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이야기
2020년 경자년 쥐의 해를 맞으며
흰 쥐의 해, 경자년
1년 전, 2019년을 황금 돼지띠의 해라고 해서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 했었지만 되돌아보면 어김없이 다사다난 한해로 마감 한 것 같다. 금년 2020년은 경자년으로 흰 쥐의 해라고 한다. 카렌다에 쫑긋하게 세운 귀와 입가에 좌우로 펼쳐진 수염의 귀여운 흰 쥐의 사진이 장식되었다. 12지를 상징하는 12종류의 동물중 쥐는 문화적으로 친밀감을 갖기가 어려운 동물이지만 쥐띠의 해에는 신년 초부터 신분 상승을 하며 우대를 받게 된다. 경자의 경(庚)은 십간(十干)의 일곱 번째로 방위로 서쪽, 오방색으로는 흰색에 해당된다. 자(子)는 십이지의 첫 자리로, 방위로 정북(正北)을, 달로 음력 11월을, 시간으로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를 말한다. 새해를 요즘처럼 굳이 색깔로 이야기한다면, 경자년의 ‘경’이 오방색으로 흰색이니 ‘흰 쥐’의 해다. 쥐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가야의 고상(高床) 가옥 모양 토기에 쥐와 고양이가 장식돼 있다. 곡식 창고에 올라오는 쥐 두 마리를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다. 통일신라 이후 쥐는 십이지신상으로, 무덤과 불교의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쥐가 수박이나 무를 갉아먹고 있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신사임당(1504∼1551)은 쥐 두 마리가 수박의 빨간 속살과 그 앞에서 씨앗을 먹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수박은 씨가 많다. 씨가 많다는 것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한다. ‘시경(詩經)’ 제1편 국풍 곡풍(國風 谷風)에 보면 무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쥐가 수박, 무와 함께 그려진 그림은 부부애와 다산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야기 속 용한 점쟁이도 상자 속에 든 쥐가 몇 마리인지 알아맞히기 힘들다. 유명한 점쟁이였던 고구려의 추남과 조선의 홍계관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쥐의 수를 맞히지 못했다며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사실은 암컷 쥐의 배에 든 새끼 수까지 정확히 맞혔음에도 말이다. 쥐는 생태적으로 언제나 새끼를 밸 수 있기에 ‘다산왕’으로 통했다. 쥐는 미래를 예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제9 혜공왕 5년조에 보면, “치악현에서 8,000여 마리나 됨 직한 쥐 떼가 이동하는 이변이 있었고, 그해 눈이 내리지 않았다.”라는 글이 있다. 쥐는 자연의 이변이나 닥쳐올 위험을 예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쥐가 배에서 내리면 폭풍우가 온다’는 속담이나 ‘쥐가 없는 배는 타지 않는다’는 속담도 쥐의 신통한 능력을 말하고 있다. 설화나 신년 덕담으로 쥐를 언급하지만 평소에 쥐를 칭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종족에 따라서는 쥐를 섬기는 인종도 있다. 인도의 Deshnoke라는 지역에는 쥐를 조상처럼 섬기며 600여 년이 있어서 쥐를 신성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베트남에서는 쥐고기 요리로 성업중인 식당도 있다.
쥐를 잡다가 여우가 가다
한국 전쟁 이후 60-70년대에 기아로 허덕일 때 국민들의 식량을 축내는 쥐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의지로 쥐 잡는 날을 설정하면서까지 박멸 작전을 전개하였으니 되돌아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사업의 긍정적 효과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안타까운 것 한 가지가 있다. 정부에서 쥐 잡는 날에 공급된 쥐약을 먹고 죽은 쥐의 시체를 야생동물이 먹고 2차적인 피해가 확산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여우의 멸종이다. 전쟁 중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여우가 멸종되어서 현재는 복원사업을 힘겹게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자년은 쥐의 해. 십이지(十二支)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이니 새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할 정도로 집 안팎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동물이다. 쥐가 가축은 되지 않았지만 생명과학을 비롯한 의과학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쥐 사육의 전문가도 필요하게 되었고, 쥐 사육 전문업체까지 생겨서 성업중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안타까운 뉴스가 있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한국바이오마이스터 고등학교 학생이 동아리 활동으로 학교에서 쥐 사육을 하였는데 사육된 쥐는 사살해서 쥐 사체를 필요로 하는 동물원 등에 판매하며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동아리 회원인 한 여학생이 밀폐된 공간에 살아있는 쥐를 가둬놓고 이산화탄소(co2)을 주입해 사살해서 쥐 사체를 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하였었는데, 생명체를 잔인하게 살생하는 행위에 자책감으로 고민해 오다가 목숨을 끓는 사고가 발생한 일이 있다. 이 기사의 본질은 동물의 생명 존엄성에 관련된 것이나 동물 사육을 하는 특수고등학교가 있고 ‘바이오마스터 고등학교’라는 생소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수교육기관과 함께 관련 업체도 의외로 많아졌다는 것이다. 쥐를 가축으로 사육하는 것이지만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업체도 있다고 한다.
실험동물의 대명사, 흰쥐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과거 대비 크게 늘어났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험 동물의 희생이 있었다. 동물을 이용한 실험은 제약, 생명 과학, 해부학과 같은 순수과학에서부터 응용과학의 분야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동물 실험에 사용된 동물만 240만 마리(2014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매년 약 6억 마리가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과학의 잔인성을 비난하며 동물실험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동물실험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오늘날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실험 동물로 이용되는 종류는 많다. 연구의 내용과 특성상 택하게 되는데 몇 가지 예를 열거하면 흰 쥐라고 할 수 있는 랫드(rat)이다. 1800년대 초기에 도박을 위해 포획한 시궁 쥐들에서 흰 랫드가 발견되었고 그 후에 인위적으로 길들이고 증식시켜 현재 실험에 사용하는 실험용 랫드(rat)가 되었다. 연구용으로 랫드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1856년에 부신 적출의 효과를 알아보는 연구였다. 189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심리학 분야에서도 랫드를 실험 동물로 사용하였고, 그 이후에는 의학, 생물학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게 흰쥐 랫드다. 포유류 중에 흰쥐가 실험용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다. 실험 결과가 잘 나타나고, 유전자 조작이 쉽고, 관리하기 좋고, 비용이 적게 들고, 세대가 짧고, 대량 사육이 가능하고, 사체 처리도 용이 하니 흰쥐 랫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랫드는 자연산이 아니라 변이를 시켜서 만든 쥐 품종이다. 흰쥐는 보기에도 덜 혐오스럽고 실험 결과를 빨리 확인할 수 있으니 실험실에서 흰 쥐를 쓸 수밖에 없다. 여하튼 실험실에서 쉽고 빠르게 결과를 얻기에 적합 하니 흰 쥐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포항 공대 신문에 실렸던 쥐 사육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다
지면상, 흰 쥐 랫드를 예로 들었지만 실험실에서 손가락 크기의 작은 쥐는 mouse(생쥐)라 하고, 발바닥 크기의 큰 쥐는 rat(쥐)라고 한다. 크기를 비교하면 양과 소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성질은 rat이 훨씬 순하다. 쥐들은 매우 빠르게 자란다. 평소에는 암컷과 수컷을 따로 키우다가, 암컷들이 사는 우리에 수컷을 한 마리 넣어주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순식간이다. 어느새 보면 암컷들이 배가 불러 있고, 다시 어느 샌가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핏덩어리 10~15마리가 함께 뭉쳐서 눈도 못 뜨고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일주일쯤 뒤에는 금세 털이 자라서 어미 젖 빨러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다시 일주일 지나면 이제 우리 안은 난장판이 된다. 사람도 그렇지만 쥐들도 어릴수록 달려 다니는 경향이 있어 혼란의 도가니가 되는데, 이 무렵에는 깔 짚도 자주 바꿔주고 먹이와 물도 많이 공급해준다. 성장기엔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4주쯤 지나면 어미 없이도 잘 살만큼 충분히 성장한다. 이때 어린 암컷과 수컷들을 분리하지 않으면 다시 몇 주 후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튀어나오는 사태도 벌어진다. 대략 두 달 정도 되면 발바닥 크기의 온전한 rat으로 자라며, 이후에는 자라는 속도가 다소 느려진다. 하지만 간혹 오래 키우다 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팔뚝만한 크기의 허연 rat이 우리 안에서 어그적 어그적 기어 다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마치 공룡을 연상시킨다. 계속 키울 경우 2년까지 산다고 하지만 대개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실험 과정에 따라 다르나 현대 생명 과학의 중심이 분자 생물학인 만큼, 분자 수준의 규명을 위해 대개는 원하는 부위를 떼어내고 갈아서 DNA나 RNA, protein을 뽑아낸다. 해부학적인 변화를 보기 위해 특정 조직을 얇게 잘라 박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죽기 전까지는 편안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어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이상을 안고 살거나, 정상적으로 태어나도 사는 동안 온갖 약물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히 뇌 과학 분야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을 보기 위해 쥐들이 수술을 거쳐 머리에 전극을 꽂고 돌아다니거나, 행동학적 변화를 보기 위해 물 고문, 전기 고문(?)과 같은 온갖 종류의 가혹한 환경에 처하기도 한다. 쥐의 안락사 방법 또한 실험 과정에 따라 다양한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약물 주사는 쥐의 정맥이나 복강 내에 마취제와 같은 안락사 유도 물질을 치사량 이상으로 주사한다. 간혹 근육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다. 흡입 가능한 에테르(ether)나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로 질식시켜 죽일 수도 있는데, 이 방법은 죽기 전 잠시 동안 쥐에게 호흡 곤란으로 인한 고통을 유발하지만 화학 물질이 체내에 축적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머리를 잡고 꼬리를 순식간에 잡아당겨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경추 탈구가 있다. 숙련된 실험자가 있을 때 가장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만, 실패해서 죽은 줄 알았던 쥐가 살아 돌아다니는 사태도 종종 벌어지는 게 이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쥐의 머리를 자르는 방법이 있는데, 잔인함에도 불구, 화학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있는 상태에 가장 가까운 조직을 얻고자 할 때 수행한다. 사체를 함부로 유기해서는 안되며, 죽은 쥐는 잘 포장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모아서 처리한다.
이렇게 해서 다소 허무한 쥐의 일생이 끝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얻어진 실험 데이터는 논문을 통해 발표되어 새로운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 쓰인다. 고등 동물인 쥐는 인간과 같이 포유류에 속하기 때문에 이 중 몇몇 결과들은 의학적 목적에서 인간을 위한 임상 실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창 키우던 쥐를 단두대에 올려놓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감추는 잔인함은 이처럼 인간을 위한다는 이기심 덕분에 가능하다. 생명 과학관(포항공대) 앞에는 알을 부둥켜안은 개구리(Xenopus) 석상이 세워져 있다. 실험 과정에서 죽어간 개구리에 대한 마음을 담은 석상인데, 쥐를 위한 석상도 언젠가 건립될 것이다.(참조 – 포항공대신문(http://times.postech.ac.kr)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