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10월 첫 모임 ‘침묵’(엔도 슈사쿠) 발제
다음모임은 10월 25일(금), 중고서적 기증과 구입도 환영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오후 5시 30분 모임을 갖는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지도 구본영 교수)가 10월 첫 모임을 10월 11일(금) 오후 5시 30분, 호주한인교회(62 The Boulevarde, Strathfield)에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발제·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 발제한 전현구 목사(시드니조은교회)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발제하며 서론부에 “어떤 주어진 이야기 속에서 어떤 존재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면,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침묵’은 말의 하나인 존재양식으로서 ‘어떤 사항에 대해 타자를 향해 명확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고. 에우리피데스도 ‘침묵은 참된 지혜의 최상의 응답이다’이라고 했듯이, 소설 ‘침묵’에서 보여주는 침묵의 근원은 무엇이고, 어떤 존재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침묵’의 줄거리 요약, 독서 후기 등을 이어 갔다.
‘침묵’ 줄거리 요약
소설속에 등장한 인물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기치지로다. 로드리고와 가루페 신부가 중국 마카오에서 찾아낸 일본인이다. 당시 그는 알콜 중독으로 인해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나약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의심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 불안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기치지로는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받아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도착한 두 신부는 한편으로 기치지로를 의지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의심하면서 잠행을 시작한다. 기치지로는 나가사키의 도모기 마을의 지하 교인들과 두 신부를 연결해 주면서 서서히 신뢰를 얻어간다. 그 마을 사람들은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암호를 통해 비밀리에 소통하면서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신부의 방문을 열렬하게 반긴다. 그 상황에서 기치지로는 영웅처럼 행세한다.
며칠 후, 8년 전에 배교한 기치지로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고해를 하면서 과거를 고백한다. 형과 누이는 후미에 즉 성화 밟기를 거부했지만 기치지로는 겁에 질려 성화를 밟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형과 누이는 투옥되었고, 기치지로는 그 날로 마을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형과 누이가 화형에 처해지던 날 기치지로는 지독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황하다가 마침내 마카오까지 간 것이다. 한 동안 두 신부는 마을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중에 마을에 믿는 이들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가 일본관원들이 마을을 검열하기 시작한다.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자 관리들은 세 사람을 인질로 뽑으라고 말한다. 마을 사람 전체에 대한 본보기로 세 사람에게 고문을 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장로 역할을 하던 모키치와 또 다른 신도 이치소우가 나선다. 이때 공교롭게도 기치지로가 등 떠밀려 인질이 된다.
스스로 순교의 길을 선택한 모키치와 이치소우는 바다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장렬하게 죽는다. 반면, 기치지로는 또 다시 배교하고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그는 수치심에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 일이 있은 후, 두 신부는 같이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갈라져서 각기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다. 로드리고는 피신한 곳에서 기치지로를 다시 만난다. 기치지로가 숨어서 보고 있다가 로드리고를 따라온 것이다.
그 때 로드리고는 기치지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지켜보며 가룟 유다에 대한 주님의 감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그는 한 편으로는 경멸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연민을 가지고 기치지로를 대한다. 기치지로는 장렬하게 순교 당한 모키치와 이치소우를 생각하며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키치는 강해요. 논에 심은 강한 모종처럼 강하지요. 하지만 약한 모종은 아무리 비료를 주어도 자라지 못하고 나쁜 열매조차 맺지 못하지요. 저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약한 자는 말입니다. 신부님, 저는 이 약한 모종과 같은 자입니다.”(121-22쪽) 이 때 로드리고는 심신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치지로에 대한 경멸의 감정은 점점 약해지고 연민의 감정이 더 커진다. 그래서 그는 선교 본부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용렬한 자. 그래서 강한 자는 이와 같이 박해받는 시대에도 신앙 때문에 불에 태워지고 바다에 던져져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쪽 인간이냐?’ 만약 사제라는 자존심이나 의무감이 없다면 저 또한 기치지로와 똑같이 성화를 밟았을지도 모릅니다.”(122-23쪽)
그렇게 생각하며 로드리고는 기치지로의 죄를 사해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들이 들이닥친다. 기치지로가 당국에 밀고한 것이다. 로드리고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환멸감을 맛보게 된다. 체포된 신부는 그 이후로 박해자 이노우에와 그의 통역관으로부터 집요한 회유와 세뇌와 협박을 받는다. 그들이 노리는 목표는 신부가 배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제의 배교는 일반 신도들의 믿음의 의기를 단번에 꺾어 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에 그 감옥으로 기치지로가 또 찾아온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자수하고 감옥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신부에게 고백을 들어 달라고 청한다. 기치지로는 이미 여러 번 배교한 사람이다. 자신을 당국에 밀고하여 잡히게 한 것도 그 사람이었다. 정말 대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제로서의 의무감에 그는 마지못해 고백을 들어준다. 그 때 기치지로는 이렇게 말다. “저는 성화를 밟았습니다. 네, 밟고 말고요. 모키치나 이치소우는 강하지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 못한 걸 어쩝니까? 그렇지만 저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 말고요.”(177쪽).
그 고백에 신부는 마지못해 그냥 형식적으로 기도해 주지만, 며칠 되지도 않아서 또 다시 후미에를 밟는다. 그렇게 사라지고는 얼마 지나 신부의 감옥으로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는 그는 이야기 속에서 잠시 사라진다. 그가 다시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것은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한 다음의 일이었다.
엔도는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소설의 마지막에 ‘기리시단 주재원 관리인의 일기’를 덧붙여 놓았다. 이 부분이 영어 번역본에는 ‘appendix’로 처리되어 있는데, 우리 말 번역본에는 빠져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엔도는 이 부분을 소설의 결론으로 삼아 공들여 썼다고 한다.
다행히도 최근에 김승철 교수가 이 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했다(‘침묵의 소리’, 40-63쪽,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23-48쪽).
그 일기에 보면, 배교자가 된 이후로 신부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 때 기치지로가 신부에게 다시 찾아왔고, 오카타 산에몬이라는 이름의 신부는 하인으로 그를 받아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기치지로는 신부에게 자신의 죄 고백을 들어 달라고 청한다. 배교한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신부가 비록 배교했지만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산에몬은 자신은 더 이상 사제가 아니라고 사양하지만 결국 그의 청을 들어준다. 거듭 고해를 들어주었지만 거듭 배교했던 그를 위해 신부는 또 한 번 용서를 빌어 준다. 신부는 자신도 배교한 상태이기에 누구를 정죄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아마도 자포자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얼마 후에 그 사실이 밝혀진다. 매년 초에 정기적으로 행하는 배교 의식을 하던 중에 그의 품에 숨겨져 있던 성화가 발견되었다. 관리들은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취조를 한다. 전 같았으면 겁에 질려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 내어 살아남기를 꾀했던 기치지로가 이번에는 이상하리만큼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순교의 자리로 끌려간다. 기치지로는 비열함과 비겁함과 연약함의 극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엔도는 이러한 인물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 했던 것 같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치를 떨며 그를 경멸한다. 그러다가는 로드리고 신부처럼 독자들도 자기 자신 안에도 기치지로가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그 때, 기치지로는 마침내 진정한 회심에 이르고 또한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간다. 자신 안에서 기치지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두려워 떨었던 독자는 이 지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기치지로 같은 사람이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면 독자들은 더욱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는 기치지로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가룟 유다를 생각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빵을 떼어 주면서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요 13:27) 하고 말씀하신다. 로드리고는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헤아려 본다. 노여움과 증오심으로 하신 말씀일까? 주님께서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 했다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랬다면 주님은 왜 유다의 배반을 막지 않고 그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로드리고는 나중에서야 기치지로를 통해 가룟 유다에 대한 연민이 그 말씀 속에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신부는 기치지로를 위해 기도해 주면서도 연약함 때문에 또 다시 배교할 것을 예감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경멸스러웠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연민의 마음이 커져갔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인데 어찌하겠는가?. 신부는 주님께서도 유다를 보고 같은 심정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어찌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고 말하신 것이다. 그의 배신을 아시고 허락하신 것이다.
그제서야 신부는 ‘후미에’ 앞에 섰을 주님께서 밟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아신 것이다. 그와 함께 왔던 가루페 신부는 천성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은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아셨기에 주님께서는 로드리고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엔도는 로드리고와 기치지로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로드리고가 후미에를 밟는 대목에서 엔도는 이렇게 써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267쪽)
독서 후기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년 3월 27일~1996년 9월 29일)는 일본작가로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유년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주로 생활을 했고 12세때 천주교 세례를 받는다. 1941년 죠치 대학(上智大学) 예과(予科)에 입학, 재학중 동인지 죠치(上智) 제1호에 평론 ‘형이상학적 신, 종교적인 신’을 발표하였다.
1942년에 죠치 대학을 중퇴하고, 게이오기주쿠 대학(慶應義塾大学)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한 뒤인 1950년에 프랑스로 유학했으며 귀국한 뒤 비평가로써 활동했고, 1955년 발표한 소설 ‘하얀 사람’이 아쿠타가와 상(芥川賞)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써 두각을 보였다. 그리고 기독교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집필하였으며, 대표작으로 ‘바다와 독약’(海と毒薬), ‘침묵’(沈黙), ‘사무라이’(侍), ‘깊은 강’(深い河) 등이 있다
일본 막부시대 천주교도의 탄압을 다룬 기독교 소설인 ‘침묵’(1966)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문학인 천로역전처럼 기독교의 교리와 사상을 옹호하는 호교론이 아닌, 1) 이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2) 왜 고통받는 백성들을 외면하는 하나님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하는가? 3) 왜 의지가 박약하여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없는 기독교인을 배교자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예수회 선교사인 로드리고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면서도 억지로 답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면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서사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잠입/발각/고문/배교로 요약되는 줄거리는 박해 현장에서 경험하는 로드리고에 대한 심층적인 내면 묘사와 함께 전개된다. 로드리고는 무고한 신자들이 심각한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동일한 질문을 반복한다.
“주여, 당신은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까?”(p145)
견디기 힘든 최악의 상황과 하나님의 침묵이 교차하는 가운데 로드리고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발로 밟지 않으면 신도들이 고문을 당하는 딜레마 속에 빠지게 된다. 로드리고는 성화를 밟지 않는 것이 믿음의 행위이자 순교와 다름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러나 그는 최후의 순간에 성화 속의 예수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성화를 밟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p267)
소설은 결국 로드리고는 “자신이 싸운 것이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였다는 걸”(p286) 깨닫고 그 싸움의 결말에서 로드리고는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p293)
결론부에서 “이 소설에서 조화롭게 잘 구성된 두개의 기둥은 갈등하며 고통받는 배교자 신앙과 여기에 냉정하게 침묵하시는 하나님 사이의 긴장관계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침묵’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로 주인공 로드리고의 배교는 단순한 배교가 아니라 전통적인 신앙인의 ‘형식’에 반대하는 배교였다. 교회라는 집단 공통체에서 신부라는 사회적 종교적 직분이 주어진 명분과 대의까지 버리고, 순교라는 신앙의 마지막 숭고한 이상까지 뒤로하고 현실적으로 눈앞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 로드리고에는 새로운 신앙의 지평을 여는 예수의 길이었다. 둘째로 엔도 슈사쿠는 기독교가 숭고한 순교자뿐만 아니라 약자의 신앙인 배교자도 신앙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Dl 소설 속에는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순교자가 선(善)이고 배교자는 악(惡)이라는 도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김응교 ‘그늘’, p389). 셋째로 엔도는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p293) ‘…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p295) 엔도 슈사쿠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욥기의 주제처럼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과 아품에 침묵하지 않고 인간의 실패한 삶에도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즉 엔도에게 있어서 신앙인의 인생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이고 말씀이다. 로드리고와 기치지로의 상반된 인생의 삶들이었지만 공통점은 마지막 순교로 하나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침묵’은 ‘침묵의 소리’로 하나님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침묵 속의 소리’를 듣는 것이 진정한 침묵이다.”라고 마무리 했다.
발제를 마친 후 1) 침묵을 상황윤리 입장에서 토론해보자! 2) 일제 강점기때 종교 탄압이었던 신사참배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3) 영화 미션에서 두 신부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4) 오늘날 순교란 어떤 의미인가?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의 다음모임은 오는 10월 25일(금) 오후 5시 30분, 호주한인교회(62 The Boulevarde, Strathfield)에서 모인다.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안내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주1회 장별로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금요일 오후 5시 30분(다과 제공)에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0415 706 784)나 이메일(kbymb@hanmail.net)로 문의하면 된다.
또한 ‘시드니 시나브로’는 도서기증을 환영한다. 또한 시나브로의 총무 임기호 목사는 스트라스필드 지역에서 중고책방도 운영해 해외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책자를 저가에 구입하도록 돕는다. 도서기증이나 중고서적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아래의 문의처로 연락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 10월 모임 및 중고도서 기증·구입 안내
일시: 2019년 10월 11일(금), 25일(금) 오후 5시 30분
장소: 호주한인교회(62 The Boulevarde, Strathfield)
모임: 매월 2, 4주째 금요일 오후 5시 30분(다과 제공)
문의: 아래와 같음
.지도 구본영 교수(0415 706 784, kbymb@hanmail.net)
.총무 임기호 목사(0414 228 660, kiholim72@gmail.com, 중고서적 기증·구입 문의)
.간사 임운규 목사(0425 050 013, woon153@daum.net)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