안 통한다. 하지만 HSBC 자금 세탁 사건에서 미국 규제 기관은 이 변명을 만족스러운 답변으로 받아들였다. … 앞으론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 기업들을 이렇게 부르자. ‘면책’이라고.“ (p.100)
비슷한 경우로 월스트리트에서 금리조작 사건이 있었다. 수사 후 발표는 금리조작 금융기관에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클린턴 시절 법무 장관) 홀더가 설명했다. “우리는 법무부 밖의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우리가 취하는 조치가 미칠 파급력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금융 기관에 대해서 기소 결정이나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경우 어떤 파급력이 있을까 논의하는 겁니다.” 기자들은 놀라서 말을 잃은 채 홀더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의 법무부 장관이 회견장을 가득 메운 기자들 앞에서 월스트리트를 기소하기 전에 월스트리트에 자문을 구했노라고 시인한 것이다. (p.104)
저자는 “… 두 가지 방법이 나란히 병존하는 세계는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다. … 여기에 ‘불공정’과 ‘불평등’ 같은 흔한 정치적인 표현조차 쓸 수 없다. 그저 난장판 속에서 광기로 치닫는 미친 세상을 뿐이다.”라고 일갈한다.
– 3장 길에 서 있으면 안 되는 사람
1980년대 뉴욕은 인종갈등과 사회불안이 심하기로 손꼽히는 지역이었다. 이런 일들을 잘 알지 못하는 1977년생 평범한 소년 앤드류는 이곳 일명 ‘범죄취약지역’에 산다. 어머니가 마약중독으로 누나와 앤드류는 이모에게 양육권이 맡겨져 자랐다. 자라며 사촌형에게 타박을 받기도 했다. 그는 주차장에 버려진 차를 부수다 경찰에게 잡혀 집으로 보내지기도, 장난감 총을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걸려 무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기도, 강도사건에 연류되어 풀려나기도 했다. 그후 여러 폭행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를 반복하고, 총기와 폭력사건으로 얼룩져 체포되고 수감생활이 반복됐다.
사실 1990년대 초기는 범죄가 줄어드는 시기였으나 전산 시스템이 도입된 덕분에 사소한 과실에 딱지를 떼는 방대한 업무가 이뤄졌다. 경관과 길을 걸어가는 십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방대한 정보 수집 시스템에 입력되고, 이 시스템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이력을 추적하는 성과를 올리면서 더욱 날쌔고 막강한 무기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 불심 검문 제도가 도입됐다. 90년대 이 제도로 모든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불심 검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치안 자동화 시스템이었고, 이 시스템은 경관들에게 마치 기업형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 마냥 도시의 모든 블록에 촘촘한 그물을 치고 동네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일 것을 장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의 모든 경찰이 범죄 분석 예측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범죄가 줄어드니 실적을 쌓을 기회가 없어 고민이 생겼다. 그 답으로 아무튼 체포건수를 늘렸다.
당시 앤드류는 거리를 걷다 경찰소리에 놀라 걸음을 재촉하면 검문대상이 되었다. 반항하면 수갑이 채워졌다. 단순히 경찰이 목격했다는 것만으로 채포되어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앤드류에게서 마약을 봤다는 것만으로 체포되고 이전처럼 훈방되지 않았다.
“통행 방해 조항이 마련된 취지는 고의로 자동차의 통행이나 인도에서 보행자의 통행을 가로막는 사람을 제재하거나 시위 등의 행동에 나선 군중을 제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이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대상은 화요일 밤에 길에 나다니는 흑인이다.” (p.150)
“하지만 백인들도 어딘가에는 살지요. 그런데 백인들을 보행자 통행 방해로 체포하는 경관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 그거야 그런 동네는 범죄가 없는 곳이니까 그렇죠. 그런 곳에선 범죄가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브루클린 방향을 가리켰다. “천한 사람들이 천한 행동을 하는 거죠.” (p.161)
“대형 은행들은 범법 행위를 하다 적발이 되어도 기껏해야 거액의 과징금만 내면 그만이다. 감옥에 갈 일은 없고 돈만 내면 그만인데, 그 돈마저도 범법 행위를 저지른 개인이 아니라 그 회사 주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경찰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침이 적용된다. 경찰이 부당한 체포를 했을 때 부과되는 합의금은 납세자 부담으로 지불되고 해당 경관 본인에게는 이런 사실이 통지조차 되지 않는다. 그 경관은 한 푼도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러니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p.192)
– 4장 사상 최대의 은행 강도 사건
“구제 금융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암울한 현실로 나타나자, 리먼은 결국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 풀드가 물러남과 동시에 기사회생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래가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저돌적인 위험 추구형 금융권의 노련한 베테랑들은 최후 전술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직접 자신들의 회사를 털어먹는 강도짓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p.222)
리먼 파산과 리보 사태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의 법 집행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연준과 증권거래 위원회 등의 핵심 감독 기관들은 이 두 회사 내부에 무서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1) 범죄 수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2)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정부는 다른 은행들에게 리먼 같은 기업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경고하거나, 리먼 파한으로 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국고를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서민들은 언제나 봉이다. 사법정의도, 구제금융도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 5장 무자격 이민자들의 시련
콜롬비아 태생 알바로는 10여년전 미국으로 와서 케인즈빌 인근 홀카운티지역에서 건축일을 잡았다. 그는 1999년 아내와 관광비자로 미국에 와 면허를 취득했으나 만려일을 넘기고 가짜 면허증을 사용하다 들통이 났다. 이 일로 멕시코인 신분으로 이민자추방 시스템에 빨려들어갔다. 그는 구덩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이민자 민간 교도소로 이송됐다. 이때 이민자 민간교도소 사업의 수익은 올라갔고 2011년에는 미국 전역 민영교정시설의 총수익은 50억 달러를 넘어섰다. 남미계인들을 수감하는 교정시설사업은 정치적 이득과 경제적 이윤 두 가지를 동시에 총족했다. 이 시기에 인종차별적인 단속방법들이 합법화 (1070법안, HB87법안) 됐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구금시설들이 들어섰고, 정치인들은 이민자에 대한 강경한 단속에 찬성하고 나섰다. 심지어 방송국에서도 구금시설 관리인력을 모집할 정도였다. 이제 불법이민자 단속은 거대 산업이 된 것이다. 골칫거리 이민자들이 황금알을 낳는 것으로 둔갑했다.
체포 구금된 알바로는 교도소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늑한 시설에서 체커도하고, 축구도하고, 농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교도소는 위험한데 이민자 구금시설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하지만 알바로는 곧 깨달았다.
“알바로는 제타스가 단순한 사업 모델로 운영된다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이민자들에게는 대부분 미국에 남아 있는 친척들이 있고, 이 친척들 중에는 멕시코에 남겨 두고 온 아끼는 친척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돈을 모아둔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훤히 꿰뚫고 있는 제타스로서는 미국에서 추방된 사람들은 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이나 다름없었다.” (p.305)
– 6장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세계적 금융 범죄는 도처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 장소를 특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주요한 연방 감독 기관이 관할권을 주장하지 않는 이상, 피고측 변호사는 관할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의뢰인에 대한 공소기각 결정을 따낼 수 있다. 바로 이런 일이 페어팩스사건에서 일어났다.
페어팩스의 소송과정은 여러 해에 걸쳐서 진행되는 끝도 없는 서류 작업속에서 모든 것이 파묻혀 갔다. 감독기관은 사소한 문제를 미주알고주알 들먹이면서 용의자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수 있는 원고의 권리를 침해했고, 법원 역시 마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처벌을 부과하는 것을 피했다. 피고측 변호사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이 사건 자체를 땅속에 파묻었다.
– 7장 잔챙이 사기범
“조랜드는 샌디에이고 카운티를 상대로 P100 프로그램의 위법성을 따지는 집단 소송에 가담했을 때, 카운티 측의 변호사로부터 다시 한 번 칫솔 두 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조랜드의 말이다. “그 사람이 이렇게 묻더군요. ‘왜 칫솔을 두 개나 씁니까?’ 전 바로 맞받아쳤죠. ‘나도 하나 물어볼게요. 그러는 당신은 칫솔을 몇 개나 씁니까?’그랬더니 그 사람이 ‘좋아요. 그 질문은 넘어 갑시다’라고 하더군요.” (p.419)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법률적 지뢰가 묻힌 지뢰밭이다. 공적 부조를 받는 가난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사기가 될 수 있다. 성관계를 하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고, 병이 나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고, 자식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다. ‘가난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다.” (p.432)
빈민 계층의 사람들은 경찰국가로 몰아넣으면서 월스트리트 갑부들은 아무런 규제가 없는 자유방임지대에서 날뛰게 놓아두었다. 샌디에고에서는 1달러를 속이는 건 범죄이지만, 월스트리트에서 1백만 달러를 속이는 건 그냥 훌륭한 사업수완일 뿐이다.
– 8장 큰 사기범
“문제는 법률이 오랜 기간 동안 불평등하게 적용될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법률을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불법이 된다는 데 있다. 모든 종류의 체포가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 또한 도덕적으로도 강제력이 없는 것이 된다.” (p.495)
은행들은 대규모 단위로, 그것도 드러내놓고 사기행각을 벌인다. 이 일을 담당하는 독립 수러를 만들어 놓고 직원들을 고용해서 몇 년이고 그 일에만 매달리게 한다. 복지급여를 받는 미혼모들은 한 번만 거짓말을 해도 철창 시넷를 질 수 있지만, 이들은 거짓말을 수천, 수만 번 되풀이해도 절대로 기소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은 본질을 따지면, 조직적, 체계적인 이윤 우구 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대우를 받는다. 정부는 어쩌다 이런 범죄를 인지하는 경우에도 매력적인 O. J. 심슨에게 살린 혐의를 두는 만용을 부린 걸 사과했던 마샤 클라크와 크리스 다든 검사처럼 고개를 깊숙이 조아릴 뿐이다.
– 9장 부수적 결과
“2008년 경제 위기가 터지자, 연방 정부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연구할 목적으로 금융 위기 조사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위원회에 책정된 예산은 980만 달러였다. 이 위원회의 필 엔젤리데스 위원장은 이 금액이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월스트리트’에 투입된 예산의 7분의 1 남짓이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같은 해에 연방 마약 단속국의 예산은 130억 2750만 달러에서 150억 2780만 달러로 증가했다.” (p.528)
연방 판사의 ‘불심 검문 위헌’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그 관행이 당장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사법 제도는 존재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 맺는 말
저자는 현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경제 논리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지적하고, 그 예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가난을 자체로 범죄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한편으로는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격렬한 증오가,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비굴한 숭배가 넘쳐난다. 저자는 이런 원인을 “관료제”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누가 감옥에 가고 왜 가는 지 묻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한다. ‘빈곤이 심해진다. 범죄는 줄어든다.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난다.’ 이런 모순적 통계가 말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범죄는 줄었는데 수감 인구는 늘었다. 그리고 그 수감자의 상당수는 가난한 이들이고, 특히 유색인종이 많다. 저자는 경미한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놀라울 정도로 가혹하다고 지적하며 가난이 가중 처벌을 불러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누가 감옥에 가지 않는 지도 지적한다. 지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 부의 40퍼센트를 날려 버린 금융계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의 대가로 감옥에 수감된 금융 회사 고위 임원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반면 복지 급여 몇백 달러를 부정 수급한 자를 잡겠다고 해마다 2만 6천 가구를 수색하고 있다.
유산층과 무산층,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진 사회에서 패자들은 갈수록 수적으로 줄어드는 승자 계층에 깔린 채 목숨을 부지해야 하지만, 승자들 역시 그 자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시대 · 미친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든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에 늘 시달리게 된다.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 이 이야기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일까?
임운규 (시드니시나브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