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논단(24)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본 G2국가로서 중국에 관한 연구
세계 지도자 역할에 관하여
목 차 I. 서론 II. 중국의 역사적 배경 연구 III. G2국가로서 중국 IV. G2국가 중국민족의 세계관 V. 100년간 G1 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미국의 청교도 정신 VI. 중국의 G2 역할과 수행 능력 VII. G2국가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1. 중국의 기독교 전래와 그 역사 2. 중국의 선교정책과 하나님의 섭리 3. 중국의 개혁개방과 중국 기독교의 역할 IX. 결론 |
VIII. G2 중국의 기독교 선교와 역사적 교훈
3.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기독교
하나님께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성도들과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성도들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의 기준도 성도들의 정치제도 에 영향이 있으실까? 자유 민주주의에서 생활하며 신앙 생활하는 기독교 성도들은 공산주의 체제의 성도들보다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물량주의를 내세워 교만하기도 하다. 우선 공산주의 체제의 성도들은 대다수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체제적으로 개인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할지라도 신앙과 믿음까지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성도들과 기독교 지도자들까지도 신앙과 재물은 비례한다고 생각하며 대다수의 설교도 그런 기준에서 하고 있다. 중국의 성도들은 수많은 어려움의 핍박과 시련에서 신앙을 지켜온 믿음의 용장 들이다.
1949년 공산사회주의 건국과 특히 문화혁명 기간을 거치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불같은 시험을 이겨온 중국의 기독교다. 중국 공산주의 혹독한 탄압아래서 중국 기독교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기독교 역사속에 시대마다 기독교가 불같은 시험 속에 정금 같은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기독교를 인류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250여년 동안 로마 도시의 카타콤 공동체 속에서 신앙을 연마하셨다. 미국 건국의 뿌리에는 정치적 종교의 탄압을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1978년 서구 경제제도인 자유시장경제의 개혁개방 이후의 30년은 중국역사 속에 가장 현대화로 개방되며 경제가 성장하여 G2로 성공한 시대이다. 중국은 세계역사에서 아무도 할 수 없던 경제발전을 이룩한 경제대국이다. 그리고 개혁개방과 함께 종교 신앙의 제도 역시 개방되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기독교 신앙의 자유가 서구진영 같이 완전한 자유적 환경은 아니지만 기독교 예배를 드리는 것에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종교국에서 허락을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제한은 법적으로 전제해야 한다.
정부가 공인한 삼자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삼자교회나 가정교회나 또는 지하교회들은 물론 공개적으로 전도행위는 할 수 없지만, 중국 정부의 종교국이 정하여준 법의 범위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삼자교회가 태생적으로 중국 공산주의 이념체제 사상에 기여해야 하는 취약점이 존재하지만 지금 중국 공산주의 이념 사상도 칼 마르크스 레닌 사상의 자본론에서는 완전히 변화된 자유경제 제도를 표방하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공산사회주의 제도는 이미 칼 마르크스 레닌의 이념과는 너무나 멀리 와 있다. 중국의 기독교는 잠재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으로 따라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 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중국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피를 흘린 피의 흔적이 중국대륙에 남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노력한 선교의 대가와 순교자의 흘린 피의 대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G2중국 공산당 정권이 교만하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할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 속에서 인간은 순종 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이다.
중국 개신교 기독교는 대체로 삼자교화와 가정교회 또는 지하교회가 발전하고 있다. 삼자교회 역시 장단점이 있으며, 가정교회 역시 장단점이 있기도 하다. 개신교 선교사는 처음으로 영국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년)이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 아직도 청나라 정부가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고 있기에 비밀리에 동남부 해안 지역에 선교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두 번의 아편전쟁(1839-1842년, 1856-1860년)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민지적 침략과 함께 기독교 선교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록 기독교가 전쟁 침략자와 함께 중국에 상륙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중에 있다면 또 다른 하나님의 선교 계획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국민들은 ‘석가여래는 횐 코끼리를 타고 중국에 왔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대표를 끌고 중국에 왔다’는 논리로 기독교를 배척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의화단의 외세 배척 운동의 중국 민족주의 사상과 모택동의 공산주의 사상의 시대적 요구와 결합하여 모택동은 중국을 공산주의 통일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공산주의는 21세기 폐기물에 가까운 계급투쟁 사상이다. 1940년대 헤겔 철학의 뿌리에서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회철학적 경제사회학적 자본론 이론들의 개요를 발표했다.
공산당선언(Communistisch manifest, 1848년)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권력을 쟁취하고 공산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투쟁했다. 그러나 21세기 칼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본론 법칙으로는 인류의 의·식·주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사상으로 증명되었다. 이제 공산주의 자본론은 가난의 대명사로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구 소련 역시 마르크스 레닌 공산주의를 1991년 포기했다. 중국 공산당은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여 1949년 중화 인민공화국을 건국하여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인민공사를 설립하여 집단농장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인민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문제와 기아 문제는 극심해 갔다. 1976년 9월 9일 모택동 주석이 사망하자 등소평 부주석은 인민공사를 폐지하고 농지를 사유화하여 농민들에게 돌려주면서 굶주림과 기아문제는 해결되어 갔다.
1978년 중국은 공산주의 자본론에 위배되는 자유시장 경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중국 경제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시장 경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에서 경제 개방정책을 시행하여 30여년 만에 중국의 경제는 G2의 지위를 차지했다. 분명한 사실은 개혁 개방과 함께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한 중국공산주의 정부에 감사한다.
국가와 개인에게도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리고 세상의 섭리는 절대 하나님의 주권이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지에 비례하여 축복의 은혜를 누리는 성서적 법칙이며, 역사적 역사에서 증거하고 있다. 중국에서 법적으로 종교를 가질 수도 있으며 가지지 않는 자유도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 공산주의 무신론 정당이 통치하는 중국국가에서 유신론의 종교가 용인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법적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아래 규정이 현행 종교 정책들이다.
1. 시민들은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떤 종파든 믿을 수 있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2. 이 나라 정부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따른다. 어느 종교도 행정 및 사법 체계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어느 종교도 특수한 지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3. 종교단체는 중국의 헌법 및 관련 법과 정부 정책의 범위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 종교적 자유의 권리를 행사할 때 어느 누구도 종교를 나라와 개인을 해할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헌법 및 관련 법과 정책의 범위 내에서 종교 활동을 보호한다. 정부는 종교 단체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 그리고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전문직 종교인을 보호한다.
4. 모든 종교는 평등하다. 정부는 모든 종교를 동일하게 대우한다. 모든 종교는 신도 수와 영향력에 관계없이 정치적, 법적으로 평등하다.
5. 무신론과 유신론은 서로 상호 존중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대다수가 비(非)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활동은 정부가 지정한 종교활동 장소 내에서 수행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종교 활동장소 안에서 무신론 선전을 하거나 종교 신도들 간에 무신론-유신론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종교 단체도 종교 활동장소 밖에서 유신론을 설교나 설법,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
6. 중국의 모든 종교는 독립과 자기관리 원칙을 따를 것이며, 평등과 친선의 바탕 위에서 해외 종교단체 및 유력 인사와 상호교류 및 협력을 발전시킬 것이다. 외국이 종교의 이름으로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법치주의 기준에는 공산당의 초월적 지위를 부정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 법의 기준을 두고 있다. 무신론 공산주의 정당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유신론 종교가 허용될 수 있을까? 모든 종교의 자유도 중국 공산당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없는 기준 안에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중국고유의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가? 도교가 있긴 하지만 불교에서 파생한 불교 이후에 등장한 종교이다.
유교는 종교이기보다는 유교적 문화는 사회와 국민 생활의 합리성에 기준을 두며 현실 정치, 윤리, 도덕적 기준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유교 문화이다. 그러나 무신론 공산 사회주의 중국에서 종교생활이 허용되는 것은 중국정부 자체에게 대단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주는 중국 사회주의 국가에 G2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깊은 계획과 은혜이다. 중국에는 13억5,000만명의 영혼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복음화는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선교의 비전이다. 중국과 인접한 14개 국가와 주변의 27개국이 42억의 아시아 복음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중국 교회는 1910년대에 시작된 교회의 자립과 합동운동은 자치(self – governing), 자양(self – supporting), 자전(self – propagating)의 세 가지 면에서 자립이 행해지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 운동은 1927년 이후 상당히 전진되어 중화 기독교회가 중국 현지인에 의하여 운영되었고 여기에 속한 외국인 선교사들도 모국의 선교단체가 아니라 중화 기독교회의 차체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르는 교회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1929년경부터는 중국인 교회가 새로운 회칙을 만들어 종래보다 중국인 중심으로 자립에 맡길 시기를 찾아 선교사가 철수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의 삼자 교회는 중국 공산당의 정책으로 삼자교회 정책이 아니라 이미 100년 전부터 내려오던 중국교회의 자립 방침이다. 중국 기독교의 세계관과 중국 자생적 중국인 세계관을 존중하고 중국에서 교회를 설립하여 지원하는 본국의 지교회 형태의 교회를 창립하여 본국에서 보내오는 선교자금으로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 선교 방침은 중국교회가 지향하는 중국교회의 삼자 원칙에는 결코 도움을 줄 수 없는 선교정책이라는 것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 공화국을 건국하여 중국 공산당 국가 주석에 취임한 모택동 주석은 문화혁명의 막바지에는 모든 공개적인 종교활동을 금지하고 교회와 교회 재산은 몰수하였다. 비밀리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입술을 움직여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기도하는 소리가 공산당원에게 들리면 다시 집으로 돌아 올 수 없다. 그리고 신앙을 공개적으로 들어내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 중국에서 신앙생활을 계속 한다는 것은 목숨과 바꾸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새워진 미국과 1979년 1월 정식으로 수교를 하면서 중국이 개혁개방이 정책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시작하면서 종교의 자유도 함께 주어지게 되었다.
IX. 결론
어떻게 중국의 국가가 칼 마르크스 사회주의 자본론 국가이면서 어떻게 G2라는 세계 경제 2위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1979년 1월 1일에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등소평 주석 자신은 30년 만에 G2중국을 예측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결과는 2010년 말 일본 경제를 추월하여 세계 경제권 G2국가의 위치를 개혁개방 30년만에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속에 있다는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물론 이 말씀은 크리스챤들에게 국가의 권력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은 말씀으로 보이지만, 모든 인류에게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선 크리스챤들도 세상적 법칙과 질서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교훈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3억5천만 중국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중국에는 삼자교회 성도들과 가정교회(지하교회) 성도들로 1억3천여 명이 넘는 중국의 성도들이 매주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는 중국 지도자에게 주시는 축복인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와 사회주의 국가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에서 정치와 제도에는 상관하지 않으시고 성도들이 어떻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찾으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지금 유럽의 전 대륙에서도 매 주일 1억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모택동의 혹독한 문화혁명 10년 동안과 혹독한 공산당의 박해와 시련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중국의 성도들이 1억3천이 넘는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미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 성도들의 신앙과 믿음에 비례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법칙에 기준 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정부가 정치제도는 비록 공산사회주의 정치노선을 채택하고 있지만 특히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1억 3천에서 2억 3천으로 부흥하여 중국사회가 하나님이 원하는 민족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며 더 큰 축복을 중국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수많은 선교의 발자취와 선교의 피가 맺어진 중국대륙이다. 중국 공산당원 8,000여명은 중국 국가를 받들고 중국기독교 성도 1억 3천만은 중국국가의 기강을 지키며 봉사할 때 21세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중국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중국에서 매주일 1억 3천의 성도들이 하나님에게 예배를 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중국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중국대륙에 당 태종 9년(AD 635년) 아리본의(Alopenzz)에 의해 기독교가 전해진 이후 여러 번의 박해로 인해 기독교가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1억 3천의 중국의 성도들이 중국대륙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중국의 희망이요 국가적 인적 자산이다. 예배의 처소를 제공하며 공산주의 체재에서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국정부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이다.(완결)
강호생 선교사
Dr.강호생 Missionary Pastor
Iona Columba College 겸임교수
Mental Health CPE 과정수료
M.Div, M.Th, D.Ics
jhska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