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3) _ 2월 24일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힘든거야 !”
“살아있으니까 아픈거야 !”
“살아있으니까 미운거야 !”
반대로 말해볼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으니까 기쁜거야 !”
“살아있으니까 행복한거야 !”
“살아있으니까 사랑하는거야!”
다 맞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죽고나면”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미움도, 행복도 아픔도 다 사라지고 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
죽고나면 이런 것들은 모두 살아지고 없어질까요?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 종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음 후에도, 제각기 천당과 지옥으로 가게되어, 천당에 가면, 기쁨과 행복, 사랑과 생명이 이어지고, 반대로 지옥으로 가면, 슬픔과 고통, 아픔과 미움 또한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천국과 지옥으로 이어지는 사후 세상으로 교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은 후에 가는 내세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현세와 역설적 연속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동양사상과 동양종교는 서구 기독교와는 생각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노장철학을 비롯한 인도나 중국의 철학사상은 인간의 사후 세계에 대하여 기독교와는 그 견해를 달리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죽음은 현세의 모든 것을 무화 (Nothing) 시키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입장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인간들이 지닌 육체적 오욕과 칠정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욕 – 5가지 욕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물욕, 명예욕, 식욕, 성욕, 그리고 놀고싶어하는 휴식욕이 포함됩니다.
칠정 – 7가지 감정은 무엇입니까?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그리고 이것 저것 욕심을 부리는 희로애락애오욕이 그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 인간은, 그 누구든 예외없이 욕심의 노예로 슬프게 살아갑니다.
오욕과 칠정은, 우리 모두 “살아있음”으로 생겨나고, “살아있는 동안”은 꺽을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요, 인간존재의 근원이며 실존입니다.
그런데 노자와 장자는, 우리가 죽고나면, 인간은 마침내 이 오욕과 칠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얻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래된 동양의 “무사상”과 “무위론”을 생각하다가 “살아있음”이란 무엇일까하는 데 까지 생각이 조금 넓혀졌습니다.
“살아있음”이란 꼭 이 육신의 생명이 죽지않고 살아있음 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그 알량한 지식, 생각, 주장, 신념, 고집을 포함하여, 소위 말하는 “자아” – “자아의 살아있음” 까지 모두 내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으로” 생겨나는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은,
“나 하나 죽음으로” 벗어버릴 수 있을텐데…
“나 하나만 죽으면” 우리 공동체에는 평화가 오고,
“나 하나만 죽으면” 나도 참된 자유를 얻어 참된 잔리에 이를텐데…
죽어야만 없어지는 것,
죽어야만 이겨낼 수 있는 것,
아직도 살아 있기에,
아직도 내가 살아 있기에,
아프고, 괴롭고, 슬퍼하는 내 몸과 영혼의 자화상을 쳐다보면서,
오늘의 살아있음을 넘어서서,
내일의 죽음이 안겨줄 축복을 그려볼 때가 요즘들어 좀 더 자주옵니다.
아마 조금씩 철이드는가 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