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이야기
한국어와 한국민족의 정체성
필자의 고향, 여주엔 세종대왕의 묘인 영릉이 있어서 국경일과 관계없이 매년 한글날 행사를 해왔다. 1976년에 영릉이 성역화 되면서 주위가 말끔하게 정화되고 주변 환경이 아름다워 참배객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의미는 학술적으로 연구가 계속되겠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을 우리 민족에게 남겨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언어와 문자가 있어야 하는데 지구상의 그 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어도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28개국이고 순수하게 자기나라의 고유문자를 가진 나라로 치면 6개국에 불과하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오,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배우기 쉬운 덕분으로 최근에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의 문맹률은 1.7%수준이라고 하며(2008년 국어 연구원 조사 17-79세)미국은 문맹률이 21-23% 정도 된다고 한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세계의 으뜸 문자로 인정하였고 세계문자가 겨루는 문자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2009년, 2012년) 금메달을 안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대학의 세계 언어 평가에서도 최우수 문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언어와 문자는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주는 민족의 뿌리 유산이다. 한글이 있음으로 해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들어내며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일제식민지가 끝나기 직전인 1944년에 일본인 교사가 가르치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어를 배우다 해방을 맞았다. 침략국은 식민지국의 언어를 말살하고 침략국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한다.
국어 교과서에 ‘마지막 수업’ 이라는 글이 있었다.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의 전쟁을 ‘보불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 전쟁에 패한 프랑스의 1880년경을 배경으로 해서 ‘알퐁스도데’라는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이다. 학교 가기를 싫어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프란쯔는 그날도 농땡이 치며 학교 안 갈 궁리를 하다가 늦게서야 교실에 들어가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아멜 선생님의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을 받게 된다. 단골 지각생 프랑쯔에게 야단을 치셔야 할 아멜 선생님이 “프란쯔야, 얼른 네 자리에 가 앉으렴. 하마터면 너 없이 시작할 뻔했구나!” “애들아, 이 시간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이 잔뜩 배이고 어둠이 엄습하는 분위기가 진하게 부딪쳐 온다. 아멜 선생님의 말은 마디 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명문장이다. “한 민족이 노예 신세로 떨어졌을 때 제 나라 말을 잘 간직하고만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한국은 일본의 시민지가 되어 백성들이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은 한글을 말살하려고 갖은 모략을 다 썼으나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한글을 어쩌지 못했다.
한국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우리문화가 한류라고 불리어 지며 세계 속에 파고들고 있는데 영어와 함께 한국어 구사의 막힘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글로벌 시대의 크나큰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며 미래의 진로개척과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인증받는 것이며 한국의 기나긴 역사와 문화 예술 과학의 온갖 정보와 지식을 이용하여 새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글을 우선적으로 내세워야 한다. 애국가, 무궁화, 아리랑, 김치 등을 열거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며 내세울 수 있는게 한글만 한 게 없다. 흔히 유태인들이 수천 년 동안의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을 유대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정교육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민족이 유태인과는 다르지만 수없이 침략 당하며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한국어가 있었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국난을 극복해 온 것이다. 한국 민족이라면 어디에서 살아가든지 후손들에게 한국어로 정체성을 전수 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주는 교포 학생들에게는 영어가 해결되고 한글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한글학교, 교회, 성당에서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고 가족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선생님인데 한국어 못한다는 것은 의지 부족이라고 밖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된다. 차세대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것은 성공기회를 두 배로 넓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유산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