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그리스·터키 여행공부
고대 그리스 철학
인문학 여행을 통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살펴 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 프리젠테이션에서 간단하게나마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과 고대 그리스에 형성되었던 그들의 사상은 어떠했는지와 중요한 학파들을 통해서 살펴 볼 것이다. 또한 소피스들은 그 시대에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알아보도록 할 것이며, 우리가 여행하게 될, 아테네가 탄생시킨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
고대 그리스 철학(Ancient Greek philosophy)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 흔한 철학의 총칭으로 현재에 말하는 철학뿐만 아니라, 자연철학(물리학)이나 수학을 포함한 학문이나 학구적 영위의 총칭이다. ‘철학(고대 그리스어: φιλοσοφία,philosophia, 필로소피아)’ 및 ‘철학자(필로소포스)’라는 말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전해진다. ‘철학자’를 포함한 ‘지자(소포스)’는 ‘소피스트(고대 그리스어:σοφιστής, sophistes, 소피스테스)’라고도 불려 시인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리스 철학의 기원을,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시작되는 이오니아학파(엄밀하게는 밀레토스학파)와,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는 이탈리아학파(피타고라스교단)로 크게 나누어, 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학파)나 플라톤(고아카데메이아학파)은 전자의 계보로, 파르메니데스•제논과 함께(엘레아학파) 에피쿠로스(에피쿠로스학파)들은 후자의 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층 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철학에는 자연철학, 윤리학, 논리학의 세 개의 부문이 있으며, 우선 자연철학이 발달해, 그 다음에 소크라테스가 윤리학을, 제논이 논리학을 확립해, 윤리학에는 아카데메이아학파, 키레네학파, 앨리스학파, 메가라학파, 키니코스학파, 에레트리아학파, 궤변학파(소피스트 등), 소요학파(페리파트스학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라는 10의 학파가 있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탈레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를 이 구분에 포함한다.
2. 밀레투스학파
밀레토스학파는 BC 6세기에 성립된 그리스 최초의 철학 학파이다. 아나톨리아의 에게 연안의 이오니아의 도시밀레토스 출신의 탈레스가 창시했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로 학풍이 이어졌다. 이들의 활약 시기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보다 백 년 이상 앞선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자연현상을 전적으로 의인화된 신들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당시의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점에 반하여 새로운 견해들을 제시했다. 이들은 밀레토스의 자연에 경탄했으며, 그 자연의 바탕에 있는 만물의 근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자연철학으로 분류된다.
3. 피타고라스학파
피타고라스학파(Pythagoreans) 또는 피타고라스주의(Pythagoreanism)는 피타고라스(Πυθαγόρας: BC 569?~497?)를 기원으로 하여 출발한 학파이며, BC 6세기~BC 4세기 사이 피타고라스와 그의 계승자들을 통해 번성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 분파이다. 또는 그의 학설과 신조를 신봉하는 피타고라스 교단(Pythagorean cult, 피타고라스 컬트 종교)을 뜻하기도 한다. 이 학파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기원전 1세기에는 신피타고라스학파라고 불리었다.
피타고라스 자신은 피타고라스의 제자들과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을 구별하였으며,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을 정통적인 후계자로 정하였다고 전한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내부층에 해당하는 전자의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배우는 자”라는 뜻의 마테마티코이(mathematikoi)라 불렸으며, 외부층에 해당하는 후자의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은 “듣는 자”라는 뜻의 아쿠스마티코이(akousmatikoi)라 불렸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 가운데는 이론과 실천을 결부시킨 테베의 필롤라오스(Φιλόλαος: BC 470?~385?)와 탈라스의아르키타스(Ἀρχύτας: BC 428~347) 등이 유명하다. 수(數) 이론을 만물의 근원이자 철학의 핵심 요소로 삼았으며 신비주의적 종교 결사의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주된 교의는수학과종교이며 나아가서 가족·생활법·음악·의술·정치·조화(調和)·우주 생성론을 다루고 있으며, 원리가 물질이 아닌 사고물(思考物)이라는 것에 주목하였다. 즉, “만물의 원리는 수(數)이며 만물은 수를 모방한다”라고 말하였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윤회(輪廻)와 전생(轉生)을 믿었으며, 재산을 공유하여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살생을 피하며, 조화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1)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 철학의 큰 두 줄기
철학자들도 이렇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철학적 입장도 그에 걸맞게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기 입장에 따라 현실을 바꾸어 꿰맞추려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우리는 앞의 사람을 ‘현실주의자’라 하고, 뒤의 사람을 ‘이상주의자’라고 부른다. 즉, 이상주의자가 미리 그려진 ‘지도’에 맞추어 현실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면 현실주의자는 현실에 맞추어 ‘지도’를 고쳐나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서 지도란 세상을 보는 틀, 즉 ‘철학’을 말한다. 즉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라는 원형(原形)을 형성한 사람들이다.
2) “존재하는 것은 일자(一者) 뿐이다” –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Elea: 지금의 이탈리아 벨리아) 사람이다. 엘레아는 에페소스와는 정반대의 도시였다. 지금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인구 천 명이 안 되는 소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스피노자가 다락방에 은둔하면서 고도의 정교하고 세련된 사유를 할 수 있었듯, 파르메니데스는 이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독특한 철학 이론을 내 놓았다. 이 변방의 사색가는 이미 당대의 최고 문화 국가 아테네에까지 널리 알려질 만큼 유명한 학자였는데(25세의 소크라테스가 이 노 철학자와 치열하게 논쟁한 기록이 전해온다), 아쉽게도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당연하다. 뭐 이런 말을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말은 충격적이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사실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없음 자체’를 머리에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없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있는 것 하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으려면 있는 것 사이에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하나의 있는 것, 즉 ‘일자(一者) 존재’ 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운동과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법, 하지만 앞서 논변이 증명하듯 허공은 없다. 그렇다면 운동도 없다. 이러한 ‘말장난’ 같은 것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으며 이후 2,500여 년 동안 수많은 논쟁을 낳았을 정도다.
파르메니데스가 이 논증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세상의 참모습은 눈앞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철한 논리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그의 작품 ‘자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시 중 일부만이 전해 올 뿐이다. 그는 이 시에서 진리의 길(존재의 길)과 믿음의 길(비존재의 길)을 매우 엄숙한 어조로 구분하고 강조한다.
3)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Ήράκλειτος, BC 6세기초)는고대 그리스의 이른바 전소크라테스 철학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글을 자주 씀으로써 이미 고대에 ‘어두운 철학자(Skoteinos)’로 이름이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플라톤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그의 중심 사상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 그 어떤 것도 안정되거나 머물러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 변화”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다.
5. 소피스트들
고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변론술 및 출세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고 많은 보수를 받은 철학자들의 무리를 소피스트라고 한다. 원래의 의미는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뜻하였으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변론술을 주로 가르쳤으며, 선(善)한 가치 그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에 치중하였으므로 후세에 ‘궤변을 일삼는 무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피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니피아스, 프로디코스 등이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 ‘변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친구 칼리아스가 델포이에 갔다가 ‘가장 현명한 이는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는 이를 소크라테스에게 전했다고 한다. 신탁의 내용을 의심한 소크라테스는 당시에 장인, 시인, 정치인, 소피스트 등 소위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계속해서 물었고, 이들을 논파하며 결국 자신은 물론 그들마저 무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최소한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신이, 무지하면서 마치 스스로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보다는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지(無知)에 대한 자각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대부분은 그 내용 자체가 소크라테스가 지인이나 지인의 자녀들이 소피스트에게 가려고 하자 이를 일단 저지하고 보는 내용이며,아예 ‘소피스트’라는 대화편에서는 대놓고 소피스트들을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역시 상당히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소피스트들을 지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소피스트적 논박’이라는 저술이 있다. 또한 그는 아예 ‘수사학’이라는 저술로 소피스트들의 궤변적인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의 수사학을 정립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6.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1) 소크라테스(Socrates)
소크라테스(그리스어: Σωκράτης,Socrates, BC 470년경–BC 399년 5월 7일)는고대 그리스의철학자이다. BC 469년고대 그리스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을철학의 제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 등에 의해 ‘신성 모독죄’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당하고 BC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사약을 마셔 사형을 당했다.
흔히 공자, 예수, 석가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린다.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의 저서 위대한 사상가들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철학자로 평생동안 도덕문제에 대한 성찰을 끊이지 않았으며 독특한 대화술로 어디서든 토론을 벌이는 것을 즐겼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남기지 않고 시장터에서 나누는 토론으로 자신의 철학관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의 연구는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이루어 졌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자연철학적 관점은 배제하고 윤리적인 문제에 골몰하였으며 처음으로 정의라는 것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덕과 지식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지덕합일설’을 주장한다(지덕합일설: 어떠한 사람도 고의로 악을 행하지 않으며, 악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지에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목적은 철학적 체계구축이라기 보다는 진리 탐구를 통한 실천적인 덕의 발동인 것이다. 그의 윤리 사상을 알아보면,
(1) 진리에 대한 무지를 자각 강조 – “너 자신을 알라”을 인용함.
(2)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강조함 –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3) 도덕적인 사람 덕있는 사람 – 우선 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함(“덕[아레떼]”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잘 수행해 내는 탁월한 상태).
(4) 주지주의 – 덕이 무엇인지에 관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반듯이 도덕적인 행위를 함(주지주의: 감정이나 정서보다는 지성 또는 이미지를 앞세우는 경향이나 태도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진리와 덕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때의 일이 단순히 사실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인식이라고 하였다).
(5) 지덕복 합일설(참된 앎을 통해 덕을 쌓아갈 때 비로소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플라톤(Platon)
플라톤(Platon, BC 427-347 혹은 424–348)은 아테네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아리스토넬레스의 스승이었다. 플라톤은 21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에게서 철학과 인생을 배움으로 정치가가 꿈이었던 그는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평생에 단 한편의 글도 남기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만남으로 역사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로 빛을 발하게 되었고 프라톤 역시 소프라테스와의 만남으로 위대한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28살에 세계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으며, 그리스의 4대 학원 Platon의 Akademia / Aristoteles의 Lykeion / Epikouros의 Epikouros / Stoa학파의 Stoa학원 중 하나인 아카데미아(Akademia)을 세웠다. 여기에서는 주로 정치학, 윤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을 가르쳤으나 수학과 기하학과 천문학을 포함한 물리학도 가르쳤다. 그의 집 정원에 세워진 학교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이는 플라톤이 기하학을 중요시 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학교는 AD 529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아카데미아를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폐교할 때까지 거의 천 여년 동안 지중해 세계 최고의 두뇌집단이었고 지식인 양성의 모체였으며 학문의 전당이었고 자유의 시험장이 되었다.
플라톤 철학의 제일 중요한 핵심은 ‘이원론’이다. 그는 자연계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둘로 나누어서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다. 첫째로 현상계가 있다. 이는 나타나는 현실 세계를 말한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맞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아니면 피부로 접촉해서 알게 되는 모든 현상계가 1차적인 인식의 세계이다. 둘째로 플라톤은 우리의 감각, 즉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손으로 만져지지 아니하는 현상계의 이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정신적 세계, 이념의 세계를 ‘이데아(Idea)’ 혹은 ‘이데아 세계’라 불렸다. 플라톤의 대표적인 저작들로서는 “소프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파르메니데스” “파이드로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국가” “법률” 등이 있다. 그외, 소크라테스와 여러 제자들이 나누는 대화들로 역은 “대화”편이 35개가 전해진다. 이는 서로 묻고 답하는 희곡식으로 전해진다. 또한 편지라고 생각되는 “서간문” 13개가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BC 384–322) 니코마코스라는 의사의 아들로 트리키아 지방의 Stageia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넓게 마케도니아라고 불리는데 이곳 사람들은 주로 목축업을 했기 때문에 아테네인들이 보기에는 야만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2세의 시의였다. 이 필립포스 2세의 아들이 유명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이다. 영어로 Alexander라고 부르는 이 왕은 후에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인도까지 세력을 넓혀 그리스 문명을 동서양에 퍼뜨린 유명한 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 때 고향을 떠나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Akademia에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었고 플라톤 사후 약 3년간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로 일한 후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스승의 ‘아카데이미아’와 별도로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BC 335년경 아테네의 아폴론 신전 근처 숲속에 세워진 이 철학 학교는 아테네의 4대 학교 중 두 번째 학교였으며 교수와 학생들이 숲 속을 거닐면서 강의와 질문을 함께하는 토론식 공부를 했다. 이것이 오늘날 서구의 토론식 교수법인 Tutorial의 기원이 되었다. ‘리케이온’에는 서구 최초의 도서관을 세워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심지어는 동물원까지 만들었다. 주로 야외에서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강의와 질문을 했다고 해서 ‘페리파토스’ 즉 ‘소요학파’라고 불리우는 리케이온에서는 철학이나 논리학, 수사학, 윤리학, 미학, 시학 만이 아니라 물리학, 식물학, 동물학, 정치학까지 다루었다. 그래서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과 자연과학을 통털어 서양에서 모든 학문의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수많은 강의록들을 9세기 이후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서 출판이 되었는데 제1부는 ‘오르가논(Orhanon)’이고, 제2부는 ‘물리학(Physics)’이다. 그의 저서들은 거의 다 그리스어에서 라틴어와 아람어로 번역이 되었다. 그의 ‘논리학’에는 범주, 명제, 분석론, 변증론 같은 것들이 있고 ‘자연과학’에서는 자연학, 천체학, 기상학, 동물학, 영혼학, 생성과 소멸, 생각과 기억, 꿈과 깨어남,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 정치학, 시학, 수사학 등이 방대한 자료들로 전해져 왔다.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이원론(Dualism)을 거부하고 ‘일원론(Monism)을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이데아와 현상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 속에는 그 사물의 이데아가 본래부터 들어와서 함께 공존한다’는 말로 요약이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쳐 ‘하늘에 있던 이데아를 개개인의 사물들 속에서 발견해낸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에서 처음으로 학문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학문의 정의, 학문의 분류, 학문의 방법론 등을 가다듬었다. 현재에도 그가 사용한 모든 언어들이 우리의 분과 과목이 된다.
나가는 말
간단하게 고대 그리스 철학을 다루어 보았다. 철학의 도시, 아테네를 방문하게 될텐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본다.
이번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학문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김정금-Clara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