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99)
도로시 C 언더우드(본명: 왓슨) 교수(1933. 1. 15)
한국명: 원성희(元聖喜) 교수, 부산 1960-68; 서울 1968-2004
도로시 왓슨은 질롱에서 자라났고 세인트 조지 장로교회의 교인이었다. 사서 자격을 획득한 뒤에 그녀는 1956년부터 롤런드 하우스에서 디커니스 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또한 음악교육 자격을 취득했다. 도로시는 1966년 11월에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녀는 1959년에 아스콧 베일(Ascot Vale)에서 디커니스로 섬겼고, 1960년 4월 3일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시드니에 있는 올 세인트 칼리지(All Saints College)에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그 해 7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그후 2년 동안 도로시는 서울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녀는 이 기간 동안 영락교회 성가대 회원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임무는 부산에서 학생을 전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와 함께 일하면서 학습을 지도하고 학생운동을 도왔다. 그녀는 또한 부산장신대에서 주로 교회음악을 가르쳤고, 부산의 많은 학교와 대학에서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68년에 도로시는 서울의 장로회신학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가르쳤다. 그녀는 기숙사에서 여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비공식적인 사감의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서울외국인교회(Seoul Union Church)에도 참여했는데 성가대를 지휘했다. 그리고 두 개의 큰 한국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 후에 도로시는 이 분야에서 교육하려면 더 좋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 음악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이화여자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선교부는 그것이 학생들과 접촉하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그녀는 1971년 2월 22일에 학교를 졸업했고, 그녀 외에 유일한 외국인은 중국인 학생뿐이었다. 도로시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그녀는 한국어로 공부했지만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 대학의 총장은 도로시가 교회음악을 가르치기 위해 교수로 돌아오도록 초대했으나 최소한 그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1971년 도로시는 장신대에서 계속 가르쳤다. 1973년 호주에서 휴가를 보낸 이후, 그녀는 에큐메니칼 선교와 국제관계부(BOEMAR)의 격려와 재정지원을 받아 미국 프린스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합창대학에서 교회음악 석사를 공부했다.
197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녀는 이화여자대학 음악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98년 은퇴할 때까지 학교에서 일했다. 그녀는 정교수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도로시는 오라토리오의 역사와 교회음악의 문헌에 대한 책들을 포함하여 교회음악에 대해 한국어로 많은 책과 논문을 쓰고 출판했다.
1977년 도로시는 미국연합장로교회의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와 결혼했다. 그들은 호레이스가 2004년 1월 15일, 86세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몇 주 전까지 서울의 자택에서 호주의 방문자들과 선교사들을 대접하는 비공식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호레이스는 호주인 아내의 남편으로서 역할을 따뜻하게 수행했고 호주인들에게 관대함을 가지고 대했다. 그와 도로시는 일신병원 이사회에서 25년 이상을 섬기면서 오랜 경험과 상당한 지혜를 전달했다.
이화여자대학에서 은퇴한 이후 도로시는 22년 동안 권사로 섬겼던 그리고 호레이스가 그 이상을 장로로 섬겼던 새문안 교회 안에 교회 음악인들을 훈련시키는 기관을 세우도록 초청받았다. 호레이스의 할아버지는 1887년에 이 교회를 세운 창립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 에큐메니칼 교회음악 기관은 도로시의 지도력 안에서 훌륭한 선생들, 직원들, 수많은 열정적인 학생들로 번창했다.
2002년 도로시는 명예서울시민이 되었다. 이화여대의 교수로서 그녀의 모든 시간 동안, 도로시의 전임교수 봉급은 호주연합교회 선교회의 재정으로 보내졌고, 도로시는 그 보다 훨씬 적은 선교사 봉급으로 생활을 했다.
호주 선교회는 여러 면에서 독신 선교사가 기혼자 보다 적은 봉급을 받는 소박한 제도를 실천해 왔고, 의사들과 교수들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되었다. 도로시는 한국에서 거의 44년 동안 훌륭하게 교회를 섬겼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