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폐색 (閉塞)
국어사전에 폐색의 뜻은 “닫히어 막힘”이다. “폐색”은 일상 대화 중에 사용빈도가 높은 단어는 아니다. “폐색전선’이란 기상용어나, 열차의 운행방법으로 충돌을 막기 위해 설정하는 “폐색구간”, 의학용어 장폐색 [腸閉塞] 등 전문분야의 용어로서 빈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교육학에서는 폐색이라는 개념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교육자체가 닫힌 것을 열고, 막힌 것을 뚫는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천적으로 닫힐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어서 지구상 생물 중에 가장 뛰어 난 생체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생물에 따라서는, 인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생리 기능을 가진 생물들도 수 없이 많다.
인간이 얻는 정보 중에 80%를 시각을 통해 얻는 다고 하니 “보는 만큼 안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생각하게 되지만 이는 세상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동물들은 보고 있는데 사람만 못 보는 것도 수 없이 많다. 우선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못 보지 않는가? 나비 등 곤충들은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감지하고 행동한다. 인간은 주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여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지만 동물에 따라서는 인간이 별로 사용하지 않는 후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많다. 개미나, 벌, 나비 등은 후각으로 먹이를 찾아내고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 개미는 먹이를 발견하면 꽁지에 달린 독침 [毒針]으로, 폐르몬 [pheromone]이라는 홀몬을 분비하여, 냄새 길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정보를 알린다. 공항의 탐지견 [探知犬]은 후각기능이 인간에 비해 최소 1만 배에서 최대 30만 배나 뛰어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인간의 후각세포가 5백 만개인데 개의 후각세포는 2-3억 개나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오감 [五感]을 통해 인지 [認知]한 영상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감지 할 수 없는 실재 [實在]가 눈앞에 널려 있다. 이와 같은 생리적 한계 때문에 세상을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스스로 체험한 것만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좀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고도로 편집된 것을 인간의 관점으로만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려야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닫혀지는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적 기능의 제약성 [制約性] 못지않게 심리적 제약성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인간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무의식 [無意識]속에서 편협한 사고에 억매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나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 태도 [attitude]나 인식을 갖게 되는 편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편견이라는 개념과 구분이 불명확한 고정관념이 있다. 편견은 어떤 집단이나 개인들에 대해서 근거 없는 부정적 태도인 반면, 고정관념은 지나친 긍정적 인식까지 포함 하는 게 편견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태인은 모두 머리가 좋고 수전노다”. “일본인은 친절 하지만 이중적인 인간들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면 고정관념에 젖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은 공격 하려는 행동까지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할까? 그런 차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와 유사한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싫어하게 마련이다. 이런 성향이 집단 수준으로 확대되면 자기가 속한 집단은 좋은 속성의 집단이고 다른 집단은 나쁜 속성의 집단이라고 믿게 되는 고정관념이 되고 편견을 유발 시키게 되는 것이다. 집단이 다르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유형도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개를 거의 가족처럼 아끼는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개고기를 먹는 것에 혐오감을 갖게 되는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한국인이 돈을 아끼면 근검절약이고 일본인이 돈을 아끼면 경제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나, 자기당이 과오를 저지르면 불가피성으로 변명하며 덮으려 하고 반대당의 과오는 철저하게 응징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작용이 의식적이기 보다는 무의식 속에서 유발 된다. 원천적으로 지각 [知覺]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불가피하게 자신을 둘러싼 현상을 단순하게 범주화 [範疇化]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다가 집단 주도세력이 의도적으로 인식작용을 부추기면 무의식 중에 소속집단의 심리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인종 [人種]이 생물학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역사적으로 구성된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이를 악용하여 인류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많지 않은가? 일본이 천황을 신격화 [神格化]하여 국민들을 권력집단의 심리적 노예로 만들려고 하였었고. 히틀러가 그랬고, 북한 김정은 집단이 철저하게 인간의 이 심리적 약점을 악용하고 있지 않는가?.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1897.10.29 ~ 1945.5 1] 를 기억한다. 괴벨스는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 악용의 원조 [元祖]격이다. 히틀러를 신으로 만들려 하고 독일 국민을 히틀러의 노예로 만들려 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지금도 도처 [到處]에서 괴벨스의 선전, 선동술 [煽動術]을 답습 [踏襲]하며 특정집단의 권력과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 광분 [狂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집단이 그렇고 세계 각국에도 많은 정치집단이 괴벨스의 어록을 실천하려고 갖은 모략을 획책 [劃策]하고 있는 것이다.
회자 [膾炙]되고 있는 괴벨스의 어록이 있다. “거짓말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 하지만 되풀이 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 했느냐 따위를 추궁 당하지 않는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 이라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반복 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 하다” “선동은 말만 뱉으면 끝이지만 그걸 반박하기 위해서는 수 십장의 자료와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사람들이 모두 선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북한체제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고 “민주”를 내세우고 있다. 개개인이 존엄한 삶을 누리려면, 1인 또는 1당에 독재적 전횡 [專橫]이나 통제로 개인이 무시당하고 타율 [他律]이 강요되는 방식과 대결해서 스스로 권리를 쟁취 하여야 가능하다. 인류가 약 200년간을 투쟁하며 오늘날의 자유세계를 구축 하였으나 인간 존엄성은 계속 위협 받고 있다.
이 위협은 밖에서 만 오는 것이 아니라, 무지 과욕 편견 고정관념 등 자신을 속박 하는 의식구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 위협을 누가 해결 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삶의 조건을 재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 학교는 미래의 시민을 길러 내는 장소가 아니라 시민이 모여 있는 현장이기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실현되고 있어야 하고 이를 체험하여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정신세계가 폐색 되어 있으면 아는 세계가 좁은 것이며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 정체 될 수밖에 없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