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목적편향주의 교육
필자가 한국의 교단을 떠난 지도 꽤 오래 되었기에 현재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과거 한국의 교육 정책에 있어 교육목적은 피교육자를 국가나 사회 이념의 신봉자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교육기관의 고위직에 오르면 국가가 의도하는 목적에 부합된 교육지표를 만들고 거기에 따른 교육을 하도록 교육지침으로 일선학교에 하달되었으며 이 교육지침은 인쇄된 형태로 액자로 만들어져 교장실에 걸어졌다. 이런 방법으로 상위기관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거기에 일선학교 교장선생님의 교육 방침이 더해지고 학부모들의 명문대학 합격전략 요청까지 합세하게 되면 그야 말로 학교는 더 이상 교육본질에 맞는 활동은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을 길러내라”
“통일 조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라”
“국가의식이 투철한 사람을 기르자”
이러한 구호는 당시 교육문구들의 구체적인 사례였다. 상급기관에서는 이러한 지시와 강요가 학생들에게 행동화 될 것을 예상하여 추진했겠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전시행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학부모들은 대학입시에만 관심이 깊어 야영활동, 학교축제 등과 같은 입시와 관련 없는 학교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학생들은 대학입시의 비중이 낮거나 관련 없는 과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교육본질을 외면하고 교육 외적인 데서 교육의 목적을 찾으려한 것에 기인한다.
이런 교육상황이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다. 과거의 서양에서도 문제가 되어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목적 불필요론까지 주장하였었던 것이다. 그는 교육이란 삶, 그 자체이며 교육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가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면 다음 행동을 스스로 재구성 하여 성장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교육이 개인이나 집단의 어떤 야욕, 입신양명, 권력유지 등으로 오용, 악용 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외부적 목적에 교육을 끼워 맞추는 것은 훈련이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의 가능성을 실현한다든지 지성이나 이성을 함양하고 애국심을 기르고 민족중흥에 기여 하는 것 등은 교육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을 구호를 내세우며 강요해서는 안 된 다고 본 것이다.
과거에 한국의 교육기관과 학교가 건물 벽에 거창한 교육구호를 내걸고 구호에 맞는 교육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호주의 학교건물에 이와 유사한 교육구호를 내걸은 것을 보지 못했다. 정권유지에 자신이 없는 국가일수록 요란하게 구호를 내걸고 국민들을 세뇌 시키려고 한다. 교육의 목적을 인간의 내재적 가치, 즉 자아실현, 가능성개발, 지성의 함양 등에 중점을 두어야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상의 배경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목적을 집단적, 사회적 목표로 지향하는 수단으로 하려는 것은 전제적[專制的] 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배움을 즐거운 삶에서 얻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라면 계속적인 성장을 향한 재구성을 하기는 힘들다. 목적편향주의는 목적을 달성하면 허탈감에 빠지게도 되며 목표를 이루려는 과정 자체에 즐거움과 보람을 길게 가질 수가 없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 자체가 오로지 명문대학 입학을 위한 것이라면 영어단어 하나 외우는 것, 수학문제 푸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겹겠는가! 운동선수가 운동자체의 즐거움보다 메달획득에만 목적을 갖고 있다면 목표를 달성한 후에 찾아오는 허탈감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계장이 과장으로 진급한 후에 과장의 보람은 팽개치고 다음 목표인 국장진급만을 꿈꾸다 보면 과장으로서의 직무는 충실하지 않고 상관 눈치나 보고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무능한 과장으로 전락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의 경우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유명대학 간판을 따고 좋은 직장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면 대학 입학 후에 심오한 학문의 지식 체계에는 접근도 못하고 취직하기 위한 전략에만 몰두 하다 대학생활을 망치고 또 다른 목적에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친절한 공무원, 의사, 경찰관, 짜증나게 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급료에만 있는 것이지 업무자체에 대한 보람과 즐거움을 못 느끼는 그리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교육이 어떤 목적 성취로만 치닫게 되면 그것을 마친 후에는 새로운 지식습득과 학습의 흥미를 갖지 못하는 침체된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을 어떤 목적의 수단이 아니라 교육자체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는데 더 가치를 부여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요구되어 진다. 그래야 미래의 세대들은 교육을 통한 진정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인가에 전심하고 몰두하는 모습이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목적 편향적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 그 자체로 한없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교육,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아니겠는가?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