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이야기
은행나무 예찬
한국인에게 은행나무는 향수가 짙게 배어있는 정감이 가는 나무다. 시드니는 무더운 날씨가 봄을 무색하게 하고 있으나 한국은 거리 곳곳에 노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아름다운 가을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서야 시드니 집 근처에 별로 크지 않은 은행나무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친지 한 분이 화분에 심겨진 은행나무 한 그루를 주어서 매일 보살피고 있다. 이민 올 때 고향집 뒤뜰에 있던 20여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부득이 베어내게 되었으며 그 밑동으로 바둑판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은행나무의 고운 나뭇결을 보며 고향생각에 젖곤 한다.
필자의 고향근처에 유명한 용문산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검색해보니 현재 나이가 1100-1300년이고 높이가 42m, 둘레가 14m로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나무로 기록 되어있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앞으로 200년을 더 산다고 하면, 경제적 가치가 1조 6884억 원이라고 평가한 내용도 있었다. 은행을 한자로 은행(銀杏)이라고 쓰는데 은빛 나는 살구씨(杏) 같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널리 심어진 이유는 사시사철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힘이 강하여 해충이 거의 접근하지 못하며 한랭지에서도 잘 자란다.
1970년대까지 가로수 하면 포푸라, 프라타나스(버짐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었었으나 현재는 한국 전국의 가로 수중 38.9%가 은행나무이고, 프라타나스(버짐나무)가 24.5%라고 한다. 은행나무가 곧게 자라며 운치도 있고 병충해가 없어서 여러 가지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가을에 열매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가로수로 부적합 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은행알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암나무에 열리는 종자의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끈적끈적한 지방성인 빌로볼(Bilobol)이라는 성분과 은행산(ginkoic acid)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수나무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수나무만 심으면 가을에 은행알의 냄새와 관련된 민원을 해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특이하게 암수가 다르다. 어린 나무는 암수 구별하기가 어려우나 꽤 크면 전문가가 아니어도 암수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암나무의 가지는 각도가 50도 이하로 쳐지고 수나무는 45도에 가깝게 뻗쳐 올라간다. 이는 심어지고 성장한 후에 일이라, 의미가 없으나 최근에 한국 산림과학원의 연구 의하면 암수의 DNA가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DNA검사로 은행나무 묘목의 암수 감별을 간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감별법으로 수나무만 심다 보면 총각 은행나무만 보게 될지 모르겠다.
1970년대 중반쯤에 묘목생산의 붐이 있었던 때가 있었고 이때 은행묘목은 상당히 비싼 값으로 거래 되었다. 은행열매 한말에 쌀 한 가마 값과 맞먹었다. 동료 직원 한 사람이 집을 사게 되었는데 앞마당에 서있는 은행나무는 팔지 않는 조건으로 거래가 되고 어쩔 수 없이 은행나무는 임자가 다른 체로 2년을 살다가 흥정이 잘되어서 쌀 한 가마 값으로 그 나무를 사게 되었다. 그 해에 은행이 많이 열려서 은행알 한 가마를 수확 하였으며 이것을 팔아 쌀 열 가마를 샀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은행나무는 황금나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에 플아보이드란 성분이 있는데 살균작용이 있어서 갖가지 벌레의 유충,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죽이거나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 졌으며 폐결핵 환자나 천식 환자가 복용하면 기침이 없어지고 가래가 적게 나오는 약리작용이 있다고 한다. 은행잎에서 추출해 만든 징코민은 혈액순환 개선제로 널리 시판되고 있다. 독일에서 이 약을 개발하고 한국산 은행나무 잎의 약효가 월등 하다고 해서 잎을 채취하여 수입해 갔으나 최근에는 한국에서 직접 은행잎 엑기스를 만들어 수출한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중생대 초기인 삼첩기(Triassic약 3억년 전) 말에 출현하여 약 1억 5000만년 전인 쥐라기(Jurassic)에 번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하시대가 도래하면서 지구상 대부분의 식물들이 사라졌지만 은행나무만은 살아남았다. 인간들의 보존의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야생종이 없는 것으로 알려 졌었으나 중국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다. 화석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북극의 그린랜드, 북유럽, 호주까지 지구의 전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 때 얼음덩이가 아시아까지 덮치지 않은 것이 살아남은 원인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자구의 모든 생물들이 절멸 하다시피 사라지던 그 혹독한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강인한 나무다. 인간의 생명이 짧은 역사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은행나무는 그 장구한 생명력을 지녀 왔다. 고생대로부터 그 모습이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진화론자, 다윈은 은행나무의 불가사의함을 일컬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명명했다.
국가나 사회의 영원한 생명력은 바로 ‘교육’에 있다. 성균관이나 향교, 서원, 등 교육기관에서 은행나무를 심는 뜻은 은행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교육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천년(千年) 만년(萬年) 영원할 것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호주에서는 거목에 가까운 은행나무는 보지 못 하였으나 호주기후에도 적응할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 된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은행나무숲을 만들어서 아름다운 자태를 길이길이 뽐내며 한민족의 표상으로 생각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