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서의 뒷담화
골프의 역사
골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료가 부족해 ‘썰’만이 무성하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 네덜란드의 아이스하키 비슷한 놀이가 15세기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다 골프로 진화됐다는 것이다. 골프의 발생지가 스코들랜드라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가설이 무척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골프 단어 어원도 스코틀랜드 고어인 고프(Goulf)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프는 ‘치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커프(Cuff)와 동의어인데 여기서 ‘c’가 스코틀랜드식인 ’g’로 되었고, 점차 변해서 현재의 골프(Golf)가 되었다는 설이다.
그린에 있는 홀 사이즈는 108mm이다. 초기에는 홀 사이즈가 각기 달랐는데 누군가 배구관을 홀에다 꽂고 경기를 하다가 배수관 사이즈인 108mm가 공식화 되었다는 설이 또한 유력하다.
골프 덕후(매니아, 오타쿠) 정도되려면 이 정도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까? 물론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면야 무엇이든지 알려고 노력하겠지만, 골프의 역사가 현재 나의 골프 이해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골프 역사가 재미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기록된 사실이 어떠한 흥미도 유발해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골프 역사를 책으로 엮어내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다.”유시민 작가의 정의는 공감이 간다. ‘역사의 역사’라는 책에 밝힌 그의 이론적 배경은 아마도 에드워드 카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불세출의 강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골프 홀의 사이즈가 배수관 때문에 108mm가 아니라 홀에 공을 넣기 위해서는 온갖 난관을 극복해야하므로, 아니 고뇌의 최고봉인108번뇌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108mm가 되었다는 ‘썰’이 왠지 더 정감이 간다.
골프를 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라운딩을 하게 된다. 잘 치는 사람, 못 치는 사람, 화 잘 내는 사람, 과묵한 사람, 소심한 사람, 내기 좋아하는 사람, 매너 없는 사람 등등.
골프가 더욱 풍성한 경험을 쌓게 해 주는 이유가 많은 사람과 다양한 경기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라운딩 파트너지만 좀 부담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왕년에 싱글 치셨던 보기플레이보다 못한 선수. 이 선수는 케케묵은 싱글 경험에서 끌어낸 화려한 골프 무용담이 끝이없다.
싱글 치기 위해 목숨을 걸지만 솥뚜껑 보고 놀란 새 가슴의 이 선수는 연습은 거의 PGA 수준으로 하지만 라운딩에서는 싱글 문턱에서 좌절을 맛 본다. 최고급 골프채에 연습도 프로급, 이론도 빠삭하지만 마지막 한 두 홀을 남겨두곤 떨려오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라운딩할 때마다 꼭 2%가 부족하다.
한 분은 과거의 영광에 너무 매여있고, 또 한 분은 미래의 싱글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다. 양쪽 분위기가 너무 묵직하다.
골프의 진짜 매력은 골프 라운딩을 하는 지금, 이곳(Now & Here)에서 뭔가 부족하지만, 최대한 즐기는 것이 아닐까?
Past is History.
Future is Mystery,
Present is Gift.
명필도 붓을 가린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골프 영어로는 A bad golfer blames his clubs.
꼭 골프 못 치는 ‘놈’이 연장 탓한다고 믿었다. 있는 게 시간과 돈밖에 없는 김 사장은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채가 나올 때마다, 몇천 불씩 들여 새 채를 장만하는 것이 취미다. 창피해 대놓고 부러워하지는 못하고, 한마디 삐딱하게 하는 조언은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이다. 이나마 한마디 해야지 속이 편하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 위로가 되는 듯하다가, 비거리가 10-20미터씩 느는 모습을 보면 배가 살살 아파진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김 사장 부러워하며 연장 탓을 하다 보니 와이프도 지쳤는지, 곗돈 털어서 풀세트 클럽을 장만해 준단다.
드디어 20년 만에 풀세트로 연장을 바꾸게 되면서 오랫동안 간직한 진리의 말씀 ‘명필도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출처가 궁금해졌다. 모를 때는 Naver 형님에게 묻는 것이 지름길이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당나라 4대 문필가 중의 하나인 구양순 전에 출처가 있다고 변함없이 Naver 형님이 친절히 알려주신다.
구양순은 어떤 붓이나 어떤 종이든지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이런 경구가 나왔다고 한다.
골프 못 치는 것은 내 실력이지 골프채 문제가 아니라고 20년 넘게 믿다가 최근에 골프채를 바꾸며 생각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첫째 나는 명필이 아니기 때문에 붓을 가려도 된다.
둘째 붓도 다양하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붓을 잘 선택해야 한다.
셋째 명필도 자신이 선호하는 붓이 있다.
타이거 우즈가 내 클럽을 가지고 언더파를 칠 수 있을까? 당연히 언더파를 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타이거 우즈가 메이저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 클럽이 아닌 자신의 클럽을 가지고 치는 것을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명필도 중요한 순간엔 자신에 맞는 붓’을 써야 하니까.
골프채 선택 이전에 꾸준한 연습이 우선이 되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골프채가 내 몸의 일부, 곧 나와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어떤 붓이든지 그 특성을 파악하여 자신의 몸과 일체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가 안 되는 이유는 108가지가 넘는다고 골프에 푹 빠지신 어느 선사님의 고뇌에 찬 고백이시다. 이유가 너무 다양하여 그 원인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치유법은 세업 자세와 그립을 체크 하는 것이다.
골프 그립을 체크한다는 것은 결국은 골프채와 나와의 일체감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부부 일체도 중요하지만, 골프채와 일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내가 가진 골프채와 일체가 되도록 노력하는 길이 남의 채 부러워하며 와이프 들볶지 않는 왕도가 아닐까.
마이클 림
mcilim@hotmail.com
백세 인생이라는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백세까지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환갑 전이라기보다는 왠지 50대 후반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살갑게 들리는 나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는 것이 끔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골프는 내 인생의 후반전을 좀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한 선택이고, 이 컬럼을 쓰는 것 역시 좀더 풍성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전에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었던 길벗 모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도반, 좋은 길벗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같이 굳은 심장에 약간의 설렘이 속삭인다. 골프를 통한 새로운 도반, 길벗들이 인생 후반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Michael Lim, www.crazygolfdeals.com 한국 마켓팅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