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ra secreta /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눈 / Deo gratias Gratias tibi Gratias maximas In omnibus gratias / 워런 버핏의 인문학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7) _ 9월 28일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Honesty is the best policy.’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
잘 알려진 경구 중 하나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한참 개구장이 소년 사절, 앞마당에 있던 cherry 나무를 잘라버렸는데, 후에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시면서 식구들을 다 모아놓고 물었다고하지 않습니까? ‘내가 영국에서 부터 가져온 이 나무를 도대체 누가 잘라냈느냐?’ 바로 그 때 조지가 즉시 아버지 앞으로 나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랬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역시 즉석에서 이리 말씀했다고 합니다. ‘정직하구나! 그럼 됐다’
후에 조지 워싱톤은 그의 대통령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Honesty is always the best policy’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본 경험입니다. 십계명의 금지 사항중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 같은 것은, 하는 사람도 있고, 않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짓말만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예수님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모두들 많고 적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않해!’ 하는 ‘절대적 거짓말쟁이’로 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그 행태와 원인과 방식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꼭 한국국회에서의 인사청문회나 대정부 질문에서 하는 거짓말 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는 개인 세금신고시의 의도적 누락부터 시작하여, 사업자들의 크고 작은 회계부정, 속임수, 가짜명품을 위시한 논문표절, 설교표절, 가짜 박사, 가짜 목사 등등 헤아릴수 없이 많은 거짓과 거짓말들이 춤을 춥니다.
거짓말은 긴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일찌기 에덴동산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이 금하신 과일을 따먹은 후, 하느님이 이를 추궁하시자, 거짓말과 변명과 핑게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제게 주신 이 여인이’ ‘당신이 만드신 저 뱀이’ 범인이라고 둘러대며 거짓말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은 흔히 인류의 범죄와 타락은 인간이 ‘에덴을 떠난 후’ 혹은 ‘하느님의 품을 떠난 후’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인류는 처음부터, 에덴동산 안에서, 부족함이 없이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이 인간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도, 그래도 또 거짓말을 할 존재입니다.
정치인들만 거짓말을 하는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요즘 한국의 정치인들이 하는 거짓말 때문에 속상해하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만, 사실 거짓말하는 정치인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나물이 그 나물입니다. 타인을 향하여 거짓말쟁이라고 열을내는 사람도 거짓말쟁이이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은 착한 사람도하고, 훌륭한 사람도하고, 신심이 깊은 사람도 합니다. 오히려 한 사회나 집단 속에서 성공한 사람, 이름을 날린 사람, 존경받는 사람들은 남들이 잘 모르는 더 크고 엄청난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니 자신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와 ‘자기 속에 있는 욕망’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잡힌 거짓말’을 하는 데 아주 익숙합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고 ‘빗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작게 보이고 소소하게 생각되는 거짓말과 부정들이 모이고 쌓여 오늘 우리들의 인간성을 형성해냈고 이 시대를 슬프게 만들어낸 주범이라고 봅니다.
사과나 딸기나 체리 중에는 상하지 않고 싱싱한 것들도 많이 있지만, 사람 사는 세계에는 결코 fresh 하고 honest한 인간이란 별로 없습니다.
인문학공부는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사람을 잘못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동양인들은 서양인들 보다 더 비윤리적이라는 말도 들었고, 중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더 거짓말을 자주 쉽게 한다는 말도 들었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많이 정직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정말 그럴까요? 인간이란 불의와 거짓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존재입니다. 인종이나 국적이나 교육이나 종교에 따라 정직의 정도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고 말할 것 없이 사람은 ‘똑같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거짓말은 나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거짓말은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동양사람이나 서양사람에 차이가 없습니다. 나이나 성별, 빈부유무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동일개념이 바로 ‘인간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많이 받고,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학자가 되면 조금은 더 진실해 질수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우리는 절이나 성당이나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부지런히 하거나 종교적인 일에 전적으로 매진하면 착하고 선한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이끌렸습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요.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거짓말에서도 평등합니다. 오히려 전자는 형식논리적이지만, 후자는 현실적 실상입니다.
‘인간이란 타고난 거짓말쟁이이고 선천적 사기꾼입니다’ 그리고 이 부정직과 거짓은 최대의 전염성을 지닌 펜데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 우린 그 동안 사람을 잘못 보아왔습니다.
여기 까지가 주로 댄 애리일리 Dan Ariely가 쓴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2012)이 주장한 내용을 잡기장에서 약간 추가한 것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할까요?
애리일리는 그 이유를 ‘인간이란 비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탐욕과 이기심의 노예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인간은 그동안 자신을 괭장히 이성적 존재인양 착각해 왔지만 실로 인간이란 동물적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댄 애리일리는 충고합니다.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 인간이 되십시오’ 인간 도덕성의 회복은 – 짐승같은 인간이 인간같은 인간이 되는 길은 – 여전히 상실한 인간이성을 되찿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덮으면서 다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인간들이 부도덕해지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근본 이유는 인간이성의 상실이나 합리성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인간이 더 거짓말을 잘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린애기들은, 생각과 이성이 본격적으로 발달되기 이전인 3세 이전의 애기들은 거짓말을 못하기도 하고 않하기도 합니다. 지적장애인들도 거짓말을 못하고 않합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오히려 인간이란, 공부 많이 하고, 좋은 대학 나오고, 머리회전이 빠르고, IQ가 높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 거짓말도 능수능란하게 하고 핑계도 그렇듯 하게 잘대고, 언변도 대단히 유창한 것을 보면 애리일리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뭘까요?
인간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성과 지성이 모자라서 일까요, 아니면 이성과 지성이 넘쳐나서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많이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인간이란 예외없이 모두 다 거짓말하는 존재다. 인간은 부도덕한 존재다’
소개해드린 책을 추천해드리며
월요일 아침 인문학 친구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45) _ 9월 29일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ra secreta.
아크타 엑스테리오라 인디칸트 인테리오라 세크레타
acta, 행동, 행위, 행적, 영어 act
extriora, 외부의, 바깥쪽의, 외관상, 외형적, 영어 external, exterior, 원형은 exterior
indicant, 원형은indicatio, 지시하다, 가르키다, 평가하다, 나타내다, 영어 indicate
interioa, 원형은 interior, 안의, 내면의, 내재적, 본질적, 영어 internal,
secreta, 원형은 secretum, 비밀, 비결, 신비, 영어 secret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a secreta.
밖으로 나타난 행위는 내면의 비밀을 드러낸다.
겉으로 나타난 행동은 속내를 표현한다.
외형은 내심의 표현이다.
외적언행은 내적심리를 투영한다.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a secreta.
이 말의 뜻은,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속내와 본심이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기침하는 것을 보면 감기에 걸렸거나 기관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공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의 인격과 사람됨이 드러난다고 할 때 우리는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a secreta – 외적행위는 내적인간의 숨겨진 본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계속되는 언어의 습관이나 행동의 태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본성, 본심, 인간성, 사람됨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은 아무리 자기의 본심을 감추고, 속내를 숨기려 해도 그의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 속에 그의 숨겨진 본심과 인간성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예전부터 전해지는 사자성어 가운데는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 신, 말씀 언, 글 서, 판단할 판입니다. 사람의 몸과 행동거지, 그가 하는 말의 내용과 언어습관, 그리고 그가 표현하는 글 (그림)의 내용과 서체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외적표현은 내적인간을 나타냅니다.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a secreta.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말로 전해집니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 – Everyone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의 얼굴은 부모님이 그렇게 낳아준 것이라 할수 있지만, 중년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만든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얼굴만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성숙한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과 삶의 태도와 방식은 그의 인생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니 늘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새겨봅니다.
Acta exteriora indicant interioa secreta
Everyone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신언서판’
겉으로 나타난 행위는 내면의 숨겨진 비밀을 노출합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오늘도 건행 !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8) _ 9월 30일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참 고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이상적인 종교적 교훈입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예외적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이 ‘원수도 자기 자신처럼 대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냥 조금은 쉽게, ‘네 이웃은 네 이웃으로 대해주어라’가 그래도 실천 가능성이 많이 높은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에 인간이해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과 철학적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네 이웃은 그냥 네 이웃으로 대해주어라’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 – 1995)는 인문학적 및 철학적 인간관계에 대하여 종교적 이상을 현실적 가능성으로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는 ‘타인을 나 처럼 여기지 말고’ ‘타인은 그냥 타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타인으로 존중해 줄 것’을 주장하고 요청합니다. 무슨 ‘원수까지나’ 하면서 ‘인간을 인간으로’ ‘타자를 타자로’ 여기면서 사는 태도가 종교인이 아닌 상식적 범인들의 바른 인간관계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나온 유태계 리투아니아 사람으로 프랑스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타자성의 철학자’요 ‘타자가 존재함으로 자아가 존재한다’는 명제로 널리 알려진 인문학자입니다. ‘윤리학은 존재론에 앞선다’ – Ethics procedes Ontology – 는 생각을 갖고 평생을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 것인가?’ 하며 몸부림치며 호로코스트의 경험을 통한 ‘나와 타인과의 가장 바람직하고 실천가능 한 관계’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자꾸 나 처럼 생각하거나 나 처럼 대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다른 사람을 나처럼, 내 식구 처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처럼, 내 자식 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대해주는 데서 자꾸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웃은 내가 아니다. 이웃은 이웃이고 타인이다. 그럼으로 이웃은 나처럼, 내 몸처럼 대해 주어서는 않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이웃은 이웃답게 대해주고 타인은 타인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레비나스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은 종교적 이상이나 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그것을 ‘인간 이성’ 혹은 ‘인간이성의 회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는 능력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능력’ 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비극적 파국을 만나게 된 원인은 인간 이성의 상실 때문이라는 것이 레비나스의 진단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타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 폭력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 – 흑인들, 원주민들, 여인들, 어린이들, 난민들 등등 – 그들의 참상을 보면서도 못본척 하는 것, 사회적 악과 불의와 불공정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신앙이나 양심이 무디거나 약해져서’라고 해석하면 접근하기가 더 어렵다는 겁니다 . ‘이성적 인간이 되어야한다.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개의 관계의 파괴현상은 ‘우리가 결코 이성적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것이 레비나스의 생각입니다.
‘이성적 인간은 타자를 자기와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본다. 비이성적 인간은 언제나 타자를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물질로 본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들은 타자를, 타자의 인격과 생명을 돈으로 교환 가능한 money exchange로 대치한다’
물론 종교적 인간이해와 인문학적 타자이해는 대립되거나 상치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웃을 내몸 처럼 사랑하는 일’ 이나 ‘타인을 정직하게 나와 같은 하나의 사람으로 대하는 일’은 함께 가야할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타인을 생각하며 모든 어려운 이들을 기억하며 감사와 마음을 함께하는 추석이 되시옵소서 !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46) _ 10월 1일
Deo gratias Gratias tibi Gratias maximas In omnibus gratias.
데오 그라티아스 그라티아스 티비 그라티아스 막시마스 인 옴니부스 그라티아스
Deo, 원형은 Deus, 신, 하느님, 하나님, 천주, 영어 God
gratias, 원형은 gratia, 은혜, 은총, 사랑, 감사, 기쁨, 영어 Grace, gratitude, grace는 식사때 감사기도.
tibi, 여러분, 당신들 (복수, 단수)
maximas, 최고로, 최대의, 영어 maximum
omnibus, 원형은 omnis, 모든 것, 만물, 만유, 일체, 영어도 omnibus로 승합차란 뜻을 위시하여 총체적, 총괄적
Deo gratias.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Thank you, God
Gratias tibi.
여러분, 감사합니다.
Gratias maximas.
대단히 감사합니다.
Thank you very much.
In omnibus gratias.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
Salvete mei soccii.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라틴어인문학은 지난 5, 7회 때 나눈 것을 조금 더 보탰습니다. 추석이라서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새기고 싶었습니다. 글자대로만 읽자면 ‘추석’도 가을 추, 저녁 석이니까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 되겠지만, 사실 거기에는 말로는 다 형용할수 없는 감사, 기쁨, 축하, 축복이 들어 있잖아요. 예전 고국에서의 달 밝은 한가위를 생각하시면서 넉넉한 마음, 풍성한 감사, 참된 기쁨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Deo gratias.
Gratias tibi
Gratias maximas.
In omnibus gratias.
사랑과 감사를 담아드리며…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69) _ 10월 2일
‘워런 버핏의 인문학’
몇일전 재정과 투자 (Finance & Investment) 분야의 회사에서 일하는 며늘아이와 이야길 하다가 워런 버핏 (Warren Buffett)의 인생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버핏은 금년에 90세가 된 미국의 기업가요 투자의 귀재로, 세계적 부자로 그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계시는 유명 인사 중 하나입니다.
그날 나눈 이야기들 중에서 인문학적 렛슨이 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잡기장에 남겨 놓았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두 가지를 추려 오늘 여기에 옮겨봅니다. 인문학자는 아니지만 그 어떤 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분이 일러주는 인생에 대한 생각과 통찰은, 좀 천천히, 한 두세번 쯤 읽으시고, 전화기를 덮으신 후, 다시 한번 속으로 되새기면서 생각해 볼만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1) 나에게는 투자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로 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돈이란 벌지는 못해도 잃지만 않아도 버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 말한 그 원칙, 1을 절대로 잊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No1. Never lose money.
No2. Never forget the No1 rule.
(어찌 돈 뿐이겠습니까? 인생이란, 성공하진 못해도, 실패만 않해도, 사실 성공한 것과 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 신뢰와 신용을 얻고, 좋은 말을 듣는 데는 보통 20년 정도가 걸리지만, 그 모든 것들을 망가트리는 데는 불과 5분 밖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3) 꼭 기억해 두십시요. 당신이 일차적으로 투자해야할 최대의 대상은 주식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생각을 투자해야 합니다. 당신은 쉬지 말고 당신 자신을 위해, 읽고, 듣고, 보아야합니다.
4)모든 위험과 위기는 지금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고 할 때 찿아옵니다. 생각없이 말하고 생각없이 행동 할 때 당신은 지금 위험한 짓을 하고있는 겁니다.
5) 돈 뿐만이 아니라 인생살이에서는 벌어드리고 얻어드리는 것 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을 잘 지키고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6) 돈이 많다고 해서 당신을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돈으로 존경과 사랑을 살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인격으로만 얻어들일 수 있습니다.
7) 오늘 우리가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것은 오래전 누군가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