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이야기
꽃가루받이[受粉]의 단상[斷想]
호주에 많은 한국가정이 텃밭농사를 한다. 고추, 상추. 들깨, 토마토, 호박 등 다양한 종류로 텃밭을 가꾸며 먹거리도 해결하고 여가를 선용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만나면 텃밭 농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필자도 뒤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고추, 상추, 호박 등을 가꾸며 수확도하고 생명의 신비에 놀라기도 한다. 호박농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가뭄 때문이기도 하고 연작, 밑거름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호박꽃이 피면, 벌들이 찾아오는데 그들을 100% 믿지 못해, 호박꽃 필 무렵이면 아침마다 중매쟁이 노릇을 한다. 현재 식물계[kingdom]에는 26만 여종의 식물이 있으며, 이끼류나, 고사리 등꽃이 피지 않는 2만 6천여 종의 민꽃식물을 제외하고, 식물의 90%는 꽃이 핀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종류에 따라 꽃의 구조도 다양해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텃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박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고,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으로 되어 있다.
호박은 그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식작용을 위해서 암꽃이 신랑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중매쟁이를 끼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꽃가루가 암술의 머리에 앉으면 씨앗에서 뿌리가 나오듯 꽃가루관이 자라면서 암술대궁 속을 파고 들어간다. 이 과정에 특정 DNA로부터 전달 받은, 암호[暗號]에 의해서 꽃가루관이 만들어 지는 것이며, 한국의 과학자가 ‘PLA2(phospholipase A2)’라고 하는 유전자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내어 과학계의 최대 뉴스가 되었었다. 중매쟁이를 통해 신랑을 모셔 왔다고 해도 100%가 합궁[合宮]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성공하기 까지 복잡한 과정이 있는 것이다.
꽃가루는 정핵을 가진 하나의 세포로서 난자가 있는 궁궐인 씨방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입구도 없고 복도도 없어서 터널을 뚫을 듯 꽃가루관 이라는 파이프를 만들어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내궁[內宮]으로 정핵[정자]을 안내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꽃가루는 중도에서 멈추기도 하며, 정력이 왕성한 꽃가루라야 신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꽃가루 가운데 극히 일부만 난세포와 수정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동물의 몇 억 마리의 정자 중에 단 하나만이 난자에 진입하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꽃가루관을 타고 내려가던 정핵은 중도에서 핵분열을 하여 2개의 정핵이 되며 하나는 난핵과 합쳐서 밑씨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극핵과 합쳐 배젖을 만든다. 동물의 수정과 다른 두 쌍의 배우자가 합궁한다고 해서 중복수정[重複受精]이라고 한다.
식물들은 능동적으로 배우자를 찾아다니지 못하는 대신에,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방법들을 동원해서 배우자를 맞아들이고 있다. 분꽃은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데 꽃가루를 날라 줄 곤충의 안착을 유도하는 활주로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하며, 오프리스라는 난초는 꽃 모양을 암벌처럼 만들어서 수벌이 암벌로 착각을 하고, 교미 행위하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에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휘발성이 강한 꽃향기를 뿜어내서 멀리 있는 매개 동물을 유인하는 등 후손을 남기기 위해, 고등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생물의 계통발생 진화론을 빌리면 속씨식물의 수정작용으로 씨를 만들고 씨가 싹이 트며 대를 이어 가는 생활사는 수 억 년간 진화해 온 과정을 재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물의 발생과정은 계통발생 진화론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논거이다. 인간의 경우도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순간부터 출생하는 순간까지 태아가 겪는 약 10개월은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약 36억년의 진화과정을 축소판으로 진행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생물학은 그 분야가 다양해서 생물학자라 해도 극히 일부분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꽃가루만 연구하는 화분학(花粉學-polynology)이라는 독립된 분야가 있다. 식물의 꽃가루의 형태나 발생, 수정[受精]기구[機構-mechanism] 또는 그 물리, 화학적 성질을 연구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 의학 분야에서는 꽃가루 속의 단백질이나 꽃가루 알레르기가 주요 연구과제이며, 양봉에서는 밀원식물의 연구, 꿀의 영양가, 성분 분석, 등이 연구의 주된 과제이다. 임학에서는 삼림의 변천, 우량품종의 교배, 품종개량 등에 화분학을 응용하며, 고고학에서는 유적 등의 흙에 함유된 꽃가루에 의해 당시의 식물의 생활상, 고대기후를 판단한다. 이렇듯 꽃가루만 가지고 평생을 매달리는 학자들도 수 없이 많다.
꽃가루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꽃가루받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생태계의 중요한 역학을 해 온 것인데, 최근에 이르러 위기를 맞고 있다. 곤충들이 농약, 공기 오염 등 공해로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개체수가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가을부터 미국 전역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600만개에 달하던 벌통수가 200만개로 줄었다고 한다.
지난 2014년 5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발표에 의하면 꿀벌이 세계의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는 2,030억$[약 224조원]이고, 미국의 꽃가루받이 활동에 의지하는 농업은 200억$[약 21조8천억 원]라고 발표한 일이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세계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꽃가루 하면, 식물의 생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꽃가루 알레르기를 근심하게 되었다. 알레르기 환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의 경우 80년대 이후부터라고 하며 현재 연 600만 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호박꽃을 많이 보았지만 사람들이 꽃가루 묻혀 주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꿀벌보다 크고 몸에 털이 수북한 호박벌이 꽃만 피면 찾아와 깊숙하게 머리를 처박고 꿀을 빠는데 정신이 없는 것을 꽃잎으로 포획을 해서 빠져 나오려고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괴롭히는 장난질을 하였었다. 그 많던 호박벌을 보기가 힘들어져 간다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꿀벌과,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수 증가와의 밀접한 상관계수가 있는 것 같아, 암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