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4) _ 2월 25일
“진지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요즘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정의당의 장혜원 의원 등 여러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발의한 “차별금지법” (Anti-Discrimination Act) 제정 문제를 놓고 적지 않게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법안의 내용을 좀 찾아보았습니다.
지금 발의되어 심의하려고 하는 한국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은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차별을 받아서는 않된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과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1) 그들의 출신 국가
2) 인종이나 피부의 색깔
3) 남자냐 여자냐 하는 성별
4) 나이
5) 혼자 사느냐 둘 이상이 사느냐하는 가족의 형태
6)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
7) 성적지향, 즉 동성애자냐 아니냐 하는 7가지 분야에 있어서 차별을 하거나 차별을 받아서는 않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에서는 국적, 언어, 인종, 피부색, 성별, 건강, 성적지향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법안은 구체적으로 이 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1) 고용과 취직, 즉 직장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2) 상품의 판매와 구매, 즉 물건을 사고 팔때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3) 교육, 즉 교육기관을 통해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제공하거나 받을 때.
4) 정부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을 때.
이상의 4가지 상황에서는 그 누구든지 위에서 열거한 7가지로 사람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구체적 윤곽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차별금지법”은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개신교회가 문제 삼는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이들의 주장과 기도에 의하면, 이 법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른 남성과 여성 이라는 성적인 차이 (차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다름)를 무너트리고,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동성애를 조장함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거역하고,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무너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법이 실제로 만들어져서 시행되게 되면,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나, 반대운동을 하게 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됨으로, 이는 명확한 종교의 자유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억누루게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국가 인권위원회나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원의원측의 설명에 의하면, 이 “차별금지법”은 결코 성적지향이나 성적 정체성, 즉 동성애자를 포함한 LGBT (레스비안,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든가, 잘하는 것이라든가, 그들의 행동을 장려하는 법이 아니라, 다만 그런 성적지향성을 지닌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나 교육, 서비스나 정부의 정책에서, 동등한 권리를 받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양측의 입장을 읽고 들어보니, 여기에는 피차 다른 위치에 따른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도 있어 보입니다.
자,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이럴 때는, 시간이 좀 걸린다 하더라도, 서두루지 말고, 피차 다른 입장에서서, 견해를 달리하는 개인들과 단체들이 함께 모여,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피차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종교인들은 기도나 설교로만 반대의견을 표시하지 말고, 입법자들은 힘이나 숫자로 밀어붙칠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독교 윤리학자들을 포함하는 신학자들과 전문적 법안 입법자들이 함께 모여,우리 사회의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열어, 진지하게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면서, 오해는 좁히고, 이해는 넓혀 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주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학자나 미디어들도 우리 사회가 앞서 경험했던 것을 중심 삼아 이런 문제가 어렵다고해서 그냥 회피만 하지 말고, 좀 진지하게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여 잘 알고있는대로, ‘다름’이나 ‘다양성’은 잘못이나 단점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폭넓게 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자양분이 됩니다.
우리처럼 다양한 문화와 언어, 다양한 인종과 전통을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게 해주는 “다문화 사회”, “복합문화 사회” – Multicultural society 인 호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이 얼마나 의미 있는 법임을 이미 체감한 사람들 입니다.
세상은 넓고, 인종은 다양하고, 생각은 서로 다릅니다.
종교적 신앙에 따라 동성애자를 ‘종교적으로는 죄인’ 이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종교적으로만 보자면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인이지요.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그 누구도 차별을 하거나 차별을 받아서는 않된다는 현실과 상식이 우리 앞이 놓여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겐 그 다음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것은 ‘법의 한계’ 문제입니다. 인간의 삶은 모두 다 법으로 규제되거나 장려되지는 못합니다. 법이란 오직 인간들의 나타난 말과 행위만을 대상으로 삼을 뿐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양심 까지도 법으로 다스릴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차별금지법”도 차별하는 사람이나 단체의 사회적 행위를 문제 삼을 뿐이지, 인간성 속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성” – “차별하려는 심리현상” 까지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약간씩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심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차별하는 마음 금지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 거짓 금지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정법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도덕과 종교” 입니다.
윤리 도덕적 훈련과, 종교적 깨우침을 통하여, 인간성 내부에 근본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차별하는 마음”을 덜어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육과 훈련과 종교적 신앙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가다듭습니다.
차별하는 마음 때문에, 차별하는 행위가 나타납니다. 차별하는 행위는 “차별금지법”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문제는 “차별하는 인간의 심성과 이기심과 자기 중심주의” 입니다. 이는 도덕과 양심과 종교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래서 입법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종교인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 만사 다 법을 만든다고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종교인들도 기도나 설교를 넘어서서, 입법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종교인들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이란 존재는 그 누구도 결코 도덕적 원칙과 종교적 신앙에 따라 진실하고 정직하게만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