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폭발물, 지뢰 사고로 두 번 우는 피해자들 더 없어야
4월 4일은 ‘지뢰 인식과 지뢰 제거 활동 국제 지원의 날’
4월 4일은 올해로 제9회를 맞는 ‘지뢰 인식과 지뢰 제거 활동 국제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for Mine Awareness and Assistance in Mine Action)이다. 이 날은 2005년 12월 8일 국제 연합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에 의해 선언되었다.
이 날은 전쟁으로 인한 지뢰와 폭발성 잔여물이 시민들의 안전, 건강, 삶을 위협하고 있거나,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지뢰 제거 능력을 UN과 관계 조직들의 지원을 통해 계속적으로 확립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요청되었다.
UN은 지뢰로 인한 재앙과 전쟁의 폭발성 잔여물로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입국들의 제도 및 새로운 국제적 수단들의 확장을 장려하고, 현존하는 법적인 틀의 보편화를 지지한다.
대인 지뢰 금지 협정(Anti-Personnel Mine Ban Convention)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대인 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의 금지 및 파괴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Prohibition of the Use, Stockpiling, Production and Transfer of Anti-Personnel Mines and on Their Destruction)은 1997년에 제안되었고, 156개국이 비준하고 수락했다. 현재까지 4100만 개 이상의 비축되어 있던 대인 지뢰가 제거되었고, 그것들의 생산, 판매, 이전은 실질적으로 중단되었다.
UN의 전략적 목표는 더 이상 UN의 지뢰 제거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지뢰와 폭발성 잔여물에 의한 인도주의적, 사회적, 경제적인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 국가, 비국가 행위자, 위협받고 있는 공동체, 비정부 기구(NGO), 기증자, 민간 영역,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조직들 및 기타 행위자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UN의 지뢰 제거활동은 1차적으로 2006-2010년 국제 연합 지뢰 제거 활동 전략(United Nations Mine Action Strategy for 2006-2010)에서 확인된 4가지 전략적 목표에 의해 수행되었다. 첫째로 사망 및 부상을 최소 50% 감소, 둘째로 가장 심각하게 영향 받고 있는 공동체의 최소 80%에서 생계에 대한 위험 완화 및 이동의 자유 확장, 셋째로 지뢰 제거 활동을 최소 15개국의 국가적인 발전과 재건 계획 및 예산에 통합, 넷째로 최소 15개 국가에서 지뢰와 폭발성 잔여물을 다루기 위한 국가적 제도의 발전을 지원하고 대응력을 마련하는 노력을 해왔다.
모닥불을 쬐다 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잃은 야옥
지뢰와 같은 폭발물로 인한 위험은 지금도 땅속에 숨어 사람을 위협한다. 라오스에 사는 열 살 소년의 이름은 야옥이다. 야옥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월, 야옥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았다. 겨울이면 익숙하게 해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발음! 야옥은 정신을 잃었다. 야옥의 기억은 그 순간을 온전히 담지 못했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온통 불바다,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야옥의 작은 몸은 온통 피로 덮여있었고 함께 모닥불을 쬐고 있었던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야옥은 그렇게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를, 그리고 다리 한 쪽을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 아홉 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사건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폭탄이 묻힌 나라, 라오스
1964년 발발된 베트남 전쟁은 인근 라오스, 캄보디아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불리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베트남으로 향하는 모든 물자 수송로를 차단하고 라오스 군의 베트남 지원을 막기 위해 라오스에 공격을 가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200만 톤에 해당하는 폭발물을 58만 번에 걸쳐 투하했다고 하니, 계산해보면 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8분에 한번씩 폭탄이 투하된 셈이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라오스를 할퀸 폭탄은 50,0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그런데 여전히 라오스에는 연간 3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폭탄 중 30% 가량이 현재까지도 라오스 전역에 ‘활성 미 폭발물(UXO)’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옥이 살고 있는 라오스 동남쪽 베트남 접경지역에 가장 많이 남아있어 피해가 심각하다.
활성 미폭발물(UXO), 사상자의 40%는 어린이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마을 곳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미 폭발물들 때문에 라오스 인들은 여전히 전쟁 속에 살고 있다. 마을엔 이미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사고로 잃은 피해자들이 상당 수 있었고,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를 UXO폭발 사고 때문에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난 50년간 미 폭발물로 인한 사상자를 헤아려본다면 무려 50,000여 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40%는 위험이 닥쳤을 때 피할 힘이 없는 아동들이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를 당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위생적인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아서 숲에 가서 볼일을 보다가, 친구들과 장난감 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UXO가 폭발해 다리를 잃거나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죽음의 그림자를 밟으며 생계유지
미 폭발물이 끼치는 영향은 그 뿐이 아니다. UXO로 인해 유일한 수입의 공급원이었던 농경지가 망가져 이 지역 주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가뜩이나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하는 일은 UXO 밭에서 미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수당은 하루에 5천원 정도로 많이 받는 편이지만, 대신 매일 죽음의 그림자 아래 일해야만 한다. 매일 아침 폭발물이 있는 곳으로 가족이나 자식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 빈곤가정들과 피해가정의 분포도를 보면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
여전히 지뢰가 설치되는 미얀마와 시리아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얀마 동남부는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 NGO인 제네바콜의 추산에 따르면 지뢰 위험 지대에 살고 미얀마 국민은 5백만에 달한다. 1997년 이후 미얀마에만 지뢰로 인한 사망자 수는 공식 집계된 것만 3200명에 달하고, 지뢰로 팔다리를 잃은 피해자도 만명이 넘는다. 1997년 지뢰금지협약이 만들어진 이후 매년 지뢰를 설치해온 국가는 미얀마 뿐이며, 2012년에 지뢰를 새로 설치한 나라는 미얀마 외에 시리아뿐이다. 2012년 2월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지뢰 제거를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기 이전, 미얀마 정부는 지뢰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커녕, 지뢰 피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2012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 ‘지뢰의 날’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ICBL)이 미얀마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고, 지뢰 제거를 위한 실질적인 조사도 시작되지 않았다. 지뢰 피해자 지원은 여전히 정부의 보조 없이 국제기구들의 몫이다.
미얀마가 지뢰밭이 된 배경에는 자치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과 정부군 간의 오랜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양쪽 모두 지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지뢰는 인도주의적인 사안이 아니라 단순한 군사 전력의 일부로 인식된다.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지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정부가 지뢰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꾼 후로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뢰피해 위험지역, 2013년에도 사망자 발생
남한도 지뢰피해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 이후 일어난 지뢰폭발사고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총 43건 중 경기․인천 지역에서 26건, 강원 지역에서 17건으로 60%가 경기․인천 지역에서 발생했다. 43건의 지뢰사고 피해자 60명 중 44명이 민간인으로 사고의 73%가 무고한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
2000년 이후 민간인 피해자 44명의 지뢰폭발사고 신분별, 피해사항을 분석해 보면 사망 6명, 실명 2명, 발목절단 16명, 중상 21명이며, 군인 피해자 15명은 실명 2명, 발목절단 6명, 중상 7명(언론보도 인원 현황만 종합)으로 민간인의 피해가 크다. 가장 최근에는 2013년 4월 3일에 중동부전선 양구군 최전방부대 수색정찰중이던 A(21세) 일병이 지뢰폭발로 왼쪽 발 부상을 입었고, 4월 8일에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민통선지역 밭에서 지뢰폭발로 트렉터로 밭을 갈고 있던 농민 유모(68)씨가 사망했다.
재래식 무차별 살상무기인 대인지뢰 사용금지운동 및 인도적 지뢰제거활동을 전개하는 비정부 단체 ‘한국지뢰제거연구소’(소장 김기호)에 의하면 우리 주변 곳곳에 지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김포시청 뒷산 장릉산, 의정부 녹양동 뒷산 호명산, 포함 호미곳, 양산 천성산, 부산 태종대 중리산, 해운대 장산 등 전국 곳곳 지뢰 39개소 4천 여발 M14대인지뢰가 유실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매설된 지뢰의 위치와 정확한 개수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의 경우는 수량 미상으로 보고됐다. 구체적 수치로 제시된 자료는 국방부가 2000년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서 ‘민간인 통제선 북방과 비무장지대 안에 모두 105만발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이를 근거로 한 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남한에 묻혀있는 지뢰는 모두 112만5천여 발, 지뢰 매설지역은 2억9천6백7십 만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34배에 이른다. 지뢰제거에만 498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방치된 지뢰로 두 번 우는 피해자들 더 이상 없어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지뢰 분포는 이집트 2천3백만 개, 이란 1천6백만 개, 앙골라 1천5백만 개,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이라크에 각 1천만 개의 지뢰가 묻혀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안타까운 일은 ‘방치된 지뢰’의 폭발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피해자 대부분은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 한 채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40년 전 고사리를 캐다 지뢰를 밟은 할머니, 사라진 발목보다 더 큰 상처는 가슴 속에 남았다. 아들과 손주도 토끼를 잡다가 지뢰 폭발로 숨진 것이다. 철원의 대마리 마을에서는 그동안 지뢰 때문에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된 주민이 23명이나 된다.
지뢰는 전쟁의 상흔이다. 전쟁만 끝나면 모든게 평화로울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이래로 세계 곳곳에 심어진 지뢰는 지금도 소리없이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지뢰는 여느 재래식 무기와 다릅니다. 종전이 되면 군인들은 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지뢰는 수십 년간 땅 속에 그대로 묻혀 무차별적으로 생명을 앗아가거든요. 지뢰는 군인과 민간을 구별하지 않아요. 여자든, 어린이든, 땔감을 모으는 할머니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_ 조디 윌리엄스(Jody Williams /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ICBL 설립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