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펄 벅의 ‘대지’,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
펄 벅의 대지: 문화적 우월주의나 선교 제국주의 배격, 꼼꼼한 고증과 조사의 기록으로 평가
펄 벅(Pearl S. Buck)은 미국의 소설가로 ‘대지’ 3부작 외 다수의 작품을 썼다. 중국식 이름은 싸이전주(賽珍珠), 한국식 이름은 박진주(朴眞珠)다.
펄 S. 벅(Pearl Sydenstricker Buck)
·출생: 1892년 6월 26일(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스보로)
·사망: 1973년 3월 6일(80세, 미국 버몬트주 댄비)
·직업: 작가, 교사
·국적: 미국
·활동기간: 1915~1973년
·대표작: 대지
·수상내역: 퓰리처상(1932), 노벨문학상(1938)
·배우자: 존 루싱 벅(1917–1935), 리처드 웰쉬(1935–1960)
·종교: 개신교(장로회)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간 펄 벅
태어나 생후 수개월 만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선교 관련 활동에만 열중한 아버지 때문에 집안일은 어머니가 도맡아야 했지만, 부모의 중국 선교활동은 펄벅이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생각했었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였다. 펄 벅은 1910년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교에서 학사학위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
1917년, 뒤에 중국 농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과 결혼하였고 이때 성이 ‘Buck’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지적 장애인이었다. 자서전에서 펄 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 딸은 ‘대지’에서 왕룽의 딸로 그려진다.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1927년 국민당 정부군의 난징 공격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체험, 피치 못할 균열을 깊이 자각한 일도 그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한 동기였다. 이 균열은 작품의 바닥에 숨겨진 테마로 흐르고 있다. 그는 이 균열을,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입장에 서서 제2의 조국 중국에 대한 애착을 통해 평생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메워 보려고 애썼다.
첫 작품 ‘동풍 서풍’으로 작가의 삶 시작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첫 작품 ‘동풍 서풍’(East Wind: West Wind)을 출판하였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이 채 안 되어 3번이나 다시 인쇄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였다.
이어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을 중심으로 왕룽의 아내 오란과 세 명의 아들들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 1부 ‘대지’(1931년)를 출판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대지는 왕룽이 죽은 후 세 아들이 지주, 상인, 군벌로 각자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묘사한 2부 ‘아들들’(1933년), 3부 ‘분열된 집’(1933년)과 함께 3부작 ‘대지의 집’을 쓴다.
1934년 이후로 그의 저서들을 출판해 온 J. 데이 출판사의 사장 R. J 월시와 재혼,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다. 그는 사회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펄 벅과 한국의 깊은 인연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여 한국 관련 소설도 집필하였는데,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는 1881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말까지의 한국 상류 가정의 변천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1968년)를 쓰기도 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 어머니의 전기인 등이 있다.
펄 벅이 처음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의 OSS에 중국 담당으로 들어온 것부터였다. 당시 한국 전문으로 오게 된 유한양행의 창업자이기도 한 유일한과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의 아내가 중국계 미국인인 호미리였으며, 유일한도 숙주나물 통조림 제조회사인 라초이 식품회사를 운영하면서 중국의 녹두장사와 거래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펄 벅은 자신의 작품 중 하나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김일한으로 하는데, 이는 유일한과의 인연을 중요히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1964년에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이 설립되었고 1968년에는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새해’(The New Year)가 출간되었다.
한국 부천시에 펄벅기념관이 운영중이다. 펄벅기념관은 1967년부터 10년간 심곡본동에서 운영되었던 소사희망원을 복원하여 건립되었으며,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사회사업가인 펄벅여사의 박애 및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유물 232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펄벅재단이 부천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노벨메달리스트, 펄벅이야기, 월드무비Q 등의 가족교육프로그램과 펄벅 아줌마의 선물, 세계의 미술여행 등의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아시아배움터, 아시아문화탐험대, 다문화비교체험 등의 다문화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펄 벅의 주요 작품들
동풍 서풍(East Wind: West Wind, 1930), 3부작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 1부 대지(The Good Earth, 1931), 2부 아들들(Sons, 1933), 3부 분열된 집(A House Divided, 1933), 어머니(The Mother, 1934), 싸우는 천사들(1936, 아버지의 전기), 어머니의 초상(1936), 애국자(The Patriot, 1939), 나의 가지가지 세계(1954, 자서전), 서태후(Imperial Woman, 1956),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 1963), 새해(The New Year, 1968) 등이 있다.
펄 벅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 줄거리
펄 벅의 대지는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퓰리쳐상과 1938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왕룽 일가를 통해 중국인의 삶과 농민들의 소박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농부인 왕룽은 부잣집 종이었던 오란과 결혼을 하면서 살림을 일구어 나간다. 그러나 홍수와 가뭄 등 천재지변의 시련을 겪으면서 남방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돈을 모아 부호가 된다. 그 과정에서 렌화라는 여인을 첩으로 들이고 모아놓은 재산을 많이 허비한다. 부인인 오란과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식들의 성장과 결혼,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의 부양 등 땅과 흙에 대한 왕룽의 깊은 애정, 남편의 뜻을 따라 땀 흘려 일하는 아내 오란,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아들들의 모습이 대지 1-3부가 중국의 넓은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 제1부 ‘대지’(The Good Earth, 1931년)
비옥한 땅의 가치와 근면한 노동, 검소함, 책임감 등이 인간에게 얼마나 보편적인 미덕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가난하게 살지만, 성실한 농부인 주인공 왕룽은 성 안에서 가장 부자인 황씨댁 여종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다. 오란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알뜰하고 강직한, 전형적인 농부의 아내 감이었다. 선천적으로 부지런한 농부인 왕룽과 오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생활에 점점 여유가 생기자 황씨댁 전답을 사들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 큰 가뭄이 들어 무서운 굶주림이 시작되자 왕룽 일가는 오란의 의견에 따라 남방으로 떠난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객지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남쪽 대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주변 빈민들이 들고 일어나 부잣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왕룽과 오란은 군중 틈에 끼어 부잣집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많은 돈과 보석을 손에 넣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황씨댁의 남은 땅을 모두 사들여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왕룽은 재산을 불리고 땅을 많이 구입해 소작인들을 부리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성내 찻집의 렌화라는 기생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등 농사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렌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로 시집오면서 몸종 겸 식모로 두쥐엔도 데려오는데, 이는 렌화를 첩으로 들인 것보다도 더 왕룽의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렌화는 오란에게 생판 모르는 남이었지만, 두쥐엔은 오란이 황씨집에서 종살이하던 시절 황씨집 주인영감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오란에게 횡포를 부린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란은 남편이 젊고 예쁜 첩을 맞이한 사실을 알고 가슴앓이하며 나날을 보냈고, 극도로 쇠약해진 오란이 끝내 고생스러웠던 한평생을 마치자 그제야 왕룽은 오란이 이 집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왕룽은 첫째 아들의 제안에 따라 이제는 셋집이 된 황씨댁 저택으로 집을 옮기고, 넓은 저택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독 속에서 지내다가 결국은 젊고 어여쁜 종 리화를 첩으로 삼고 외로움을 달랜다. 리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 렌화의 시중을 드는 종이었고 흉년에 아버지가 은 20냥에 왕룽에게 팔았는데, 난봉꾼인 왕룽의 사촌 아우에게 희롱당할 위기에서 구해 왕룽 곁에 잠시 두었다. 사실 리화는 왕룽에게 첩이라기보다 양딸 같은 존재이다. 리화 역시 아버지한테 하는 것처럼 왕룽에게 매달렸다. 큰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대지주가 되고, 둘째 아들은 거대한 상인이 되며, 막내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남방의 군벌에 입대해 군인이 된다. 어느 날, 훌륭한 관을 준비해놓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왕룽은 두 아들이 토지를 팔려고 의논하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한다. 그러나 두 아들은 비웃음만 흘릴 뿐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안 판다고 얼버무리고 뒤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다.
… 왕룽은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했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해. 아무도 너희한테서 땅을 빼앗지 목해”
왕룽은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줌 쥐고 중얼거렸다.
“땅을 팔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아들은 양쪽에서 아버지를 부축했다.
왕룽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흙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안심시키느라 거듭 말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절대로 땅은 팔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늙은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두 아들은 서로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 제2부 ‘아들들’(Sons, 1933년)
2부는 왕릉의 아들들의 이야기다. 왕룽이 결국 노환으로 사망하고, 호사스럽고 게으른 지주가 된 첫째 왕이(王一), 약삭빠른 장사꾼이 된 둘째 왕얼(王二), 군벌이 된 셋째 왕싼(王三, 후에 불리는 이름은 왕후)의 행보를 왕싼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고 있다. 둘째 왕얼은 형이 소유한 전답을 대거 사들여 소작료를 챙기고 부를 증식시킨다. 왕룽의 둘째 첩이었던 리화는 왕룽이 죽자 천치 딸과 같이 산다. 무엇보다 왕싼을 중심으로 군벌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전투 묘사 등 여러 모로 볼거리도 있다.
왕싼은 초기에 지역의 군벌 아래서 인정받는 부대장이 되고, 혁명은 말로만 외치며 현실에 안주하는 상관을 혐오하여 백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독립탈영한다. 그 부하 백 명으로, 술이 유명한 작은 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표범’이라는 소군벌을 물리치고 현장을 협박해 현의 사령관 신분이 된다. 사령관이라지만 사실상 현을 통치하는 건 현장이 아닌 사령관 ‘호랑이 장군 왕싼’이어서, 현장이 죽은 뒤에도 현으로 부임해오는 관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대가 청 말기의 치안 공백 상태이긴 하나, 엄연히 ‘도적’ 신분인 타 군벌과 다르게 명목상으로는 관군 신분이 될 정도로 꽤 머리를 썼다.
그렇게 작은 군벌에서 차츰차츰 무기를 늘리고 병사를 늘려가며 2만 명에 이르는 중대 규모 군벌이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왕후는 아버지가 되고, 안정을 원하게 되면서 자신이 꿈꾸던 신중국 건설에는 결국 나서지 못한다.
– 제3부 ‘분열된 집’(A House Divided, 1933년)
3부는 왕룽의 손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향에서는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가의 기반이었던 농토를 모두 다 잃는다. 첫째 왕이의 집안은 아들 하나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은행의 부은행장이 되어 있어서 상하이로 이주하고, 둘째 왕얼의 집안은 2부에서 삼촌 왕싼 밑에 들어간 아들 하나가 부유한 상업도시 하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도망간다. 문제는 셋째 왕싼인데, 왕싼은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그 후유증으로 앓다가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왕옌을 만나고 죽는다.
애초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은 왕얼에게 있었다. 왕싼이 아들의 유학 자금이나 군자금 등으로 왕이에게 돈을 빌려 썼는데, 왕얼은 동생에게 가차 없이 이자와 대부 원금을 상환 받았다. 이 비용 부담 때문에 한때 2만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있던 왕싼의 군대는 건달패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조카인 왕얼의 아들조차 자기 지배구역에서 걷는 세금을 삼촌에게 바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문의 배경인 왕싼의 군대가 없어지자 왕얼의 착취를 참고 참던 농민들이 일시에 봉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벌의 보호를 받는 유력자들이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 주면서 상부상조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왕얼은 결국 그 탐욕스러운 본성을 못 버려서 동생에게 자금 지원은 못해 줄망정 철저히 잇속만 따지다가 결국 화를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왕싼의 봉기 초기부터 보면 왕얼이 돈을 안 받고 넘어간 건 왕싼이 늘어난 군대를 무장시킬 총을 구입했을 때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무사히 수령한 2천 정 정도에 대한 대금은 전부 받았고, 소실된 1천 정가량에 대한 대금만 왕싼이 못 받은 것에 대해선 지불할 수 없다고 나와 어쩔 수 없이 안 받고 넘어간 것에 불과했다.
한편 그 시기, 왕이의 두 아들은 혁명군에서 중책을 맡아 공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옌을 혁명군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의 군사학 가정교사는 고위직에 올라 있었다. 옌의 이복동생 아이란은 부유하지만 여자 관련으로 소문이 좋지 않은 연애 소설가와 결혼했으며, 옌은 의붓동생 메이린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3부가 종료된다.
문화적 우월주의나 선교 제국주의 배격, 꼼꼼한 고증과 조사의 기록으로 평가
중국의 왕룽이라는 한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습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우리 농민들의 정서와도 닮아 있어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거칠고 가난하지만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중국 농민들의 삶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와 건강한 자극이 되어 준다.
작가인 펄 벅은 선교사였으나, 기독교를 중국과 아시아에게 강요하고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며 비기독교인을 얕보는 제국주의적인 면을 무척 비난한 개념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국 기독교회들은 그를 엄청나게 비난했다. 더불어 이 작품이나 ‘북경에서 온 편지’ 등 그의 소설을 보면 아시아에 대하여 고증도 철저히 하고 여러모로 꼼꼼하게 조사하여 쓴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대지가 중국을 비하하는 백인우월주의 및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주장은 출간 직후부터 나왔다. 중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문호 루쉰이 이렇게 주장했고, 오랜 기간 중국에서 펄 벅과 대지가 저평가 받은 것이 바로 루쉰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루쉰이 이처럼 대지를 저평가가 이유가 번역이 엉망으로 된 중역판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1부 ‘대지’에 이어 2부 ‘아들들’, 3부 ‘분열된 집안’이라는 두 편의 후속작은 1부에 비해 2-3부는 인지도가 1부만 못하다. 세계 문학 전집 류의 대작 시리즈로 나올 때는 1-3부를 함께 묶어서 내놓는 경우가 있지만 축약본이나 1부만 요약해서 출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부 ‘아들들’과 3부 ‘분열된 일가’ 역시 함께 읽을 때 연속성이 높은 작품이라 별개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펄 벅은 ‘붉은 대지’라는 4부 격의 소설을 집필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붉은 대지는 왕룽의 손자들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펄 벅의 ‘대지’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경리의 ‘토지’가 있다
‘토지’는 대한민국의 소설가 박경리(1926년 12월 2일-2008년 5월 5일, 81세)의 소설로 총 5부로 이루어졌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간 ‘토지’를 집필했다.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한국의 방송사별로 각각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녀가 1980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이 조성되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집필생활을 하였다. 또한 ‘토지’를 기념하며 소설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소설속 최참판댁을 구현해 2001년 공개했는데 소설 ‘토지’와 관련된 여러 문화행사를 운영중이다.
사실 박경리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토지’와 펄 벅의 ‘대지’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 박경리(Kyung-Ree PARK, 朴景利, 본명: 박금이)
1926년 12월 2일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6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5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못 떠나는 배’, ‘애가’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한편 박경리는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치 않았다. 2008년 5월 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고향인 통영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 ‘토지’의 배경
총 5부로 구성된 ‘토지’의 1부 배경은 1897년 평사리의 한가위에서 부터 시작된다. 평사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써 지주인 최참판댁과 소작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2부는 간도 용정촌에서 대화재가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3-4부는 3.1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5부는 1940년대부터 1945년도까지의 이야기로서, 서희는 양현으로부터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 ‘토지’의 줄거리
‘토지’는 최참판 일가와 이용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모두 5부 16권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894년 평사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최참판 일가의 몰락을 그리고 있으며, 2부에서는 배경을 만주 용정으로 옮겨 최서희의 치부와 조준구에 대한 복수, 그리고 최서희와 두 아들을 비롯한 평사리 사람들의 귀향을 그리고 있다. 3부에서는 배경이 넓어져 만주와 일본 동경, 서울과 진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김환(구천이)이 옥사한다. 4부에서는 김길상의 출옥과 탱화의 완성, 기화(봉순이)의 죽음, 그리고 오가다 지로와 유인실의 사랑과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2세대인 이용의 아들 이홍과, 최서희와 김길상의 두 아들 최환국과 최윤국이 이야기의 전면에 서서히 등장한다. 5부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가운데 한국인들의 고난과 기다림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주요사건은 이상현과 기화의 딸 이양현과 최윤국, 그리고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의 삼각관계가 있다. 이 소설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이양현이 최서희에게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난다.
– 박경리와 그의 작품 ‘토지’에 대한 평가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박경리에 의하면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파시 제1권, 131면, 1993)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바로 한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
그녀의 대표작 ‘토지’는 1969년부터 연재를 시작, 26년에 걸친,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박경리 개인에게나 한국문학에 있어서나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6백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종적인 축으로 하여 진주와 간도(만주), 경성, 일본 등으로 삶의 영역이 확대되고 윤씨부인과 최치수, 최서희로 이어지는 최참판댁과 연결되어 삶을 엮어가는 평사리의 주민들, 김길상이나 김환을 중심으로 한 민족운동에 투신하는 인물들, 최참판댁의 전이과정 속에서 부침하는 신지식인들 등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토지’는 봉건적 가족 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 서구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 생활과 민족의 이동, 독립운동의 전개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초점으로 개인의 운명과 역사의 조류가 서로 침투하는 웅대한 조망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개항기 이래 한국 사회의 풍속에 대한 풍성한 탐구, 각양각색의 인간상의 창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심오한 직관은 그 격변과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한국인의 삶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육화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논의들, 즉 역사소설인가 아닌가가 문제시 되었다거나 농민소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거나 총괄체 소설, 가족사 소설, 민족사 소설, 총체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어 온 것은 곧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서사구조, 다양한 층위의 세계가 중층적인 구조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른 지면을 통해 좀 더 세부적으로 소개하려한다.
‘대지’와 ‘토지’에 나타난 흙, 생명력과 그 너그러움
펄 벅의 ‘대지’와 박경리의 ‘토지’에서 서민들의 토대가 되는 흙은 사람들 무리에게 질고와 휴식의 무대가 되는 것은 예외가 없다. 그런 모질고 험난한 삶들 가운데 흙은 말이 없다. 흙은 부드럽고, 때론 메말랐으며 거칠고, 그렇지만 결국은 흙은 어질며 너그럽게 포용하고 수용해 준다. 그렇게 수없는 세월이 흐르면서 또다시 후손들이 그 무대에 우뚝 서게 된다. 잎이 떨어져 나무뿌리로 다시 이어지듯 흙의 생명력은 다시 돌아가야 할 본향과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