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면역의 기본 메커니즘(mechanism)
면역실체의 역사
면역체계의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짚어 보려고 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은 미생물들로 덮여있다. 이 중 많은 수의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류(곰팡이), 기생충은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킨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건강하게 보낸다. 모두 우리 몸의 면역 기능 덕분이다. 면역이란 외부 물질로부터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 면역의 최전선은 피부와 점막이다. 몇 겹으로 이루어진 피부는 병원균 입장에서는 철옹성이나 마찬가지다. 입이나 코, 눈, 항문, 생식기 등 우리 몸에 나 있는 구멍으로 침입을 시도하는 병원균들에게는 점막 면역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몸에 외부로 난 구멍들과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소화관 등)은 대부분 점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침, 각종 효소, 위산 등이 있어 외부로부터 침입한 병원균들을 막아낸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장군의 예방접종
1977년 1월 6일, 미합중국의 독립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을 지휘했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장군은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의 주 의회에 보낸 문서에 따르면 군대에 천연두((天然痘-smallpox)가 펴져가고 있으며 이를 막을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태이므로 모든 군인에게 예방접종을 하도록 결정을 내리게 된다. 천연두가 군대에 퍼지게 되면 적의 공격보다 치명적인 패배를 예측했기 때문에 워신턴 장군이 내린 조치를 역사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워싱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751년에 천연두를 심하게 앓은 일이 있다. 그 당시 전쟁에서 1,000여명이 사망하였으나 천연두로 10,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면역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에 경험을 통해 면역시스템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면역계의 세포와 분자와의 관계속에서 생성된 방어시스템이 천연두 바이러스를 섬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장군이 천연두를 앓았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그의 몸 안에서 일어 난 것이다. 특수한 백혈구가 그의 몸 안에 들어온 천연두 바이러스를 식균작용(phagocytosis)으로 먹은 다음 바이러스를 소화시키나 바이러스의 조각들이 일부 남아서 세포표면에 노출되게 된다. 이들 세포가 센서(sensor) 처럼 작용을 해서 T세포라고 불리는 또 다른 특수한 백혈구가 이 조직을 인식하여 활성화된 뒤 스스로의 분열과 분화를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만들어 지는 T세포 후손들이 다시 침입하는 천연두 바이러스를 공격하여 치명적인 천연두를 막아내게 되는 것이다. T세포의 후손은 일부가 몸 안에 남아 기억세포가 되는 것이며 성인이 된 후에 또 다시 천연두가 침입하였을 때 이를 물리치기 위해 다시 분열하며 천연두를 물리치는 전사(戰士)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천연두 환자의 상처 딱지를 갈아 만든 분말에는 죽은 천연두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데 이를 병사에게 주사하여 병사의 몸 속에서 기억세포들이 만들어져 나중에 살아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의료기술은 몇 세기를 거쳐 시행되어 왔고 워싱톤 군대의 예방접종 시행 이후 20년 뒤에 제너(Edward Jenner)에 의해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 – 또는 외래분자)
면역체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워싱톤 장군의 일화를 소개하였으나 면역메커니즘의 과정을 풀어본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pathogen)와 바이러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자기(self)로 분류되는 분자, 비자기(nonself – 또는 외래분자)와의 구별의 근거에서부터 시작된다. 방어체계에는 크게 두 종류의 방어메커니즘이 있다. 그 하나는 비특이적 방어(nonspecific defence) 또는 선천성(innate)라고 하는데, 많은 병원성인자에 대해 일반적인 메커니즘을 말한다. 예를 들면 피부가 생체 속으로 침입하는 보호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선천적인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다른 하나는 특이적 방어(specific defence)이데, 하나의 특정한 목표를 겨냥한 방어체계다. 일반적으로 이 방어체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바이러스가 혈액으로 들어온다면 이 방어체계에 의해 이 바이러스를 인식하는 항체가 만들어 지는 것이며 항체가 만들어 진 후에는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이를 포획하여 파괴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림프조직(lymphoid tissue)과 백혈구
특이적 방어는 척추동물에 존재한다. 방어체계의 중요한 림프조직(lymphoid tissue)인 흉선(thymus), 골수, 비장(spleen)등이 핵심 조직이며 림프를 생성함으로 림프조직(lymphoid tissue)라고도 한다. 면역기능에서 중심은 림프액과 혈액이다. 혈액과 림프액은 물, 전해질, 세포들로 구성된 액체성 조직이다. 혈장(blood plasma)은 노란색 용액으로 이온 저분자량의 용액으로, 단백질 등이 녹아있다. 혈장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이 추가되어 혈액이 되는 것이다. 림프액(lymph)은 혈액과 다른 조직들에서 생성되며 몸 전체에 걸쳐 세포들 사이의 공간에 축적된 액체이다. 면역체계에 생체의 모든 기관과 조직들이 관여 하지만 림프조직이나 혈액의 백혈구는 면역전선(戰線)의 첨병(尖兵)이라고 할 수 있다. 혈액 1㎟에는 450-500만개의 적혈구(erythrocyte)와 성인 기준으로 혈액 1㎟당 5,000~1만 개가량의 백혈구(leukocyte)가 들어있다. 적혈구는 폐쇠혈관계를 빠져 나가지 않으나 백혈구는 폐쇠혈관계를 떠나 외래 물질이나 침입한 병원균을 찾아 세포사이 공간을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국방력이나 경찰력을 행사 한다고 할 수 있는 백혈구는 여러 종류가 있고 병원균이 침입하면 급격하게 그 숫자가 늘어난다. 맹장염, 의학용어로 충수염(appendicitis)을 진단할 때 과거에는 혈액검사로, 백혈구숫자의 늘어난 상태를 통해 진단하기도 하였다.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긴다는 것은 병원균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이며 병원균의 소탕(掃蕩)을 위해서 백혈구의 동원령이 발동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는 복부 초음파, CT 검사 등의 선진화된 진단기법이 이용되겠지만 6-70년대만 해도 혈액의 백혈구 상태의 점검이 필수적이기도 했다.
백혈구의 종류들
그런데 백혈구가 한 종류가 아니고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조혈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척추, 늑골, 골반뼈, 대퇴골 등 큰 뼈의 골수에 1% 정도 비율로 존재하며, 말초혈액에서도 일부 발견된다. 이 줄기세포는 적혈구, 혈소판, T및 B 림프구 등 10가지의 혈액 구성체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런 기능 때문에 악성혈액질환이나 중증재생불량성빈혈 같은 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에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줄기 세포가 주특기(主特技)가 있는 백혁구로 분화되는 것인데 염기성을 띤 호염기성(好鹽基性), 호산성(好酸性)백혈구, 호중성(好中性) 백혈구, 비만세포 등등으로 자라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림프구로 분화된 세포들도 백혈구와 같은 조상(祖上 – 줄기세포)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서로 다른 주특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서 천연두에서 언급한 림프구는 주특기에 따라 4종류로 나누어진다. 조류의 총배설강 주변에 있는 파브리키우스 주머니(bursa of Fabricius)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주머니(bursa)의 첫 글자를 따서 B세포라고 이름 붙였으나,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골수(bone marrow)에서 유래되므로 골수의 첫 글자를 따서 B세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에서는 혈중 림프구의 약 10~15%, 림프절내 림프구의 약 20~25%, 비장내 림프구의 약 40~45%가 B세포이다. 총배설강(總排泄腔, cloaca)은 특정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소화(대변 배출), 배설(소변 배설), 생식(새끼나 알의 출산)을 모두 처리하는(“총”) 하나의 구멍이다. B세포가 항체(抗體)를 생산하는 대단한 일을 한다. B세포가 항체를 분비하면 이를 형질세포라고 한다. 그 다음에 앞에서 언급한 T세포가 있는데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고 다른 백혈구의 활동을 조절하는 일을 한다. 자연살생세포가 있는데 이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암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하는 일을 한다. T 세포는 미성숙한 상태로 흉선에서 나오게 된다. 미성숙한 T 세포는 식세포가 넘겨준 항원 결정 인자를 받아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 단백질을 세포막에 만들게 되고 이는 비자기 세포를 죽일수 있는 작동 세포로 분화하게 된 것이다. 성숙한 세포독성 T 세포에는 항원 인식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에 항원이 결합하게 되면 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세포독성 T세포(細胞毒性 T細胞, cytotoxic T cell, CD8+, TC), 또는 킬러 T세포(killer T cell)는 림프구의 한 종류이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체세포나 종양 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 세포독성 T세포는 바이러스 등의 항원에 감염된 세포, 손상되거나 제 기능을 상실한 세포 등을 제거한다. 세포독성 T 세포와 표적세포가 결합하게 되면 세포독성 T 세포의 세포질에서 단백질 분해효소 등이 들어있는 소낭들이 표적세포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소낭들은 외포 작용을 통해 분비된다. 분비된 효소중에서 세포막에 구멍을 뚫는 퍼포린 단백질들이 표적세포의 세포막에 결합하게 되면, 단백질 분해효소(그랜자임)가 표적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단백질 분해효소는 표적세포의 세포 자살 과정을 유도하게 되고 결국 표적세포는 죽게 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인간에게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 등은 위험하고 골치 아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크게 창궐하여 인류가 거의 절멸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피해를 본 적도 적지 않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가 중세 이후 유럽에서 가끔씩 대유행할 때에는, 갑자기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줄어든 나라들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희생자를 낸 바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5000만 명 정도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낳은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바이러스와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을 거의 다 죽게 만드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도 유리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숙주인 인간이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생하여 살 곳이 없어진다면, 그들 또한 공멸할 수밖에 없다. 영화 ‘아웃 브레이크’의 소재로도 등장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90% 정도가 일주일 이내에 출혈로 사망하는 가공할 전염병을 일으키지만, 도리어 너무 높은 치사율 때문에 널리 확산되지는 못한다. 발견 초기에만 해도 ‘신의 형벌’이라 불리며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제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만성 질환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치료 방법 등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인간을 너무 많이 죽게 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똑똑하지(?) 못하거나,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 등으로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갖춘 신종이 출현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미처 면역력과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데,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 등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최근에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들이 늘면서 인류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전염병은 이미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분류된다. 몇 년 전부터 빈발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스페인 독감과의 관련성 때문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불리다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역시 사람·조류·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전자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이들이 다시 변이를 일으켜서, 현재의 신종 플루보다 더욱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바이러스·세균과 인류의 전쟁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 대상은 아니지만, 컴퓨터 바이러스와 치료 백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지루한 전쟁에서 어느 쪽이든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기는 힘들겠지만, 인류로서는 항상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_ 출처: 중앙일보 [과학칼럼] ‘바이러스와의 전쟁’ 참조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