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6월 모임에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나눠 [발제전문 포함]
6월 모임은 6월 9일과 23일 (수, 오후 5시), 중고서적 기증과 구입도 환영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모임을 갖는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가 6월 모임을 지난 9일 (수) 온라인으로 가졌다.
6월 9일 (수) 모임은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구미정 지음 / 도서출판 옥당 / 2012)을 김환기 사관의 발제로 나눴다.
이날 김환기 사관은 독서발제하며 서론부에 “신학교에서 ‘여성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남자가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자란 내가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래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가르치기 전에 배우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르치고 나서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여성과 남성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와 여성은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라고 말했다. 출신이 다른 존재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인 차이 뿐 아니라, 생각도 다르고, 뇌 구조도 다르고, 말하는 기술도 다르고, 평균 수명도 다르고, 심지어 쇼핑하는 방법도 다르다. 남자는 꼭 필요한 10불짜리 물건을 20불 주고 사오고, 여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20불짜리 물건을 10불 주고 사온다. 여자는 결혼할 때까지만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 미래를 걱정한다. 결혼한 남자가 독신으로 사는 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결혼한 남자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말다툼에서든 여자가 항상 마지막 발언을 해야 한다. 그 마지막 발언에 남자가 한마디라도 덧붙이면 또 다른 말다툼이 시작된다. 여자는 결혼 후 남자가 변하길 바라지만 남자는 결코 변하지 않고, 남자는 결혼 후 여자가 변하지 않길 바라지만 여자는 반드시 변한다. 여성은 감성적으로 사랑받기 원하지만, 남성은 이성적으로 이해 받기 원한다. 그래서 남녀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리면 서로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여자가 행복하려면 남자를 조금 사랑하더라도 많이 이해해 주어야하고, 남자가 행복하려면 여자를 많이 사랑하고, 절대 그녀를 이해하려해선 안 된다.”라며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이다.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한 명의 여인들은 성경 속 남성 영웅들에 비해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성경 시대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른 위대한 리더들이다. 지면 관계성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고 인류를 역사시대로 이끌어낸 이브에서 시작하여, 히브리 노예 해방의 공동 주역이었던 미리암, 태평성대의 시대를 일군 사사 드보라 그리고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연 마리아를 소개하려고 한다. 저자 구미정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같아, ‘생태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논문으로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태여성주의는 한마디로 생태학과 여성학 양쪽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사상 체계다. 산에는 온갖 존재가 어우러져 산다. 키 큰 나무는 키 큰 나무대로, 키 작은 나무는 키 작은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고 자란다. 자연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도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다.”고 했다.
결론부에서는 “요즘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할 때 ‘생물학적 성’인 ‘Sex’라는 단어 대신 ‘사회문화적 성’인 ‘Gender’를 쓴다.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동등함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만들었다. 목회자 기도회 때에 내가 집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고 사모들이 조금 놀래는 것이다. 신혼 때부터 서로가 존댓말을 썼기에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사모 중 한 분이, 목사가 사모에게 존댓말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저 존댓말 쓰지 않으면 맞아요!’ ”라며 즐겁게 마무리 했다.
한편 시드니시나브로 다음 6월 다음모임은 23일(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안내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주1회 장별로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에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15 706 784)나 이메일(kbymb@hanmail.net)로 문의하면 된다.
‘시드니 시나브로’는 도서기증을 환영한다. 또한 중고책방 (이스트우드 하모니센터)도 운영해 해외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책자를 저가에 구입하도록 돕는다. 도서기증이나 중고서적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아래의 문의처로 연락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1년 6월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6월 모임은 6월 9일(수), 23일(수)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15 706 784, kbymb@hanmail.net)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kiholim72@gmail.com, 중고서적 기증·구입 문의)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woon153@daum.net)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6월 9일 발제 전문)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구미정 지음 / 도서출판 옥당 / 2012
신학교에서 ‘여성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남자가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자란 내가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래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가르치기 전에 배우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르치고 나서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여성과 남성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와 여성은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라고 말했다. 출신이 다른 존재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인 차이 뿐 아니라, 생각도 다르고, 뇌 구조도 다르고, 말하는 기술도 다르고, 평균 수명도 다르고, 심지어 쇼핑하는 방법도 다르다.
남자는 꼭 필요한 10불짜리 물건을 20불 주고 사오고, 여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20불짜리 물건을 10불 주고 사온다. 여자는 결혼할 때까지만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 미래를 걱정한다. 결혼한 남자가 독신으로 사는 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결혼한 남자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말다툼에서든 여자가 항상 마지막 발언을 해야 한다. 그 마지막 발언에 남자가 한마디라도 덧붙이면 또 다른 말다툼이 시작된다. 여자는 결혼 후 남자가 변하길 바라지만 남자는 결코 변하지 않고, 남자는 결혼 후 여자가 변하지 않길 바라지만 여자는 반드시 변한다. 여성은 감성적으로 사랑받기 원하지만, 남성은 이성적으로 이해 받기 원한다. 그래서 남녀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리면 서로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여자가 행복하려면 남자를 조금 사랑하더라도 많이 이해해 주어야하고, 남자가 행복하려면 여자를 많이 사랑하고, 절대 그녀를 이해하려해선 안 된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이다.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한 명의 여인들은 성경 속 남성 영웅들에 비해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성경 시대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른 위대한 리더들이다. 지면 관계성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고 인류를 역사시대로 이끌어낸 이브에서 시작하여, 히브리 노예 해방의 공동 주역이었던 미리암, 태평성대의 시대를 일군 사사 드보라 그리고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연 마리아를 소개하려고 한다.
저자 구미정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같아, ‘생태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논문으로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태여성주의는 한마디로 생태학과 여성학 양쪽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사상 체계다. 산에는 온갖 존재가 어우러져 산다. 키 큰 나무는 키 큰 나무대로, 키 작은 나무는 키 작은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고 자란다. 자연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도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다.
1. 이브(Eve)
아담이 재혼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창세기 1장과 2장이 적절히 혼합된 유대교 전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과 릴리스를 똑같이 흙으로 지으셨다고 한다. 그들은 한시도 평화롭게 살지 못했다. 릴리스가 아담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당신과 동등해” 아담이 힘을 써서 릴리스를 복종시키려고 하자 화가 난 릴리스가 아담을 버리고 에덴동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담이 하나님께 하소연하자, 하나님은 릴리스를 벌하고 아담에게 적합한 짝을 만들어 주었다. 이번에는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지으셨다. 아담은 이브를 보고 순간, 탄성을 질렀다. “내 뼈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구나”(창2:23) 갈비뼈는 연대성과 동등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의 심상 속에서 갈비뼈는 별다른 해석의 여지없이 곧장 종속성내지 열등성의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창세기 2:28절의 ‘돕는 베필’에서 돕는 이란 단어는 ‘에제르(Ezer)’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미국 사관학교 도서관에서이다. 구약에 ‘에제르’란 단어가 20여 차례 나온다. 에제르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울 때 사용된다. 임금이 신하를 도울 때,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도울 때, 가끔 비슷한 사람을 도울 때도 사용이 된다. ‘에제르’라는 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 그러나 ‘나서기’ 위한 강함이 아니라 ‘돕기’ 위한 강함이다.
이브(Eve)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창세기 3장 20절이다. 그전까지 줄곧 여자로 불리던 그녀는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출산의 고통을 떠안게 되고, 아담에 의해 비로소 새 이름을 얻는다. 이브는 히브리어 ‘하와'(Hawwah)를 헬라어로 옮긴 것인데, 하와는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야에서 파생된 말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3:20)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들 때 ‘아다마'(Adamah)로 ‘아담'(Adam)을 만들었다.(창2:7) 아다마는 ‘흙’이고,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다. 처음에는 일반명사였던 ‘아담’이 후에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2. 미리암 (Miriam)
성경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사람을 아는가? 미리암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미리 안다. 출애굽의 핵심 인물은 모세다. 모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인복 중에도 특히 여복을 타고 났음을 알 수 있다. 모세 주변의 여인들은 모세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용케 등장하여 그를 살려주었다. 또 그가 위대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치유하며 양육하였다. 여성이 없는 모세는 상상할 수도 없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히브리 산파 십보라와 부아의 불복종으로 모세는 위기를 넘긴다. 석 달이 지나고 더 이상 아이를 숨길 수 없자, 어머니 요게벳은 갈 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로 흘려보낸다. 누나인 미리암은 갈 상자를 따라가다 이집트 공주가 아이를 건지는 것을 보고, 공주에게 접근하여 그녀에게 유모를 소개하여 준다고 하고 어머니인 요게벳을 소개하여 주었다. 요게벳은 친자식을 돈 받으며 키웠다.
모세는 40년은 애굽의 왕자, 40년은 미디안의 목동으로 있었다. 그가 80세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애굽의 자기 백성을 구할 것을 명령했다. 10번의 재앙 끝에 모세는 백성들을 데리고 홍해 바다를 건넌 다음에 비로소 미리암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모세의 찬양에서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고 나선다. 그러자 모든 여인이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함께 군무를 추며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출15:21)라고 노래했다. 광야에 울려 퍼지는 여인들의 노래, 이 대목에서 성경 기록자가 미리암을 일컬어 “아론의 누이요 예언자”(출15:20)라고 소개한다. 그녀에게 최초의 여성 예언자이다. 미리암 외에도 성경에는 몇 명의 여성 예언자가 있다. 기원전 12세기에 활동한 여성 사사 드보라(삿4-5장), 기원전 7세기에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이끈 훌다(왕상22:14) 등이다.
출애굽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미리암은 민수기 12장에 모세를 비방했다가 문둥병에 걸린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는데, 미리암와 아론을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를 비방하였다”(민12:1) 구스란 에티오피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미리암과 아론은 출애굽한 광야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인 모세가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 옳지 않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이름의 순서가 아론과 미리암이 아니라, 미리암과 아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이다.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다. 아론이 모세에게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그 병이 나았다.(민12:11-13) “백성은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군을 하지 않았다.”(민12:15)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부병 때문에 7일 동안 진 밖에 격리된 미리암과 연대하고 있다. 미리암을 버려 두고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3. 드보라 (Deborah)
딸아이의 영어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 선배 사관이 ‘드보라’로 지으라고 했다. 드보라는 너무 강한 느낌이 들어, 사관학교 동기 중에 착하고 아름다운 ‘Lisa’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드보라는 여 사사이고, 선지자이다. 사사 시대라고 하면 흔히 사사들이 왕처럼 다스린 시대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사는 왕권 개념이 아니다. 백성들과 격리된 공간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나랏일을 보는 그런 식의 통치와는 거리가 멀다.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어떤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홀연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고는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게 전부다. 사사기에서 드보라가 단연 돋보이는 것은 그녀야말로 사사직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의 충복인 시스라 장군의 공격을 받을 적의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눈에 ‘악한 일’만 저질렀다.(삿 4:1) 드보라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 장군을 불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스블론 지파에서 만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거라. 야빈의 군지휘관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와 그 많은 군대를 기손 강 가로 끌어들여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삿 4:6-7) 바락의 태도는 소심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겠지만, 그대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소“(삿 4:8) 드보라는 대답했다. ”내가 반드시 장군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시스라를 한 여자 손에 내주실 것이니, 장군께서는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삿 4:9)
바락은 겨우 1만 명의 군사만으로 900여대의 철병거를 앞세운 시스라를 몰아세웠다. 시스라는 바락의 손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숨어든다. 왜냐하면 헤벨의 가문이 시스라가 모시는 야빈 왕과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엘은 시스라가 잠든 사이에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아 그를 죽였다.(삿 4:21) 드보라의 예언대로 야엘은 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뒤늦게 야엘의 장막에 당도한 바락은 시스라가 이미 죽어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드보라의 예언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고 드보라는 사사기 5장 전체로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성경에서 여인들에 의해서 지어진 노래는 이외에도 홍해를 건너고 부른 미리암의 노래(출15:21), 사무엘을 낳고 부른 한나의 노래(삼상 2:1), 예수를 잉태하고 부른 마리아의 노래(눅1:46-55) 등이 있다.
4. 마리아(Maria)
나사렛의 ‘순이’를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마리아’란 이름은 한국의 ‘순이’ 만큼이나 흔했다. 신약 성경에 마리아란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행2:12-17), 로마의 신도 마리아(롬16:6) 등이다. 마리아는 ‘미리암’의 헬라식 표기이다. 마리아가 살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절망적인 암흑기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등극한 셀루쿠스 왕조의 에피파네스 4세는 유대 땅에는 급진적인 헬라화 정책을 펼쳤다. 이 무렵 반 헬라화의 기치를 부르짖으며 나선 이들이 마카비 가문 사람들이다. 마카비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하여 하스몬 왕조를(BC 141- BC 63) 탄생시킨다. 그 사이 국제 정세는 또다시 바꾸어 거대한 헬라 제국이 무너지고 로마 제국이 들어섰다. 기원전 63년의 일이다.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에서는 약혼이 결혼에 버금가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 무렵 마리아가 임신을 한다. 뱃속의 아이는 당연히 요셉의 씨가 아니다. 율법에 의하며 이런 경우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잠을 자던 중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는 임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래서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마1:24) 예수 탄생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마리아의 용감한 순종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눅1:30-31)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리아는 대답한다. “보십시오.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1:38)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로 추앙한다. 오래전 8월 15일 명동성당 앞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성당 입구에서 미사를 드린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광복절기념 미사라고 생각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였다. 가톨릭에서는 8월 15일 성모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도 동정이었고, 예수를 낳은 후에도 동정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가복음 6장 3절에 의하면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의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 아래로 적어도 여섯 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할 때 ‘생물학적 성’인 ‘Sex’라는 단어 대신 ‘사회문화적 성’인 ‘Gender’를 쓴다.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동등함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만들었다. 목회자 기도회 때에 내가 집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고 사모들이 조금 놀래는 것이다. 신혼 때부터 서로가 존댓말을 썼기에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사모 중 한 분이, 목사가 사모에게 존댓말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저 존댓말 쓰지 않으면 맞아요!”
발제자: 김환기 사관 (시드니시나브로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