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고사리에 관하여
한국의 봄 5월은 산 빛깔이 연두색으로 물들며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봄이면 할머니가 산나물 채취하는 데를 따라 다니던 추억이 있다. 산나물이 한 참일 5월은 남다른 향수에 젖게 한다. 호주에 와서도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혹시 비슷한 산나물이 없나 하고 살피게 된다. 거목처럼 뻗어 올라간 나무 고사리를 비롯해서 산비탈에 뒤덮여있는 고사리 군락지를 보면서 호주는 고사리 천국이라고 생각하였다.
생물학의 분류 방법으로 꽃이 피고 종자가 생기는 식물을 현화식물 혹은 종자식물이라고 하고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 같은 종류를 민꽃식물 혹은 포자식물이라고 한다. 고사리 종류들의 잎이 양[羊]의 이빨 같다고 해서 양치식물이라고 한다. 인류문명의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석탄은 고생대에 번창하였던 양치식물 등이 퇴적되어 형성 된 것으로 약 4억년 전에는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꽃도 피지 않는 식물이지만 그 어느 식물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사리는 세대교번 [世代交番]이라는 생활사 [生活史]로 살아간다. 고사리는 꽃이 피지 않는 대신에 잎 뒤에서 포자가 형성되고 포자가 땅에 떨어져, 싹이 터서 전엽체라는 생식세대 [‘배우체세대’라고도 함]가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장정기 [藏精器], 장란기 [藏卵器]라는 생식기관을 만들고 정자와 난자의 수정과정을 거친 수정란이 발아하여 ‘포자체세대’라고 하는 고사리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양성생식을 통한 자손번식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종족을 유지하며 수 억년을 살아오고 있다.
지구상에는 25만종의 식물이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중에서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은 약 12,000여 종이고 약 75%가 열대지방에서 자란다고 한다. 유럽에는 152종, 북미 406종 등이 알려져 있으며 중국에 4000여 종, 일본 720여 종, 대만 565종, 태국 620종, 필리핀 943종, 뉴질랜드에 200여 종이 보고되고 있다. 한반도에는 약 350~400여 종류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치식물의 포자는 아주 작고 미세해서 가루처럼 보이는데 이 포자가루들은 포자낭이라는 주머니에 담겨 있다가 산포 [散布]가 되면 적절한 곳에서 뿌리를 내라고 성장하게 된다. 들여다볼수록 참 신기한 식물이다. 요즘은 이 양치식물을 먹거리 뿐만 아니라 실내나 실외조경용으로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수목원이나 식물원에도 양치식물원을 조성하는 곳이 많아졌다. 호주에는 양치식물의 종류가 많아서 자연자체가 양치식물원 같다.
고사리의 어원 [語源]에 관하여 몇 가지 설 [說]이 있으나 “고”는 굽었다는” 곡 [曲]과 풀이라는 “사리”의 합성어 “곡사리”가 변해서 “고사리”가 된 것이라는 주장이 옳은 것 같다. 땅 위로 솟아오르는 고사리의 새싹은 갓난아기의 주먹 쥔 손과 같아서 ‘고사리 손’이라는 표현을 한다. 어린 고사리가 아기 주먹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을 들어내면 불과 몇 시간 만에, 급성장하며 활짝 피지 않은, 머리가 굽어 있는 어린 고사리를 채취하게 되는 것이다.
고사리를 식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의 일부 지방 외에 알려진 나라가 없다. 그 이유는 고사리의 독성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고사리를 독성을 함유한 식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식용으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고사리에는 발암성으로 알려진 브라겐톡신과 비타민B1을 분해시키는 아네우리나제라는 성분 때문인데 가열하면 파괴되기 때문에 식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고사리를 풀과 함께 뜯어 먹은 소가, 설사, 고열, 출혈, 폐사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목장에서는 목초지에 고사리가 돋아 있으면 질색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사리를 끓는 물에 삶아내면 브라겐톡신이나 아네우리나제 같은 독성이 파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열하지 않은 고사리 절편 [切片]을 어항에 넣으면 물고기들이 죽으며, 2번, 3번, 삶은 고사리 절편을 넣었을 때는 아무 장애를 주지 않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고사리의 독성을 이용하여 진딧물 살충제로도 사용하고 고사리로 염색한 방충망에는 개미들이 모여 들지 않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고사리가 식용으로서는 단백질 함유량도 많고 칼슘, 칼륨 등 무기질이 풍부한 우수한 식품이며 한방 [漢方]에서는 이뇨제, 해열제, 지사제 등으로도 처방하여 왔다. 고사리가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의 식품으로 자리 잡고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서 자연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고 중국산을 수입하여 충당하고 있다.
한국의 법률상으로 산나물 채취가 금지되어 있고 위반하면 벌금을 물게 돼 있으나 단속하지 않고 제주도 등 지방단체에서는 고사리 축제를 열고 있다. 호주도 유사한 법령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고사리 소비량을 4천여ton으로 보고 있으며 가격으로 1.0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고 90%가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고 한다. 고사리의 가격도 비싼 편이고 중국산의 불신 풍조로 한국의 토종 고사리를 재배하는 농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식용고사리의 서식지를 관찰하여 보면 햇빛이 잘 드는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산기슭이나 뫼 [묘-墓] 잔등에 고사리가 많이 있다. 시드니 지역에서도 철로 [鐵路] 변이나, 비탈진 산기슭, 호수 주변에 고사리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산불이 나면 고사리가 번창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나무 숲 속에서 성장하지 못하던 고사리가 공간이 확 트이고 거름기가 잔뜩 배인 불탄 자리는 고사리가 성장하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산불 난 자리는 2년차 되는 해에 고사리가 어김없이 번창한다.
중국에서는 고사리가 식용보다, 약용으로 알려져 왔으며 관련 문헌 [文獻]이 많다. 중국 본초도감에 고사리는 맛이 달고 성질은 차며 열을 내리고 장을 윤택하게 한다. 담을 삭히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고 이질, 황달, 고혈압, 장풍열독 등에 효과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고사리가 성질이 차고 활 [滑]하며 맛이 달다, 열을 내리고 이뇨작용이 있으나 오래 먹으면 양기가 줄게 되고 다리가 약해진다고 서술 되어 있다.
한 연구자의 성분 분석에 의하면 생체의 면역계 [免疫係 – immune]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보체계 [補體系 – complement system]를 활성화하는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 하고 있다고 한다. 면역계는 생체 내에 침입한 병원체에 대항해서 항원 항체반응을 하며 무력화 시키는 system인데 이 반응을 강력하게 활성화 시키는 기능을 보체계 [補體系 – complement system]라고 한다.
보체계는 결국 특수 성분이 하는 것이며 고사리에 이 보체계 성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호주에도 고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겠지만 식용적 가치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릴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고 유용한 성분이 계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고사리 천국인 호주는 고사리를 연구하기에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한국인 고사리 학자가 나오면 호주사회에 고사리가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인 것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식물은 어느 것이나 꽃이 피고 씨앗이 있어야만 번식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세대교번이라는 특이한 생활사로 수 억년을 생존해오는 고사리의 생활사를 보며 오묘한 생명현상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갖게 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