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
영화 ‘싱글라이더’ – 오늘의 한국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초상
성공을 부추기는 사회
영화를 보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도대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영화는 현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배우들의 잔잔하면서도 소소한 감정처리, 현실감 있는 일상 연기가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렇게 싱글라이더는 묘한 여운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을 던져줌으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한국사회는 극도의 경쟁사회이자 한 마디로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황금 만능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한국사회를 사는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을지는 몰라도 속도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과 매일 반복되는 기계적인 일상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 되어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도 “성공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올가미에 스스로 갇혀 인간다운 삶을 잊어버리고 오늘도 양심을 팔거나 기계적인 업무에 현대인은 자신을 던진다.
주인공 재훈(이병헌)은 잘 나가는 증권 회사의 지점장이다. 그는 실적을 위해, 부실채권을 고객들에게 팔아 성공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휴지조각으로 변하게 됨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직 성공만을 추구하고 달려온 인생인데, 하루 아침에 직장과 전 재산을 잃게 된 것이다. 많은 수의 한국의 잘 나가는 가족들이 그렇듯이, 주인공 재훈(이병헌)도 자기는 열심히 벌어서 자식의 유학을 위해 희생하는 기러기 아빠이다. 모든 것을 상실한 후 그는 쓸쓸한 아파트에서 문득 아들이 보내온 동영상을 보게 되므로 가족을 기억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가족과 아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에야 새삼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의 초상– 기러기 아빠와 워홀러
기러기 아빠(goose daddy)는 한국사회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신조어이다(국립국어원, ‘2002년 신어’ 보고서에 ”기러기 아빠”가 신조어에 포함되었다. 또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등에서 ‘Gireugi’라는 용어로 조명 받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지에서 기러기의 유래를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며 먼 거리를 여행하며 새끼들의 먹이를 구해온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부가 헤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이란 뜻으로 유래를 들고 있다).
자식의 성공과 유학을 위해, 아내와 자식을 해외에 보내고, 자신은 홀로 국내에 남아 열심히 돈을 벌어 해외로 보내고, 자신은 쓸쓸하게 혼자 사는 아버지를 가리킨다. 기러기 아빠는 현재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허물고, 가족의 붕괴로 사회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 외에도 기러기 아빠들의 연이은 자살이나 이혼 등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더 나은 교육과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살아 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극심한 외로움과 결국에 가서는 역기능적인 가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되어 보이는 증권회사의 지점장, 나름 잘 나가고 성공해 보이는 인생이다. 하지만 그는 자식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로 떨어져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이다. 무엇을 보자고 그렇게 열심히 성공을 추구했던가? 여기에 영화는 하나 더 호주에서 만난 워홀러, 지나(안소희)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온 젊은이의 군상을 이야기 한다. 그녀는 워홀러로 뼈가 부서져라 일해 모은 호주돈 1만 9,000천 달러를 더 나은 가격으로 환전하려고 다른 한패의 워홀러들을 만난다(‘워홀러’의 정확한 명칭은 “Working Holiday Visa Holder”이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워킹 홀리데이 협정 체결국 국민들이 상대방 체결국을 방문하여 일정 기간 동안 관광과 취업을 병행함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며, 여행 전, 출발 국가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 받아서 출국을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20여 나라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체결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호주이다).
영화 말미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러나 돌아온 건 그녀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지나(안소희)의 돈을 빼앗으려고 그녀를 죽인 불량해 보이는 다른 한 패의 워홀러들 역시 방황하는 이 시대의 한국 젊은이들의 또 다른 군상을 보여준다. 그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왔을 터이지만, 향락으로 돈을 탕진하고, 불법체류자로 남아 한탕을 모의하고 결국은 지나(안소희)의 돈과 여권을 빼앗고 죽인다.
싱글라이더: 외로운 여행자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알려 주지만, 모든 것을 잃은 후, 스스로 자살한 재훈(이병헌)과 살해당한 지나(안소희)의 영혼이 시드니의 적막한 주택가를 배회하는 것을 통해 결국은 인생이 외로운 여행자인 것을 직시하게 해준다. 직장과 재산을 잃고 적막한 아파트에서 아들이 보내준 호주 바닷가(타스매니아)의 영상을 보고 무작정 가족을 찾아 호주로 가는 비행기 티켓팅을 한 재훈(이병헌)과 호주에서 우연히 만난 워홀러 지나(안소희)는 모두 죽은 자들이었다. 한때 잘 나갔던 증권회사 지점장 재훈(이병헌)과 꿈을 찾아 호주로 돈을 벌러온 워홀러 지나(안소희), 모두 이 시대 성공과 부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초상을 보여 주고 있다. 재훈(이병헌)이 중년세대를 대표한다면 지나(안소희)는 젊은 세대를 묘사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나름 성공과 부의 신화를 좇아 배회하는 현 한국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재훈(이병헌)이 아내 수진(공효진)을 찾아 시드니의 한 동네(본다이 비치)에 도착했지만 아내는 이웃의 다른 호주남자를 만나고 있었고 호주에 정착하기 위해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직장도 재산도 다 잃어버리고 가족을 찾아 호주에 온 재훈(이병헌)에게 맞닥뜨린 현실은 또 다른 좌절과 비극을 보여준다. 가족을 찾아 호주에 온 재훈(이병헌)에게 가족은 없었다. 그가 추구해 온 것은 성공과 가족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다가 다 잃어 버렸는데 정작 가족을 찾아 돌아 왔을 때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그림자처럼 아내와 자식곁을 배회하는 쓸쓸한 재훈(이병헌)의 모습은 이 시대의 한국인의 초상을 풍자한다. 한국은 이미 나홀로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한지 오래이다. 삼포를 넘어 오포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가치관의 변화로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사회형태는 독거노인들을 방치함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붕괴된 가족들이 넘쳐나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강아지 치치와 타스마니아 해변을 쓸쓸하게 걷는 이병헌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려와야만 볼 수 있는 것들
영화가 시작되고 어떠한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생뚱맞게도 검정스크린에 하얀 자막의 한줄 시가 내려간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시인 고은의 “그 꽃”이라는 한 줄의 짧은 시 싯구이다. 이 한 줄의 시 싯구가 영화를 암시해 준다. 우리는 정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주위를 살펴보고 마음을 고를 여유가 없다. 그래서 주변의 눈부신 경관과 아름다운 꽃들을 보지 못한다. 올라가는 데만 혈안이 되어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의 사회는 지나친 경쟁과 성공신화에 저당 잡혀 있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과 부를 지향하는 목표 중심적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주변과 정작 중요한 가치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주인공 재훈(이병훈)의 눈에 비로소 그것이 깨달아 진 것은 그가 다 잃고 내려 와서야 였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것들, 성공을 향해 열심히 오르느라 보지 못한 것들이 이제 그가 다 잃고 나서야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가족, 친구, 이웃, 환대, 소통과 교류 그리고 강아지 조차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주는,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참다운 행복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도덕감정론’(참조,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김광수 역, 서울: 한길사, 2016)에서 인간이 성공과 부를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것보다도 세상의 관심을 끌기위한 탐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역사학자 박정신도 인간의 역사는 한마디로 “탐욕의 역사”라 정의한다. 참조, 박정신, “탐욕의 역사를 넘어”, 현상과 인식 36[1], 2012, 9-12). 그동안 한국사회는 올라가는 일에만 너무 혈안이 되었었다. 오죽하면 한 때 “부자 되세요”가 한국사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겠는가? TV를 포함한 모든 매스 미디어는 “부자되세요”를 광고함으로 노골적으로 한국사회의 싸구려 자본주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했다. 굳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사회적 인정욕구”보다도 “자아실현의 욕구”가 최정상에 있어야 한다(메슬로우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 인간의 욕구가 그 중요도 별로 단계 일련을 형성한다는 동기 이론의 일종이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서 그 충족을 요구하는 식으로 체계를 이룬다. 이 욕구는 생리욕구-안전욕구-애정, 소속욕구-사회인정욕구-자아실현욕구 등으로 충족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자아 실현의 욕구”보다도 공공연하게 “생리적 욕구” 또는 “사회적 인정욕구”를 더 강조해왔다. 그러므로 인간의 품격을 스스로 천민 자본주의에 첨병으로 내몰고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사회는 변화해야 한다. 인간에게 가장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 공공영역에서 담론으로 꺼내놓고 나누어야 한다.
길 그리고 에필로그
중간 중간 나오는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익숙한 지명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주의 랜드마크로 불리우는 하버 브리지, 오페라 하우스, 본다이 비치, 그레이트 오션로드 등은 영화의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한국인에게도 제법 친숙한 경관이겠지만 호주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은 결국 길을 떠난다. 성공을 향해 길을 떠났지만 그가 가진 것을 다 잃고 나서야 진정한 여행을 떠난다. 호주로 그리고 하버브리지, 오페라 하우스, 본다이 비치, 본다이 마켓,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지나 마침내 호주의 울릉도 타스마니아에 도달한다. 인생은 이렇게 나홀로 길을 떠나는 여행자이다. 그리고 그 길을 떠나면서 우리는 보아야 하고 만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왜 우리는 그 꽃을 올라갈 때 보지 못하는가? 감독은 인생을 길을 떠나는 싱글라이더, 외로운 여행자로 정의한다. 그리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고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본 글은 계간지 ‘이제 여기 그 너머’ 영화에세이 공모전 대상 글이다 _ 편집자 주.
주경식 교수(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전) 웨슬리대학 ·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ks.j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