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
한나 아렌트를 통해 본 악과 인간, 그리고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1906-1975)
한나 아렌트는 1906년 10월 14일 독일 린덴(지금의 하노버지역)에서 유대인 가정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아버지(폴 아렌트)는 엔지니어였는데, 한나 아렌트가 여섯 살 때에 그가 결혼 전에 걸린 매독으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7년 후 어머니는 재혼했다. 아렌트의 사상은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그녀는 회고한다. 한나 아렌트는 어렸을 때 집에서는 한번도 ‘유대인’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길거리에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반 유대인적 욕설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비록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독일민족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나의 어머니는 그녀가 이런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나의 어머니는 만약 학교에서 선생님이 반유대인 발언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라고 딸에게 지시했다. 그러므로 한나 아렌트는 자신이 유대인이란 존재의식, 즉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타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학문적으로 상당히 조숙했다. 그녀의 나이 16세 때에 벌써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들을 읽었을 뿐 아니라 야스퍼스의 “세계관의 심리학” 등의 책들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의 생활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것은 한 선생님과의 충돌로 수업 거부를 주도하였고 그 결과로 퇴학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후에 마르틴 하이데거의 명성에 끌려서 하이데거가 있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1924년 철학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마르브르크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하이데거와 연인관계가 되었다. 그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살에서 스물한 살 때였다. 20년 뒤에 하이데거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기에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를 통해 많은 영감과 철학적 자극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한나 아렌트는 나의 내 철학 활동의 영감이었으며, 열정적 사유의 자극이었다.”
1925년 한나 아렌트는 마르부르크를 떠나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옮긴다. 그러나 그의 박사과정은 하이데거의 권유와 추천으로 당시 하이델베르크에 있었던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에게 사사를 받는다. 이 때 한나 아렌트의 논문 제목은 ‘아우구스티누스에 나타난 사랑의 개념’이었다. 이 때 그녀가 박사학위를 받았던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스물 두 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해에 퀸터 스테른과 결혼을 한다. 나치당을 통해 히틀러가 집권하자 한나 아렌트는 파리로 피신하였고 미리 도망 온 남편과 재회를 한다. 그러나 둘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1937년에 이혼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1940년에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한다. 재혼한 지 얼마 안되어 그들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각기 다른 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게 되자 가까스로 탈출하여 한나의 어머니와 함께 1941년 미국에 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으로 건너간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에서 유대인과 관련된 단체들에서 협력하여 일들을 도와주게 되었고 출판사 편집장일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미국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나치즘과 스탈리니즘을 분석하면서 전체주의의 기원은 바로 반유대주의와 19세기 제국주의에 그 기원이 있다고 밝히고, 그리고 그 근본적인 뿌리는 대중적 인간의 고독한 심리적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 책은 당시 최고조에 이른 냉전적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후에 90년대 중반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학문적 평가와는 별도로,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해준 사건은 1963년에 발행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김선욱 역(서울: 한길사, 2006), 부제: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이 책은 그 당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960년 5월 24일,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에게 잡혀 이스라엘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때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 잡지에 이 재판과정을 특파원으로 취재하고 집필하게 해달라 제안했다. 이 재판과정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견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1963년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주장하여 지성계에 물의를 빚게 된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과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가 송출한 이 기사는 곧 미국 전역에 엄청난 논쟁과 물의를 불러 일으켰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들을 말살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본성을 지닌 흉악한 인격 때문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고하지 않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논지를 전개한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하지 않는 무비판적 사고가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thoughtless) 그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류 최악의 범죄라고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 사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인상은 험악하고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아이히만은 산책길에 만날 수 있는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은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피에 굶주린 악마도 아니었고, 이념에 미쳐 날뛰는 광신도도 아닌 그저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평범한 중년 남자같이 여겨졌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인간이었지만, 평소에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모범적 시민이었고,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으로 비쳐진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능함 그 자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히만의 무능함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무능함은 자기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함이고, 두 번째 무능함은 자기 힘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능함이고, 세 번째 무능함은 타인의 입장으로 바꾸어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함이다.
아이히만은 자기 언어가 아니라 히틀러의 언어로 생각하고 히틀러의 언어로 행동했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이 ‘살인’이 아니라 ‘안락사 제공’이라고 미화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 수백만 명에게 ‘안락사’를 ‘제공’한 것이다. 죄가 있다면 그들에게 ‘안락사’를 ‘제공’할 때 더 편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이것은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 기만당한 것이라는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히만은 누구인가?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은 독일의 졸링겐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그가 8살 때인 1914년에 오스트리아 린츠로 옮겨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아이히만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군에 참여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린츠에서 사업을 시작해 1920년에 가족들은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1925년에 아이히만은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오스트리아로 갔는데 아버지의 사업이 부진하여 학비가 떨어지자 대학을 중퇴한 후 린츠의 정유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1932년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한다. 애초에 친척의 권유에 의해 입당한 것이었지만, 그는 곧 동료 나치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핵심인물이 되어갔다. 1933년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불법화되자 그는 독일로 들어와 독일 나치당의 친위대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34년 베를린에 자리잡고 있는 친위대의 보안국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가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독 일로 돌아 온 것은 무엇보다도 ‘나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친위대 보안국의 유대인 추방의 임무를 떠맡았던 아이히만은 당시 이미 권력 지향적이며 냉혹한 나치스트로 이름이 알려졌었다. 심지어 아이히만이 텔아비브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히브리말 에 능통하고 유대인 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소문을 이용할 정도로 교활한 자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부하를 통해서 소문이 더욱 확산 되도록 이용했다. 이러한 소문은 그를 나치 조직에서 유대인 전문가로서의 지위와 인정받는데 공헌했고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 후 그는 친위대 소속 대대장으로 진급하여 2차 세계대전 중에 제국 안정안전 중앙국에서 유대인 수송 책임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유대인 추방과 수송의 전문가로서 단순히 책상에만 앉아서 일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1941년 나치가 유대인 전멸을 결정했을 때 그는 그 집행을 위임받았고, 실제 그 일을 잘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행한 인물이다.
그의 생애를 보면 아이히만의 머릿속엔 히틀러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정규 교육을 마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한 그는 변변한 학벌이나 능력없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히틀러를 숭배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우상인 히틀러가 말하는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감히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 유대인을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에게 은혜를 입은 일까지 있지만, 히틀러가 명령하는 대로 유대인을 죽였고 털끝만큼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열렬히 믿은 것은 성공이었고, 이것이 그가 알고 있던 ‘좋은 사회’의 기준이었다. 히틀러에 관한 주제에 대해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전형적인 것이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이 하나만큼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노력을 통해 독일 군대의 하사에서 거의 8,000만에 달하는 사람의 총통의 자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 그의 성공만으로도 제게는 이 사람을 복종해야만 할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Ibid., 198].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에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말은 평범함 속에 악이 있다는 뜻으로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악의 평범성’에서 평범은 차라리 진부함, 멍청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악은 자기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생각하지 못하며,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에게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악은 이미 인간의 일상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 역시 언제든지 아이히만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며, 인간다운 삶 을 살고 싶다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체제나 구조에 연결된 톱니바퀴처럼 아무 생각없이 굴러가는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이 법정에 서서 자신의 죄를 가릴 목적으로 연극한 것에 한나 아렌트가 속은 것이라는 반대의견들도 많이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에서 자신이 수행했던 능동적인 역할과 반유대주의의 신념을 숨기고 단순히 나치의 정책과 국가의 체제에 순응한 선량한 시민이자 공무원으로 행세한 것에 한나 아렌트는 속아 넘어 갔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성공지향, 권력의지에의 생애와 그의 나치(히틀러)에 대한 내적신념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법정에서 한 거짓진술에 의거해 잘못된 인상을 받고 그를 “순진한 명령 집행자”로 그렸다는 반대의견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의 테제가 의미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히만에 대해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녀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테제는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안에서 무사유에 길들여져 순응함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인륜적 악을 저지르는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악은 비범한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다만 인류에 대한 불법에 대한 인식과 사유능력을 박탈하고 무뇌의 도구화된 인간으로 전락하게 할 뿐이다.
한나 아렌트와 인간의 조건
인간은 선한 존재로 태어나는가?(성선설) 아니면 악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성악설) 아니면 인간이 선한 존재로 태어나 악해지는 것인가? 왜 어떤 사람은 나름 선한대로 사는데 어떤 사람은 악하게만 사는가? 인간이 악해 진다면 어디까지 악해 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라면 한번 쯤 해보았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 역시 자신이 직접 겪었던 세계 구조(전체주의)의 악의 체제와 악한 현실을 겪으면서 악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악은 역사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왜 인간은 악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악이 인간의 어떤 부분에 해를 끼치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지성있는 인간의 책임일 것이다.
정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는 어떻게 대중들이 나치즘이나 파시즘같은 악한 전체주의에 이끌리고, 그것에 의해 지배당하는지를 성찰했다.[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 이진우 역, (서울: 한길사, 2006)]. 한나 아렌트가 분석한 전체주의의 기원은 결국 전체주의가 몰지각한 지도자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견해를 주장한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한다면, 누구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책임과 권리가 주어진 ‘존중받는 시민’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포기와 체념에 익숙해진 ‘잉여인간’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느껴진다면, 그들은 자신에 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라고 약속하는 확신에 찬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주의의 지도자는 개인을 쓸모없는 잉여존재로 만드는 정치적 도구와 장치를 발전시킨다고 본다.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 요소는 당시 근대사회에 만연했던 ‘쓸모없는 존재’의 출현이었다 …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들은 정당이나 조합과 같은 확고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표류하는 모래처럼 사회를 떠다닌다.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는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의 대중이 생겨난 것이다. 지도자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대중에게서 전체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난다 … 전체주의 정권은 개인을 쓸모없는 잉여존재로 만드는 정치적 도구와 장치를 발전시킨다. 자본주의는 잉여인간과 잉여자본을 발생 켰는데, 제국주의가 잉여자본의 조직이라면, 전체주의는 잉여인간의 조직이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 역(서울: 한길사, 2002)].
한나 아렌트는 근, 현대사회의 이러한 조건아래서 현실정치와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악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악에서 해방된 보다 인간적인 삶의 질서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녀는 20세기 초반의 나치즘과 파시즘, 스탈린주의는 악이 개인의 악한 본성에서 유래하기 보다는 인간들로부터 생각할 능력과 기회를 체계적으로 박탈해서 그 활동력을 권력체제의 부속물로 위축시키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악행을 범하고도 자신이 악하다고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악은 도덕적 죄가 아니라 자기 체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평범한, 생각없는 인간의 무감각일 뿐이다.
‘전체주의의 기원’(1961)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 정치체제에서 발생하는 ‘악의 평 범성’을 발견했다면 ‘인간의 조건’(1958)에서는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활동력을 도 구화함으로 인간을 탈인간화 시키는 원인임을 밝혀냈다.
비교적 그녀의 초기 작품으로 평가되는 ‘인간의 조건’(1958)에서는, 신대륙의 발견과 종교개혁, 망원경, 항해 술등을 비롯한 산업혁명과 과학문명의 발전이 인간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함으로 인간을 스스로 갇히게 하였다고 진단하고 있다. 인간은 노동과 작업, 행위를 동시에 행하는 존재로 오랜 세월동안 살아왔지만,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혁명 이 일어남으로 노동은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우선하게 된 것이다.
아렌트는 그녀의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주된 활동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노동(labor)’ ‘작업(work)’ 그리고 ‘행위(action)’이다. ‘노동’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활동이다. 어느 동물들과 같이 인간의 생명유지의 필수적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여 기에서 인간은 그저 ‘노동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는 자연물을 변형시켜 인공물을 제작하는 ‘작업’을 한다. 작업은 인간이 만들 세계가 영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일체의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행위’는 각자의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인간이 작업을 통해 만들어 내는 세계의 목적을 논의하는 기초적인 활동으로 정의한다. 행위는 노동의 필연성과 작업의 도구성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도록 한다.
아렌트가 지적하듯이, 인간은 노동과 작업, 행위를 동시에 행하는 존재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과학기술이 발달해 짐으로 인해 노동은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우선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소통하는 생산활동이 아니라 소비와 각종향락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인간은 스스로 노동으로 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 조건상 결코 노동없이 유지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는 인간의 고유한 조건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기술을 근본 ‘악’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직업은 생물학적 필요에 종속된 노동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로 올수록 문명은 진보하고 인간은 삶의 여유와 가치를 알게 되어 풍요롭게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이 기계문명의 구조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부속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예술작업 조차도 이미 우리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이 되어버렸다. 아렌트는 자유와 개성이 없는 행위는 행위가 아니라 노동이라고 말한다. 근대이후 사회에서는 인간은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실천, 나만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없는 표준화, 규격화된 ‘행동’만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능력은 예술이나 종교를 통해 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 신적 창조능력은 현대에 들어와 경쟁속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고 도구적 편의성을 증진시키는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오히려 인간이 도구의 주인이 아니라 굴레에 맞는 규격화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는 현대의 조건 아래서 현실정치와 삶에 나타나는 ‘악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악에서 해방된 보다 인간적인 삶의 질서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삶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의 자연적 조건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기대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기계의 한 부품이 되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이야말로 근본적인 ‘악’이기 때문이다.
주경식 교수(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전) 웨슬리대학 · 시드니신학대학 교수
ks.j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