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사람들은 보통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 / 평범한 상식과 교양이 보다 더 중요한 바탕 / Homo homini lupus est / 반성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5) _ 6월 22일
사람들은 보통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엄청 큰 욕심이줄 압니다만 저는 ‘좋은 사람’이라 불리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김춘수 시인의 시 ‘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갈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싶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꽃’을 다시 읽습니다.
당신 자신을 가르켜 “내 시는 ‘무의미의 시’”라 했던 김춘수 (1922 ~ 2004)는 자신의 인생 모습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하게 산 사람이다’
저를 돌아봅니다.
지금 나는 앉아있는 건가? 서있는 건가?
지금 나는 깨어있는 것인가? 자고있는 건가?
아니 지금 나는 진정 살아있는가? 죽은 건가?
대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야말로 엉거주춤하게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정직한 자화상이 저를 많이 부끄럽게 합니다.
‘직업으로써의 목사가 아니라 하나의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틴어 인문학 (17) _ 6월 23일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
(우누스 프로 옴니부스, 옴네스 프로 우노)
unus, uno, 하나
pro, 위하여
omnibus, omnes, 모두, 전체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전체는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하나 하나의 개체도 전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다수라고해서 소수의 견해를 무시해서도 않되고, 소수 역시 중의를 거역하고 고집만 세워서는 않된다는 말입니다. 다수만 주장하면 전체주의로 흐르게 되고, 개별적 독립성만 높이다보면 경쟁과 탐욕을 조장하게 됩니다. 개인과 전체, 하나와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균형과 조화,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
인문학 친구 여러분,
짧고 부족한 라틴어 교실이지만 열심히 노트하시고 꾸준히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Carpe diem!
Bonam fortuna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6) _ 6월 24일
전문가도 있어야 하지만,
상식인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1세기, 이 지식과 정보시대에 무슨 공자님 말씀같은 소리냐고 탓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이나 가정, 종교나 정부 까지도 전문적 지식이나 고도의 식견 보다는 평범한 상식과 교양이 보다 더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키워야 한다. 부모에게는 효심을 가져야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속이거나 폭력을 쓰면 않된다.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한다’
이런 것은 무슨 형법 제 몇조에 규정되어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에서는 상식과 교양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전문적 지식 보다 상식적 판단이 모든 것의 기초요 뿌리입니다.
종교도 이런 이런 평범한 상식을 벗어나면 이단으로 흘러 반사회적 집단이 되고 맙니다.
국가와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은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개인적 상식과 더불어 국가 공동체의 상식을 생각해 봅니다. 특히 저같이 북녘이 고향인 사람들에게는 아프고 쓰라린 전쟁의 기억으로 부터 한 시대, 국가와 민족의 갈등, 대결, 분열, 전쟁에 대한 뼈아픈 상념들이 교차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멸공통일, 북진통일로 부터 시작하여 민족화해와 평화통일 시대를 거쳐 오면서 그야말로 사상적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걸 우린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남이든 북이든 그 동안 우린 누구나 알고 수긍할 수 있는 평범한 상식이 아니라, 사상적 이념과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 무슨 일이든 너무 나가도 좋지 않고, 지나치게 못 미쳐도 않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 못할 정도로 상식선을 벗어나면 일을 망치게 됩니다. 정부도, 정치도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진솔하고 정직하게, 속이지 말고 상식선에서 말하고 행동하면 진정한 평화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몰상식적인 6.25는 70년이나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참 많이 아픕니다.
라틴어 인문학 (18) _ 6월 25일
Homo homini lupus est.
(호모 호미니 루푸스 에스트)
Homo, 인간은, 사람은
Homini, 인간에게, 사람에게
Lupus, 늑대
Est, 있다, 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영국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였던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가 그의 대표적 저서 ‘리바이어던’ (Liviathan)에서 한 말입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 41장에 나오는 크고 무섭고 잔인한 짐승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듯한 이 포악한 짐승을 인간으로 비유한 홉스는 인간 개인은 물론이고 인간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를 늑대들 처럼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인간은 여러가지로 정의되어 왔습니다. 이성적, 사회적, 정치적, 탐욕적, 이기적 등등 수십 가지도 됩니다. 전체적으로는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날 아침, 그 동안 나와 우리들이 살아온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Homo homini lupus est.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다.
Homo homini Amor est.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사랑이다.
이렇게 되고 싶습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27) _ 6월 26일
“반성”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남을 비난하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이상하고도 서글픈 존재입니다.
신사참배 했다고 욕하더니 자신은 권력참배, 탐욕참배, 물질숭배자가 되기도 합니다.
며느리 때는 시어머니 욕하다가도 자기가 시어머니 되면 예전 시어머니 보다 더합니다. ‘욕하던 시어머니 그대로다’, ‘시어머니 만큼만 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내가 을일 때는 뒤에서 갑질한다고 욕하다가도 어느날 내가 갑이 되면 더 심한 갑질을 합니다.
내가 하급 직원일 때는 뒤에서 상급자를 그렇게도 씹더니 어느날 내가 임원이 되고 나니, 옛날 상급자가 울어러 보이게 됩니다.
내가 재야나 야당일 때는 정권과 여당을 비난하다가도, 내가 권력을 잡아 여당이 되면 옛날 여당이 했던 것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게 정치의 세계입니다.
제 주변에는 자기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영 마음에 않들어서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된 이가 있습니다. ‘내가 목사되면 난 저렇게는 않해!’ 굳게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해보더니, 지금은 예전 그 목사님이 존경스럽다고 합니다.
내가 자식일 때는 ‘이 다음 내가 부모가 되면…’ 하면서 서운해 했던 자식들도 막상 내가 아이 낳고 부모가 되고보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 만큼도 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도 저는 저를 돌아봅니다.
오늘도 저는 그 때 제 입으로 했던 그 말, 그 설교, 그 달변 때문에 많이, 아주 많이 부끄럽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