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19)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박상준 교수가 쓴 ‘일본 불교 사찰의 마리아 관음상’이란 칼럼에서 읽은 글입니다. 일본말로 ‘가쿠레 기리시단’이란 말은 ‘숨은 크리스챤’이란 뜻이랍니다.
일본에선 16세기 예수회선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들어온 후 크게 퍼져나갔는데, 그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들어서면서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하고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환란을 피하여 산속으로 숨어들었는데, 그들중 어떤이들은 산중에 있던 절에도 들어가 몸을 숨기며 신앙을 지켰는데, 그들은 그 절에다 마리아상이나 십자가 돌비석을 많이 남겨놓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16세기 일본의 ‘가쿠레 기리시단’입니다. 요즘은 그런 마리아관음상이나 십자가 돌비석이 일본의 오래된 산중 사찰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교의 사찰 안에 카톨릭의 마리아상이나 십자가 비석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요? 여러가지 추측과 주장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일본 사찰의 관용과 너그러움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타종교를 지닌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절간을 찾아왔을 때, 16, 17세기 일본의 스님들과 불자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들 ‘가쿠레 기리시단’ ‘숨은 기독교인’들을 숨겨주고 지켜 보호해 주면서 절간에서도 예수를 믿을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는 것 입니다. 지난날 역사 속에서 우리는 비록 나와 종교는 달라도 어려운 가운데 있던 소수의 타종교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의 종교를 지켜나갈수 있도록 배려해준 관용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지난 2021년 5월 19일은 불교에서 ‘부처님 오신 날’로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서울 종로에 있는 유명한 불교사찰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부의 기독교 신자들이 거기에 모여 ‘인간의 손으로 만든 탑이나 불상은 모두 우상이다’ ‘오직 예수’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팻말을 들고 5시간이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조계사의 한관계자가 말했습니다. ‘이건 신앙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예의에 관한 문제 입니다. 이웃 종교에 대해서 그럼 않되지요’
저는 아무 대표성도 없는 일개 은퇴한 기독교의 목사이지만 지난 6월, 한 지인과 함께 이곳 시드니에 있는 정법사 주지 기후스님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사과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짧은 잡기장 몇줄을 긁져거리면서 저는 젊은 날 저의 신학적 사고에 크게 영향을 끼친 한스 큉 (Hans Kung) 신부가 생각났습니다.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평생 카톨릭의 사제로, 또 튀빙겐대학의 교수로 우리 시대, 신학과 사유, 교회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그이는 지난 4월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책들과 명언들이 있지만 지금도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는 귀절이 있습니다.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세상엔 평화가 없습니다’ ‘종교들 사이에 평화가 없이는 나라와 나라, 당신과 나 사이에도 결코 평화가 없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