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황금 돼지의 해” 정월 대보름 날에 즈음해서
정월대보름
이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2019년 2월 20일, 오후 3시 10분이다. 그 동안 호주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어제는 음력으로 1월 15일 정월 대보름 날이었다. 한 모임에서 대화하는 중에 한분이 오늘은 정월 대보름 날이라 일찍 귀가해서 오곡밥을 먹어야겠다고 귀뜸을 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정월 대보름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하였다. 옛부터 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복을 불러들이고 그 해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달이었다. 게다가 정월 대보름달은 보름달 중에서 큰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 신성하게 여겨졌다. 농사를 짓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달의 크기에 따라 시간을 예측하여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달의 변화에 아주 민감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정월 대보름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찾아봤다. 정월 대보름에는 전통적으로 갖가지 민속놀이와 풍속을 즐기고 특별한 음식을 먹으며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해왔다. 최근 도심에서는 전통 풍속은 거의 사라졌지만, 가정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정월 대보름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에는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을 먹었다. 약밥은 찹쌀을 쪄서 대추, 밤, 잣, 참기름, 꿀, 간장 등 여러 재료를 섞어 쪄서 익힌 것으로 특색 있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이다. 옛날에는 잣이나 대추, 밤 등은 서민들이 구하기 힘든 재료여서 약밥 대신 오곡밥을 지어 먹었다. 이 약밥은 대보름의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오곡밥은 차조, 찹쌀, 팥, 수수,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짓는다. 보름에 먹는다고 해서 ‘보름밥’이라고도 불리는 오곡밥은 한 해 동안 모든 곡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
부럼깨물기
약밥은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해 건강을 지키려고 했던 조상들의 지혜도 담겨 있다. 또 정월 대보름 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물어야 한다. 부럼은 피부 질환을 가리키는 ‘부스럼’에서 유래된 말로, 딱딱한 견과류인 땅콩, 호두, 밤 등을 가리킨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밤, 호두, 땅콩 등 견과류를 깨물어서 이를 튼튼하게 하고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건강을 기원했다. 오곡밥 먹기나 부럼 깨물기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필자의 고향에서는 어린이들이 보름달 떠오르는 것이 가장 잘보이는 산등성에서 참깨짚을 자기 나이 만큼 매듭을 묶어서 보름달이 떠오르면 참깨짚에 불을 붙여 “망월여!“ 하고 외치며 새해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였다. 또 기다려지던 행사는 쥐불놀이다. 쥐띠로 상징되는 자[子]가 들어가는 첫쥐날(上子日)에 해가 저물면 마을마다 들로 나가 논밭둑에 마른풀을 태우는 행사다. 이날 쥐불을 놓는 까닭은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이나 쥐를 박멸하여 풍작을 이루려는 뜻이 담겨 이 쥐불의 크기에 따라 풍년이나 흉년,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화재 위험때문에 법으로 금지 됐겠지만 이 시절에는 불을 끄지도 않았고 자정이 되면 각자 마을로 되돌아 가는데 질러 놓은 불은 끄지 않았고 불의 기세가 크면 좋다고 여겼다고 한다. 4년전 필자의 칼럼에서 언급하였던 24절기에 관한 글을 다시 조명한다. 필자의 선친께서 새해가 될 때쯤이면 붉은 색 겉 표지인 책력이라는 카렌다를 구해다가 벽에 걸어 놓고 초 하루날 토종 비결을 봐주는 등 요긴하게 이용하셨다. 그때에는 달력 정도로만 생각하였었는데 알고 보니 온갖 생활 정보를 다 담은 종합적 기능의 카렌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옛 책력에는 달력의 기능도 들어 있다. 그 해는 몇 달로 되어 있고, 각 달에는 며칠씩 들어있나, 24절기는 어느 날인가, 또한 국가 기념일은 언제인지 적혀 있다. 그러나 옛 책력에는 그 이상의 정보가 들어 있다.
종합카렌다, 책력
역주(曆注)라고 해서, 날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상사를 전부 규정해 놓았다. 외출, 씨 뿌리기, 옷 재단, 토목 공사, 이사, 가축의 입식, 제사, 입학, 물건 거래, 치료, 목욕, 기둥 세우기, 상량 등을 하지 말라거나 한다면 몇 시에 해야 좋은지를 날마다 적어 놓았던 것이다. 요즘도 이사할 때 손없는 날을 찾는 이들이 종종 있다.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법을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면, 먼저 백제 무령왕의 지석에 적혀 있는 간지 일자로부터 백제가 중국 남조의 송(宋)나라에서 개발한 원가력(元嘉曆)을 썼음이 알려져 있다. 고구려와 신라도 중국으로부터 책력을 받아왔음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국제 외교 관례가 조공과 책봉 관계였기 때문에 이른바 ‘정삭(正朔)을 받는다’고 해서 중국이 사용하는 책력을 그대로 받아다가 국가 표준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독창적인 역법을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역법을 이해하고 자체 계산이 가능하도록 무던히 노력했었다. 822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선명력법(宣明曆法)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신라로 도입되어 그 이후 조선 세종이 칠정산(七政算)을 만들 때까지 표준 역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매년 책력 받아 오느라고 한국의 조상들이 조공바치고 눈치보며 속을 태웠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임진왜란 즈음에 칠정산이 전해져서 시부카와 순카이(澁川春海)가 죠오고레키(貞享曆)을 만들기까지 상당기간 사용하였다. 고려는 송나라의 역법은 물론, 요나라와 금나라의 대명력(大明曆)도 받아들여 정세에 따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는 선명력을 사용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도 오랫동안 쌓인 선명력의 오차를 해소하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상수를 바꾼다거나 계산 과정을 일부 수정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사서를 보면, 고려도 누적 오차 때문에 여러 번 고충을 겪은 흔적이 있다. 아마도 고려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상수를 바꾼다거나 계산 방법을 일부 수정하는 등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절기[節氣]이야기를 위해 동양의 카렌다, 책력의 역사를 간추려 봤다,
24절기
지난 2월 4일은, 음력으로 12월 30일, 입춘[立春]었고 2월 19일은 음력으로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이도 절기로 우수[雨水]다.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정반대로 가기에 이를 따져보는 것이 넌센스이긴 하지만 역으로 계절을 짚어보곤 한다. 필자의 집 뜨락에 국화 화분을 돌보고 있는데 꽃망우리가 생기고 불원간 국화꽃을 보게 될 것 같다. 국화꽃이 피면 가을이고 국화꽃이 지면 겨울이 온 것이라고 하는데 가을의 징후가 식물들의 표정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입춘은 음력으로는 대개 정월이므로 새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과 같은 좋은 글을 써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혹은 천장에 붙였으며,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또한, 음력으로 한 해에 입춘이 두 번 들어 있으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하여 그해에 결혼하는 것이 길하다고 받아 들여져왔다. 중국의 화북 지방은 4천 년 중국 역사 내내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고 절기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한반도의 계절과 맞지 않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움력과 양력의 차이
우선 흔히 알고 있는 24절기를 쭉~ 적어보면. 입춘 우수 경칩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인데입춘 경칩 청명 입하 망종 소서 입추 백로 한로 입동 대설 소한을 절기[節氣)라 하고 우수 춘분 곡우 소만 하지 대서 처서 추분 상강 소설 동지 대한은 중기[中氣]라고 한다. 위의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스물 네 등분하여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절기의 이름을 붙인 것이기에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관찰한 결과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달[月]의 운행을 따라 날자를 생각하는 음력은 해[年]를 중심으로 한 지구의 운행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 양력과는 오차가 생기게 마련이다. 음력을 만든 선인[先人]들도 이미 이를 알아차리고 윤달[閏月]을 만들어 그 차이를 보완하며 해[年]가 바뀌고 달[月]이 바뀌면서 생기는 계절의 변화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며 살아 왔다. 음력의 1삭망월(朔望月)은 29.53059일이고, 1태양년은 365.2422일이므로 음력 12달은 1태양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러므로 3년에 한 달, 또는 8년에 석 달의 윤달을 넣어야 계절의 확실한 시점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윤달
예로부터 윤달을 두는 방법이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다. 그 중 19태양년에 7개월의 윤달을 두는 방법을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라 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19태양년이 235태음월과 같은 일수가 된다. 19태양년=365.2422일×19=6939.6018일, 235삭망월=29.53059일×235=6939.6887일 차이, 0.0869일=2.09시간 여기에서 6,939일을 동양에서는 장(章)이라고 하여 BC 600년경인 중국의 춘추시대에 발견되었고, 서양에서는 메톤 주기라고 하여 BC 433년에 그리스의 메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장주기, 즉 메톤 주기는 계절과 월상(月相)이 먼저대로 복귀되는 주기이다. 이 사실을 2천5-6백년경에 밝혀 낸 것이다. 선인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과 별 차이가 없었음을 상기 시키고 있다. 더 상세한 내용은 지면상 생략 하지만 한 가지 윤달이 있는지를 아는 쉬운 방법은 양력 1월 중에 설날[1월 1일]이 들면 그해에 윤달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기본 상식이 있어야 음력에서 이야기 하는 띠를 정확히 알게 된다. 각 절기와 중기의 간격이 대략 15일 정도이다 보니. 음력의 어떤 달에는 절기만 있고 중기가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며, 반대로 중기만 있고 절기가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이 중기가 없는 달을 그 앞달의 이름을 따서 윤달로 하는 것이다. 즉, 윤달인 경우에는 중기가 들어있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하지가 들어있는 달이 음력 5월인데, 음력의 그 다음 달에는 대서가 들어있지 않고 그 다다음달에 대서가 들어있다면, 중간에 대서가 들어있지 않은 달은 윤5월이 되고, 그 다음달이 음력 6월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기가 없는 곳에 윤달을 둔다는 의미로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고 한다. 무중치윤법에 의하면, 중기가 없는 달은 전월의 이름을 따서 윤달로 하고 1년중 2개의 무중월이 있으면 앞에 나온 무중월을 윤달로 한다. 따라서 하지에 가까운 달에 윤달의 분포가 많으며, 겨울에는 1개월에 1절기 2중기가 들기도 하고, 2절기 1중기가 들기도 하여 좀처럼 윤달로 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윤동지 초하루’란 말의 윤동짓 날은 없는 달이란 뜻이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돈을 빌려 쓰고 ‘윤동짓날 초하루에 갚겠다’고 하면 그것은 갚지 않겠다는 사깃꾼의 말로 통한다는 것이다. 윤달에 관한 여러가지 다져야 할 것이 많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2019년인 올해는 기해(己亥)년으로, 항간에서는 60년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년초에 관련된 글이 신문마다 올랐었다. 돼지를 뜻하는 해(亥) 자 앞에 붙은 기(己) 자가 흙이나 노란색을 뜻하기 때문이다. 12년 전인 2007년도 황금 돼지의 해라고 불렸으나, 사실 2007년은 정해(丁亥)년으로 붉은돼지의 해였다. 60년 만에 진짜로 돌아온 황금돼지는 부와 건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년을 맞아 각종 지면에서 황금돼지가 저출생을 타개하리라고 기대하는 광경도 눈에 띄였었다. 허무 맹랑함은 그렇다 치고 업계가 품는 기대는 또 어떻게 생겨난 일인가 황당해 했다.
황금돼지의 해의 출산율
실제로 황금 돼지의 해라고 알려졌던 2007년에 신생아가 예년보다 5만명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는데 2019년은 진짜로 “황금 돼지의 해”인데 신생아수가 늘어날 것이지? 관심이 가게 된다. 띠가 좋으면 낳을 생각 없던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발상을 어리석게만 느껴지긴 하나, 좋은 띠가 아니었으면 낳지 않았을 아이를 낳는 일은 나쁜 띠가 아니라면 죽지 않았을 아이를 죽이는 일과 직결된다. 백말띠 해인 1990년은 여아 신생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이라는 최악의 성비를 기록한 해라고 한다. 이런 일은 용띠, 범띠, 말띠의 해에 반복됐다. 황금 돼지띠의 행운을 운운하며 아이를 기다리고 저출생 극복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단박에 고까운 마음이 들만도 하다. 2019년에는 황금 돼지의 해를 기대한 출산 특수가 정말로 일어날까? 예년에 비해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면, 기왕이면 올해에 맞추어 생애 사건을 계획할 법도 하다. 60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행운의 해라고 하니까. 그렇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2007년과 2019년 사이에 세상이 달라진 일은 물론이요, 마침 올해 결혼이나 출산이라는 기대를 받을 여성들은 띠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2019년 기해년(己亥年)는 돼지띠 해 중에서 60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 돼지” 해라고 하니 돼지의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듯 한반도에 적대감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와서 희망이 넘치는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