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후회 / Tempus fugit, Amor manet / 포기할 일과 포기하지 말아야할 일 / Me vidit Deus / 단순한 생활 연습해 보기, 단순한 생각 연습해 보기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8) _ 6월 29일
“후회”
나는 후회가 많은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않그럴걸’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전말 ‘껄껄 인생’입니다.
참을걸, 양보할걸, 그런 말은 하지말걸, 저줄걸, 웃을걸, 다정하게 대할걸, 솔직하게 털어놓을걸….
하루를 지나 저녁만 되어도 후회스런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7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왔으니 저는 참 ‘후회할 일만 쌓아온 인생’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뭐하겠냐”는 속담도 있고, “사후 약방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자책도 하지만 그래도 늘 번번이 후회되는 삶을 거듭합니다.
후회, regret이란 단순히 지난 일을 한탄하며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일을 반성하며 그 잘못을 깨달아 고치는 것일 텐데 그게 참 어렵기만 합니다.
죽음의 때가 가까워지면 후회하는 것들 중 제일 많은 케이스는 첫째,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 둘째, 좀 더 솔직하게 살지 못한 것. 셋째,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아온 것 (이를테면 자식인생, 남편인생, 교회인생, 직장인생 등). 넷째, 그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한 것 등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침마다 결심하고, 저녁마다 후회합니다.
톨스토이의 충고를 기억하면서 “후회해 보았자 소용은 없지만 그래도 후회하는 인간은 아름답습니다.”
라틴어 인문학 (19) _ 6월 30일
Tempus fugit, Amor manet.
(템푸스 푸기트 아모르 마네트)
tempus, 시간, 세월, time
fugit, 흐른다, 날아간다, fly
amor, 사랑, love
manet, 남는다, remain
시간 (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남는다 (영원하다).
Heraķleitos는 ‘만물은 흐른다’ (Patna rei)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Parmenides는 ‘우주에는 불변의 것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6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호주에서는 7월부터가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됩니다. 코로나로 인한 아픔과 어려움도 5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세월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갑니다. 이와 함께 모든 것은 변하고 모습을 달리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사상도, 주장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서도 우리는 그 어떤 불변의 진리,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것을 사모하고 찾아보며 기다립니다.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겠지요?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시간도 흐르고 세월도 변하지만 사랑은, 사랑만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고 믿었습니다.
지난 4번째 라틴어 문장,
Amor est vitae essentia (사랑이 생명과 인생의 기본이다)와 함께 오늘 문장도 꼭 써서 암송해두시기 바랍니다.
Tempus fugit, Amor manet.
시간은 흘러가도 사랑은 남는다.
Carpe diem!
Bonam fortuna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9) _ 7월 1일
“포기할 일과 포기하지 말아야할 일”
어렸을 때나 젊은 시절에 꿈도 크고 야무졌습니다. 그 땐 못할 것도 없고, 못될 것도 없었습니다. 대통령, 장군, 높은 사람, 과학자, 세계적 예술가 등이 되어 인류의 평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이 큰 소리를 쳤는데 나이가 더해 가면서 인생이란 할 수 있는 일, 될 수 있는 자리란 점점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 정말 해도 않되는 일은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고 접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는걸 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제 경우엔, 돈벌어 부자되는 것, 권력을 잡아 성공 출세하는 것,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 등은 일찍이 포기하고 접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과도한 욕심이요, 지나친 꿈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만사 노력한다고 해서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코끼리는 노력한다고 해도 날 수 있는게 아니고, 토끼는 연습해도 천천히 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린 누구를 막론하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일찍 포기하고 접어야 할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더해가는 데도 무모하게 로또 사듯이 인생을 실험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해보고, 또 해보고 노력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봅니다.
좋은 사람 되겠다는 꿈,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겠다는 다짐,
상식에 따라 행동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 태도,
잘못한 일은 즉시 사과하고,
않되는 일은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돌아보는 자세,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 등…
이런 일들은 정말 어렵고 어쩌면 거의 불가능하게 보여도 그래도 포기하지 아니하리라 다짐합니다.
저는 이 아침도 포기해야 할 일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기도합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20) _ 7월 2일
Me vidit Deus.
(메 비디트 데우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
me, 나를, 영어의 me
vidit, 본다. 영어의 vision, video는 여기서 나옴.
Deus, 신, 하느님,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
얼마전 라틴어 공부에서 전현구 목사님이 자신의 학생시절 교수님 서재에 써 있던 문장이라고 했던 귀절로 신학을 하거나 목회를 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님이 보고 있다는 것으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말하고 행동해야한다는 ‘신전의식’ 입니다. 그걸 라틴어에서는 유명한 다른 말로도 표현하는데 Coram Deo라고 합니다. ‘코람 데오’는 Coram – 앞에서, before, in the presence of라는 뜻과 Deus의 여격 Deo를 합해서 만든 문장입니다. 하여튼 이 Me vidit Deus나 Coram Deo는 모두 인간의 체면이나 사람의 판단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말하고 살아야한다, 혹은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Coram hominibus, Before men, ‘사람 앞에서’와는 반대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감시하신다, 숨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든 비밀은 다 드러나게 된다, 진실되게 살아야한다, 진실되게 살겠다는 다짐이 바로 이 Me vidit Deus입니다. 여기엔 무서운 하나님관이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늘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Me vidit Deus로 표현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 어느 한 사람도 나를 도와주지 못해도, 하나님만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이렇듯 Me vidit Deus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시다.’고 한 것입니다. 똑같은 하나의 문장도 여기에서는 두렵고 무서운 ‘신전의식’이 아니라 지키시고 도우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Me vidit Deus ‘하나님은 나를 보고계신다’ – 이 짧은 라틴어 문장의 이중적 의미가 주는 레슨이 참 큽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30) _ 7월 3일
“단순한 생활 연습해 보기”, “단순한 생각 연습해 보기”
사람마다 그가 하는 일에 따라 크던 작던 작업실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에게는 화실, 음악하는 분에게는 연습실, 무엇을 만드는 이에게는 공방, 주부에게는 부엌이 작업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목사와 선생으로 살아온 저에게도 늘 조그만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공부방이지요. 고상하게는 서재라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난주 일요일, 호주에서 40여년을 끌고 왔던 저의 작업실인 공부방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냥 침실 한 켠에 몇 권 책만 남겨두고 그 동안 쓰던 작은 서재는 손녀들 놀이방으로 넘겨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곳저곳에 기증하고 남은 책 한 5, 6백권 쯤을 우리 인문학 친구들과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날 저녁 제 일기장의 마지막 귀절입니다.
‘오늘은 내 공부방을 없애고 문을 닫았다. 시원섭섭하다. 난 이제 서서히 간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그날 우리는 신나고 즐겁게 책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도 마시고 흘러간 노래도 들으며 나는 나의 한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그대로 연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한 삶, 단순한 생각, 단순한 언어, 단순한 인생 – 어려운 숙제 중 하나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진정으로 단순해 질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사키 후미오에 의하면 minimalist가 되어 보는 것 – 줄이고, 버리고, 최소화하는 삶을 연습하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 지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계속 될수록 이것저것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남은 날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것저것을 줄여야 합니다.
‘먹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사지 말자’ 이런 결심도 해봅니다.
사사키 후미오도 저처럼 메모지 한 장까지도 버리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참 멋진 미니멀리스트가 된 사람입니다.
그이가 이 책에서 추천하는 비움의 기술 수십 가지 중, 몇 가지만 추려서 올립니다.
1. 버릴 수 없다는 생각부터 버려라.
2. 당신은 버릴 수 없는게 아니라 버리길 싫어하는 사람이다.
3. 버린 후에 후회되는 물건은 절대로 없다.
4. 1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 – 책, 옷, 신발, 그릇 같은 것들은 다 요긴한 것이 아니다.
5. 필요한 물건과 갖고 싶은 물건을 구분해 보아라.
6. 무엇을 버리고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로 부터 해방된다.
7. 박물관을 만들 작정이 아니면 컬렉션은 하지마라.
8. 한 가지를 산 날은 반드시 한 가지는 버려라.
9. 싸다고 사지 말고, 공짜라고 받지 마라. 그건 당신이 멍청이라는 확실한 표시다.
10. 감사한 마음으로 버려라.
11. 아직 건강할 때 정리해라.
12. 물건을 버리고 나면 비로소 마음은 맑아지고 생각은 깨끗해진다.
(추천하는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했다, 사사키 후미오저, 김윤경옮김, 비지니스북스, 2015)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