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최근, 정치 신념이 달라서 식구들이 싸우고 친구들이 싸움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저희 지역에는 한인 커뮤니티 카톡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커뮤니티 카톡을 통해서 접하곤 하는데 최근 정치적인 신념의 차이로 얼굴 붉혀지는 일이 있었다. 공공이 사용하는 카톡인데도 대상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함부로 욕하고 판단하고 심한 말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에 어떤 분이 자신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하나 올렸다. 그런데, 그것을 본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 화를 내면서 비난을 한 후 가짜 뉴스라고 하면서 자신이 올리는 것이 진짜라고 하며 또 뉴스를 올렸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올리지 말라고 하는데 왜 올리는지 모르겠다’면서 ‘뻔뻔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부터 더불어 어떤 분은 인격 모독의 욕까지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좌파, 우파에서 우리는 “진짜”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컵에 반 정도의 물이 있을 때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았다고 해석한다. 물컵에 반이라고 하는 사실은 똑같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렌즈에 의해서 그 사실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똑같은 사실도 우파에게는 좌파의 뉴스가 거짓이 되고 좌파에게는 우파의 뉴스가 거짓이 되는 것은 성향에 따라 해석하는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거부한다. 서구 중심에 중산층을 중심으로 또는 힘을 가진 자들의 보편적 진리가 다른 문화와 사회 또는 개인적인 것에는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보편적 진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필자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비판할 것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각 개인의 독특한 삶의 경험과 이야기를 존중해주는 부분은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자신의 믿고 있는 가치나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에 대해서 돌아보고 점검해 보게 하는 부분은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는 좋은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돕는 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완벽한 상담모델은 없음을 보게 된다. 그 좋다고 말하는 인지 행동 치료도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개개인은 달라서 똑 같은 상담 모델을 적용해도 반응하는 방식과 생활 양식이 달라서 다르게 적용되어지고 결과도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대를 주름잡던 당대의 철학은 여지없이 다음 세대가 되면 무너져 버리고 그것에 반하는 철학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이전 세대에는 당연한 진리라고 믿었던 기준들이 시대를 지나면서 비 진리가 되는 것들이 생각 외로 일상적 삶에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 결석을 하지 않는 것이 대단한 것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아픈데 학교오는 것은 학생들을 감염시키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본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똑같은 행동이 옳은 행동이 되기도 하고 잘못된 행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바뀌는 사상과 전략들을 가지고 “이것이 진짜고 이것이 가짜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사상이나 생각에 대해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도 열린 자세로 들어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린 자세가 없을 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있을 때 방어벽을 치고 무조건 듣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일 때가 많다.
분석 심리학의 칼융은 중년의 나이에 건강한 모습으로 인생의 과업을 수행하려면 통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인격의 모습, 다양한 삶의 가면들을 잘 통합할 때 성숙한 중년의 모습이 된다는 것인데, 한 가지 모습만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 사람은 뾰족하고 모난 사람이 되어 버리고 개성화에 실패하게 되어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신봉하고 따르고 있는 사상은 모두 철학적인 전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한 번 즈음은 “내가 믿고 따르는 신념과 사상은 어떤 철학적인 전제를 가지고 만들어 진 것일까?” 그리고 “그 전제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나는 어떤 렌즈를 끼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습이다. 상담에서는 상담사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렌즈, 세상에 대한 렌즈가 돕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지를 잘 살펴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우파이기에 ‘무조건 우파에 속한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것은 옳다’라고 보거나 내가 좌파이기에 무조건 ‘좌파가 하는 것은 다 진리다’라고 보는 시각은 교정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사람들과 관계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각자 살펴볼 수 있는 성숙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바라기는 한국인들의 공동체 카톡 방이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 말하는 카톡 방이 아니라 ‘당신은 이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군요.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비방하고 반대하는 것을 멈추고 호주에 사는 만큼 다양성을 인정하며 또 상대방의 다른 점을 인정함으로 나의 것만 절대적으로 옳다라고 하는 편협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열린 자세로 타인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코로나19’와 ‘불안감’
전 세계적으로 2020년 3월 24일 현재 38만명 이상으로 퍼져 나가며 1만6천5백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코로나19는 전 인류에게 ‘불안감’이라는 단어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불안감은 사재기를 하게 하기도 하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쉽게 짜증과 화를 내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안감은 현재의 상황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필자의 학교의 학생들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커지고 있다.
많은 것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업채를 포기해야 하는 분들과 매일 벌어서 살아왔던 일용직의 일을 했던 분들, 그리고 많은 융자를 안고 최근 주택을 구매하셨던 분들 모두 미래를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불안하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같은 실제적인 삶의 어려움은 사람들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생존의 욕구를 흔들어 놓기 때문에 더 큰 불안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어떤 엄마는 싱글맘으로 혼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직업을 잃어버렸는데 아이가 학교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니 불안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다루고 표현할 여유조차 없으신 분도 많다.
현재에 겪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이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또 다른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백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통제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에 더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불안감이 실제로 줄어든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증명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똑같은 두 그룹에게 큰 소음 중 일을 시켰는데 한 집단에게는 너무 소리가 커서 견딜 수 없으면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말해 주었고, 다른 한 집단에게는 아무런 지시사항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똑 같은 환경 조건이었으나 버튼을 누르는 기능이 있다고 믿는 그룹이 훨씬 더 끝까지 일을 마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이 실험은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불안감을 훨씬 더 잘 극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 안전에 대해서 예민한 분들은 언제,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겨올지 모른다는 것이 큰 위협으로 여기지면서 불안감이 더 심해진다. 지금 상황은 ‘안전하지 않다’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염려하게 된다. 이러한 분들은 최악의 상황을 잘 예상하고 그려보는데 익숙하다. 예를 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옮겨와서 나의 폐가 나빠지고 나 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옮겨가고 또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께도 옮겨서 우리 가족의 누군가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사실, 안전하다는 인식은 누구나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심리 사회 발달을 이야기한 에릭 에릭슨은 어린 아이가 생후 2년 동안 신뢰를 통해 안전감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 전체를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안전감이 위협을 받고 있기에 사람들은 지금 불안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이다.
불안에 반응하는 신경 세포들은 실제 닥친 현상이 아니라 인식하고 있는 불안에 반응하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되면 실제 불안이 없는 상황에서도 불안감을 경험하게 되는 데 이것이 심해지면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전 세계가 다양한 지진, 홍수, 기근, 수퍼바이러스 등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요즘은 실제로 우울증을 능가하는 장애로 불안 장애가 많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어떻게 불안감을 다루어야 할까?
먼저는,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은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안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이 가지고 있는 좋은 기능도 있다. ‘여키스 -도슨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법칙은 적당한 불안이 사람으로 하여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불안이 너무 적으면 사람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일어나지 않고 불안이 너무 크면 불안에 압도가 되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는 불안이 압도할 만큼 큰 것이 아니라면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는 거야’, ‘상황이 이러 이러해서 내가 불안한 거야’, ‘미래도 불투명하게 되었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안전의 위험도 느껴지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라고 말해 주며 ‘이 불안으로 인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게 되는 부분이 있을 거야. 어려움은 또 다른 성장의 기회인 거야 ‘라고 반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불안이 정상적인 것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또 다른 성장의 기회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불안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호흡’을 통해서 불안한 나의 몸과 마음을 안정되게 자꾸 바꾸어 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결국, 불안은 위협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인식으로 오는 것인데 불안은 생각으로 시작되어 온 몸의 감각이 반응을 하게 만들기에 몸을 다스려 평안한 상태를 찾아가게 하는 것은 불안을 다스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쉽게는 편안한 곳에 앉아서 내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껴보고 내 몸의 감각을 느끼면서 하루에 두 번 이상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배가 나오도록), 2초 정도 쉰 다음 최대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시간 보다 두 배정도로 길게 내 뱉는 것을 5번 정도 반복하면서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단순한 호흡법이지만 불안감을 다스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다.
다음으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주는 그 일에 포커스(focus)를 맞추게 되는데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그러므로 포커스를 내가 불안해하는 그 일에서 옮기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불안감을 잊어버리게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는 것 예를 들면,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한다든가, 아주 좋아하는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다 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 또는 안전한 장소를 떠올려 보는 것 등도 나의 포커스를 옮기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는 것도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 외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악의 상황이 되면 “나는 신을 의지해서 기도할 수 있다”. 또는 “나는 최악의 상황을 위해 뒷마당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 수 있어”. 혹은 “최악의 상황이 되면 당분간 잘 쉬고 미래의 기회를 다시 생각해 보면 되지 뭐” 등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강력한 자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경험하는 불안 앞에 눌려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