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대추나무 이야기
대추나무 두 그루
필자의 앞뜰에는 15-6년생,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알이 굵은 왕대추나무고 또한 그루는 알이 자른 재래종 대추다. 두 그루가 제대로 결실이 되였다면 상당한 수확을 하였을 텐데 계속된 장마 탓으로 결실에 장애를 받은 탓인지 금년에는 수확이 시원치 않았다. 불과 몇 백개 맛보는 정도였다. 대추나무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병충해가 있다. 바이러스 병과 과일파리의 피해다. 바이러스 병해로 인해서 한국의 대추나무를 씨를 말리다 싶이한 피해가 있었고 호주에 서는 결실기에는 과일파리 피해로 낭패를 하기가 일 수 여서 개화 후에 방충망을 씨우곤 한다. 한국의 과일나무라면 단연 대추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추나무 재배의 역사는 오래 되었기에 대추와 관련된 문화는 다양하며 한국인에선 단연 과수라고 생각된다. 대추와 관련된 많은 민속문화 이야기를 어떻게 다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우선적으로 한국의 혼례시, 폐백드릴 때 대추는 필수품이다. 폐백 음식은 계절, 지역, 가문에 따라 다르다. 폐백은 시부모와 직계 존장에게 사배 (四拜)한 뒤, 시아버지께는 대추를 올리고, 시어머니께는 닭 또는 편포를 올리는 의식이다. 대추는 다른 말로는 백익홍 (百益紅)이라 하여 장수를 의미한다. 절이 끝나면 시아버지가 신부에게 대추를 던져 주고 덕담을 하는데, 이 때 대추에는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조율이시 (棗栗梨柿)
추운 날 따뜻한 대추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는 오랜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찻집에서도 마실 수 있다. 대추는 조율이시 (棗栗梨柿)라 하여, 제사상 과일 중 맨 앞에 놓인다. 감과 밤을 제치고 먼저 놓인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충 (忠)을 강조하던 시대라, 씨가 하나뿐인 대추는 오직 한 임금을 섬기는 충 (忠)을 상징하기 때문이라 한다.
대추는 대조 (大棗)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며, 우리말 속담에 자주 등장한다. 흔히 작지만 단단한 것을 말할 때 ‘대추씨만 하다.’라 한다. 소설 삼국지에서 혈기왕성한 관운장의 입술을 ‘붉은 대추 같은 입술’이라 한 것처럼, 붉은 대춧빛은 건강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하다.’라는 말뜻은 여기저기 빚이 많다는 뜻이다.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많은데, 이곳에 연줄이 걸리면 풀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연줄이 끊어져 버린다. 그러니 큰 대추나무에는 줄 끊어진 연이 걸려 있는 수가 많았다. 빚쟁이에게 줄 돈처럼 속상하게도 걸핏하면 연이 잘 걸렸던 탓이다. 대추나무 가시를 조지형극여위국 (棗枝荊棘如衛國, 대추나무 가시는 나라를 지키는 방위망 같다)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대추나무는 대표적인 가시나무였다.
대추는 한자어로 ‘조 (棗)’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 대추나무속에 속하는 교목성 과수나무다. 한국에는 중국계 대추와 인도계 사과대추 등 생태형이 전혀 다른 2종이 재배되고 있다. 대추나무는 유럽 동남부와 아시아 동남부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야생으로 멧대추가 자라고 있으며, 열매가 큰 대추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대추나무는 열매를 먹거나 약으로 쓰기 위해 오랜 옛날부터 곳곳에서 심어왔는데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봄이 되어도 아주 늦게 잎이 나오기 때문에 양반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추는 다른 과수에 비하여 풍흉의 변이가 심하며 개화기의 기상조건, 즉 강우, 저온, 일조 부족 등에 풍흉이 좌우된다. 따라서 대추는 한자어로 ‘조 (棗)’라고 부른다. 조 (棗)자는 가시 자(朿)자 두 개가 붙어서 만들어진 한자다. <본초강목>에 보면 ‘조 (棗)는 성 (性)이 높아서 자 (朿)를 위아래로 쌓아 겹쳐서 만들었다’고 했다. 대추나무의 키가 크다는 말이다. 대추는 옛날부터 과자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과자라고 하면 요즘이야 바삭거리는 튀김류를 떠올리지만 사실 원래는 과일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한자 표기도 과자 (果子)다. 대추는 껍질과 씨앗을 제거해서 햇볕에 말려서 말아 놓은 것을 조권 (棗圈)이라고 해서 과자로 만들어 많이 먹었다. 대추는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해서 부르는 이름도 많았다. 생것은 생조 (生棗), 붉은 대추를 말린 것을 대조 (大棗) 혹은 건조 (乾棗), 잘라서 햇볕에 말린 것을 조포 (棗脯), 삶아서 즙을 낸 것을 조고 (棗膏) 혹은 조양 (棗瓤), 익힌 것을 교조 (膠棗), 교조를 찧어서 말린 것을 조유 (棗油)라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대추를 쓰임새에 따라서 만들어 섭취했고 약에 넣기도 했다. 대추는 붉게 익은 대추를 말려서 먹는 것이 가장 이롭다. 말린 대추는 맛이 달고 기운은 평하고 독은 없다고 했다. 특히 말린 대추는 과거부터 약으로도 많이 사용해왔다.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있는데 감초 이외에도 강삼조이 (姜三棗二, 생강 3쪽 대추 2개)라고 해서 대부분의 처방에 꼭 들어가는 것이 바로 대추다. <신농본초경>에는 대추의 효능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천연물 (天然物) 중에 특히 약용 (藥用)으로 쓰이는 식물의 전초 (全草) · 근 (根) · 목 (木) · 피 (皮) · 과실 (果實) · 종자 (種子) 등은 좁은 의미의 본초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 · 광물의 천연산물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초학, 本草學)]
대추의 기능성
‘심복 (心腹)의 사기 (邪氣)를 주관하고 속을 편하게 하며 췌장의 기운을 길러준다. 12경맥을 돕고 위기를 편하게 하며 구규 (九竅)를 통하게 한다. 기운과 진액부족, 몸의 부족함을 돕고 크게 놀란 것, 팔다리가 무거운 것을 다스린다. 백약 (百藥)을 조화롭게 한다.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수명을 연장한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보니 대추를 꼭 먹어야 할 것 같다.
먼저 대추는 몸의 기운을 보한다. <본초강목>에는 ‘보중익기 (補中益氣) 하고 오장을 보하고 허손 (虛損)을 치료한다’고 했다. 보약 처방 중에 보중익기탕 (補中益氣湯)이 있다. 처방의 이름은 그 처방의 효능을 대별하는 것인데 대추 자체에 동일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대추는 대표적인 보약이다. 대추는 심리적 안정작용이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대추는 의지를 견고하게 하고 힘있게 하며 가슴이 답답함을 제거한다’고 했다. 이것은 대추가 불안, 초조로 인해서 안절부절 못함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항간에 대추에 불면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심리안정 작용의 일환이다. 앞서 언급한 ‘구규를 통하게 한다’는 것도 머리를 맑게 하고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구규 (九竅)는 몸에 난 9개의 구멍으로 눈 (2개), 코 (2개), 귀 (2개), 입, 전음 (배뇨관), 후음 (항문)을 의미한다. 구규 중 한 곳이라도 막힌다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이다. 대추는 해독작용이 있다. 위에서 대추는 백약을 조화롭게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서도 ‘오두, 부자, 천웅황의 독을 죽인다’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은 대추도 감초처럼 다른 약재의 독성을 줄여주면서 약성을 부드럽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추는 향수로도 사용됐다. <식료본초>에는 ‘대추를 계심 (桂心) · 백과인 (白瓜仁) · 소나무 껍질과 함께 환을 만들어 오래 먹으면 몸에 향기를 나게 하고 옷에도 향기를 나게 한다’고 했다. 최근의 향수들은 대부분 합성원료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서 건강에도 좋은 ‘천연 먹는 향수’를 개발해도 좋겠다. 다만 대추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너무 비만한 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복부비만의 경우다. 한의서에도 ‘중만자 (中滿者)는 대추의 감미 (甘味)를 줄여라’고 했다. 당분함량이 높아 당뇨병환자도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말린 대추나 꿀에 절인 대추를 간식처럼 많이 먹어도 치아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충치도 쉽게 생긴다고 하니 만병통치가 통하는 물질은 없는 것이기에 대추도 지나치게 과용 하면 유해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는 금언 (金言)을 상기하게 된다. 또 항간에 대추씨는 독이 있어서 버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추씨는 독이 있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추육만으로 고 (膏)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씨와 껍질을 제거하는 것일 뿐이다. 그 어디에도 대추씨에 독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심지어 <본초강목>에는 3년 된 대추씨는 약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맛은 쓰고 기운은 평이 하면서 독은 없다’고 했다. 또 배앓이와 나쁜 기운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추는 삼계탕이나 약밥, 고기찜 등에도 많이 넣는다. 이때 칼로 껍질에 한 번 상처를 내거나 손톱으로 쪼개서 넣어야 대추육 부위의 성분이 잘 우러난다. 요리하고 난 대추는 먹어도 되고 버려도 된다. 대추껍질의 탄닌이 중금속 흡착효과가 있다지만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또 버려도 되는 이유는 이미 대추속 유효성분은 탕이나 국물에 모두 녹아났기 때문이다. 대추는 맛도 좋고 효과도 좋아 식품이나 약으로 손색이 없다. ‘대추나무에 건강 걸렸네’ 대추가 주렁주렁~ 열리면 몸은 건강~해진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