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걸래질하시는 예수 / Quot hominibus, tot sententiae / 초미니국가 우주피스공화국의 헌법 /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 목표와 목적 : 세우기, 지키기, 되찾기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2) _ 6월 15일
“걸래질하시는 예수”
오래전에 최희동 목사가 낸 목회 수상집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온 목적인 “속죄”, “대속” 즉 “죄를 속함”을 “죄를 씻어냄”으로 해석하는 글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과 인간들의 온갖 죄와 불의, 미움과 탐욕, 악행과 추함, 교만과 위선을 씻어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이해하는 글이라고 기억됩니다.
“걸래질하시는 예수”는 쓸어내고, 딱아내고, 문지르고, 청소하는 예수상입니다.
미국에 이민가서 뿌리를 내린 한국이민 1세들의 직업중 가장 많은 이들이 종사한 일이 세탁업이었다고 합니다. 호주에 이민 온 한국인 1세들이 선택한 업종은 청소였습니다. home cleaning이던, business cleaning이던, gardening이던 모두가 세탁소와 함께 cleaning service 입니다.
더러운 것은 씻어내고, 못쓰게 된 것은 고치고, 버리게 된 것은 되살려내는 maintaining service가 우리 자랑스런 이민 1세들의 main job 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걸래질하시는 예수”와 “청소하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겹쳐서 봅니다. 세탁소와 청소업은 어딘가 “걸래질하시는 예수”를 닮은 일이라고 보며 “이들은 모두 동업자”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제 제자 중에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교회에서는 전도사를 하라고 하는데 끝내 사양하고 그냥 평신도로 섬기면서 cleaning service를 계속하는 이들이 몇 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같은 신학교를 나온 후 좀 신뢰성이 약한 곳에 가서 목사가 된 이도 있습니다.
“청소하는 성직자”와 “설교하는 속직자”가 대비됩니다.
나는 ” 걸래질하시는 예수”와 “청소하는 이민자”, ” 청소하는 신학도”를 더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추천도서: 걸래질하시는 예수, 채희동, 대한기독교서회, 2004)
라틴어 인문학 (15) _ 6월 16일
Quot hominibus, tot sententiae.
(쿠오트 호미니부스 토트 센텐티아에)
quot 몇, 얼마.
hominibus 인간, 사람
tot 전체, 모든
sententiae 문장, 명제, 의견
Quot hominibus, tot sententiae.
(쿠오트 호미니부스 토트 센텐티아에)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의견도 많다 (다르다).
사람마다 생각이나 의견은 모두 다른법이다. 지구 60억 인구는 제마다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지닐 수 있다. 그러니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장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생각과 태도는 독재와 전체주의로 가게 됩니다.
당신과 나는 똑같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좋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Quot hominibus, tot sententiae.
(쿠어트 호미니부스 토트 센텐티아에)
Carpe diem!
Bonam fortuna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3) _ 6월 17일
예전 소련의 지배아래 있다가 지금은 독립한 발틱 3국 중엔 리투아니아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수도가 빌뉴스 (Vilnius) 입니다. 그런데 이 빌뉴스의 구시가지에는 지구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 (Micro nation)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옛날 유태인들이 모여서 게토 (ghetto)를 이루었던 지역에 1994년 4월 1일, 이 곳에 터잡고 살던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우주피스공화국(Uzupis)을 수립, 선포함으로 하나의 초미니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나라 속의 나라’인 우주피스 공화국은 국토가 약 148에이커로 우리 동네 뉴잉톤 보다 작고 인구도 약 7천명 정도인데, 재미있는 것은 1년에 하루, 4월 1일, 만우절날만 국가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날에 우주피스꾹가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동네 입구에서 손바닥에다 입국비자를 찍어 줍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롭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인구 7천에, 예술인들이 1천 이상 되는 우주피스공화국의 헌법입니다.
찾아서 읽어보니 모두 41조로 되어있는데, 그 중 몇 개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1) 모든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단 그것은 의무는 아니다.
2) 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사람은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에게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5)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모를 권리가 있다.
6) 모든 사람은 의심할 권리를 가진다.
7)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와 불행할 권리를 가진다.
8) 모든 사람에게는 조용히 있어도 될 권리가 있다.
9) 아무도 영원히 살 것을 주장할 권리는 없다.
10) 모든 사람은 이해할 권리와 아무 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진다.
11) 모든 사람에게는 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12) 아무도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
13) 모든 사람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14)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해서는 않된다.
그 외에도 재미를 넘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이 우주피스공화국 헌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참 꿈의 세계,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를 그리는 예술인들의 순진무극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인문학친구들 중에도 음악, 미술, 서예를 하시는 예술인들이 여러분 계셔서 그이들의 이상과 순수성을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Carpe diem!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16) _ 6월 18일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템푸스 에스트 옾티무스. 이우데크스 레룸 옴니움)
tempus – 시간, 때, 계절
est – 이다
optimus – 가장 좋은, 최고 최선
iudex – 재판관, 원래는 시계바늘, 지표, 지침
rerum – 일, 사물
omnium – 모든, 일체의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시간이 (인생의) 모든 일에 대한 최고의 재판관이다.
우리말로 의미상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속담으로는 ‘세월이 약이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가 있습니다. 영어에도 ‘Time heals old wounds’나 ‘Time is great healer’ 같은 속담이 있지만 그것들은 약간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뜻으로 세월이 지나가면 인간이란 다 늙게 마련이고, 또 병도 치유가 된다는 뜻으로 참고, 기다리라는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라틴어의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은 시간이 인간역사의 최종적 심판자임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올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귀절입니다.
사람은 심은대로 거둔다. 우리는 뿌린대로 거둔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 들어난다. 악을 심으면 불행이 오고, 선을 심으면 행복과 보람이 온다. 이것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법칙과 같은 것으로 1+1=2 이고 ‘두 점 사이의 가장 가까은 거리는 직선이다’ 같은 원리라는 것입니다.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시간이 인생과 역사의 마지막 심판관이다.
오늘도 주어진 이 하루, 역사의 마지막을 의식하면서 많은 일은 아니라도, 작은 일에도 진솔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4) _ 6월 19일
목표와 목적- 세우기, 지키기, 되찾기.
우리 어렸을 적엔 나름대로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훗날 여러가지 다양한 직업을 갖게는 되었지만, 그래도 그 일을 통해서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꼭 성공하고 출세해야만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정치가들, 사업가들, 법조인, 교수, 의사, 목사들 중에도 세속적 성공은 했다고 할지 몰라도 착하고, 선해서 존경받지 못하는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기 때문입니다.
개인에게만 목표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이나 단체, 기관이나 사회에도 최초 세워진 목표나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개신교) 연합기관 중엔 한국찬송가공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서 목사들과 장로들을 대표로 파송하여 만든 기관으로 이 기관에서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사용하는 각종 크고 작은 찬송가들을 제작하고 판매 보급합니다. 수십년전 이 찬송가공회를 만든 목적은 모든 교파를 초월한 찬송가를 만들어 널리 보급함으로 교회의 하나됨과 예배의 일치성을 돕고 더 나아가 찬송을 통하여 아름답고 성스러운 예배와 교인들의 영성을 일깨우게 하는 데 일조한다는 아주 분명한 그 조직, 그 기관의 목표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가 이어짐으로 많은 교회들이 모여서 예배를 못드리고 TV나 유투브나 각양 영상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중에 찬송가공회의 이사회가 열려 이런 논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 2,30년 사이 교인들의 숫자도 많이 줄어서 찬송가 판매가 현저히 줄었고 또 교회마다 각종 예배나 행사시엔 영상으로 찬송가를 띠워서 불러옴으로 찬송가 판매가 점점 더 줄어드는 판에 코로나로 많은 교회들이 각종형태로 영상찬송을 올리니 우리 공회에서는 모든 SNS로 찬송을 올리는 교회나 단체에게 저작권 사용료로 1회 당 3만원씩 내게 하자는 토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찬송가공회는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저작권 위원회에 공회의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이미 마쳤다는 겁니다. 이리 되면 앞으로 모든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찬송가 영상 사용에 따른 사용료 징수 가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교회, 약 5만개와 교회내 각 기관들이 예배 때 찬송가 영상 사용료로 내게 될 금액이 줄잡아도 몇백 억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목적을 잃어버린 찬송가공회, 돈에 눈이 먼 기독교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찬송가공회가 수입을 올려야하는 기업체입니까? 찬송가공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예배와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 일해야 하는 기관아닙니까? 아니 이 어려운 때, 어떻게 모든 SNS로 송출하는 찬송가에다 저작권 사용료 지불이라는 기막힌 발상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민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럼 찬송가공회는 마틴 루터의 ‘내 주는 강한성’이나 베토벤의 ‘기뻐하며 경배하세’나 웨슬리의 ‘천부여 의지 없어서’나 다윗의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나 뉴우턴의 그 유명한 ‘나같은 죄인 살리신 – Amazing Grace’를 찬송가에 넣을 때 그 분들에게 허락을 받거나 판권계약을 맺고 일정한 돈을 지불했습니까?
개인이나 기관, 단체를 막론하고 처음에 세운 목적이나 목표를 잘 유지하고 지키도록 계속 노력하지 아니하면 타락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 어떤 시민단체 보다는 좀 나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쓰다가 이 아침도 다시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될께요’
‘훌륭한 사람되어서 좋은 일 많이 할께요’
어렸을 때의 약속을 이 나이에도 다시 다짐합니다.
동시에 4년전 우리 인문학교실을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목표와 목적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과 존경’
‘이해와 관용’
‘너그러움과 받아드림’
다시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