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5월 모임 및 전반기 종강모임 실시
“남자는 인간이고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인가? :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한 실존적 Feminism 이야기” 주제로 [강연 전문포함]
후반기 개강모임은 8월 5일(목) 오후 7시, 린필드 한글사랑도서관에서
‘시드니 인문학 교실’(The Humanitas Class For the Korean Community in Sydney)에서는 지난 5월 6일(목)과 20일(목) 오후 7시, 린필드 한글사랑도서관 (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 NSW 2070)에서 “남자는 인간이고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인가? :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한 실존적 Feminism 이야기”란 주제의 강연으로 2021년도 전반기 종강모임을 실시했다.
5월 6일과 20일 모임 강사로 홍길복 목사(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는 “Man is a man. Woman is not a man but a woman? (남자는 인간이고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인가?) –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한 실존적 Feminism 이야기”란 주제를 2회로 나누어 강연했다.
홍길복 목사는 5월 6일 강연에서 서두에 “오늘 강좌의 영어제목을 이렇게 붙여보았습니다. Man is a man. Woman is not a man, but a woman? 이 문장은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왜 영어에서의 man은 어떤 때는 ‘남자’,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 사람’이라고 번역할까요? 또 왜 man, 즉 남자는 그냥 그대로 하나의 인간인데, woman은 man이라는 단어 앞에는 wo를 붙여서 여자는 무엇인가 부족한 존재인양 접두어를 붙여서 만들어 놓았을까요?”라며 “거개의 인간 역사가 다 그렇긴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하는 대부분의 feminist들이 지적하는 대로 지금까지의 철학사나 인문학사는 거의 다 남자들이 주도했고, 남자들을 중심한, ‘남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해 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모든 차이는 극복 되어야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실 인간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엥겔스에 의하면 역사는 지난날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면서 여권은 상실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특정 종교인은 타종교를,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 지배를 당해 본 나라와 그 국민을, 호주의 백인들은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아시아 이민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물며 여자가 될 수도 없고, 또 되어보지도 못한 남자가 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신체를 바꾸어 볼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이해란 근본적 불가능성에 가깝습니다. ‘너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는 말은 그래도 언젠가는 늙어 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라도 있는 말이지만 ‘너 여자 되봤어?’ 하는 말 앞에서 모든 남자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인문학의 주제는 ‘인간’입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을 공부해온 것이 아니라 남자를 공부해 온 것’입니다. 인문학의 또 다른 주제는 ‘인간평등’입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sexuality의 각도에서 지난날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역사상 마지막으로 남은 식민지는 여자’라는 여성 운동가들의 절규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 그런 각도에서 ‘인문학적 참회’의 심정으로 오늘 우리는 모처럼 실존주의자들이 일깨워 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의 실존적 이야기를 feminism 이야기와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여남 차별을 만들어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유대교와 기독교를 중심한 여성들의 차별과 핍박의 역사 – 플라톤의 이원론, 그레고리우스1세의 교회법 관련, 초대교회의 교부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 신학자들의 신학이론 / 이슬람 / 로마시대와 중세 시대를 걸쳐 봉건시대, 가부장적 폭력 아래에서 박해받아온 여성사 / 조선조를 비롯한 한국의 근대사에서 여성들이 받아온 핍박사 / 제 3세계,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여성들의 억압사), 페미니즘 (Feminism) 이야기 (페미니즘의 의미, 페미니즘이 추구해온 목표, 페미니즘의 역사, 대표적 인물들, 확대되는 페미니즘) 등을 나눴다.
5월 20일 강연에서 홍길복 목사는 지난 강연에 이어 ‘간추린 페미니즘의 역사 – 주로 참정권을 중심으로’, ‘대표적 인물들 – 올랭프 드 구주,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수전 안서니, 에멀린 팽크허스트’, ‘페미니즘의 확대’ 등을 살핀 후,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 de Beauvoir, 1908 ~ 1986)의 간단한 생애와 주요저서, ‘제 2의 성’을 중심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 페미니즘 등을 강연한 후 말미에 “왜 남자들은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쓰지 않는데 여자들은 <여자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가? 물론 그동안 남자들은 자신들이 남자이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대표성>을 지닌 존재인양 생각해 왔기 때문이겠고 여자들은 늘 ‘우리는 인간이기 전에 먼저 여자’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 데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 규명을 위해 몸부림을 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래! 난 여자야!’라고 선언하고 여자가 남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규명해 내야 하지만 그 다음, 그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지난날 남성들이 자신들을 인간과 동일화 했던 것처럼 우리 여성들도 이제부터는 여성 자신을 인간과 동일화 하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부아르는 처음 여성과 남성의 차별화 단계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 단계를 넘어서서 여성과 남성은 함께 ‘인간의 길’로 들어 서야한다고 말 합니다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도 결국은 다 인간이다). 우리는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질성을 지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 사람입니다. 이것이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의 merging point입니다.”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 후에는 강연주제를 중심으로 생각들을 나누고 토론하며 스스로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이번 강연을 통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후반기 첫 모임은 8월 5일(목) 오후 7시, 린필드 한글사랑도서관에서 열린다.
시드니인문학 교실 관계자는 전반기 종강을 갖으며 “올해는 실존주의로 전반기 살폈습니다. 후반기에는 관련해 더욱 살피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열심히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했다. 또한 후반기 모임에 초청하며 “우리 시대 과연 사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합니다. 2월부터 5월까지, 8월부터 11월까지 1년 8달, 매달 첫째와 셋째 목요일 저녁 7시부터 함께 자리하고자 합니다. 1년에 모두 16번 모입니다”라고 안내했다.
– 시드니인문학교실 후반기 개강 (8월) 모임 안내
.일시: 2017년 8월 5일(목), 19일(목) 격주 모임 (저녁 7-9시)
.장소: 한글사랑도서관(김동숙 관장, 454 Pacific Hwy, Lindfield NSW 2070)
.문의: 아래와 같음
주경식 (0401 017 989, drjks709@hotmail.com)
임운규 (0425 050 013, woon153@daum.net)
시드니인문학교실 (5월 강의 전문)
제30-31강 Man is a man. Woman is not a man but a woman? (남자는 인간이고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여자인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한 실존적 Feminism 이야기
이 강의안은 하나로 묶어서 준비했으나 30회와 31회, 두 번 나누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 들어가는 이야기
1) 오늘 강좌의 영어제목을 이렇게 붙여보았습니다. Man is a man. Woman is not a man, but a woman? 이 문장은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왜 영어에서의 man은 어떤 때는 <남자>,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 사람>이라고 번역할까요? 또 왜 man, 즉 남자는 그냥 그대로 하나의 인간인데, woman은 man이라는 단어 앞에는 wo를 붙여서 여자는 무엇인가 부족한 존재인양 접두어를 붙여서 만들어 놓았을까요?
2) 거개의 인간 역사가 다 그렇긴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하는 대부분의 feminist들이 지적하는 대로 지금까지의 철학사나 인문학사는 거의 다 남자들이 주도했고, 남자들을 중심한, <남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해 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모든 차이는 극복 되어야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실 인간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엥겔스에 의하면 역사는 지난날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면서 여권은 상실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참고서적: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The Origin of the Family, the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김대웅 옮김, 두레, 2012.).
특정 종교인은 타종교를,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 지배를 당해 본 나라와 그 국민을, 호주의 백인들은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아시아 이민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물며 여자가 될 수도 없고, 또 되어보지도 못한 남자가 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신체를 바꾸어 볼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이해란 근본적 불가능성에 가깝습니다. <너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는 말은 그래도 언젠가는 늙어 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라도 있는 말이지만 <너 여자 되봤어?>하는 말 앞에서 모든 남자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3) 인문학의 주제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당황 하게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질문해온 그 인간에는 여성도 포함이 되었던가?> 우리는 인간 중 절반에 해당되는 남자, 남자들의 생각과 경험만을 우리 담론의 주제로 삼으면서 <우리는 인간을 공부한다>고 착각해 왔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을 공부해온 것이 아니라 남자를 공부해 온 것>입니다.
4) 인문학의 또 다른 주제는 <인간평등>입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sexuality의 각도에서 지난날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역사상 마지막으로 남은 식민지는 여자> (Maria Mies, Veronica Bennholdt-Thomson, Claudia von Werlhof가 함께 쓴 책, Women: The Last Colony, Zen Books, 1988. 구미정의 책 <호모 심비우스> 북코리아 2009, P.103에서 재인용)라는 여성 운동가들의 절규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런 작은 원고에서 조차 <남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남녀가 평등한 세계> 라고 쓰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갑니다만 <여남이 함께 사는 세상>이니 <여남이 평등한 세상>이라고 쓰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니는 것조차 우리는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고 차별하고 서열화 하는데 익숙해진 존재임을 반증한다고 봅니다. 그런 각도에서 <인문학적 참회>의 심정으로 오늘 우리는 모처럼 실존주의자들이 일깨워 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의 실존적 이야기를 feminism 이야기와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 여남 차별을 만들어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유대교와 기독교를 중심한 여성들의 차별과 핍박의 역사 (도움받은 글- 기독교여성학자인 구미정이 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한 이브” – 성경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옥당, 2012 / 협성대 교수 이충범이 쓴 “교회와 여성”-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 2012)
1) 물론 여남을 차별하도록 만든 역사적 연원에는 고대 유대교나 기독교 이외에도 동서를 막론하여 여러가지 가부장적 전통의 뿌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것이 너무 방대하여 공부하기에 힘이 들어서 고대 히브리성서와 신화, 그리고 기독교 성서와 전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2) 유대교의 전설에 의하면 (Robert Graves& Raphael Patai, Hebrew Myths: The Book of Genesis 1964) 하나님은 처음 아담을 만드실 때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여자도 만드셨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릴리스 (Lilith)였습니다. 그런데 이 릴리스는 처음부터 아담과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싸웠습니다. 그녀는 아담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하나님은 나도 너와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 주셨어! 우린 동등한 존재야!’ 그렇게 다투다가 어느 날 릴리스는 에덴동산을 박차고 도망을 쳤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릴리스가 도망을 쳤으니 좀 찾아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릴리스를 찾아서 다시 에덴동산으로 가자고 했지만 릴리스는 자기는 절대로 아담에게 복종하면서 살기는 싫다고 하면서 거절을 합니다 (여기서 부부사이에 잘 다투고 싸우는 사람들을 ‘릴리스 콤플렉스 <Lilith Complex>에 걸린 사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스 요하임 마츠, 릴리스 콤플렉스, 이미옥 역, 참솔, 2004).
생활 속의 글이랄 수 있는 잠언에는 이런 릴리스 컴플렉스의 현실을 생동감 있게 거론합니다.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잠 19:13).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 21:9. 25:24).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 보다는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1:19). “다투는 여자는 비오는 날에 이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잠 27:15).
오늘날 이런 부부 사이의 릴리스 컴플렉스는 세간에 드러난 송혜교와 송중기, 이부진과 임우재의 이혼 이야기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남 사이에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할 수 없이 도망간 릴리스를 포기하신 하나님은 계속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하여 다른 짝을 새로 만들어 주기로 하고 이번에는 아담을 잠재운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릴리스처럼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만든 존재가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든 이 두 번째 여자의 이름이 이브 (Eve)였습니다. 당연히 아담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창 2:23).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지음 받았던 릴리스와는 달리 아담의 갈비뼈로 지음 받은 이브는 아담의 분신으로 그 후 그에게 종속이 됩니다. 이브는 릴리스 처럼 여남 평등을 주장하며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가 아닙니다.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순한 여자입니다. 아담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릴리스가 아니라 이브형입니다.
이브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남자가 눈치만 주어도 살살 알아서 기고 그를 전적으로 써포트하고 도와주는 배필이 됩니다. 그녀의 원자재가 아담과 똑같은 흙이 아니라 오직 아담의 갈비뼈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도서: 쥬디스 플라스코, Judith Plaskow, 여성의 聖스러움, 김명주 옮김, 충남대출판부, 2011. “릴리스의 탄생”은 번역이 안 되었음. 이 이야기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다른 창조 이야기, 즉 E문서와 J문서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3) 그 다음에 이어지는 스토리는 앞에서 소개해 드린 릴리스 신화를 넘어서 히브리 성서를 통하여 더욱 굳어집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아담을 위하여 지음 받은 이브가 그만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아담에게까지 줌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이제 그녀는 말 잘 듣는 ‘착한 이브’가 아니라 아담을 타락의 길로 이끈 ‘악한 여자’로 전락이 됩니다.
원래 Eve란 이름은 히브리어 하와 (Hawwah)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생명’입니다. 이브는 ‘모든 생명 있는 자들의 어미’ (창 3:20)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온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망으로 몰고간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이고, 극심한 여성 편견주의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 (Tertulianus)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죽은 것은 아담이라는 남자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 이브라는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건의 밑바탕에는 여자의 죄를 속하려는 뜻이 있다고 해석했을 정도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여자의 죄로 죽으신 것이다>
4) 그 후 세계 3대 종교는 이렇듯 <갈비뼈 신화>와 <선악과 신화>의 바탕 위에서 결코 극복해 내기 어려운 여남 불평등의 역사를 엮어내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서구역사는 바로 이런 창조설화를 바탕으로 남존여비, 여필종부, 부창부수, 현모양처 (男尊女卑, 女必從夫, 夫唱婦隨, 賢母良妻)등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었고 그 위에서 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여자는 ‘나쁜 여자’요, 남자들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여자는 ‘착한 여자’라는 생각을 심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5) 이와 함께 잠간이라도 언급해야 할 부분은 플라톤 (Platon)의 이원론 (Dualism)입니다. 이데아와 현상, 본질과 질료, 하늘과 땅, 영원과 시간, 진리와 거짓, 불변과 변화로 세상만사를 둘로 나누어서 본 플라톤은 인간도 당연히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에게 있어서 남자는 이데아, 본질, 하늘, 영원, 불변, 진리 의로움인 반면에 여자는 현상, 질료, 땅, 시간, 거짓, 변화, 죄악이라는 카테고리에 갇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역시 남성은 이성적 존재이고 여성은 이성이 결여된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이 두 명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서구 역사에서 종교와 함께 가부장적이며 여성 혐오적이며 여남 불평등주의의 기초를 놓은 기둥이라고 하겠습니다.
6) 플라톤의 이원론적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온 바울과 초대 그리스도교회는 여성을 차별화하고 폄하하는데 유대교 보다 훨씬 더했습니다. 기독교회의 성서를 읽어보십시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 …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를 하거나 예언을 하는 자는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가리지 않거니와 ….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2-16)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십시오. 여자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만일 무엇을 배울 것이 있거든 집에 가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 보시오. 여자가 회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고전 14:34-3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이 하시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엡 5:22-24)
“여자들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소박하게 생활하고 머리를 따거나 금이나 진주 같이 값진 것으로 치장하지 말고 오직 선한 일을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여자들이 취할 마땅한 태도니라. 여자들은 오직 순종하고 조용한 자세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나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느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았고 하와는 그 후에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죄에 빠져 속았기 때문이니라” (딤전 2:7-14)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한 바니라” (골3:18)
이런 노골적인 여성폄하와 비하는 그 후 이어진 그리스도교회의 교리 형성과 예배의식과 여성의 지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내에서 각종 여성의 위치나 지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예배나 미사 참석에 있어서 앉거나 서는 자리의 구분, 입는 옷, 수건을 쓰는 것 까지도 그 역사적 뿌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날은 미사나 예배에서 남녀가 함께 찬미나 찬송을 부르지만 중세시대엔 회중들이 미사에서 아예 찬미를 부를 수가 없었고 여자들은 성가대원으로 뽑지도 않았습니다.
6-7세기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는 교회법으로 <그레고리오 성가 : Gregorian Chant>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첫째, 모든 성가는 뽑혀지고 훈련 받은 성가대원들만 부를 수 있다. 미사에 참석하는 회중은 찬미를 부를 자격이 없다. 둘째, 모든 성가는 라틴어로만 불러야 한다. 셋째, 모든 성가는 인간이 제조한 악기를 동원해서는 안된다. 무반주로 불러야 한다. 넷째, 성가대는 오직 남자 소년들로 만으로 구성해야한다.>
이렇듯 미사에서 여자들이 노래를 부를 수 없도록 교회법으로 규제한 것은 여성의 음성은 남성에 대한 유혹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음성은 아름답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오직 남자를 유혹하여 음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변성기의 소년들을 거세시켜 <남성 소프라노 Castrato>를 만드는 등 교회의 타락상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런 전통은 그 후 16세기 종교개혁 때까지 거의 700년 이상 서구 기독교의 전통으로 굳어져 오다가 루터에 의해서 남녀 회중이 직접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럽에서는 그레고리안 전통을 이어온 <비엔나 소년 합창단>이나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같은 남성 소년합창단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여성 합창단은 등한시되고 있습니다. 가톨릭 미사 때 여자는 얼굴을 베일로 가리우도록 하는 일, 개신교가 여성의 목사직이나 장로직을 가로막는 것, 결혼 주례에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구절로 주례사를 할 때도 ‘아멘’하는 신도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까요?).
7)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이런 기반 위에서 서슴없이 여성을 인류 타락의 진범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자는 공공의 장소에는 나타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화려한 의상이나 몸의 일부를 들어내는 것이나 장식품은 매음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Chrysostomus)는 남자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만 여자에게는 사탄의 형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암부로시우스 (Sanctus Ambrosius)는 앞에서 읽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을 인용하면서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이브가 죄에 빠져 속은 것>이라고 하면서 인류 타락의 범법자는 이브이고 남자는 그 여자에게 속은 과실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는 플라톤의 이원론에 따라 남성은 영혼이요, 정신이요, 이성인 반면에, 여성은 육체요, 몸이요, 감성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남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요,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이 결여된 존재입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최후의 심판 때 구원받는 것은 여성성이 없어지는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부활한 여성에게는 성행위나 임신이나 출산과 관계되는 더러운 육체의 성적 기관들은 다 없어짐으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부활 후 모든 인간들은 다 남성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 즉 부활 후 변화된 새로운 몸은 남성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젠더, 만들어진 성 : 뇌과학이 만든 섹시즘에 관한 환상과 거짓말, 코델리아 파인, 휴먼사이언스, 2014> 같은 책을 보면 이 시대 의사들 중에는 성인 여자의 뇌는 평균 1.2kg인데 비하여 성인 남자의 뇌는 1.35kg으로 남자들이 여자들 보다 월등하게 뇌가 크고 무겁고 따라서 뇌세포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여자의 정신적 사고 기능은 남자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그리스 철학과 고대 유태교와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유치한 고대 사이비 과학까지도 어떻게, 어떤 논리를 가지고 여성을 폄하하고 미워하게 만들어 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8) 16세기 종교개혁 후 루터나 칼뱅은 성서해석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 존재론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게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인간 사회의 위계 질서에 있어서는 기능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치자와 백성, 주인과 하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남성과 여성 사이에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고 예속시키는 창조의 질서 (Order of Creation)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남성이란 존재가 존재론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혼돈에서 질서 : from chaos to cosmos>로 만들어서 아름답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피조 세계에 질서를 주셨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오늘날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 (Karl Barth)에게 까지 이어진 신학 이론 중 하나이며 대부분의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요, 우리들이 배워온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질서의 순서와 차이를 주셨다>
9)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을 비롯하여 로마시대와 중세 시대를 걸쳐 봉건시대, 가부장적 폭력 아래에서 박해받아온 여성사를 비롯하여 조선조를 비롯한 한국의 근대사에서 여성들이 받아온 핍박사와 오늘날도 이어지는 제 3세계,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여성들의 피눈물의 역사를 서술하려면 끝도 없고 또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사람의 모양은 갖추어 있지만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해온 ‘여성사’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고 페미니즘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대 인도의 힌두교에서 여성을 극단적으로 차별화한 태도 한 두 가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여성을 불결한 존재로 보는 태도, 월경, 유아결혼, Child marriage, 사티 Sati).
페미니즘 (Feminism) 이야기
⚫ 페미니즘의 의미
1) 여성주의 (女性主義), 혹은 여권주의 (女權主義)로 번역되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평등 (Equality)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기 위
한 정치적 및 사회적 운동이라고 정의됩니다.
Wikipedia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Feminism is a range of social movements, political movements and ideologies that aim to define, establish and achieve the political, economic, personal and social equality of the sexes.”
2)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을 철폐하려는 목표를 지닌 사상, 연구, 이론화와 더 나아가 이를 이루려는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지칭합니다. 핵심 개념은 여권 (女權)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고정된 이데올로기는 아니고 다양성을 지닌 사상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a)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인간이다. 이 둘은 서로 차별을 해서도 안되고 차별을 받아서도 안된다.
(b)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인간이지만 또한 서로 다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르고 경험과 생각이 다르다. 유전적, 신체적 차이가 분명하고 삶을 통하여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c) 차이 (差異)와 차별 (差別)은 다르다 (차이 – difference, variance, divergence, dissimilarity / 차별 – distinction, discrimination, differentiation, partiality). 여성과 남성은 삶의 경험이 다르다. 그 다른 경험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여성과 남성이 그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고 남성과 같이 되도록 강요받고 교육받는 것은 불의하고 악한 일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불의하고 악한 일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d) 여성이 남성과 다른 경험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아온 것은 일부 남성들의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그 근본 바탕에는 긴 역사를 통하여 누적되어온 관행, 습관, 교육, 사회적 제도와 구조, 법률, 정치적 탐욕, 종교적 세뇌와 폭력 등이 복합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가부장적 제도, Patriarchael System, Partriarchy, Patriarchism>라고 부른다.
3) 요약,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는 여성과 남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인간이 남성이라는 인간과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한다는 그 차이점을 이유로 들어 차별하고 차별받아온 것이 지난날의 인간 역사입니다. 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차별을 없애 보자는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교육운동,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하는 것을 통칭하여 Feminism이라고 합니다.>
4)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러 Feminism은 위의 3)에서 다듬은 초창기 여성의 권리를 찾자는 여권신장운동에서 그 범위를 많이 확대하고 있습니다. Feminism은 여성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회적 억압 아래에 있는 사람들 – 흑인들, 가난한 사람들,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 계속되는 식민지 피지배자들, 어린이들, 병약한 사람들, 노인들, 성소수자들, 원주민들, 이민자들, 일체의 사회적 약자들과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탐욕과 그 결과로 빗어진 생태계 파괴자들과 싸우는 사람들 – 과 연대 (Solidarity)하여 함께 그 구조를 연구하고 투쟁하려고 합니다.
⚫ 여기서 Feminism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하여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Man explain Things to Me, 리베카 솔릿, Rebecca, Solnit, 김명남 옮김, 창비, 2015> 중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 여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남성들의 오래된 방법 중 하나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거나 결혼한 후에는 남성의 이름 앞에 Mrs를 붙여 주거나 애기를 낳으면 ‘xxx 애기 엄마’로 불렀고 지역의 이름을 붙여 ‘안성댁’ ‘부산댁’ 목포댁’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여성됨을 지워버린 역사는 ‘이름 없애기’에서 나타났습니다.
2) 동서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나라는 여성의 말을 억눌러왔습니다. 여자들은 무엇에 대하여 그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입은 있어도 말은 못하는 벙어리’로 만들어 왔습니다. ‘여자가 뭘 안다고…’ ‘여자가 말이 많거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종교집단은 더욱 그랬습니다. 기독교 성서는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가르쳤습니다.
3)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피해를 당해도, 심지어는 강간을 당해도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억울한 말 조차도 ‘여자가 칠칠치 못해서’ 그런 것으로 치부했고 심지어는 여자들이란 거짓말을 잘하는 것들이라고 누명을 씌우기도 했습니다.
4) 그런 가운데서 여자들은 점점 남자들을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무시하고 ‘믿을 수 없어! 거짓말이야! 원래 여자들은 거짓말을 잘해! 남자들은 안그래!’ 하면서 깔아뭉개 온 남성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고 살해를 당해도 어디 가서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5) 그런 중에 남자들은 은근히 여자들을 강간, 폭력, 살해로 부터 보호해 주는 은신처는 오직
남자들뿐이라는 생각을 주입시켰습니다. 그래도 남자들 밖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세뇌를 시킨 것입니다.
6) 1990년대 영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feminism 때문에 남성들의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욱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흔히 <Lad culture>라고 하는 <여성혐오문화>입니다.
7) Feminism에 함께하는 남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feminism은 그 주체가 여성입니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전쟁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기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가끔은 좋은 징조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천마일이고 이제 겨우 1마일 밖에는 못 왔지만 우리는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8) Feminism은 단순히 여성운동만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운동입니다. 우리는 남성들도 그릇된 인식과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함께 갑니다. Feminism을 통하여 여성들은 속박에서 벗어나고 남성들은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 페미니즘이 추구해온 목표
이 부분에서 읽으시기를 권장하는 책들 (1) T. H. Marshall,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1994 (2) C. Mackinnon, Public Man, Private Woman: Women in Social Political Thought, Princeton Uinv. Press 1983. 핵심은 <여권은 인권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됩니다.
초기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추구하는 사상과 운동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의 권리란 인간의 권리라는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위에서 시작하여 <그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를 질문합니다. 그 다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렇게 발전이 되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신체와 기능, 경험과 생각, 판단과 해결의 방법이 다르다. 여성과 남성의 다름은 차별 받을 것이 아니라 존중 받아야한다. 그 차이가 인간의 삶과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가운데 페미니즘이 추구해온 여권의 흐름은 3단계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Marshall의 분류)
(1) 시민적 권리, Civil Right – 언론, 사상,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재산권
(2) 정치적 권리, Political Right –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포함하는 참정권
(3) 사회적 권리, Social Right – 최소한의 복지제도, 사회적 안전권, 재화의 분배권, 문명화된 삶의 권리.
그런데 이를 좀 더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민적, 정치적 권리 – 정치나 공직에 나갈 권리, 평등한 경쟁의 권리, 공직을 포함한 모든 경쟁 체제에서 여성 할당제.
(2) 경제적 권리 – 모집, 배치, 승진, 임금 등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성별 분업이나 임금 차이나 성희롱으로 부터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가사노등의 사회화와 공동육아의 권리.
(3) 신체적 안전과 인간 존엄의 권리 – 가정폭력, 성폭력, 부부강간 , 성희롱, 매춘 등 성적 억압과 폭력으로 부터 자유할 권리, 기존의 성문화로 부터 벗어날 권리, 성적 자기 결정의 권리, 성적 즐거움을 누릴 권리.
(4) 혼인과 가족 관계에서의 권리 – 가정 폭력으로 부터 자유할 권리, 이혼할 권리, 자녀에 대한 권리, 가부장적 억압과 성분별 업무로 부터 자유할 권리, 혼인, 임신, 출산에 대한 선택권.
⚫ 페미니즘의 역사, 대표적 인물들, 확대되는 페미니즘
여기에서 참고할 단행본. (1)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사> (2) 미셀 푸코, <성의 역사> 1, 2, 3, 4권. 한글번역본은 나남에서 2004년 이후 2019년까지 이규현 등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음. (3)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한글번역으로는 2016년 상하 두권으로 조흥식 옮김, 을유문화사 출판이 있음. (4) 심영희, <여성의 인권 : 성적 자기 결정권을 중심으로>. 한상진편 <현대사회와 인권> 나남, 2001에 나오는 논문. (5) 손영호,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과 여권운동>. 이 에세이는 <마이너리티의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살림 2003> 중에 나오는 글임. (6) Alice Duer Miller, <Women Are People!, New York, 1917>
⚫ 간추린 페미니즘의 역사 – 주로 참정권을 중심으로
1) Platon은 남성은 이데아와 같은 존재이고 여성은 질료와 같은 존재로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제자 Aristoteles 역시 여자는 남자에 비하여 인간으로서의 특정한 자질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시민들의 민주적 광장인 Agora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서 조차도 여성들에게는 시민권이나 재산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단 일부 여성들에게는 재능과 소질에 따라 가수, 배우, 운동선수, 의사, 시인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한적 권리만 인정되었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여성의 화폐소유권도 주어졌습니다).
2) 초기 기독교 공동체나 중세 시대는 로마의 법과 전통에 따라 제한적으로 여성의 재산 소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결혼 지참금, 친정에서 받은 상속, 남편이 남긴 유산으로 <과부의 몫>은 여성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들을 매각, 교환, 저당, 처분할 권리는 여자에게 없었습니다. 사는 동안은 쓰고 죽은 다음에는 다시 장자를 비롯한 아들들과 시집으로 귀속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접어들면서는 이런 권리조차도 점점 더 축소되었습니다.
3) 이에 비하여 이슬람은 여권에 있어서 몇 번에 걸친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초기 마호멧트는 코란과 샤리아를 통하여 여성의 재산권과 사업권을 인정하고 여권을 신장했습니다. 당시 이슬람은 유럽의 다른 국가나 동양 보다 훨씬 여권이 넓게 인정되었습니다. 마호멧은 결혼을 민법상의 계약으로 보았고 지참금은 여성이 자의에 따라 쓰고 상속해 줄 수 있는 재산으로 인정했습니다. 샤리아는 진보적 성격을 지닌 이슬람의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호멧 사후 중동을 이슬람화해 나가는 전쟁 중 남자들이 대량으로 죽고 전쟁미망인들인 여자들의 숫자가 많아짐으로 일부다처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되돌아갔고 남편이 죽으면 다른 재산과 함께 아들들에게 자기의 아내까지도 상속해 주었습니다. 여성은 비참한 성적 노리개가 되었고 심지어는 사고 팔수 있는 재산중 하나로 전락이 되었습니다. 마호멧트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완전히 사라졌고 특히 14세기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화 되면서 부터는 급격하게 모든 여성의 지위와 권리는 축소되었고 규제는 더욱 더 강화되었습니다. 정교일치를 통한 세뇌교육은 오늘 까지도 이슬람 국가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눈물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4) 1785년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을 위한 과학교육협회>가 결성되었고 여성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은 메리 워틀리 몬태규 (Mary Wortley Montagu)였습니다. 그녀는 유럽에서 계몽주의 이후 처음으로 여성의 교육권을 촉구하고 이를 선도해 나갔습니다.
5) 1792년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라는 단행본을 통하여 처음으로 양성평등을 주장했습니다.
6) 1837년 프랑스혁명 후 처음으로 당시 사회 운동가였던 샤리 푸리에 (Charles Fourier)가 Feminism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권리신장이 사회 진보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남녀차별주의를 비판하고 <남녀의 동등한 교육권>을 주장했습니다.
7) 1848년 흑인해방운동과 남북 전쟁이 벌어지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미국 뉴욕주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한 컨벤션이 열렸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여성의 재산권과 참정권을 위한 투쟁가들이 나타납니다. 엘리자베스 스텐턴, 수전 앤서니, 어니스트 로즈 같은 여성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여성의 참정권을 청원합니다.
8) 1869년 죤 스튜어트 밀 (J. S. Mill)이 <여성의 종족사>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하나의 성이 다른 성에게 종속되는 것은 잘못이고 이는 인류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남성들의 편견이 만들어 낸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동일한데 그 차이가 생긴 것은 교육 탓이다.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어야한다.” <여성의 종속사>는 그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9) 1870년이 될 때까지 영국은, 인권의식이 가장 먼저 발전된 나라라고 하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들만의 인권이었음을 드러내면서 여성의 참정권과 재산소유권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여자가 친정에서 물려받은 부동산까지도 남편의 이름으로 등기하게 했습니다. 19세기 중엽까지도 일부 영국의 과학자들은 중세시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드려 <젠더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차별하며 여성의 뇌의 무게는 남성의 뇌 보다 가벼움으로 여성은 열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0) 1893년 드디어 식민지 땅 뉴질랜드에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습니다. 뉴질랜드에 이어 Cook Island도 선거권이 주어졌습니다.
11) 1902년 호주도 1901년 연방정부의 탄생에 따라 선포된 연방헌법에 따라 모든 여성에게 평등하게 한 표씩 주어지는 보통선거가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1943년이 되어서야 Dorothy Tangney와 Dame Enid Lyons가 처음으로 연방의원이 되었습니다. 캔버라에 있는 연방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National Museum of Australia의 입구에 있는 짧은 선언은 지금도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I not a woman, but a citizen” 현재 호주의회에서 여성의원은 약 25% 정도가 됩니다.
12) 1905년, 핀란드는 여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시에 도입했고 2년 후인 1907년에는 19명의 여성 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1913년에는 노르웨이, 1915년에는 덴마크가 여성의 선거권을 도입했습니다.
13) 제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남성들의 참전으로 사회의 각종 빈 자리를 여성들이 메우는 형태로 여러가지 산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여성의 사회 참여와 권리 신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캐나다, 러시아, 독일, 폴란드가 이어서 여성의 투표권을 도입했습니다.
14)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혁명정부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명문화하고 여성을 가사에서 해방시켜 각종 사회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5) 1918년 영국에서는 처음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선거권을 허용했으나, 10년이 지난 1928년 부터는 남성과 똑같이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었습니다. 영국은 일찍이 명예혁명을 통하여 정치적 권리를 쟁취해온 나라였지만 1838년 노동자들에게도 투표권을 허용한 <차티스트운동, Chartist Movement> 이전 까지는 불과 5%에 불과한 귀족들과 토지를 소유한 유산계층들 (젠트리, Gentry)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던 나라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도 투표권을 허용했던 1838년 <차티스트운동> 이후 여성들에게도 그 동일한 투표권 한 장을 허용하기 까지는 또 다시 거의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16) 1920년, 미국은 헌법개정을 통하여 모든 여성들에게 voting right를 도입했는데 지난해가 그 100주년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행사를 가졌습니다. 1920년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링컨 대통령이 1863년, “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외친 게티스버그 연설 (Gettysburg Address)을 한지 꼭 57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지 다시 46년이 지난 1966년,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을 힘입어 인종에 의해서 차별받지 아니하는 민권법이 통과됨으로 모든 흑인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평등과 그 권리를 향한 길>은 이렇게 험한 길을 걸어왔고 또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미 하원 450석 중 여성은 117명, 상원은 100석 중 여성이 24명으로, 상하원 550석 중 여성이 민주당 105명, 공화당 36명 등 모두 141명이고 부통령과 하원의장을 비롯하여 연방재무장관, 국가정보국장, 백악관 경제자문 위원장 등이 여성이고 한국계 하원의원도 3명이 있음).
17) 1944년, 인권혁명의 발상지인 프랑스는 부끄럽게도 가장 뒤늦게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합니다. 올랭프 드 구주가 여권을 부르짖은 지 15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18) 기타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1946년, 대한민국이 194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최근인 2015년에 여성 투표권을 얻었습니다.
⚫ 대표적 인물들
여기에서 저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제 3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까지는 다루지 않고 18세기 이후 초기 페미니스트들 중에서 3 ~ 4명의 이야기만 나누겠습니다 (참고 : 제 3세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더 공부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현대 미국의 철학자이며 젠더 이론가이며 U. C. 버클리대학 교수로 있는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의 다음 두 책들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Gender and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1990 – 이 책은 sex와 gender를 구분하여 sex는 신체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gender는 개인의 행위와 사회의 구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봅니다. 특히 이 책에서 버틀러는 성소수자들의 운동을 옹호하고 퀴어 이론을 뒷받침 합니다 / Undoing Gender, 젠더 하물기, 조현준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5 – 여기에서 버틀러는 페미니즘을 여권이나 여성의 울타리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sexual minority의 문제로 확대하고 퀴어 이론을 세워나갑니다).
1) 올랭프 드 구주 (Olympe de Gouges, 1748 ~ 1793) – 구주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과 이어진 인권선언을 지지했으나 얼마 후 그것들은 모두 남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별도로 2년 후, 1791년 <여권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1789년 프랑스의 혁명의회가 채택했던 선언문 <남성 및 시민의 권리 선언 :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Man and Citizen>에서 Man을 Man and Woman으로 바꿔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주체들은 구주의 이런 행동이 결국은 혁명정신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여 그녀를 왕당파로 몰고 <자신의 성에 적합한 덕성을 상실한 여성>라고 규정하여 단두대에서 처형했습니다.
구주의 마지막 유언으로 전해지는 말입니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 역사에서 여성은 늘 압박 받는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던 시대에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남성은 여성 보다 통치하기에 더 적합한 존재”로 규정해온 이후 아테네의 허구적 민주정부터 지난 2500년 동안 여성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정치적 권리 없이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2)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 1759 ~ 1797) – 18세기 영국의 자유주의적 사상가요, 작가이며 여권운동가였던 울스톤크래프트의 대표작은 <여성의 권리 옹호 :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입니다.
그녀는 여성이란 남성과의 대결 상태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란 감금된 인간>이라고 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남성으로 부터 여성해방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딸들의 교육에 관한 성찰 : Thoughts on the Education of Daughters, 1787>을 통하여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절대 남성 보다 열등하지 않다. 다만 여성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여 열등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면서 <여성의 교육받을 기회의 균등>을 요구하였습니다.
3) 수전 안서니 (Susan B. Anthony, 1820 ~ 1906) –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노예제도 폐지와 더불어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안서니는 하퍼와 함께 쓴 대표적 저서 <여성의 참정권사 : The History of Woman Suffrage 1884-1887, 4권으로 됨>를 통하여 여성의 참정권과 노예제도의 폐지를 패키지로 묶어서 주장했습니다. 1856년 뉴욕주의 <노예제도 반대협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면서 1868년에는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지로 주간지 <더 레볼루션, The Revolution>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872년 그녀는 대통령 선거 투표장에 무단으로 입장하여 비밀리에 투표를 강행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재판에 회부되어 벌금 100불을 부과받았는데 끝까지 지불을 거부하면서 <그 벌금은 내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내야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Is it a crime to vote as a U.S. citizen?”
지난날 이런 부르짖음이 오늘 이만큼이라도 여권을 신장시켜왔다고 하겠습니다.
4) 에멀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 1858 ~ 1928) – 초기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팽크허스트는 제 1세대 페미니스트 중 대표자라고 불리웁니다. 그녀에게서 유명한 Suffragette Movement가 촉발되었습니다. 영어의 suffrage는 <투표권, 참정권>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Suffragette, 즉 <싸우는 여자들, 투사들>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김진아, 권승혁 옮김, 현실문화연구, 2016>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녀가 싸운 일생을 담은 자서전적 저술입니다.
팽크허스트는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해 <여성의 사회 정치 연합회>를 만들어 남성들이 여성을 배제한 채 만들어 놓은 법을 무효화하기 위해 단식투쟁, 집회, 가두시위, 방화, 유리창 깨트리기 같은 비합법적 무장, 폭력운동을 선동하고 이를 전개했습니다. 이와같은 투쟁 끝에 드디어 영국 의회는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는 법을 의결합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그녀가 죽던 1928년에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21세 이상이 되면 투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게 됩니다.
팽크허스트는 말합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전보다 착해져서 내린 결정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서 얻은 것이다. 나는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반역자가 되겠다. I would rather be a rebel than a slave. 여성혁명은 나의 운명이다> 그녀는 늘 자기 생일을 7월 4일이라고 적었는데 7월 4일은 1789년에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날이었습니다 (팽크허스트의 ‘참정권투쟁’을 위한 저서,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읽은 이들을 위하여 그 다음에 흔히 추천하는 영화는 “거룩한 분노, The Divine Order”, 2017년 제작, 개봉된 작품입니다. 스위스에서의 여성 참정권 투쟁을 다룬 이 영화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 페미니즘의 확대
초기 페미니즘은 주로 여성의 불평등과 억압체제에 대한 사회구조의 연구에 집중되었습니다. 남성중심적 (Androcentric) 중앙집권화에 기반을 두었던 구조에서 탈남성주의, 탈중앙집권를 위한 방법으로 교육이나 정치적 권리 신장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중심, 백인중산층 중심의 이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70년대 이후부터는 페미니즘이 제 3세계로 확대되었습니다. 인종, 사회적 빈부의 격차. 독재정권을 향한 투쟁, 풀뿌리 민주화운동과 연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2,3 세대를 거쳐 오면서 오늘날 페미니즘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확대, 세분화되었고 또 다른 사회과학이나 사회운동과 연계, 혹은 연대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 여성들에게 교육권, 재산권, 참정권이 부여되지 못한 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남성들과 싸움으로 이를 쟁취해야 한다. 우리는 순결이나 정조를 거부한다.
(2) Radical Feminism – 여성억압의 원인은 가부장적 제도다. Sex와 gender는 다르다. 여성을 종속화한 것은 이데올로기다.
(3) Social Feminism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여성 억압의 원인이다. 계급 없는 세상은 경제적 평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4)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 페미니즘은 제 3세계와 흑인여성들의 역사와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5) 아니키아 페미니즘 – 페미니즘과 무정부주의는 서로 연대해야 한다.
(6) 기독교 페미니즘 – 금주, 금연 등 절제운동과 페미니즘을 연계시키는 보수적 운동이다.
(7) EcoFeminism –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해온 역사와 여성을 억압해온 방식이 동일하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착취와 억압은 함께 타파 되어야한다 (이외에도 최근 페미니즘의 이론과 활동은 이슬람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다원주의 페미니즘, 스피리춸 페미니즘, 포스트모던페미니즘 등으로 그 영역이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 de Beauvoir, 1908 ~ 1986)
1) 키에르케고르로 부터 시작된 실존주의 이후 사르트르와 카뮈, 한나 아렌트를 공부해온 우리는 오늘 주제를 <시몬 드 보부아르를 중심한 실존적 Feminism 이야기>로 정하고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련의 사상가들을 모두 실존주의라는 철학사조의 틀 속에서 보려고 합니다.
2) 간단한 생애와 주요저서 – 보부아르 자신은 스스로 철학자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여성주의적 실존주의자 : Feministic Existentialist>로 호칭합니다. 그녀의 사상은 주로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하이데거, 야스퍼스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작가로서의 그녀는 소설을 비롯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책은 물론, 회고록, 자서전, 여행기 등 여러 분야에서 글을 썼습니다.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지식인이요, 작가요, 여성주의 이론가이며 실존철학자이기도 한 그녀는 정치인으로도 불리웁니다. Institute Catholique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후 파리대학과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1929년, 21살 때 최연소 교수자격시험 (Agregation)에 합격했으나 주로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최초의 소설 <초대받은 여자, 영어로는 She came to stay>와 <레 망다랭, Les Mandarins>를 통하여 프랑스 콩쿠르상을 받았습니다. 사르트르와 함께 <레 탕 모테른, Les Temps Modernes, 현대>이라는 정치평론잡지를 창간하여 사망 직전까지 글을 쓰면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78세에 폐렴으로 사망하였고 파리 세느강에는 그녀를 기념하여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 Passerelle Simon de Beauvoir>가 만들어져서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앞에서 말한 것 외에 <피뤼스와 키네아, Pyrhus and Cineas, 1944> <모호성의 윤리, The Ethics of Ambiguity, 1947> <제 2의 성, The Second Sex, Le Deuxieme Sexe, 1949, 한글판은 상하 두권으로 조흥식 옮김, 을유문화사출판, 2016>이 있습니다. 특히 <제 2의 성>은 페미니즘과 실존주의를 접목시킨 저서로 20세기 페미니즘연구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연구서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책은 카톨릭의 금서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위의 책 중에서 그녀의 대표작이며 동시에 실존주의적 페미니즘사상 (혹은 여성주의적 실존주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제 2의 성>을 중심하여 보부아르의 중심사상을 살펴보겠습니다.
3) <제 2의 성>을 중심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 페미니즘
(1) 지금까지 해온 인문학과 철학에서의 인간탐구는 남성이라는 인간을 대상으로, 남성이라는 인간들이 주체가 되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남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남자다움>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간다음은 언제나 남자다움과 동일시 해왔습니다. <남자다움 = 인간다움> <인간다움 = 남자다움>이라는 기준에서, 그들은 <여자란 어떻게 남자와는 다른가?>에 주로 관심 해왔습니다. 즉 남자들은 여자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놓친 것입니다. <이놈들아! 여자도 남자다!> 보부아르는 이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서양철학은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척도가 왜곡되어왔다. 그들은 인간을 연구해온 것이 아니라 남자를 연구해왔다>
(2) 서양철학은 늘 여자를 남자의 <상대적 존재>인 <타자, The Other>로 여기며 이런 등식을 만들었습니다. <남자 = 자아 = 주체 = 지적 = 합리성 = 긍정적 = 용기 = 자기주장이 있음>과 <여자 = 타자 = 무지 = 비합리적 = 부정적 = 굴종적 = 자기주장이 없음>.
여기에서 여성이 인간으로 인정을 받는 길은 오직 <남성답게 될 때>입니다. 보부아르는 많은 페미니스트들 조차도 <우리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여남 평등을 외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성을 동경의 대상, 되어야 할 목표로 삼고 여성들은 스스로를 비정상적이며 아웃사이더라고 여기며 정상적인 인간인 그 남자들을 이상적 목표로 삼아온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입니다.
(3) 남성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면 여성도 평등한 인간이 되는가? 아니다! 여기서 보부아르는 모든 남성들에게 요구합니다. “인정하고 고백해라!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는 것을!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무시하는 자는 결코 인간이랄 수가 없다!”
그녀는 현상학적으로 보라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라. 여자와 남자는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험과 사고와 느낌과 접근하는 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 여자와 남자는 인간을 보는 눈,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대한 해석, 신에게 다가 가는 방법 등 거의 모든 것이 다 다르다. 뿐만 아니다. 같은 여성 사이에도 처녀, 기혼녀, 어머니, 아내에 따라 보고 이해하는 것이 또 다르다. 왜 남자들은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포함하고 똑같다고 했는가? 똑같아져야만 한다고 강요했는가?
지난날 철학사는 개별성, 독립성, 차별성, 단독자의 중요성을 몰랐다. 이제 실존철학은 우리에게 바로 이 인간의 주체성을 일깨워준다.” 보부아르는 여성도 주체적 단독자라는 실존주의적 시각에서 봅니다.
(4) 보부아르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아무 목적 없이 던져진 존재>로 이해합니다. 이는 실존주의에서 보는 인간 이해 중 하나입니다. <인간이란 지금과 여기라고 하는 이 세상에 그냥 피투된 존재다. 이 세상으로 던져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자유를 주셨다>
보부아르는 하나님도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너희의 목적과 본질은 너희들이 마음대로 만들어라. 하나님인 나도 너희 인간들의 목적이나 본질을 규정해 주지 않는다. 자유다! 여자는 여성의 목적과 본질을 스스로 만들 자유가 있다> 실존이란 무엇인가?
보부아르는 아무 목적 없이 단독자로 던져진 <여성인간>은 자기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5) 물론 그녀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여성성을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물학적, 신체적 여성성과, 사회적, 실존적 여성을 분리해서 보자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여성성은 주어진 것이지만 사회학적 여성성은 스스로 만들어야한다는 실존주의와 맥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본래 여자는 신체적, 유전적으로는 주어진 본질이 있지만 자유인으로서의 여성은 사회적, 실존적, 개별적, 주체적으로 자기의 목적과 본질을 자기가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6) 여기에서 그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L’ existence precede l’essence.> 그리고 <여자는 태어난 것이지만 여성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One is not born, but rather becomes a woman. One is not born a genius, one becomes a genius). 그녀는 실존적 여성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보부아르는 그 동안 남자들이 세뇌시켜온 방식을 거부하라고 부추깁니다. <우리는 남자들을 닮을 필요가 없다. 실존은 거부요, 투쟁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으로 가는 길은 만들어진 여성성을 거부하고 창조적 자기를 만들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생 동안 전체주의와 싸워온 한나 아렌트나 평생을 가부장적 남성주의와 싸워온 시몬 드 보부아르가 어떻게 실존 속에서 조우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체주의와 싸우는 사람은 남성주의와도 싸워야한다”
(7) 왜 남자들은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쓰지 않는데 여자들은 <여자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가? 물론 그동안 남자들은 자신들이 남자이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대표성>을 지닌 존재인양 생각해 왔기 때문이겠고 여자들은 늘 <우리는 인간이기 전에 먼저 여자>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 데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 규명을 위해 몸부림을 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래! 난 여자야!>라고 선언하고 여자가 남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규명해 내야 하지만 그 다음, 그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지난날 남성들이 자신들을 인간과 동일화 했던 것처럼 우리 여성들도 이제부터는 여성 자신을 인간과 동일화 하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부아르는 처음 여성과 남성의 차별화 단계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 단계를 넘어서서 여성과 남성은 함께 <인간의 길>로 들어 서야한다고 말 합니다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도 결국은 다 인간이다).
우리는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질성을 지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 사람입니다. 이것이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의 merging point입니다.
⚫ Questions, Comments & Sharing
오늘은 글쓰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누어 드린 종이 A4에 오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난 후의 후회, 느낌, 다짐 등 아무 것이나 좋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딸, 아들, 손녀, 손자, 지인 등 구체적인 분에게 써도 좋고 그냥 일반적으로 여성, 혹은 남성을 상대로 써도 좋습니다. 이 편지들을 모두 내주시면 (굳이 안 내시려고 하시면 그것도 자유입니다만, 또 카피본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음 시간에 카피해 드리겠습니다) 프로그램 담당자가 파일로 만들어 우리 인문학교실의 재산으로 보관하셨다가 우리 모두의 회의를 통하여 적당한 행사시에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제안합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